최근 절반쯤 읽다가 만 상태인 책 중에 <주권과 순수성: 만주국과 동아시아 근대>란 책이 있다. 책쓴이는 프레선짓 두아라.

 

거칠게 저자만 소개하자면, 중국권역 근현대사가 전공인 인도산 역사학자로 현재 시카고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있단다. 중국권역의 근현대사가 주 관심사지만, 궁극적으로 근대자본주의 세계의 (반)주변부 인민들이 "민족"이라 불리게 되면서 좋든 싫든 겪어야 했던 갖가지 사회정치적 갈등과 모순들을 '민족사적 역사서술로부터 구출하고', '아래로부터의 시각'과 (지정학적) '주변으로부터의 시각'을 결합해 다시 서술하려 애쓰는 사람이 되겠다.

 

듣기로, 이 책의 번역자인 한석정 선생은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로 연대 사학과 임성모 선생님 등과 함께 만주국연구회를 만들어 근대 만주국에 얽힌 '난감한 역사적 경험'들을 나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공유하려 노력하는 이로 알고 있는데,, 모르겠다. 지금 어떤 성과를 낸 상태고 어떤 연구작업을 진행중인지는. 적어도 지금 같은 한국 상황서 계속 붙잡고 가기가 여러 모로 꽤 쉽지 않은 주제인 건 분명하다..ㅋ;

 

물론, 여기서 말하는 '난감함'이란 어디까지나 민족주의적이면서 생산력발전단계론적인 근대의 완성(과 그 이후로의 이행), 혹은 이의 한국적 변주라고 할 '내재적 발전'(과 통일국가적 근대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얘기겠지만..

 

 

아무튼 읽으면서 새삼 들었던 생각인데,,

 

박정희를 '나라의 살림살이를 파행으로 이끈 독재자'였다거나, 알고 보니 '친일부역 매국노'라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만한 과거도 있었더란 식으로만 봐선 확실히 곤란하겠다는 생각.

 

가뜩이나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떠받쳐줄 인물난에 허덕이는 한국 우파들의 단골 레퍼토리처럼, 소위 '정상참작'을 해주잔 얘길까? 설마, 그럴 리야 없을 테고..^^::

 

다만 '정치적으로 유효한 무리짓기식 실천에 필요한' 역사적 근거로 삼기에는 정말이지 시효가 다 됐다는 얘기겠다. 물론, 일단 어떤 공분을 유발하는 역사서술로서야 그 쓸모는 분명 일정하겠으며, 아마도 당분간 여전할 거다. 이런 공분의 감정 자체가 이미 대체로, 제대로된 정치적 각을 세울 무기로선 시효가 다 됐다고 보는 민족주의적인 상황인식 회로의 일부를 이루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외려 대한민국이 좀 먹고 살만해진다 싶으면 그런 대로, 그게 아니면 또 아닌 대로 "좋았던 옛시절의 활기"를 떠올리는 이들과 함께 자꾸 출몰하는 박정희란 인물(더 정확히 말하면, 당시 그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최규하 등 적지 않은 '식자층'들)은 도대체 어떤 역사-사회적 맥락에서 탄생하게 된 건지를 좀더 제대로 살펴 봐아야아,

 

하아아~ 이래서 박정희가 우리 몸을 보하긴 커녕 찾아먹으면 찾아먹을수록 우리의 심신을 자꾸 갉아먹는 맹독성 마약이겠구나, 하여 이런 인물은 그 어떤 계승의 대상도 아닌 그저 철저하고도 꾸준한 극복의 대상이겠구나 하는 걸 더 명확히 할 수 있겠다 싶어서다.

 

잡초들한텐 미안한 얘기지만, 잡초 줄기만 뜯어낼 게 아니라, 아예 뿌리를 들어내야 하겠다는 얘기다. 뿌리가 워낙 넓고 깊으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그러니까 줄기부터 최대한 뜯자 식이 아니라, 차라리 그럴 힘을 모아 깊으면 깊은 대로, 어쨌거나 들어내 가야겠기에 하는 말이다. 쓰다 보니 이런 비유가 실제 필요한 작업에 대한 성가심 내지 두려움을 유발하겠다는 생각이..ㅠ; 뭐, 쓰는 쪽이 개떡 같이 써도 읽는 쪽서 찰떡 같이 알아줄 거라 믿어볼란다.

 

그럼, 흔히들 '역사의 심판대'에 올려놓고 질타했듯, 박정희는 그저 눈 앞의 사리사욕에 연전연패,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한 '친일모리배'일까? 글쎄, 그렇게 "볼 수 있다" 쳐도 그게 다는 아닐 뿐더러, 박정희의 행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나 이해는 결코 아니겠다. 그런 면이 분명 있는 만큼이나, 그런 '해석'들로만 그가 보인 행보를 그 당시로건 이후로건 온전히 파악했다고 하는 건 무척이나 안이하고 불충분하며 무엇보다 자족적이겠다는 거다.

 

 

그런데, 그래서 결국 어쩌자는 거냐고?

 

일단 일종의 유력한 가설로 주장컨대ㅋ  박정희가 1960~70년대 후반까지 대한민국을 통치하면서도 내내 염두에 뒀던 발전 모델은 일본이 아니라, 더 정확히 말함 근대 만주국이라고 해야겠다는 거다. 이 생각이 흔히들 '그거언 니 생각이고오오~'란 뜻으로 쓰이는 '주관적인 견해'인지, 꽤 의미심장한 설득력을 갖춘 역사적 분석의 결과인지는 직접 책을 보셨으면 좋겠다. 간명한 설명을 여기서 하기엔 능력도 안 되거니와, 어쨌거나 포인트는 박정희가 내심 꿈꾸던 "낙후한 조선 민족"의 국가 이상(내지 모델)이 일본이 아니라 근대 만주국, 근대 만주국, 다시 한 번, 근대 만주국이었다는 걸 기억해 두자는 것이므로.

 

내가 기억하기로, 만주국에 대한 이해는 한국의 당시 국정 교과서뿐만 아니라 비주류-비판 역사학계에서도 얼추 이랬지 않았나 싶다. 그저 간악무도한 일제가, 그것도 감히 고구려 땅이던 만주 쪽에다 난데없이 만들었다 없어져버렸다는 터무니 없는 "괴뢰국" 정도? 적어도 내겐 딱 그 정도로만 알려졌던 바로 그 만주국은, 도대체 어디에 쓸 물건으로 탄생하게 됐을까? '만철'이라 불리던 당시 일본 최대의 글로벌기업권력과 일본의 오늘을 개탄하던 '내지'의 낭만적 이상주의 엘리트들, 그리고 만주군 수뇌부의 상호협력 아래, 그토록 물량을 쏟아부어 가면서 말이다. <주권과 순수성>을 통해서 보니,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듯싶다.

 

만주국이 내건 이상은, 결국엔 '권력의 레토릭'에 불과했어도, 처음엔 근대 일본의 '자본주의적 타락'을 정화하고 그 와중에 불거진 식민주의의 폐악을 일소하려는 '오족협화적 이상' 아래 만들어졌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만주국은 요컨대 "진정한 근대적 발전"을 실제로 추구했던 동아시아형 복지국가 모델이자, 오족협화적인(21세기 버전으로 다시 번역하면 다문화적인ㅎ) 국민통합(내지 대화합)의 비전을 시현할 주권적이고 대안정치적인 시공간이었던 셈이다. 1970년대 이후 '아시아의 호랑이들'이 부상하고, 서구권 학계에서 이를 설명하려는 발전국가론이 한창 득세하던 197~80년대보다 4~50년 정도쯤 앞서서 말이다.

 

한국산 우익과 범한나라당계 인사들이 그토록 계급이해의 지속-강화에 철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화합과 상생의 국민통합" 멘탈리티를 곧잘 드러내면서 지지를 갈구하고, 심지어 이런 멘탈리티의 "진성성"을 대중에게서 인정받곤 하는 것도..

 

이른바 "반민주적 군사독재" 시절이 남긴 "유산" 내지 "유신의 잔재"라는 시각이 아니라,, 근대일본령 조선의 주민들, 그 중에서도 특히 계급-신분적 위치를 지키거나 향상시키려 했던 조선인 농산업 자본가들이나 박정희 같은 친문명 엘리트들에게 과연 근대 만주국이란 어떤 것이었고, 그것이 어떻게 설명되고 조선인들의 만주국으로의 이주 압력을 높일 만큼 대중적으로까지 수용됐는가 하는, 역사적인 맥락의 '연속과 단절' 속에서 이해해야겠구나 싶더라고 할까.

 

상당수 지주-자본가들과 이들과 일부 겹치기도 하는 천황실 귀족 같은 부자들이나 엘리트급식자층 말고는 도무지 답이 안 나오던, 심지어 이들 같은 (아마도 민족자본가 유형일) 유산가이거나 이들과 함께할 기회가 그나마 열린 엘리트식자층이라 해도 근대일본령 조선이란 곳에서의 전망이란 게 기껏해야 대체로 흐리고 가끔 맑음 정도라 봤던 조선인들에게, 근대 만주국이라는 장소와 그곳이 내건 비전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아마도 짐작컨대, 꽤 많은 조선인들은 대중 매체를 통해 근대 만주국을 보면서(아니, 정확히 말하면 상상하면서겠지만) 이를테면 "잘 살아 보세, 잘 살아 보세, 우리도 한 번 잘 살아 보세!" 같은 악상을 떠올릴 만하잖았을까? 내지의 정부도 그랬겠지만 특히나 일본령 조선의 정부인 총독부로서야, 자본축적 과정상 필요는 했으나 막상 처치하기 곤란한 자본주의적 과잉인구가 돼 있던 조선“민족”들을 조절·재배치할 매력적인 배출구로 내심 반겼을 테고 말이다.

 

 

그러니까 박정희라는 인물은 차라리, 그 당시 일본을 중심 거점으로 동아시아 일대에 광범하게 득세했던 "근대적 (자본주의)권력의 식민성"과 그 내적 모순을 그야말로 온몸으로, 심지어 손꾸락에 난 피로 혈서까지 써가며 아낌없이 보여준, 근대성 이데올로기의 화신으로서 우리 주변에 출몰하고 있는 게 아니겠냐는 거다. 박정희가 체화한 사고회로는, 실은 역사적으로 독특한 유럽산 사회조직 원리이자 지구적인 식민주의 지배양식이라 해도 좋을 근대성을 '왜곡'이나 '결여', '파행화'했던 게 아니라, 실은 만주국이라는 '진정한 근대화' 경험(내지 실험) 속에서 담금질됐던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는 얘기다.

 

이렇게 규정하면, 간사한 '친일모리배'의 그것쯤으로 치부되는 그의 사적인 이해와 언뜻 보기엔 그야말로 "좌충우돌"의 갈짓자 행보라고밖엔 설명하기 힘든 개인적 행보의 사회구조적 맥락을 모두 아우르는 일관된 설명이 충분히 이뤄질 수 있을 테니, 기존 논의들이 일정하게 가진 '합리적 핵심'들을 추려낸 인식론적 갱신이자 '지양'이면 모를까 결코 단순한 부정이니 해체일 순 없을 테고.ㅎ

 

 

무엇보다, 박근혜계의 21세기 복지국가 비전이, 스스로 말하듯 아버지의 유훈이라면 더더욱, 그것이 이미 만주국에서 실험이 덜 돼서가 아니라, 실은 그 반대여서 파국으로 끝난 우익판 아주 '오래된 미래'일 뿐임을 겨냥할 수 있겠어서다. '해석투쟁'의 측면에서도 박근혜식 복지국가=박정희식 근대화=만주국(이라는 "괴뢰국")=미래지향이 아니라 복고적 과거지향=.. 식으로 한 큐에 싸잡는 연좌형 통짜배기공격도 가능해질 듯하고. 지배적 자본 블럭의 이데올로기적인 레파토리의 새로움이란 게, 알고 보니 (이네들한테 늘상 공격당하는 사회주의적 비전보다 한 술 더 떠) 낡아빠지기기만 한 게 아니라 썩은 내까지 나려 한다는 연타도 아마 가능하겠다 싶은데..ㅎ

 

물론 선택적으로 접근해야겠지만, 이와 아울러, 최근 회자되고 있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비롯해, 소위 (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 담론의 유효성이 발전주의 노선 자체를 겨냥하지 못 하는 한, 그게 왜 결국엔 성장만능의 유토피아 내지 유토피아적인 악몽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지도 아울러 드러낼 수 있을 테고 말이다.

 

(사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같은 데서 내놓는 정책 제언을 보면 여러 복지 담론 중 제일 좋고 실한 것들만 이어붙이듯 하려는 모양새인데, 그들의 본의와 다르게 논의지형이 형성될까 좀 걱정이다 나는. 그러니까 무슨 난놈들끼리 쓱싹대는 자기완결적 설계도 같은 걸 역동적 복지국가의 비전이자 구현의 전제조건인 줄 알다간, 막상 복지에 필요한 사회적 자원과 잉여 독점 세력과 아무래도 가까운 박근혜계 진영 쪽에서 선거유세용으로만 빨고서 뱉기 딱 좋은 형태로 속절없이 포섭될 공산도 크겠다는 거지. 그나마도 죽 쒀서 개 주는 격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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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2 05:43 2010/03/22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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