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가)천국, 노동자지옥. 근대 시민사회의 품격을 떠받쳐온 두 바퀴다. 누군가는 아직도 그런 고리타분한 명제에 매여 있냐고 할지 모르겠다. 유감이지만, 그렇게 나를 힐난한다고 해서 이 명제가 찌그러질 것 같진 않다. 그럴 시간이 있으면 차라리 근대 시민사회의 운동 원리부터 들여다봤음 좋겠다. 크고 작은 역사적 변화 속에서도 그 원리가 얼마나 고리타분하리만치 지속돼왔는지 말이다.

 

근대 시민사회에 특유한 분할과 통합의 변증법 속에서 각국산 자본가 계급은 대체로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하듯 따로 또 같이 놀 수 있게 돼 있지만, 이들 계급에 쥐어짜이기 십상인 노동자-대중의 경우 국가간 체제의 기본성격상 여럿이 함께 놀긴 커녕 각국 내에서 ‘시민 아닌 시민’인 것도 모자라 위계화된 국민/민족/인종 정체성에 따라 상호반목과 드잡이용 동원의 늪에나 빠지기 좋게끔 편제돼왔다. 오호, 통재라! 가만 보면 볼수록, 실로 괴이하고 쓴웃음 나는 일 아닌가. 가뜩이나 목구멍이 행여 포도청 될까봐 갖가지 압박에 시달리기 일쑤인 노동자-대중의 처지에서는 특히나 그렇다.

 

그래서였다. 일본 프리타일반노조 쪽에 메이데이 전날 직접 만나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던 건. 우리 삶 전반을 불안과 짜증에 쩔게 만드는 온갖 압박들의 뿌리를 캐고, 나아가 이 뿌리를 말려죽이는 데 필요한 싸움 내지 상호부조의 구도를 기왕이면 좀더 뚜렷이 해보고팠던 거다. 일단 부질없는 데다 종종 끝간 줄 모르고 잔혹해지기까지 하는 나라사랑 민족주의 역할극 따위로 각국산 노동자들끼리 제 살만 스스로 파먹을 게 아니라 말이다.

 

제안이 실제로 성사될지는 사실 불투명했다. 주지하다시피, 지난 3월 초 일본 동북부 해안에서 일어났던 대지진-쓰나미와 그로 인한 원전 파괴의 여파 탓이었다. 해서, 처음엔 텄나 보다 싶었다. 물론, 후쿠시마에서 대체 뭔 일이 벌어졌는지를 놓고 ‘집중보도’란 이름 아래 막상 스펙터클 만땅의 변죽때리기 아니면 딴청피우기에나 집중해주시는 양국산 주류 미디어를 봐서라도, 그리 되는 건 영 못마땅했지만서도. 이럴수록 되려 직접 만나 얘길 들어야 하는데, 그래야 좋은데, 참 좋은데, 어떻게 할 방법이 없네, 할 수밖엔 없던 차.

 

아무래도 이심전심이었을까? 프리타일반노조 쪽에서 반가운 맞장구 소리가 들려왔다. 좋다고, 직접 만나서 얘기하자고 말이다. 그 가운데도 가벼운 우여곡절이 없진 않았지만, 결국 예정대로 4월 30일 오후, 동교동 굴다리 근처에 자리한 수유너머N에서 서로 가려운 데 긁어주듯 직접 만나 얘기할 수 있었다. 이런저런 메이데이 전야행사가 따로들 잡혀 있는 데다 추적추적 비까지 내려 내심 썰렁하지 않을까 좀 걱정이 됐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싶을 정도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던 듯싶다. 무엇보다, 이번 후쿠시마발 핵 재앙 같이 ‘구조화된 재난’ 와중에 속절없이 묻히기 일쑤인 우리 ‘깃발 없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는 이번 포럼 취지에 걸맞게, 소위 민주화된 공론장에서마저 쉽게 접하기 힘든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구체적으로 무슨 얘기가 오고갔고 어떤 점이 숙제로 남았는지에 대해선 일단 여기, 그리고 여기를 꾹 누질러 주시라).

 

특히나 ‘우리는 하여간 따로 논다’는 데 대한 당당함으로, 주눅듦이라든가 눈치보기 같은 거 없이 지금 당장 여기에서 필요한 걸 말하고 한다는, 뭐 이런 프리타일반노조의 기본 각이랄까, 독자적 입지는 거의 대다수 한국산 사회운동 조직들이 몇 번이고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겠다 싶었다. 뻑 하면 일단 닥치고 대동단결하자느니, 분열과 분화도 분간 못하면서 뭉쳐야 산다는 둥 결국 다 죽자는 소리만 하질 않나, ‘진정성’ 같은 허사나 남발하면서 정작 진정한 노동자-대중들의 연대 내지 ‘계급 형성’의 정치는 노상 유예시킬 뿐인 작금의 이른바 진보-좌파정치를 되새김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뭐 이렇듯, 불안정노동자들끼리 국경을 가로질러 직접 만나 ‘인터내셔널’한 문제의식이나 이에 관한 실천상의 딜레마에 관해 이야길 나누니 마냥 좋더냐고 하면, 물론 그랬다. 솔직히 적어도 지금으로선, “참으로 좋지 아니한가!” 하는 걸로 족할 상황에 “…그러나 이 포럼의 한계는 여기, 또는 저기에 있다는 점에서 블라블라…” 할 계제일까 싶을 정도다. 난점이나 한계야 물론, 빈한한 주머니 사정부터 시작해 우리 ‘인민의 입’이 기꺼이 돼주셨던 통역 분들에 대한 적절한 처우와 관계설정에 이르기까지, 분명 한둘이 아니겠지(개인적으로는, 앞으로 저질화된 체력을 확 끌어올려 아라비안나이트를 방불케 할 ‘끝장 정신’으로 하고 싶은 얘길 밤새 다 해봤으면 싶더라.ㅋ). 그러니까 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방점을 찍지 않는 한, 현실적인 한계와 난점들에 대한 언급은 이같은 만남을 한낱 ‘악세사리’ 같은 걸로, 따라서 사실상 지속불가능한 것으로 치부하게 만들기 십상이겠다는 거다.

 

바로 지금, 우리, 불안정노동자들한테 인터내셔널(혹은 글로벌)한 만남의 미덕과 잠재력은 뭐며, 이걸 어떡함 좀더 도탑고도 강렬하게 살리고 도처에 전염시킬 수 있을까? 일단 이 질문의 답부터 궁리하는 데 방점을 찍어 보자는 얘기 되겠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어쨌거나 이번 포럼이 앞서 던진 질문을 이 글을 읽는 여러분과 함께 풀어가기에 좋은 계기가 된 것만큼은 분명하지 싶다. 적어도 나로선 이 질문이, 우리 회원들은 말할것도 없고, 인터내셔널한 정치의 귀환이 불러올 ‘모종의 설레임’을 예감하는 모든 이들에게 반갑고도 불가피한 화두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다음 번 빈털터리 포럼 예고] 다음 번 포럼에선 "우리를 부려먹는 사장님들은 다 어디 숨었나(가제)"라는 주제로, 고용자한테 쥐어짜이고 삥뜯기는 노동자들은 갈수록 늘어나건만 이들을 부려먹는 우리 사장님들께선 잔머리칼 빼곤 도무지 보이질 않는 한국산 시민사회의 음산한 태평천하를 찬찬히 들여다볼 예정이다. 이른바 원청의 사용자성을 겹겹이 은폐·분산하는 착취의 그물망들은 어떻게 짜여져왔고 짜여지고 있는지, 이 그물망들을 마침내 넝마로 만들어버릴 실천 경로들은 무엇일지 짚어보는 자리가 되겠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의 화신이라도 된 양, 노동시장 곳곳에서 유령 같은 존재감을 미치도록 시전해주시는 우리 한국산 사장님들. 이들한테 "고스트 버스터즈"의 뜨거운 손맛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시는 분들, 물론 회원분들까지 포함해, 대환영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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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비정규노동센터 월간 소식지에 쓴 빈털터리 포럼 후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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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4 14:47 2011/05/1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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