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3월1호>유물론이란 무엇일까?

 

김진태(노동해방학생연대 고대모임 회원)

 

 

 

‘유물론(唯物論)’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공산당? 마르크스?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악의 무리들? 우리는 유물론materialism을 ‘오직 유(唯)’자에 ‘물질 물(物)’자를 써서 번역합니다. 오직 물질! 유물론은 ‘정신적인 가치를 무시하고 물질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는 사상’이라는 잘못된 이해가 보편적입니다. 유물론자들은 물질적 가치만을 중요시하고 정신적 가치를 무시하기 때문에 인륜도 도덕도 땅에 떨어진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얘기들은 마치 ‘공산당은 뿔 달린 악마들’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우스꽝스러운 오해입니다.


  그렇다면 유물론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요? 이에 반대되는 관념론(觀念論)은 무엇일까요? 이는 물질(자연 뿐만 아니라 사회까지 포함)과 의식(정신, 사고 등)의 관계에서 무엇이 본원적인가에 대해 대립되는 두 견해입니다. 물론 유물론은 물질이 본원적이라는 주장이고, 관념론은 의식이 본원적이라는 주장이죠. 우리가 흔히 던지는 질문. 즉, ‘신을 비롯한 어떤 정신이 세계를 창조했는가? 아니면 세계는 인간의 의식에 앞서서 옛날부터 존재했는가?’라는 질문이 바로 유물론이 맞느냐, 관념론이 맞느냐를 묻는 질문입니다.


  여러분들의 눈이 한 줄의 여백을 지나는 동안 어떤 생각하셨을지 정말 궁금하네요. 어려운 문제인 만큼 이는 철학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쟁점을 형성합니다.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에서는 ‘유물론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나타난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과 사회구조의 모순을 비판하기 위하여 대두된 사상’이라고 설명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발생하기 수천 년 전 철학적 사고가 막 발생하기 시작한 그 때부터 유물론과 관념론은 대립해왔답니다. 우리는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부터 영혼과 육체의 관계가 무엇인지 고민했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는 플라톤과 데모크리토스의 대립이 있었죠. 한국에서는 이황과 이이, 서경덕의 대립이 그 예라고 볼 수 있겠네요. 


  무엇이 옳은 견해일까요? 판단을 내리는 데에 도움이 되는 얘기를 몇 가지 더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에요. 인간이 한순간에 갑자기 몽땅 죽었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세계가 갑자기 몽땅 사라질까요? 아니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해도 날아다니던 새, 뛰어다니던 토끼들이 갑자기 멈출까요? 아니겠죠? 그렇습니다. 인간 또한 이 세계를 이루고 있는 하나의 운동하는 물질일 뿐입니다. 토끼가 뛰고 새가 나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새와 토끼를 감각을 통해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의식이 존재해야 세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존재해야 그것에 대한 인간의 의식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죠.


  공룡에 대한 우리의 생각도 예로 들 수 있을 듯합니다. 우리는 화석, 공룡발자국 등을 연구하면서 공룡의 진짜 모습을 상상하여 복원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연구를 하기 전에, 다시 말해 예전에 공룡이 살았다는 사실을 밝혀내기 전에는 실제로 이 지구에는 공룡이 살지 않았던 것이 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공룡은 실제로 살았던 것이고, 우리는 지금에 와서야 연구를 통해서 현재 공룡이라는 대상에 대한 관념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이죠. 이처럼 물질이 정신에 우선함을 알 수 있습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TV는 누가 먼저 생각을 한 후에 물질로 만든 것이 아니냐! 그러면 관념이 우선한 것 아니냐!’라고 따질 수도 있겠습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이 말이 사실이라는 것과 유물론이 거짓말이라는 것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자연에서 금속, 플라스틱 등의 물질을 뽑아내는 방법, 전기를 만들어내는 방법 그리고 전파라는 것을 영상으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알아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과의 결합을 통해서 알아낸 것들을 종합해서 만들어 낸 것이 TV입니다. 인간은 실제로 존재하는 물질들을 통해 형성된 관념들을 바탕으로 머리를 써서 생각한대로 물질 대상을 오히려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TV라는 관념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TV를 실제로 구성하는 것들은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따져보면 오히려 유물론이 옳은 얘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몇몇 관념론자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념들은 그저 관념일 뿐,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 물질이 존재하는 것은 알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관념론의 한 견해라고 볼 수 있죠. 이런 사람들한테 실제로 대상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인간의 의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요? 아주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향해 총을 쏴보면 됩니다. 그 사람 말로는 총알이라는 관념은 존재해도 실제로 총알이 존재하는지는 모른다고 했잖아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총에 맞는 것이 그리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총알이라는 ‘관념’이니까요.


  그렇다면 예를 들어, 물이 끓으면 수증기가 된다는 것이 사실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누가 보장해주는데? 위에서 말한 사람들은 실재로 물과 수증기는 존재하는지 알 수 없고, ‘물’의 관념이 ‘수증기’의 관념이 시간적으로 연속적으로 감각된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이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라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맨 날 끓여먹는 게 라면인데 그걸 모를 리가 있냐!’ 그렇습니다. 우리는 물질에 ‘실천’을 가함으로써 그 대상 물질이 나의 의식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실천’하면 뭔가 정의로운 뉘앙스가 있지만 철학에서는 ‘인간이 의식적으로 대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물은 수천억 번이 훨씬 넘게 끓여졌고 단 한 번도 수증기로 변하지 않은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물은 끓으면 수증기가 된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두고 ‘물질이 의식에 반영’된다고 합니다. 이 반영이 제대로 되는가를 보증해주는 것이 바로 보고 듣고 느끼는 등의 ‘실천’입니다. 실천이야 말로 제대로 인식하는 것의 보증수표입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물질이 의식에 근원한다는 것을 알아봤습니다. 화창한 봄날이 다가옵니다. 연애하기 딱 좋은 계절이죠. 혹시 그 사람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으신가요? 그러면 계속 찔러보세요. 찔러보는 ‘실천’만이 그 사람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니까요. 그리고 명심하세요. 그 찔러봄이 그 사람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