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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와 농민의 몰락, 그리고 우리의 과제
쌀 시장 개방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쌀 수입 10년, 정부는 쌀 관세화 유예 협상을 준비하고 있고, 이에 대한 운동진영의 대응 역시 준비되고 있다. 남한에서 유일하게 자급이 가능한 곡물은 쌀이며, 전통적으로 한국 민족은 쌀에 대한 애착심이 강하다. 때문에 쌀 시장 개방은 다른 어느 문제보다도 민감한 사안이다. 쌀 시장 개방 뿐 아니라 WTO 등으로 대변되는 세계화 흐름은 취약한 농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남한의 농민에게 죽음을 강요하고 있다. 낮은 가격을 무기로 다량으로 수입되는 외국 농산물 앞에서 남한의 농산물은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다. 일련의 세계화에 의한 농산물 시장의 개방은 남한 농업을 괴멸시킬 것이 분명하다.
자본이 주도하는 세계화로 인해 민중들이 겪는 고통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흐름에 대해 민중들이 저항에 나서는 것은 당연하고도 정당한 일이다. 여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농민 문제에 있어서도 이들이 세계화 흐름에 저항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일이다. 농민들은 자본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화가 가속되면 될 수록, 몰락할 수밖에 없으며, 생존의 위기에 몰린 그/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투쟁 뿐이다. 이런 면에서 농민들의 투쟁을 깎아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농민은 혁명적 계급인가
문제는 이러한 농민들의 투쟁이 과연 자본주의 사회를 바꾸는 길인가이다. 농민들은 자체로 하나의 동일한 집단이 아니다. 생산수단의 소유 정도에 따라 여러 계층으로 나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모든 농민이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개인으로 존재할 뿐, 조직된 세력으로 등장하지는 못한다. 하나의 공장에서 공동으로 일하며 단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노동자들과 달리 농민들은 자신의 소유지에서 따로 따로 일한다. 공동작업이라고 해봐야 열을 넘지 못한다. 농민들이 처한 이러한 조건을 고려할 때, 무작정 농민들의 투쟁을 찬양할 수는 없는 일이다. 혁명적 계급은 그/녀들이 가진 전투성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그/녀들의 투쟁이 자본주의와 정면으로 대치할 수밖에 없고, 그 투쟁이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방향으로 나갈 때만 그/녀들은 혁명적 계급이라 불릴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았을 때, 농민은 그 자체로서는 혁명적인 계급일 수 없다.
농민들이 하나로 단결할 수 없다는 말에 대해 매년 겨울이면 열리는 농민대회를 예로 들며 반론을 펼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농민들도 단결해 그/녀들이 가지는 공동의 이해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벌인다. 이 순간만큼은 이질적인 구성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 투쟁의 요구는 소부르주아적인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투쟁은 몰락하는 자신의 지위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농민들이 한데 모여 정부에 항의하는 가장 큰 목적은 농산물 시장개방을 막기 위해서이다. 이는 타국 농민들과의 경쟁에서 남한 농민이 불리한 위치를 점하고 있으므로 정부가 나서서 불리한 부분을 보완해 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한에서 농민들의 투쟁은 지역분산적이고 수공업적인 현재의 농사 방식을 고수하는 방향으로 나타난다. 결국 반세계화 투쟁은 농업에 있어서 취약한 남한 농업을 정부가 나서서 보호할 것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귀결한다.
일각에서는 초국적기업의 농업지배를 문제삼으며 농민들의 투쟁을 정세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음모 뒤에는 초국적 자본들이 버티고 있고, 농민들의 투쟁은 이들의 음모에 저항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투쟁이며 자본주의를 분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카길과 같은 초국적 기업들의 횡포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경우 간과하고 있는 것은 농민들이 어떠한 계급인지에 대한 분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모순의 배후에는 자본이 존재한다. 때문에 모든 투쟁은 반자본주의적일 수 있다. 각각의 투쟁들이 계급적일 수 있는 것은 참가하는 세력이 얼마나 사회주의적인 정치를 가지고 있는가이지, 대립하는 적이 누구인지가 아니다.
다시 노동자계급 중심성으로
농민들의 투쟁에 결합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는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탈각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일한 혁명적 계급은 노동자계급 뿐이다. 여타의 계급/계층이 혁명적으로 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인정하며 이들과 함께 미래의 이익을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할 때 뿐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지위는 하락하며, 이들은 노동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 몰락은 불가피하며, 자본주의 철폐 외에는 대안이 없다. 즉 그/녀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현재의 이익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미래사회의 주인인 노동자계급과 함께 싸워야 한다. 노동자계급 중심성은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이 어디에 있는지를 밝히고 모순을 깨뜨릴 중심세력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것이지 결코 민중에 대한 배제나 방기가 아니다. 각각의 투쟁들은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노동자계급의 중심성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 투쟁들의 의미를 갉아먹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당 투쟁들의 성격을 더욱 명확하게 해 주며 나아갈 길을 분명하게 할 뿐이다.
세계화의 대안은 노동자계급에 의한 자본주의 철폐 뿐이다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세계화를 지연할 수는 있어도 막을 수는 없다. 자본은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폭력적으로 제거된다. 이미 자본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섰다. 때문에 자본주의 자체를 철폐하는 것만이 세계화에 대한 대안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세계화로 인해 농민들이 겪는 고통에 가슴아파하고, 그/녀들의 투쟁에 동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맹목적으로 농민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농민집회에 결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농민들이 자신의 현재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한, 즉 그/녀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몰락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한 그/녀들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대안일 수 없다. 이러한 투쟁은 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 새로운 사회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자신의 미래의 이익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존속하는 한 자신들의 몰락은 불가피하다는 것,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자신들은 몰락하는 지위에 급급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 이후 얻게될 이익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것을 농민들이 깨달을 때, 그/녀들은 진정으로 혁명적일 수 있다.
우리는 농민들에게 세계화를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치는 것은 모순의 지연일 뿐, 해결책은 아니라는 사실을 숨겨서도 안된다. 농민들은 미래의 이익을 위해 싸울 줄 알아야하며, 이는 자본주의를 철폐할 노동자계급과의 연대를 통해 가능하다. 농민들은 노동자계급과의 더욱 굳건한 연대를 통해서만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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