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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원cc노동자와의 인터뷰

 

김성렬 tjdfuf@jinbo.net

(노동해방학생연대 고대모임 회원)


 

   병원에 갔을 때, ‘여의사’라는 말은 쉽게 써도 ‘남의사’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흔히 노동자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사장에서 땀 뻘뻘 흘리며 일하는 남성노동자를 생각하지는 않을까? 그만큼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기준은 남성의 시각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전체 노동자들의 절반은 여성이며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여성이다. 여성노동자들의 삶은 어떨까? TV에서 보는 ‘커리어우먼’의 모습이 전체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까?

  용인시에는 유난히 골프장이 많다. ‘~컨트리클럽’이라고 하는 간판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중 한원컨트리클럽(이하 한원CC)이 있다. 대부분 여성노동자인 이곳 경기보조원분들은 작년부터 9개월이 넘도록 싸움을 하고 있다. 지난 4월 1일 비정규법개악을 막기 위한 민주노총 집회 때, 이 분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 분들 중 황미경 조합원과 인터뷰를 하며 짧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Q. 파업을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A. 작년 7월 5일 사측에서는 자체 규약을 보여주면서 아무것도 명시되어 있지 않은 종이에 서명하라고 했다. 용역으로 전환하려는 기미가 보여서 40여 명이 사인을 거부했다. 그리고 7월 9일 자로 바로 해고됐다. 그래서 파업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새벽 농성 중에 용역깡패들이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고, 8월 21일에는 사내 시위 도중에 경찰이 조합원 50여 명을 강제 연행하기도 했다.


Q. 현재 상황은 어떤가요?


A. 서울 본사 앞에서 천망 농성 중이다. 투쟁이 장기화 되다 보니까 생계 문제가 가장 크다. 얼마 전 원춘희 조합원이 자신의 손목에 칼을 긋는 일도 있었다. 병원서 이 조합원이 의식을 차린 후, 처음으로 한 말이 “왜 이렇게 빨리 발견했느냐? 나를 딛고 파업투쟁이 승리했으면 좋겠다.”였다. 최근 사측과 교섭을 하기도 했지만 우리의 요구 중 하나인 ‘용역화 반대’는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현재 그런 상황이다.


Q. 여성노동자로서 일상에서 겪는 힘든 점을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A. 골프장 경기 보조원을 흔히 ‘캐디’라고 부르는데, 대부분 여성이다. 근무 도중 남자 손님이 성적 수치심을 자극하는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는데, 아마 경기보조원의 100%가 이런 일을 다 겪었을 것이다. 사측에서는 남자 손님이 원하는 얼굴과 몸매에 맞게 경기보조를 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파업을 하면서 용역깡패들이 “너희들 사는 집 다 안다. 집에 쫓아가서 아이들 죽이겠다.”라고 말할 때면 그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가슴을 치거나 욕설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많이 힘들다.


Q. 학생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 있으세요?


A. 나는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는 가장이다. 하루라도 돈을 안 벌면 생계가 막막하다. 그래도 아이들 생각해서 더 싸우게 된다. 비정규직이라는 현실 때문이다. 본사 앞에서 농성을 하는데, 학생들이 지지방문을 오곤 한다. 그런 학생들을 보면서, ‘이 학생들은 나중에 정규직이 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열심히 싸우고 있는 만큼 학생들이 농성장에 많이 찾아와서 함께 연대했으면 좋겠다. 레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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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조 교수 와 '종군위안부'

 

현서 minx@jinbo.net

(노동해방학생연대 고대모임 회원)


 주)흔히 쓰이는 ‘(종군)위안부’라는 용어는 ‘위안을 주는 여성’이라는 뜻이며, 특히 ‘종군’이라는 말은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군대를 따라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가해자의 입장에 서 있는 개념이다. ‘정신대’는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이는 엄밀히 말해  남성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군수공장에 나가 일하게 한 노동대를 말하는 것으로 정신대=일본군 성노예로 볼 수는 없다. ‘일본군에 의한 성노예(sexual slavery)'라는 용어가 가장 바람직하다. 


한승조 교수 파문, 그리고...


  지난 주 내내 한국 사회를 특히 고대를 시끌벅적하게 했던 한승조 교수 파문. 그리고 논란이 되었던 그의 글 속에는 ‘일본군 성노예’  문제가 있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한국인들의 저질 행위’라는 단락에서 “수준 이하의 좌파적인 심성 중에는 일본사대의 종군위안부의 문제가 있다. 전쟁 중에 군인들이 여성들을 성적 위안물로 이용하는 것은 일본 만의 일이 아닌 것이다. 몇 명 안 되는 소수의 노파를 끌고 다니면서 거듭 배상금을 요구하며 물고 늘어져 왔다는 것은 고상한 민족의 행동거지로 볼 수가 없는 것이 아닌지. 애초에 성의 문제는 돈으로 환산될 수가 없는 것인데 왜 돈의 문제와 결부시켜서 자기 망신을 계속하는 것인지?.”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한승조 교수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지만원씨 역시 한 강연에서 “아무리 억울해도 그렇지 위안부들은 부끄럽지 않나, 옛날 규수들은 봉변을 당하면 은장도로 자결하였다, 당했으면 숨어서 조용히 지낼 것이지 뭐 자랑이라고 어디 내가 위안부다 밝히나. 자손도 없나.”라고 이 문제를 언급하였다.


분노


  한승조 교수와 지만원씨의 이런 발언에 많은 국민들은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번 발언들은극우세력들의 무지를 넘어, 모든 여성들에게 폭력적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일본군 성노예 여성들은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 강제로 끌려갔으며 그 수는 10-20만명에 달한다. 그녀들은 남성들을 위안해준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성적 결정권을 완전히 박탈당한 채 하루에 많게는 50명의 일본 군인들에게 강간을 당하기도 했다. 거부할 경우 따라오는 폭력과 비위생적인 생활로 인한 성병 및 낙태로 인하여 아직까지도 심각한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명백한 성폭력 범죄를 두고도 몇 안 되는 소수의 노파의 아집으로 왜곡하고 사실관계를 부인하는 것은 극우세력의 발광에 다름 아니다. 또한 상처를 힘들게 이겨내고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고 지금까지 싸워오고 있는 생존자들에 대한 모욕이며, ‘순결’ 운운하며 도리어 피해 여성들을 두 번 죽이고 있다.  



민족주의를 넘어...


  하지만 이번 파문은 극우 세력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게 한다. 이번 발언에 대한 대다수 네티즌들의 반응은 ‘우리 민족의 아픔을 어떻게 그 따위로..’ 정도이고, 일부 강경 네티즌들은 ‘일본 여자들도 당해봐야 안다’, ‘우리 국력을 키워서 복수하자’ 는 논리에까지 이르고 있다. 하지만 한 교수 발언에도 나오듯이 전쟁 중 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문제는 비단 일본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돌이켜보면 한국군 역시도 많은 베트남 여성들을 강간한 전력이 있고, 이 이외에도 전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보스니아의 여성강간캠프에서 민족청소(말살)의 명목으로 집단성폭력이 자행되었던 사건이다. 이런 사례들은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민족의 문제로, 반일의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오히려 본질을 흐리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고한 인민들이 죽어나가며, 특히 여성들에게는 무자비한 성폭력을 가하는 전쟁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다시 한 번 되묻는 일이 아닐까. 

 레드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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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1호>3.8 세계 여성의 날, 딸들아 일어나라!

노동해방학생연대 회원 영현  

 

 

 

 “이 땅의 노동자로 태어나~자랑스런 딸로 태어나~
 사랑도 행복도 다 빼앗겨 버리고 참아왔던 그 시절 몇몇 해~
  나가자 깨부수자 성차별 노동착취~ 뭉치자 투쟁이다 여성해방 노동해방”
(민중가요 ‘딸들아 일어나라’ 중)

 

3.8 세계 여성의 날의 유래


 산업혁명 이후 많은 여성들이 가정 밖으로 나와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너무나도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착취당하였고, 가정에서는 여전히 가사노동과 육아를 떠맡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단결하고 싸우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08년 역사적인 3.8 투쟁이 있었다. 1908년 3월 8일 1만 5천명의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미국 뉴욕 룻저스 광장에 모여 가두시위를 벌였다. 공황으로 인한 경제 침체기 속에서, 당시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에 12-14시간씩 먼지를 마시며 노동을 했다. 급기야 트라이앵글이라는 한 피복회사의 여성 노동자 146명이 불에 타죽는 참혹한 사건이 발생하였고, 이에 분노한 여성 노동자들은 들불처럼 일어나 거리로 나왔던 것이다. 그녀들은 ‘여성에게도 선거권을 달라’ ‘10시간 노동제를 보장하라’ ‘노조 결성의 자유를 보장하라’ ‘안전한 작업환경을 제공하라’ 라고 외치며 무장한 군대에 맞서 싸웠다.
 2년 후, 1910년 제 2인터내셔널의 노동여성회의에서 독일 사민당(SPD)의 지도자이자 국제 여성노동운동의 지도자였던 클라라 체트킨은 3월 8일을 기념하며 세계 여성의 날로 조직할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후 매년 3월 8일 전세계 각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집회를 갖고 거리를 행진하며 3.8 투쟁을 기념하고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위해 싸워오고 있다. 이와 같이 3.8 여성의 날은 성차별과 노동착취에 시달리던 여성노동자들 스스로가 싸움을 통해 쟁취한 날이다.
 

 

2005년, 여성 노동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530만 여성노동자 중에서 380만명, 10명중 7명이 비정규직, 기혼여성의 80%가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남성노동자의 62%,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전체 정규직의 43%, 100만여명에 달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의 대다수가 여성. 정리해고 1순위.

  이것이 바로 2005년 한국 여성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성차별과 노동탄압에 항거하며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선지 벌써 100여년 가까이 흘렀지만, 여성 노동자들의 처지는 여전히 열악하기만 하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능력보다는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 속에서 받는 고용차별에서부터, 여성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비정규직으로 채용된다. 그리고 언제 해고 될지 모르는 불안감과 저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노동을 해야만 한다. 겨우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시설관리 노동자들의 대다수는 여성 노동자이다. 특히 골프장 경기 보조원과 같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경우에는 노동자성이 인정 되지 않아 노조를 만들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는 일조차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출산휴가나 생리휴가를 요구하는 것은 해고를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더군다나 그녀들이 여성으로서 겪는 성희롱과 성폭력, 그리고 가정에서 도맡아 하고 있는 가사노동은 여성 노동자들에게 이중의 억압을 가하고 있다.

 

 

딸들아 일어나라!

 이렇게 여성 노동자들이 겪는 성폭력과 노동착취는 극심하지만, 아직 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싸우고 있지 못하다.집회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노동형제’라는 표현처럼 진보 진영이라고 일컬어지는 곳에서도, 가부장적 행태들은 만연해 있어, 그녀들을 투쟁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것을 더욱 힘들게 한다.
 그러나 100여년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의 역사적인 투쟁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스스로 싸우지 않으면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할 수 없다는 점이다. 3.8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그 날의 정신을 기리며,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 거리로 나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으로 노동자가 여/남 성별을 뛰어 넘어 하나의 계급으로 단결하여 자본에 맞설 수 있도록, 여성을 억압하는 성차별/성폭력 그리고 가부장적 행태들과 철저하게 싸워나가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남성들과 동등한 일을 하고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조직을 만들어 노동조합에 들어갈 수 있다면,
그리고 산전산후 휴가와 탁아소 시설에 어린아이를 맡길 수 있다면,
오늘 날 우리가 모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면,
우리가 우리의 성(Sexuality)과 수태를 조정할 결정권이 있다면,
이것 모두는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와 할머님들의 피나는 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코펜하겐 3.8세계여성의날 기념 대회 연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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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2호>성매매 여성 Vs"위안부°할머니"

2004년 10월에 발간된 레드타임즈 3호에 실린글입니다.
(°표시는 각주가 있음을 말 합니다.)

  얼마 전 과거사 청산을 주제로 했던 tv 100분 토론이 한동안 꽤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당시 패널로 참가했던 이모 교수의 발언이 문제였다. 그는 시종일관, 진정한 역사 청산은 국가 주도가 아닌 전 사회적인 자기 성찰과 고백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요지의 주장을 펼쳤다. 찬반구도로 논의 틀이 잡혀 있던 상황에서 그것은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우익의 손을 들어주는 꼴이 되고 있었다. 그러한 가운데 나온 "정신대 문제" 관련 발언이 파장을 일으켰다. 󰡐군 위안부󰡑 강제동원과 이용에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다수 참여했고, 이에 대한 자기성찰적 고백이 필요하다는 것이 발언의 요지였다. 이것은 일견 민족간의 문제로만 치부되는 문제를,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내면화시키고 있는 이 사회 전체의 문제로 확장시켜 봐야한다는 문제의식으로 발전될 수 있는 시각이다. 물론 내가 여기서 그 교수의 편을 들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과거사 청산에 대해 입장을 전개하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그 발언 이후에 벌어진 논쟁 내용과 뒤이은 네티즌들의 비난에 대해서다. 그는 단지 머릿속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나약한 관념론자, 엘리트주의 지식인에 불과할 뿐이지만 발언 내용을 왜곡하진 말아야겠지..    

  그 발언 이후 논의 내용은 󰡐그렇다면, 일본이 잘못이 없다는 것이냐󰡑,󰡐위안부를 상업적 공창과 동일하게 본다는 것이냐󰡑로 흘러갔다. 네티즌들도 흥분했다. 󰡐창녀가 되어버린 위안부 할머니들, 토론회를 보면서 맘이 너무 아팠다.' , ‘우리나라도 베트남전에 한 짓이 있긴 하지만... 자기 아들이 남의 딸 성폭행 했으니 우리 딸을 성폭행한 놈도 용서해야 한다는 거냐󰡑 , 󰡐어떻게 자발적으로 몸 파는 여자랑 정신대를 비유하는가󰡑 등이 주된 비난의 내용이었다. 일단 그 발언의 정당성 여부를 차치하고서, 이러한 반응과 비난 여론이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진절머리를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신대 할머니󰡑를 바라보는 시각과 성매매 여성들을 바라보는 시각. 일견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시각은 결코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둘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종군 위안부󰡑로 인한 대다수의 분노는 이것이다. 󰡐일제 시대에 우리(남성화된 민족 혹은 국가)의 힘이 약해서 우리 여자를 남에게 빼앗겼다. 우리는 그들의 순결을 지켜주지 못했다. 너무나 수치스럽고 부끄럽다.°°.󰡑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대다수의 분노는 이것이다. 󰡐순결을 돈 때문에 스스로 내팽개친 더러운 년(이들이 비난받는 건 한편으로 일부종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두 시각은 모두 여성의 몸을 남성의 전유물쯤으로 사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왜 상반된 태도를 보이며 이리도 경기를 일으키는 것인가.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정신대는 강제동원된 것이지만 성매매는 자발적인 것이라는 인식에 있다. 그리하여 정신대 할머니는 민족의 아픔이지만 성매매 여성들은 구원받지 못할 족속이 된다. 인신매매가 아니라 제 발로 걸어갔으면 당연히 자발적인 것인가? 우리는 성매매 여성을 비난하기 전에 왜 그들이 수많은(!) 직업을 놔두고 성매매를 할 수밖에 없는가를 물어야 한다. 나는 성매매 역시 사회구조적인 강제성을 띠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여성노동자의 70%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그나마도 남성 노동자의 평균 임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에서,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낳으면 조만간 짤리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일을 해야한다. 열악한 사회적 노동조건 속에서 못 배우고 능력 없는 여성은 어떻게 해야 먹고 살 수 있을까. 혹여 어린 나이에 가출이라도 한다면? 또는 가정폭력을 못 이겨 탈출이라도 한다면? 직업소개소의 소개는 80% 이상 성매매 업소와 연결된다. 어딜 가나 성매매의 위협(혹은 유혹)은 도사리고 있다. 하다못해 주유소에서 일을 하더라도. 물론 수요가 있으니 성매매 시장이 번창할 수 있는 거다. 하지만 수요는 왜 생기는가.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절대 성욕을 참지 못하기 때문에? NO!!!!!!(이건 남성들에게 직접 물어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수요는 사회가 만들어내고 있다. 남성들의 성 구매는 부끄러운 것이 아닐 수 있게 사회는 교육한다.

성매매 여성들과 󰡐위안부 할머니󰡑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 그러나 그 안에 들어있는 동일한 폭력성의 뿌리. 제대로 냉정하게 보자. 󰡐위안부 할머니󰡑를 보며 아픈 가슴, 성매매 여성들을 보면서도 함께 아파야 한다. 그리고 아픈 것에 그치지 말고 이 모순을 타파해 나가기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

주>
° 최근까지 󰡐종군 위안부󰡑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어왔고 아직까지도 대다수 사람들이 위안부라는 용어를 쓴다. 그러나 이 용어는 전시에 군을 따라다니며 그들을 위로(?)하고 사기를 높이는 데 이용된 여성들이라는 뜻으로, 동원의 강제성을 제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든 말이다. 공식적으로 󰡐일본군 성노예󰡑라는 용어를 쓰는 게 맞다. 인용을 위해 부득이하게 이 용어를 쓸 때는 󰡐 󰡑 로 표시하도록 하겠다.    
    
°°일상에 만연해있는 성폭력 문제를 대할 때와 󰡐정신대 문제󰡑를 대할 때 분노의 정도가 다른 분이라면 99%, 이러한 감정일 거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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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T3호>성매매특별법은 진정한 대안이 될수 있는가?

지난 2004년 10월에 발행된 레드타임즈 3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성매매 특별법은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성매매는《매춘의 역사》라는 책이 있을 만큼 기나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그리하여 인류에게 있어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너무도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그리고 오늘도 역 근처만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월수입 몇백, 숙식제공’이라는 조그만 종이들과, 아슬아슬한 옷차림의 여성들이 나와있는 업소 광고지들이 여성과 남성들에게 성을 팔고 또 사도록 유혹하고 있다.
   전 국민의 70%가 법의 존재여부도 모른채, 지난 9월 23일 ‘성매매 특별법’이 시행되었다. 성매매 특별법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제정되어 04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 법은 '윤락', '매춘' 등과 같이 성매매 여성을 도덕적으로 문제삼거나 성을 '파는 것'에만 초점을 두는 용어 대신 '성매매'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전의 '윤락행위 등 방지법'에 비해 분명히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또한 성매매특별법에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피해자'라는 개념을 도입하였고, 성을 거래하도록 알선하는 업주와 중간업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조항도 들어있다.
  그렇다면 성매매 특별법은 성매매피해여성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그러기에는 이 법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성매매특별법에 따르면 ‘성매매피해자’는 위계, 위력 등으로 성매매를 강요당한 자, 마약등에 중독된 자, 장애가 있는 자, 청소년, 그리고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당한 자로만 한정되어 있다. 애초 02년 발의되었던 안에 포함되어 있었던 ‘선불금 등 채무의 이용에 의하여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자’는 누락되었고, 피해자임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여전히 동의의 문제가 구성요건으로 남아 있어 이른바 ‘자발적 성매매’를 한 여성들은 성매매피해자의 대상에 속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자발적 성매매...라는 말은 언제나 꼬리표처럼 성매매피해여성들을 따라다닌다. 하지만 무엇이 그녀들을 ‘자발적이게’ 하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이다. 성매매피해여성들의 대부분은 경제적 이유(가정형편, 빚 등)로 인해 성매매에 유입되고 있다. (물론 자신이 처하게 될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성매매를 택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리고 성매매에 한 번 유입된 여성은 탈성매매를 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그녀들을 옭아매고 있는 선불금은 월수 몇백으로 갚아지기는커녕, 말도 안되는 명목들(지각비 시간당 1만원, 결근비 20만원 이상, 몇백만원이 넘는 화장품과 옷값)의 강요를 통해 더욱 더 강하게그녀들의 발목을 잡아두는 족쇄가 된다. 설사 힘들게 탈성매매에 성공한 여성들이라 할 지라도 그녀들이 쉽게 그 족쇄를 벗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났던 한 탈성매매 여성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업주들은 사회에서의 성매매여성에 대한 인식을 무기로 가족에게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것은 물론 실제 거대한 조직력과 폭력성으로 그녀들을 끊임없이 위협한다고 한다. 이러한 협박과 위협들은 탈성매매 이후 생계유지방도를 찾기 어려운 여성들을 다시 ‘자발적으로’ 재유입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대한 성산업과 결탁한 자본과 경찰은 그녀들의 탈성매매를 돕기는 커녕, 오히려 도망쳐나온 성매매여성들을 다시 업주의 손을 잡고 돌아가게 하는 행태까지도 서슴치 않고 있다. 얼마 전, 성매매피해여성들이 성매매를 방조했다는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집단 소송하는 일까지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는 노동자민중과 자본의 화해자, 중재자가 아니라 오로지 자본의 이해만을 대변하는 집행기구일 뿐이다. 국가와 공권력은 성매매피해여성이 아니라 성산업 자본의 손을 들어줄 뿐이다.
  그렇다면 성매매의 진정한 해결은 무엇으로 가능한가? 성매매특별법보다 진일보한 법을 만드는 것인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성매매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 있다. 소수의 자본가를 제외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살 수 없도록 하는 이 사회, 비정규직에 여성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더 밀어내어 자신의 ‘성’까지도 팔도록 강요하는 이 사회, 국가란 탈을 쓴 총자본이 어떤 수단을 통해서든지 몸집을 불리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이 사회, 바로 자본주의 사회를 끝장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우리의 대안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이 자본가 세상을 뒤엎기 위해서는 노동자계급과 함께 싸워나가야만 한다.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 그리고 우리 모두의 해방을 위해서 말이다.    
  성매매는 도덕적으로 타락해서 성을 자발적으로 팔고 싶어하는 소수의 여성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참을 수 없는 욕구가 남성들의 유전자 속에 있기 때문에도 아니다. 성매매를 조장하고 여성억압을 유지시키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 함께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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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6호>결코 '예쁘지'않은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의 정리해고반대투쟁

 

::여성주의 칼럼::

결코‘예쁘지' 않은

새마을호 여승무원들의

정리해고 반대투쟁 


여승무원?


 ‘여승무원’이라는 단어를 보고 떠오르는 그림이 무엇인가? 자연스럽게 ‘젊고 날씬하고 예쁜데다가 상냥한’ 여자를 떠오르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한 달에 300시간을 일하면서 밤새우기를 밥 먹듯 하는 비정규직 여승무원 노동자들이 근무 2년 만에 집단적으로 해고를 당했을 때, 이런 부당하지만 보편적인 의식은 투쟁해야할 대상이었다.  

 


해고통지, 투쟁의 시작.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여승무원 근무 2년째. 2003년 투쟁에서 여승무원을 정규직화 하겠다는 철도청과의 약속이 이루어졌었다. 하지만 철도청에서는 이 약속을 내팽기고 ‘3년 동안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면 함부로 해고하지 못한다.’라는 법조항을 피해가기 위해서 3년이 되기 전에 31명을 집단해고 한 것이다. 이에 노동조합원도 아니었던 여승무원들이 철도노조와 함께 투쟁에 나섰다. 그리고 결국 힘찬 투쟁을 통해 전원 고용승계를 쟁취하였다. 비록 정규직화를 쟁취한 것은 아니지만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절반의 승리를 쟁취한 이 투쟁이 비정규직여성노동자의 투쟁이라는 점에서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해고에 숨어있는 성차별적 의식


  철도청에 소속된 같은 승무원인데도 남자는 정규직이고 여자는 비정규직이다. 성차별적 의식에 근거하여 노동자들을 갈라놓은 것이다. 여기서 드러난 성차별적 의식이란 이런 것이다. 여자는 젊어서는 직장을 갖고 일하다가도 결혼을 하면 애 낳고 기르고 해야 되는데 어떻게 직장을 다니느냐는 것이다. 출산휴가 등이 충분하기는커녕 법적으로 보장된 것도 지켜지지 않고, 휴가를 요구하면 오히려 해고당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결혼하면 사회적인 강제에 의해 직장생활에 종을 치게 된다. 게다가 여‘승무원’이라는 직업이기에 계속해서 ‘젊고 날씬하고 예쁜’ 여성으로 교체해야 마땅하다는 생각 또한 이번 문제에서 드러난 성차별적 의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에게 저임금과 고용불안의 위협은 남성노동자에 비해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손에 손잡고,

 철도노조의 남성노동자들이라고 해서 이러한 성차별적 의식에서 벗어나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심지어 철도노조의 간부도 ‘예쁘지, 몸매 되지, 해고될 이유가 하나 없습니다.’라는 발언을 했을 정도다. 하지만 이는 충분한 문제제기와 의견교환을 통해서 남성노동자들이 위와 같은 성차별적 의식을 떨쳐버리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함께하는 투쟁 속에서 남성노동자들은 여성노동자들을 ‘집에서 애나 봐야 할 여자’가 아닌 자본주의에 맞서 함께 투쟁하는 ‘동지’로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해고당한 여성노동자들이 정규직화 투쟁의 중심에 서야하고 남성노동자들은 이에 더욱 강하게 연대해야 한다.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문제는 단지 해고자들만의 문제, 해고자들을 동정하며 연대해야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투쟁은 철도노동자들이 처음으로 비정규직문제를 내건 중요한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계속되는 철도자본의 구조조정 공세와 이에 맞서는 철도노조 투쟁의 패배로 인해, 앞으로 인력충원에 필요한 5000여명의 인력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철도노조가 앞으로 비정규직 투쟁을 함께 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승무원 정규직화 투쟁을 통해 정규직 조합원들에게 비정규직 문제를 알려나가고, 앞으로 있을 철도노조의 비정규직 투쟁을 만들어갈 불씨로 삼아야 할 것이다.


자본가의 벽을 넘어서!


  24시간 맞교대로 1년에 수십 명씩 산업재해로 죽어나가는 철도현장. 근무 2년 만에 단체협상에서 약속한 것 마저 폐기하고 일방적으로 해고통지를 날리는 철도현장…… 사람 잡는 철도현장을 바꿔보고자 전개한 철도노동자들의 파업투쟁에 ‘10억 손배가압류’ 판결을 내린 오늘, 우리는 자본가와의 투쟁 앞에서 정규직-비정규직, 남성노동자-여성노동자가 동등한 주체로서 단결해야함을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게 한다. 


::매주 화요일, 금요일 아침 10시 반에 집회 및 선전전을 진행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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