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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1. 어느 전직 학생회장의 회고

발제 1. 어느 전직 학생회장의 회고

발제 : (주)지구학생회컨설턴트 대표 우주


  이 글은 가상의 전직 학생회장의 회고입니다. 가상이지만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이 회고록이 말하고 있는 학생회의 현실은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본 것들이란 점입니다.


 2002년 3월. 입학.


  나도 이제 대학생. 대학에는 학생회란 것이 있다는 것을 난 익히 들어왔다. 그리고 그곳에 가면 내가 대학에 와서 정말 하고 싶었던 것, 바로 학생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대충 들어서 알고 있다. 나는 반학생회가 배정되자마자 집행부 중에 하나인 사회부에 들어갔다.

  많은 집회를 다니게 되었고 선배, 동기들과의 토론이 계속되었다. 아, 새로운 세상!

  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발전노조의 투쟁을 지지하는 사람은 동기 60명 중에 사회부 3명뿐인 것만 같다. 학생운동 안하면 왕따 되던 시절은 80년대의 이야기였던 것인가!! 나는 상황파악을 잘못하고 있는 건가? 학생회는 다 투쟁하려고 만들어진 건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투쟁하는 사람들은 우리 학생회에 딱 4명이고 겨우겨우 집행부 하나 운영하고 있다. 그것도 학우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아닌 전폭적인 무관심 속에서!! 윽....!! 이제 난 고민에 빠졌다. 선배들이야 취직하기에 바쁘니까 그렇다 쳐도, 왜 동기들마저도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지 않는 걸까?    


  오늘의 결론: 더 이상 내가 꿈꿔왔던 80년대의 ‘투쟁에올인학생회’는 현실에 없다. 지금 학생회는 학생들의 분노를 모아내는 곳이 아니라, 학생들의 대학생활을 뒷받침해주는 곳으로 전락해 있다. 오히려 대부분의 학생들은 저 자본가의 앞잡이 노무현을 지지하고 있다!


 2002년 말. 그리고 2003년 말.   


  그래, 그럼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투쟁을 지지하도록 ‘대중운동’을 해보자!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총학생회 선거. 나는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학우들에게 알리고 싶다.

그래서 난 나의 생각과 가장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 사람들과 함께 선거운동을 하려고 한다.

  …

  선거운동을 마쳤다. 이번 선거에는 다양한 정치를 가진 사람들이 선거에 출마했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야한다고 하는 사람들, 사회당을 지지하자는 사람들, NGO가 대안이라고 하는 사람들, ‘비운동권’이라고 하면서 기존의 학생운동에 대한 온갖 왜곡과 반동적인 정책을 들고 나온 사람들까지. 그리고 선거를 나가지 않더라도 ‘유권자모임’, ‘여학생위원회’등에서 공약을 평가하는 등 각자의 활동을 펼쳐나갔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학생들이 지향하고 있는 정치가 다름을 볼 수 있고 내 생각과 가장 비슷한 사람이 누구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때일 것 같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각 선본들은 자신들의 정치를 부각시켜 얘기하기 보다는 복지공약을 부각시켰고, 이는 유권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각 선본의 정치는 모른 채 투표를 하게 된 것이다. 그 사건 중에 하나가 바로 총학생회장의 한총련 의장 출마 사건이다. 총학생회 선거 시기에는 한총련출신 후보라는 것을 숨겼던 것이다. 학우들은 그 선본이 한총련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이번에 당선된 선본은 ‘신자유주의분쇄’를 말하는 선본이었다. 음, 이런 선본이 당선될 정도면 고대생의 대부분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 근데 주위를 둘러보면 사람들은 오히려 이 세상을 긍정하고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충실히 갖춰나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지 않은가? 대선에서는 노무현 찍고. 허허 이게 무슨 모순이람. 만약에 노사모가 학내에서 단체를 만들고 열심히 활동한다면 당선되기는 수월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기에 다른 선본들이 당선되고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돌아보면 공약에 있어서도 정치활동 공약과 복지공약이 서로 모순되는 경우도 있었다. 반자본주의를 외치는 선본이 출석체크와 참살이길 할인 등의 기능을 모은 카드를 공약으로 들고 나온 것이었다. 전형적인 노동자 통제 수단과 불경기 수요확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의 결합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선본원 내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자기 선본의 정치에 동의하고서 선거운동을 시작한 것이 아니라 아는 선배라서 시작한 경우가 정말 많았다. 2003년 선거에서는 사실 어느 두 선본의 정책이 거의 똑같았기 때문에 문제가 더 심하게 드러났다. 양쪽의 정치의 차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경쟁적인 선거운동을 거치자 감정적으로 서로를 대하게 되었고, 이는 올해에 서로에 대해서 이유 없는 적개심만 남았다는 것이다. 

 

  나는 선거운동은 안하게 됐다. 왜냐하면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선거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열사들의 투쟁을 학내에서 알려나가기로 했다. 사실, 학생운동 하는 사람들은 열사들의 투쟁을 학교 내에서 열심히 알려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선거를 나갔다고 이 얘기를 못할 거 없으며, 선거를 안 나갔다고 못할 거 없다. 어떻게든 자기 현실에 맞춰서 열심히 하면 된다. 그런데 오히려 선거 시기에 이 얘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음...무엇이 ‘대중운동’이지?


  오늘의 교훈:

1. 선거운동은 정치활동이다. 한번 경험 삼아 해볼 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나의생각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내가 이 시기에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2. 선거운동은 솔직해야 한다. 내가 한총련이면 한총련, 열린우리당이면 열린우리당, 그렇게 껄끄럽다면 단체이름을 말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정치를 솔직하게 얘기해야한다. 그리고 동의를 구해내야 한다. 복지공약으로 동의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정치로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선거운동을 하는 목적이다.

 2003년. 드디어 학생회장.


  학생회장 임기가 시작되었다. 자, 새롭게 각오를 다지며 시작해보자!

  요즘 내가 느끼는 건 아직도 학생들에 대해서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이런 거다. 학생회는 학생들의 조합이잖아. 그런데 학생들의 조합에 학생들이 없다!? 적어도 총회를 하면 누구나 와야 하고, 선거를 하면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야하는 것 아니가? 그런데 학생총회에 학생이 없고, 학생회선거에 학생이 없다!

  더 신기한건, 이러다가도 고연전만 되면 벌떼같이 모여든단 말이다! 심지어는 고연전 축구 전반전 끝나고 총회를 하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기발하다.) 아아, 그런데 난 고연전에 반대하는데 학생회장이라 발 빼지도 못한다. 아..차라리 동아리에 있는 내 친구가 이런 준비도 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집회에 나오는 사람들은 주변에 훨씬 많다. 난 왜 학생회를 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난 교육투쟁을 하면 사람들이 모두 관심을 가져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물론, 교육투쟁은 하루에도 백 명이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알려나갔으니 그나마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학생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 관심이 더 높을 거야.’라고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오히려, 자발적이고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진 사안은 탄핵과 전쟁, 귀족노동자였다.

  하하하하. 자자! 이때다! 우리가 기다리던 절호의 췌안쓰! 이제 우리들이 탄핵은 부르주아 정치인들 간에 이루어지는 권력다툼인 것을 알려나가고, 파병하는 것은 오직 자본가의 이윤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말하고, 귀족노동자는 없고 오직 귀족 자본가만 있다는 것을 알려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모두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똥물들이라는 점도 말해야 한다! 바쁘다 바뻐!

  아아. 그런데 학생회장으로서 할 수 있는 게 딱 3가지였다. 대자보 붙이기, 커뮤니티에 글올리기, 술자리에서 내 생각 말하기. 사실 학생회장 아니더라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들이었다ㅠㅠ 내가 학생회장을 왜 한거야!! 하긴 학생회장이라고 하니 좀 더 잘 들어주기는 한다.

  음, 그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나의 정치를 말해나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야! 그래그래 수요일마다 토론회를 열자. 지금 시작은 4명이지만 내년에 새내기도 받으면  점점 발전할거야. 그래, 이렇게 나의 생각을 알려나가자! 그렇게 발전하면 학회도 몇 개 더 생길 것이고, 그러면 앞으로 학생회장으로서의 역할은 이러한 학회들의 톱니바퀴를 맞춰주는 역할이 되겠네.


  오늘의 교훈: 학생들과 학생회가 맺고 있는 운명의 고리는 이미 끊어진지 오래다. 각자 다양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이해(利害)또한 전혀 같지 않다.

우리가 학생회 활동을 하는 것은 고연전을 준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정치를 확산시키기 위해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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