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드려요! 2015/02/05 13:12

[전태일 이콘 해설] by 조아라 (미카엘라)님

전태일 이콘 해설

조아라 (미카엘라)


혹시 이콘이 무엇인지 생소하신 분들이 계실까봐 간략히 이콘에 대해 설명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이콘”이라는 말이 바로 “이콘”에서 비롯된 말입니다.
이콘은 “그림”, 또는 “모상(닮은꼴)”이라는 뜻으로 그리스어로 이콘이라고 읽히는 단어가 어원입니다.
이콘의 기원에 대해서는 신학적이고 신화적인 해석부터 현실적이고 드라이한 해석까지 여러가지가 있고 초대교회가 존재하던 무렵부터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갈릴 때까지 여러차례 번영과 파괴의 역사를 반복하며 발전해 왔습니다. 역사만 한달 꼬박 공부해야 할만큼 내용이 방대하니 이 자리에서는 '이콘이 서방교회보다는 동방교회에서 발전해왔기 때문에 정교회의 전유물로 인식하고 계신 경우도 많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정도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콘을 그리는데는 엄격한 규칙이 적용됩니다. 구도, 색, 표현 하나하나까지 모두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을 다 설명드릴 수는 없고 오늘은 전태일 이콘에 사용된 색과 그 의미만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사정상 더 두껍고 화려한 액자를 사용하지 못했으나 본디 이콘은 두꺼운 틀에 신심을 상징하는 화려한 장식을 한 테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창을 통해 내면, 혹은 신심을 들여다보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제가 성공회는 잘 모르겠으나 가톨릭의 경우 성물이나 상본을 모시는 마음으로 정교회에서 이콘을 각 가정이나 성당에 모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굳이 이런 설명을 드리는 이유는 이콘을 보실 때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셨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어서 입니다. 십자가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볼 때 십자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고 본받아 그의 제자로 따르고 닮은 삶을 살겠다는 마음인 것과 같이, 전태일 이콘 뿐만 아니라 어떤 이콘을 마주하셔도 그런 마음을 가진다면 우상 논쟁에서 자유로우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망토와 머리에 동여맨 띠와 텍스트엔 붉은색이 칠해졌습니다.
붉은색이나 자색은 신성, 신적인 또는 제왕의 권위, 품위를 상징함과 동시에 악과 피도 상징합니다. 구약부터 자주 등장하는 색이기도 하지요. 이런 여러가지 의미들 중 “순교자”의 의미로 사용된 색입니다.

전태일이 대표하는 “노동자”라는 의미를 어찌 표현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초기 이콘들에서도 사용된 머리띠를 사용해 그 의미를 부여하고 순교자로서 권위를 부여받았음을 뜻하는 역동적인 망토를 입혔습니다.
텍스트도 역시 순교자의 의미로 붉은색을 입혔습니다.

 

옷자락은 푸른색으로 표현했습니다.
푸른색은 신비, 가라앉음, 하늘, 하늘나라의 무궁, 육화적인 동경, 순수, 진리, 신뢰 등을 상징하며 모든 색 중에 가장 감각적이지 않고 정신적인 것으로 잔잔하고 평온함을 나타낼 때 사용합니다. 
전태일의 성스러운 삶의 신비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타오르는 불과 십자가는 흰색으로 표현했습니다.
흰색은 신들의 색으로 부활, 새로운 삶, 영원한 영광, 순진, 순수를 나타내는 색입니다.
성공회나 가톨릭에서 하늘에 관련된 축일이나 그리스도의 영광과 관련된 축일에 사제들이 흰색 제의를 입지요.
십자가. 즉 희생으로써 전태일의 고통이며 절규였던 불길이 거룩한 흰 불길로 거듭나게 됨을 표현합니다. 희생으로 영광을 입었으며 고통이 더이상 고통이 아니게 됨을 의미합니다.

 

근로기준법 책의 색은 검정색입니다.
검정색은 지옥 어두움, 아무 것도 없는 무의 상태, 가장 높은 경지의 고행 등을 상징하며 수도사와 고행자들의 색입니다.
왜 검은색 바탕인지 더 설명드리지 않아도 이해되실거라 여겨져요.

 

후광과 근로기준법 글씨는 금빛입니다.
사물은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그 아름다움을 갖게 되지요. 빛의 반사가 없다면 색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특히 금은 불멸의 경이적인 색으로, 깨끗한 광휘를 표시하고 태양의 찬란함을 반영한 신성한 색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후광은 거의 대부분 금을 입히지요. 구태여 근로기준법이라는 텍스트에 금빛을 입힌 이유는 그것이 전태일의 목숨을 건 소망이었기 때문입니다.

 

배경은 노란색입니다.
빛과 가까운 성스러운 색입니다.
지금 전태일이 성스러운 곳에 거하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전태일 이콘은 파격적이라는 Dancing Saints 이콘들만큼 대놓고 파격적이진 않지만 조금 규칙을 벗어난 부분들도 있습니다.

 

예산의 문제도 있었고, 좀 더 그리스 이콘의 느낌을 차용하고 싶기도 했지만, 어쩌면 제가 공부한다고 했는데도 실수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온 마음으로 기도하며 그렸으니 아버지께서 원하시는대로 세상에 나왔으리라 믿습니다.
그동안 기도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저의 부족함까지 함께 봉헌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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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엔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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