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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변혁정치의 현황과 과제
(이 글은 8.13. 올린 "현 시기 당건설 운동의 몇 가지 쟁점"을 수정보완하여, 2013.8.29. 서울변혁모임이 주최한 현장정치토론회에서 발표된 발제문이다.)
1. 들어가며
변혁적 좌파와 현장활동가들이 중심이 된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추진모임(이하 변혁모임)’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주 슬로건으로 하여 대선투쟁을 경과한 후, 지난 4월 27일 전국활동가대회에서 현장실천 4대 방향과 노동자계급정당의 5대 기조, 10대 투쟁기조 등1)을 확인하고, 9월 7일 활동가 대회와 11월 9일 당 추진위 출범대회를 예정하고 있다. 9월 대회에서는 회칙과 정치원칙, 사업방향을 초안형태로 토론하는 자리이고 이후 지역모임과 전국운영위 등을 통해 수렴 보완하여 11월 창립대회에서 확정할 예정이다.
즉 현 시점은 변혁모임 내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어떠한 당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심화되고 있는 중이고, 변혁모임의 전망에 대한 회의나 불신 등으로 참여하지 않는 사람도 많고 이 시도를 공공연히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정파도 있다. 이 글의 목적은 그동안 쟁점이 되어 온 몇 가지 사안에 대한 토론 발제문2)으로써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고, 아울러 여러 활동가들도 이 논의에 참여하고 구체화하는 과정 속에서 변혁정당 건설운동에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2. 제1기 노동자정치세력화 운동의 파산과 현시기 당운동들의 평가
대선을 경과하였던 2012년은 ‘노동자 정치의 위기’의 해였다. 야권연대를 둘러싼 노동자민중운동 진영 내의 논란, 3자통합에 대한 노동운동 내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3자통합이 이뤄지고 급기야 통진당 사태에까지 이르자 진보정치에 희망을 가졌던 노동자민중들도 진보정치에 대한 불신과 회의가 넘쳐났다. 이를 배경으로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저마다 진보와 노동과 통합을 내세우면서 재정립을 시도하거나 새로운 당운동을 제출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운동은 무엇보다도 통진당으로 이어지는 민주노동당이 가졌던 한계와 실패의 근본이유를 인식하고 그것을 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대선 이후 통진당의 잔류세력(현통진당)이든, 탈당세력(진보정의당)이든 분당사태로 불거진 ‘진보정치 파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고, 양 세력 모두 신자유주의 세력인 국참당과 통합을 적극 추진했고 이번 대선에도 노동자정치의 독자성을 훼손하면서 야권연대에 올인했다. 이런 점에서 두 세력은 노동자·진보정치세력으로 보기 힘들다. 따라서 이미 노동자정치를 완전 파탄시킨 장본인들이 통진당의 계급적 강화를 외친다고 해서, 혹은 재창당을 이룬다고 해서 현 시기 노동자정치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하다. 특히 노무현의 적자들-신자유주의 세력들-에게 간택받은 진보정의당은 한국형 사민주의를 운운하며 당명에서 노동을 삭제하고 정의당으로 이름을 바꾼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국민정당을 추구하면서 노동자정치를 포기했다.
한편에선 통진당 사태 이후 다시 한 번 범진보진영이 결합해서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통진당과 진보정의당에 속하지 않은 구민노당, 구통진당 그리고 민주노총 출신의 명망가들은 ‘현 시기 진보진영의 분열과 대결 상태를 극복하여 전체 진보정치세력이 하나의 당으로 결집하여 운동을 새롭게 시작하자’면서 ‘새로하나’를 출범시켰다. 그런데 이 주장의 핵심적 문제는 노동자정치의 위기가 통진당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진당 사태로 노동자정치의 위기가 폭발되었지만, 이미 민노당 시절부터 노동자정치운동의 위기는 시작되었다. 민노당은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민노당의 국회의원 배출’로 협소화시키는 의회주의 노선을 가지고 활동했다. 그 결과 노동자를 동원대상을 삼는 정치적 대리주의와 보다 많은 득표를 위한 탈계급화의 길을 걸었다. 통진당 건설 및 통진당 사태는 이런 의회주의 정치세력화의 비극적·파국적 결말일 뿐이다. 그런데 이에 대한 성찰과 반성 없이 진보세력이 분열되었으니 ‘다시 한 번 모여서 해보자’는 것은 노동자정치가 파탄난 핵심원인을 전혀 건드리지 못하는 것으로, 이미 실패한 민노당 2 건설 프로젝트를 다시 시도해보자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반성과 성찰’을 이야기하면서 ‘명망가나 정파로부터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운동을 시작하지 않겠다’며 ‘노동중심의 진보적 대중정당’ 건설을 제기하는 흐름도 가시화되고 있다. 노동자정당추진회의, 다함께, 노동포럼 등이 함께 하는 이 흐름(노동정치연석회의)은 노동자들의 불신을 극복하고 다시 현장과 지역에서부터 노동정치를 복원하는 것을 핵심기조로 제출하고 있다. 이 흐름은 통진당, 진보정당의과는 분명하게 선 긋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진보정치의 반성과 성찰을 이야기하며 ‘지역과 현장’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 구체적 실천이 어떨지는 아직 의문형이다. 그들의 대부분은 기존 민노당 활동의 주축을 이뤘던 활동가들이고 구성된 세력들의 노선적 다양성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과거의 활동으로 평가하려 들지 말고 미래의 활동을 가지고 공유하자’고 하면서도, 민노당과 통진당의 실패에서 도출되는 의회주의와 결별하는 변혁적 입장과 반자본 사회주의의 대안을 분명하게 제출하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즉 ‘지역과 현장’을 강조하면서도 왜 지역과 현장이 무너졌는지와 그 극복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 없이 막연하게 주관적 의지만을 강조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진보신당은 최근에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 소수자운동과 결합한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노동당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이것은 명망가 출세주의 세력인 노심조가 떨어져나간 후 독자생존을 위한 모색 속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사민주의와 의회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고 그리고 계급성이 불분명한 채 진보를 얘기해왔던 이 당이 단지 강령과 간판만 선언적으로 바꾸었다고 하여 과거와 다른 실천을 보여주기는 어려울 것이다.
3.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주체와 경로에 대하여
현 시기 노동자 정치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과 다양한 모색은 ‘누가 주체가 되어, 어떤 당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 민주노총 중심의 새로운 정치세력화, 맞고 가능한가
‘민주노총’이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주체(중심)가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전현직 민주노총 지도부들과 산별대표자들의 입장이 대표적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민주노총의 공조직 결정을 앞세우는 제2의 정치세력화는 새로운 정치세력화운동을 더욱 왜곡시킬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새로운 노동자정당을 만들자’는 프로젝트는 불가능하다. 지금은 2000년 민노당 창당 때와는 다른 정치지형이라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민주노총 내부에서 공적 결정을 추동할 지도력도 상실했지만 노동자정치에 대한 다양한 정치적 입장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이를 하나로 모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노동조합 차원에서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정치방침을 결정할 수는 있어도, 조직적 결의에 의해 새로운 노동자정당을 만든다는 것을 불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입장이 ‘조합주의 정치세력화’를 재현하겠다는 발상이라는 점이다. 노동조합의 조직적 토대와 공식 결의에 근거해 노동자정당을 건설하고 이 당에 노조의 영향력을 확대한다는 프로젝트는 이미 민노당 실험을 통해 그 실패가 현실로 입증되었다. 노조운동이 계급성과 변혁성을 지속적으로 견지하지 못하는 한, 노동조합의 조직적 결의에 근거한 정치세력화는 조합주의 정치와 노조관료층의 제도정치권 진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민주노총 중심의 새로운 정당 건설은 배타적 지지방침의 부활로 이어진다. 그러나 민주노총-민주노동당의 관계가 보여주듯이, 배타적 지지는 당이 자신의 독자적 정치활동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얻고 대중한테 검증받을 수 있는 구조를 상실케 하였다. 노조 역시 독자적인 정치역량과 투쟁강화 사업을 방기하면서 당에 정치를 대리하는 구조와 관행을 만들어 냈다. 즉 배타적 지지방침은 정치세력화에 득이 되기는커녕, 당운동과 노조운동 양자에게 독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배타적 지지를 받는 당이 계급적인 당이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 현장활동가들이 주체가 되는 정치세력화가 대안이다.
새로운 정치세력화 운동은 현장에서 계급적·투쟁적으로 활동해온 현장활동가들이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노동자정치세력화 역사에 대한 평가, 현 정세에서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필요성,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위해 어떤 노동자정당을 건설할 것인가, 노동조합 차원에서는 어떤 정치활동이 필요한지 등을 직접 고민하고 토론하고, 결정해 나가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서만 형식적이거나 강제적인 노동조합의 공식방침이 아니라 활동가들의 의지와 결의로써 노동자정당을 만들 수 있다. 노동조합 상층 중심의 정치세력화운동의 오류와 정파(정치)세력들 간의 협상 및 통합을 통한 당 건설의 한계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 현장활동가들이 당건설의 주체로 섰을 때에야, 노동자계급에 뿌리내린, 노동자계급이 주체가 된 당을 건설해 나갈 수 있다. 민주노총 - 민노당 활동이 보여준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분리·역할분담론(양날개론)을 극복하고, 노동자정당의 활동이 민주노조운동의 혁신과 대중투쟁의 복원·강화와 결합되게 할 수 있다.
활동가들이 당건설의 주체로 서나가야 한다는 말이 정파(정치조직)는 배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활동가들 중 일부는 정파(정치조직)에 속해 활동하고 있으며, 정치조직(정파)의 활동과 주장은 새로운 노동자정당 건설에 시사점과 내용을 제공해 줄 수 있다.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기존 정파(정치조직) 질서에 갇히지 않는 활동가들의 토론과 모색이 필요하며, 현재 정치조직에 몸담고 있지 않은 다수의 활동가들이 당건설의 주체로 나설 때, 노동자계급이 주체가 된 당 건설, 노동현장에 뿌리내리고 대중투쟁 강화와 결합되는 당건설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4. 어떤 당을 건설할 것인가(당의 성격) ; 노동중심의 진보정당인가 - 노동자계급정당인가
- 진보정당 노선에 노동중심성을 가미하는 건 대안이 아니다
민노당이나 통진당 운동을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많은 사람들이 ‘노동중심성’을 상실했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새로운 노동정치를 위한 제안자모임’은 ‘노동 중심의 대중 진보정당’이 필요하다고 한다. 민주노총 지도부도, 노동을 버린 통진당 탈당파도 무너진 노동기반을 확보하고자 노동 중심을 말한다. 이런 입장은 민노당-통진당운동이 노동중심성을 상실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제기한다는 점에서 한다는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진보정당’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노동 중심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분명하다. ‘진보의 재구성’을 주장하는 다양한 주장들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자계급정당과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은 다른 의미이다. 이는 단순히 언어상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민노당 건설과 함께 노동자정치가 진보정치로 대체되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96·97 총파업에서 외쳐진 대중적인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요구와 염원은 노동자정당을 만들자는 운동으로 수렴되었다. 그러나 그 운동이 주로 민노당 건설로 수렴되었고, 민노당 출범 및 활동과정을 통해, 노동자정치는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치로, 그 이후에는 아예 진보정치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계급모순(노동과 자본 간의 모순)의 철폐와 노동해방을 목표로 하는 정치는 실종되었다. 그 결과 전체 노동자의 계급적 이해에 근거한 정치는 없어지고, 노동자계급을 정치의 주체로 세우지 못하는 의회주의·대리주의 정치가 심화되었다. 즉 ‘민노당 → 분당 이후 민노당-진보신당 → 통진당’으로 흘러온 한국 진보정치의 역사는 노동자계급성을 버리고 의회주의 정치가 강화된 과정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한국사회에서 진보정치는 의회주의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개념으로 그 사회적 의미를 획득했다. 게다가 통진당 사태로 인해, 이제 ‘진보’라는 개념조차 전혀 진보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 보수정치의 상대어에 불과한 애매한 진보정치라는 개념이 노동자정치를 대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진보정치라는 프레임을 유지한 채, 노동중심성을 강조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특히 노동중심성을 노동자당원 수의 문제나 노동자(민주노총) 출신 국회의원 수의 문제, 민주노총이 중심이 되어 당을 만들거나 당내 영향력을 확대하는 문제로 접근해서도 안된다. 진보정당의 프레임 속에서 노동중심성을 강조하는 이런 경향은 민주노총-민노당 주도의 지난 10여 년 간의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결코 ‘새로운’ 노동자정치세력화의 대안이 될 수 없다.
- 만들 당은 진보정당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정당이다.
어떤 당이든 그 당의 계급적 성격이 있다. 새누리당이 자본가계급의 당이듯이, 노동자계급이 만들 당은 ‘노동자계급 정당’이다. 건설할 당은 민노당처럼 “노동자, 농민, 영세상공인, 여성, 청년과 학생, 양심적 지식인”을 병렬적으로 열거하는 계급연합당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당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정당의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당연한 말이지만 당을 건설하고 당활동을 하는 핵심주체는 노동자계급임을 말하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노동자정당은 노동과 자본의 대립이라는 계급모순 철폐를 통한 노동해방, 그리고 인간해방을 목표로 하는 정당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모든 당활동에서 노동자계급성을 견지하는 활동을 벌여야 함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본이 불러온 노동자 내 분할을 ‘사회연대전략’과 같이 노동자계급 내의 파이나누기(정규직의 비정규직에 대한 시혜적 양보)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비정규직의 계급적 단결에 기초한 대자본투쟁으로 조직해 내는 것이다. 또 당활동의 일차적 초점이 위계화된 분할로 갈갈이 찢겨져 있는 노동자들을 계급적 단결과 통일(계급적 연대)로 묶어내고, 진보정당운동이 낳은 정치적 대리주의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정치의 주체로 서나갈 수 있도록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계급성이 ‘노동자주의’나 ‘조합주의’가 아님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성은 노동자계급 외의 성원은 당원이 될 수 없다든가, 노동자의 경제적·노동조합적 이해만을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즉 노동자계급이 “자본의 전 사회적 지배력에 맞선 전위가 되며 농민과 도시빈민, 청소년, 환경․여성․소수자운동의 주체들과 연대를 선도하는 역량을 갖춰나가며, 더 나은 임금과 고용을 위한 투쟁을 넘어 생산과 정치의 주인으로” 서나가도록 활동하는 것이다.
5. 당의 이념(지향-목표) : 반자본주의·사회주의
- 개량주의는 불가능하고 반자본주의 없는 노동자정치는 허구다
당의 이념과 목표는 무엇을 반대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그것은 정치적 대안이나 전망이 될 수 없다. 따라서 자본주의 이후 사회에 대한 자신의 정치적 대안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반자본주의의 의미와 대안사회 건설을 제시해야 한다. 그 사회는 노동자계급이 해방되고 모든 종류의 착취와 억압과 차별과 배제와 소외가 극복된 세상이다.3) 자본과 소수 권력자들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이 정치와 경제, 삶의 주인이 되는 사회이다. 자본에 의한 자연파괴가 종식되고 자연과 인간이 유기적 관계를 이뤄 공존하는 사회이다. 이는 ‘사회주의’ 사회이다.
2차 대전 이전의 세계자본주의가 전쟁과 배타적 식민지를 필연으로 하는 제국주의 시대였다면, 현 시기의 세계자본주의는 축적위기에 몰린 자본의 천국을 위해 자본과 국가가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삶을 짓밟지 않고서는 유지될 수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체제’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거대하게 성장한 축적위기에 몰린 ‘상대적 과잉자본’4)이 있다. 1980년대 이후 노동에 대한 노골적인 공격-파업 파괴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등 불안정 노동을 양산하는 노동의 유연화, 상품의 교역만이 아니라 자본의 이전과 투기의 자유를 보장하는 세계화, 자본에게 투기와 투자의 기회를 주기위한 공공재의 사유화, 복지의 축소 등등은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억압된 대중의 소득과 좁아진 시장을 위해 대중의 미래의 소득을 볼모로 한 약탈적이고 기만적인 대출을 바탕으로 전 세계적으로 거대한 (부동산) 투기 붐을 일으키면서 성장과 대중의 소비를 지탱하였다. 그리고 이 체제의 모순은 2008년 세계 대공황으로 폭발하였고, 2011년 아랍민중항쟁을 비롯하여 그리스, 포르투갈 등 남부 유럽만이 아니라 브라질, 칠레, 미국, 스페인, 터키 등 전 세계 민중의 저항에 직면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의 유연화, 공공재의 사유화, 자본시장의 개방과 세계화, 사적 채무와 공공부채(남부유럽의 국가부도나 미국 지자체들의 연이은 파산이 그 예이다)의 누적과 급증 등은 모두 거대하게 성장한 상대적 과잉자본(이 측면을 금융자본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을 배경으로 축적위기에 처한 현 시기의 세계자본주의체제가 추구하는 필연적 운동이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전체 급여생활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의 고통이나, 온갖 수사로 미화하여 진행되는 공공재(전기, 철도, 가스, 수도 등)의 사유화, 비싼 등록금과 대학을 졸업하고도 절반이 넘는 졸업생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하여 편의점과 피시방 알바를 전전해야 하는 청년실업의 고통, 건설자본과 투기자본 그리고 토지소유자들을 위해 쫓겨나야 하는 철거민의 고통 등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구축된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체제’라는 현 시기 자본주의체제가 강요하는 필연적인 산물이다.
오늘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겪고 있는 고통은 자본주의라는 이 체제를 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해결은 없다. 이미 축적위기에 몰린 세계자본주의에는 자본의 양보능력과 계급간의 타협에 기초한 사민주의나 개량주의가 설 땅이 없어진지 오래되었다. 수많은 서구의 사민주의정당들이 자본의 논리에 굴복하여 제3의길을 운운하며 사회자유주의로 전향하고 전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변혁세력들이 혹은 이 체제의 고통과 모순을 끝장내고자 하는 세력들이 이 체제를 넘어 건설해야할 이상으로서 자본주의를 철폐하는 사회주의의 건설과 그 경로로써 노동자계급과 민중 권력의 수립을 제출하는 것은 올바른 것이고 유일한 방도이다.
그러므로 이 운동 즉 반자본 변혁운동은 자본주의 체제 혹은 자본-임노동 체제를 인정한 채, 뭔가 인간적이고 덜 고통스러운 자본주의를 상정하면서, 단지 고장 난 자본주의를 수선하거나,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거나, 탐욕의 자본주의 혹은 자본이나 월가의 탐욕을 억제할 방법을 찾거나, 단지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하거나, 자본주의라는 체제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악질자본가와 선한 자본가를 구분하여 개별적 자본가에 대항하거나, 자본가나 재벌에게서 세금을 많이 걷거나, 분배를 개선하고 복지를 증가시켜 노동의 고통을 완화시키고자 하는 운동이 아니다. 이 운동은 단호하게 자본주의체제를 끝장내는 싸움이어야 하고 그것은 반자본 사회주의 운동밖에 없다.
다만 새로운 노동자정당이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 사회는 20세기 사회주의운동과 현실사회주의 국가의 실험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20세기 사회주의운동과 현실사회주의국가 실험에 대한 발본적인 평가에 기초하고, 21세기 현대자본주의의 변화와 계급투쟁에 천착하면서, 사회주의운동의 ‘계승과 혁신’의 관점 아래 그 내용을 재구성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 극복과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중심 과제다.
6. 당의 활동노선(전략) ; 선거를 통한 당의 수권(집권)을 목표로 하는 당인가 - 노동자민중권력 수립을 목표로 하는 당인가
- 당의 선거를 통한 집권이 당활동의 전략이 되면 민노당의 실패를 반복할 뿐
초기 민노당 강령에는 ‘사회주의 이상과 지향’이 있고,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야 한다’고 되어 있었고, 이를 이루기 위한 핵심 경로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민노당은 선거를 통한 집권(수권)으로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이루려 했다. 민노당운동의 파탄의 핵심 이유 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 체제를 넘는 평등과 해방세상은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국가권력의 주인이 되어야 가능하다. 즉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경찰 등으로 짜여진 자본의 막강한 국가권력을 대신하는 노동자권력이 새롭게 세워져야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해방을 추진해 나갈 수 있다.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노동자정당)이 의회의 다수가 되거나, 대통령에 당선되어 행정부의 최고수반이 된다 해도, 기존 국가기구들이 그대로 있는 한, 자본가계급과 기존 권력자들의 저항으로, 평등과 해방의 새 세상으로 나갈 수 없다. 그런데 민노당은 선거를 통한 집권으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면 이것이 가능하다고 얘기하고 있다. 즉 선거 또는 의회를 통한 당의 집권으로 해방세상 건설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노선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민노당은 보다 많은 득표가 최우선의 목표가 되었고, 우향우 행진을 계속했다. 급기야는 통진당 건설과 노동자정치의 독자성을 포기하는 야권연대로까지 나아갔다. 의회주의 수권(집권)전략을 당의 활동노선으로 삼음으로써, 노동자정치를 실종시키고 정치적 대리주의와 출세주의를 양산하였다.
이는 서구 사민주의 역사에서도 동일하게 드러났다. 20세기 초 이래 사민주의는 사회주의 건설을 이루는 경로로 의회의 다수 의석 점유를 통한 의회주의 집권전략을 추진했다. 그 결과 사민주의당은 초기에 갖고 있었던 노동자계급정당으로서의 성격을 잃고 국민정당으로 나아갔고, 초기에 갖고 있었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목표를 포기하면서 자본주의 체제 내 개량 획득에 안주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 호황의 마감과 현실사회주의권의 붕괴라는 정세를 맞아 신자유주의에 굴복하였다.
게다가 사민주의의 의회주의 집권전략은 ‘노조는 경제투쟁-당은 정치투쟁(의회내 입법활동)’이라는 양날개론 아래 추진되면서, 노동자대중을 선거 시 동원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정치적 대리주의를 양산시킴으로써, 노동자계급을 정치의 객체로 전락시켰다. 역사적 사례들 역시 부르주아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민주의 정부가 역사상 단 한 번도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선 경험이 없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선거를 통한 수권(집권)을 당의 핵심 전략으로 삼는 의회주의는 노동자정치의 길이 될 수 없다.
- 노동자민중 스스로의 힘을 통한 노동자민중권력 쟁취
당의 집권이 당활동의 전략이 아니라면, 당은 어떤 전략 목표를 가지고 활동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노동자민중권력’의 수립이다. 민노당 강령식으로 선거를 통한 당의 행정부 장악을 의미하는 ‘000 정부 수립’을 뛰어넘어야 한다. 노동자민중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으로, 노동자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국가권력을 새롭게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는 당을 건설해야 한다. 노동자민중이 자신의 국가권력을 새롭게 수립하고 자신의 통치체제를 구축하여, 자본주의의 모순을 철폐하고 노동해방·인간해방 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활동하는 당이어야 한다.
따라서 ‘보다 많은 득표를!’를 목표로 하는 전략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이 스스로의 힘으로 권력을 수립할 수 있는 투쟁역량과 정치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 당활동의 핵심전략이 되어야 한다. 선거와 의회활동은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활동의 하나이지, 활동 목표 그 자체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 활동의 최종목표는 당의 의회주의적 수권을 통한 행정부 장악이나 의회 다수파의 형성이 아니라, 노동자민중권력의 수립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선거와 의회투쟁은 노동자민중의 정치투쟁역량 강화와 발전을 위한 것이지, 대중정치투쟁이 의회투쟁의 부속물로 전락해서는 안된다. 즉 당의 전략노선은 당의 의회주의적 수권을 최종목표로 하는 정당이 아닌, 자본주의 극복과 노동자민중권력의 수립을 목표로 해야 한다.
- 의회주의와 비제도주의
사회주의 운동은 단지 당을 앞세운 권력의 장악이나 자본가계급의 타도운동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대중의 자기해방운동이다. 역사는 투표함이 아니라 투쟁 속에서 전진한다. 이러한 투쟁의 과정 속에서 대중은 계급으로 성장하고 노동해방만이 아니라 전 인류를 해방할 사명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단지 주권자를 유권자로만 보는 부르주아 정치나 혹은 대중을 대리하면서 수동화시키는 사민주의의 ‘대리주의’나 ‘양날개론’은 대중을 투쟁 속에서 정치적 실천의 주체로 만들어가려는 관점이 없다. 이 때문에 그들은 협상과 양보를 통한 성과에 집착하면서 대중의 성장을 가로막고 전투성을 거세한다.
이런 이유로 변혁정당은 의회와 제도를 활용하지만 의회주의 혹은 제도 내 실천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자계급에게 중요한 것은 노동자 국회의원이 당선되고 의회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계급에겐 그들을 대리해 줄 ‘노동자 대통령’-이것은 원래 신자유주의의 품에 안긴 룰라의 슬로건이었는데 큰 문제의식 없이 지난 대선투쟁에서 채용되었다-이나 ‘노동자 국회의원’(이것은 민노당 출범의 핵심이유였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 대중이 투쟁과 실천 속에서 변혁적인 계급과 세력으로 성장하는 데에 있다.
또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부르주아적인 헤게모니가 관철될 뿐 아니라 일부에는 개량주의적 헤게모니가 관철되고 있는 사회이고, 그 속에서 선거란 제 계급이 각축하는 계급투쟁의 장이자 일종의 계급정치의 결산의 장이다. 즉 현대 사회는 폭발 직전의 격변기에 봉기를 선동하여 체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기동전의 시대가 아니라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와 개량주의자의 헤게모니에 맞서 오랫동안 다투어야만 하는 진지전의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는 선거와 의회의 활용을 외면하면서 대중에게 선전하고 지지를 모으고 계급정치의 장에서 헤게모니를 성장시키기는 어렵다.5) 이런 이유로 의회제 민주주의가 확립된 나라에서는 선거와 제도를 전술로써 활용해야 하지만, 체제를 넘어서려는 운동은 그 제도에 매몰되지 않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리고 아무리 변혁정당이라고 하더라도 당이 성장하고 의회로 진출하게 되면 끊임없이 관료주의와 기회주의가 성장한다. 따라서 이것은 단지 의회투쟁과 거리 투쟁의 병행이 아니라 대리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대중의 직접행동과 대중의 자기해방운동의 관점에서 제도와 투쟁을 사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7. 당원의 자격과 활동, 당의 활동조건
- 전위정당 vs 대중정당의 대립구도를 넘어서야
1980년대 이후 한국의 변혁운동진영 안에서 전위정당=非합(半합)정당=혁명(변혁)정당, 대중정당=합법정당=의회주의정당(또는 전위정당의 합법정치부대)이라는 인식이 형성되어 왔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구분법이다.
특히 혁명과 변혁을 추구하는 “당은 직업적 혁명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오래된 오해와 궤변이 있다. 사회주의란 대중의 자기해방 운동이고, 압도적인 대중이 공감하고 지지하고 참여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운동이다. 즉 레닌과 같은 단련된 전문적 혁명가들은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바깥에 있는 대중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이런 것을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 능력을 부정하는 엘리트주의라고 한다), 선진의식을 가진 대중들의 당 속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대중정당의 당원의 대부분은 공장이나 편의점이나 시장에서 생존을 위해서 일하고 일해야만 하는 사람들 즉 대중이지, 높은 의지로 단련되고 훈련된 전업적인 혁명가들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이 의미에서 변혁정당이란 본질적으로 그 구성에 있어서 대중정당이다. 다만 그 역할에 있어서 전위적이며 그 실천에 있어서 활동적인 것이다.
그동안 진보를 표방한 당들이 진보적 실천이 담보되지 못했던 배경에는 의회주의 노선과 밀접히 결부된 당원 가입 및 당원활동 문제가 있다. 즉 당비만 내면 당원으로 인정하거나, 페이퍼당원까지 허용하는 당활동, 당원을 선거 때 몸대는 동원대상으로 전락시키는 당활동, 국회의원과 소수 상층지도부 중심이 되는 당활동, 그 결과 당원이 당의 주인이 되는 민주적 정당으로 운영되지 못한 것이 진보정당의 핵심 문제이다.
따라서 전위정당 vs 대중정당이라는 잘못된 구분법을 버려야 하고 이 문제는 당원 규정과 당운영 원리로 접근해야 한다. 즉 변혁정당은 단지 회비만 내는 당원이나 페이퍼 당원 혹은 광범한 심정적 동조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 당원이 당의 한 기구에 속하여 실천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대중적인 실천정당이어야만 한다. 사회주의란 본질적으로 대리주의가 아닌 대중의 자기해방운동이라는 점에서 모든 당원이 함께 참여하고 함께 실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 당내 민주주의와 문화
당활동 원리 중의 하나인 ‘민주집중제’란 “토론은 자유롭게, 결정은 민주적으로, 실천은 통일적(집중적)인 것”으로 정리되어 왔다. 그러나 사실상 레닌이 고백한 것처럼 차르 치하의 지하조직이었던 당은 민주제(특히 선출의 민주제)를 실천하기 어려웠고, 대부분의 당들의 역사는 집중제의 측면을 강조해 왔다. 또한 당과 노조의 양적 성장은 항상 관료제와 기회주의(현실 안주)의 위험을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란 형식적인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뛰어넘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당 또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만 한다. 역사적으로 해방된 사회의 민주주의는 파리코뮌이나 소비에트에서 관찰된 바 있다. 특히 파리코뮌은 의결과 집행의 통일, 소환제, 선출직의 특권 폐지와 선출직 보수의 일반 노동자 수준을 중요한 특징으로 하였다. 국민의 87%가 파병에 반대하는 데도 토니 블레어가 이라크 참전을 결정한다든지, 절대 다수의 국민이 원하지 않는 광우병 소고기의 개방을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관철한다든지, 300만이 거리에 나와 연금개악 반대투쟁에 참가했어도 다음날 시라크가 개악안을 통과시키는 사례에서 보듯, 부르주아 국가에서의 선출직이 그들을 선출한 국민을 배반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선출된 대리인을 주권자에게 복종하게 하는 방법의 하나에 소환제가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집행권력을 의결권력에게 복종시키거나 통합하는 것이다. 전제 대중의 자기해방운동이라는 것은 대리주의를 배격하고 직접민주주의를 이상으로 한다. 대중이 직접 결정하고 나누어 맡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의결과 집행의 통일이다. 그러므로 대중의 자기해방운동은 의결과 집행의 통일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부득이하게 특정한 업무를 전문가에게 위임하거나 대리시킬 수 있지만 이 경우는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하고, 최고의 결정권(의결권)은 항상 전체 대중에게 있다. 역사적 사회주의에서 대중의 정치적 자유가 억제되거나 형해화된 것은 그 자체로 깊이 반성을 해야 할 문제이다.
당은 성원 내부의 민주주의와 당과 계급 그리고 타 계급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직접민주주의를 이상으로 하는 혁명적 민주주의를 추구한다. 그리고 몇 천 명 수준의 당이라면 총회를 최고의결기구로 하는 ‘총회민주주의’를 명시해야 한다. 전 당원이 모여서 1년이나 2년에 한 번씩 며칠 동안 당의 모든 현안에 대하여 토론하는 것은 의식의 훈련과 당의 통일을 위해 중요하다. 또한 당내 민주주의는 토론과 비판과 의견그룹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6)
그리고 당내 민주주의나 관료주의, 기회주의와의 투쟁은 규약을 포함한 제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에는 일상 사업의 문화에 있어서 탈권위주의, 민주주의, 대중주의, 그리고 해방운동체로서의 작풍과 문화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성원들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8. 변혁정당이 옹호해야 할 가치와 태도
- 여성주의, 생태주의, 소수자 차별 배제
사회주의의 이상이란 모든 종류의 착취와 억압과 차별과 배제와 소외가 극복된 세상의 건설이다. 따라서 계급사회에서 이중(자본주의 체제와 가부장적인 제도와 문화)으로 억압받고 차별받는 여성해방의 과제와 전체 인류가 의지하고 공존해야 할 자연과 생태를 이윤을 위해서 약탈하고 파괴하는 자본가계급에 맞서는 투쟁은 노동자계급의 본연의 임무이다. 특히 여성의제와 생태의제는 부르주아적 혹은 소부르주아적 관점에 맞서 계급적 관점에서 해결방도를 제시하고 노동자계급이 앞장서서 실천해야 한다. 또한 전쟁과 핵의 위험처럼 생태가 파괴되었을 때도 가장 고통당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민중이다, 사회주의자는 전쟁과 핵은 물론 자연과의 공존을 침해하는 모든 종류의 생태파괴에 맞서 싸워야 한다. 이것은 대량생산, 대량소비, 대량파괴를 숙명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철폐를 요구한다. 오늘날 서구의 (변혁)좌파정당들은 기왕의 토론과 실천의 성과로 여성, 생태, 성소수자운동을 모두 자기 사업으로 확인하고 있고 소부르주아적 운동과 경쟁하고 있다. 특히 생태주의적 관점이 없는 사회주의나 여성주의적 관점이 없는 사회주의는 노동자계급이 추구하여야 할 인류의 이상과 배치된다. 이것을 노동의제가 아니라느니 무지개 연합7)이라고 운운하는 것이 바로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를 망각한 협소한 노동자주의이다. 또한 사회주의나 맑스주의에 여성주의와 생태주의에 대한 관점이 이미 다 들어 있으므로 따로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역사적 사회주의가 가부장제와 생산력주의를 탈피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 여성주의와 생태주의, 소수자 차별 배제는 변혁정당의 기조에 반드시 들어가야만 한다.
- 반제투쟁과 노동자 국제주의
반제투쟁에는 민족주의적 관점과 국제주의에 충실한 계급주의의 관점이 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뒤 이은 임금인상 등으로 압박을 받은 한국자본은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동남아로의 진출을 적극 꾀하였고, 이후 개방과 세계화를 관철하는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동일한 입장을 갖게 되었다. 현 단계 한국자본의 이해에 가장 충실한 계급정책이 바로 FTA 우등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한국은 미국민족과 일본민족에게 혹은 선진국 자본에게 일방적으로 억압과 수탈을 당하는 반식민지 후진국이 아니다. 후진국의 저임금과 원료자원의 수탈만이 아니라 선진국을 포함한 그들이 투자한 모든 곳에서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마찬가지로 착취와 수탈과 투기적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자본수출을 내재화한 한국은 이미 미제국주의를 선두로 한 세계 제국주의의 일원이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가하는 가장 큰 고통인 비정규직과 실업 등의 문제, 한국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자행되는 노동과 복지에 대한 자본과 국가의 공격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는 설명이 안 된다. 분단의 모순과 고통 역시 억압받는 민족의 관점이 아니라 제국주의와 그에 의해 육성되고 성장한 자본가계급이 가하는 고통으로 볼 때, 정주영, 김대중, 노무현, 이건희와 정몽구까지 포함하는 심정적 민족주의나 감상적 통일운동이 아니라 반동계급을 제외한 남북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주체가 되는 관점에 설 때 올바른 해결방도를 제시할 수가 있다. 민족주의란 봉건사회를 극복하고 근대적인 통합국가를 이루고자 할 때 그리고 무력으로 짓밟혔던 식민지 시절에는 유의미한 역할을 한 적이 있지만, 오늘날 유럽정치에서 보듯 우파와 극우반동들의 전유물인 민족주의, 국가주의란 그 본질에 있어서 퇴행적인 것이다. 박정희가 그랬던 것처럼 계급이 아닌 국가와 민족을 앞세울 때 시민의 민주적 권리와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민중의 삶은 짓밟히고 희생될 수밖에 없다.
또한 노동자 국제주의가 아니고서는 제국주의 체제 즉 세계자본주의 체제가 강요하는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질서와 질곡을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계급적 변혁정당은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인 민족주의, 국가주의와 절연하고 노동자 국제주의로 무장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9. 현 시기 변혁정당 건설의 의의
-경제주의와 전투적 조합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방도로서의 당운동
현 시기 당건설 운동에 반대하는 입장에는 ‘시기상조론’만이 아니라 현장이 무너졌고 현장을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소위 ‘현장우선론’이 있다. 지난 10여 년간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지난 30여 년간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공격 속에서 노동자계급과 민중세력은 패배와 후퇴를 거듭하였다. 여기에는 높은 실업률을 바탕으로 항상적으로 강요되는 경쟁과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노동내부의 분절화와 위계화, 전투성을 잃어버리고 관료화된 노조, 자본의 논리에 굴복한 사민주의 세력의 사회자유주의로의 전향, 분산되고 고립화된 취약한 변혁세력 등등 수많은 이유가 있다.
즉 노동자계급의 패배와 후퇴 그리고 현장이 망가진 것은 단지 현장활동가들이 열심히 실천하고 투쟁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고 현장의 실천과 당 운동을 대립시키는 사고의 근저에는 ‘경제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만약에 쌍차나 유성이나 현차의 문제를 민주노총이 자신의 문제로 생각하고 투쟁한다면, 그리고 전체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문제로 생각한다면 승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즉 자본에 이기기 위해서는 전체 노동자계급이 하나라는 계급의식을 가져야만 한다.
노동자 대중이 자기가 속한 현장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투쟁할 때에는 단위 사업장의 조합원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으로 사고하는 계급의식을 갖기 어렵다. 맑스가 ‘공산당선언’에서 “노동자계급은 하나의 계급으로 건설(구축 formation)되어야 한다”고 했을 때의 의미는 착취받고 억압받는 노동자들에게 자연스러운 경제주의나 조합주의 혹은 집단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전 세계의 노동자가 하나의 계급이라는 의식을 쟁취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경제주의나 조합주의란 전체 자본가계급이나 국가와의 대결이 아니라 개별 자본가(기업주)와의 투쟁을 통해 당해 사업장만의 당장의 고통의 해소나 분배나 노동조건의 개선에 치중하는 것을 말한다.
당 운동이란 노동자 대중을 일개 사업장이나 부문의 노동자가 아니라 전체 자본가계급과 자본주의 체제에 대응하는 전체 노동자 계급의 일원으로서 즉 전체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서 사고하고 투쟁하고 실천하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현 시기에 있어서 당 운동 혹은 사회주의 정치운동에 대한 필요성은 87년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이 여러 사정으로 사회주의적 변혁적 입장에 선 운동을 하지 못한 채 갇혀버린 ‘전투적 조합주의’에서 벗어나서 전체 노동자계급을 하나의 계급으로 구축하자는 운동이다.
그럼에도 또다시 무너진 현장의 복원이 급선무라는 이유를 대면서 당 운동에 반대하는 것은 위기의 원인에 대한 반성없이 실패한 그 운동을 계속하자는 것이고 이는 전형적인 경제주의 혹은 노동자주의(workerism)에 해당된다.
노동자주의란 노동자계급의 당면한 고통과 현장에의 결합을 중시하면서 노동자계급을 계급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변혁적 전망을 갖는 전 계급적이고 전국적인 정치적 실천을 경시하는 태도를 말한다. 이에 반해 노동자계급 중심주의란 자본에 의해 강요된 위계화와 분절을 넘어 전체 노동자계급은 하나라는 것, 사회변혁의 주된 동력은 조직된 노동자의 힘과 투쟁이고, 노동자계급은 타 계급에 앞장서서 자본을 타도하고 모든 계급과 인류를 해방해야 할 임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즉 노동자계급의 중심성과 헤게모니는 자임하는 것도 아니고 권리도 아니며 노동자계급이 자각하고 실천해야 할 역사적인 임무이자 의무이다.
경제주의와 전투적 조합주의, 노동자주의는 반드시 극복되어야 하고, 그 방도는 노동자계급 중심주의에 입각한 당 운동밖에 없다. 지난 10여 년간 거듭되어온 후퇴와 패배 그리고 수세적이고 부문적이고 고립적인 현 시기의 투쟁을 역전시키는 실마리도 바로 이러한 계급적 당운동에서 찾아야 한다.
- 투쟁동맹과 변혁정당 운동
한편으론 지난 10여 년간 계속되는 패배와 후퇴에 맞서 이를 역전시킬 수 있는 돌파구로서 당을 사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아직 사회주의 의식은 투철하지 않지만 투쟁적인 활동가들도 참여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당은 단지 투쟁을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고 당면한 비정규직 반대와 같은 중요한 투쟁을 제대로 해보기 위해서 만드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투쟁동맹일 뿐 전략적 과제에 부응하는 당이 아니다. 단지 그런 이유라면 당을 만들 것이 아니라 노동전선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변혁모임이 주도하였던 노동자 대통령 선본은 반자본을 기조로 하였지만 6억 원짜리 노동해방 선봉대였다는 자조처럼 투쟁은 열심히 했지만 반자본의 선전과 실천을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프랑스의 NPA의 부장스노 후보가 칭찬받는 이유는 대중에게 공산주의와 혁명에 대한 꿈을 전달했다는 것이고 이를 통해 150만 명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8) 변혁정당의 임무란 단지 투쟁을 열심히 하고 잘해보자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끌어올리는 것이고 반자본 사회주의 계급의식을 대중의 의식역량을 감안하면서 끊임없는 선전과 교육과 동원을 통해 훈련하는 것이다.
10. 전략적 과제와 변혁세력의 독자성
-사회주의의 전면화와 변혁세력의 헤게모니
그런데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자 제도 내의 세력들조차 사회주의를 공공연하게 내세우는(내세울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그보다 왼편에 있는 변혁모임 내에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거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과 대중의 의식 등을 고려하여 주저하는 입장이 있고 유연성을 발휘하자는 입장까지 있다. 그러나 이것은 당과 당운동에 대한 관점의 부족에서 비롯된 무의미하고 소모적인 논쟁과 대립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의 이상이란 “모든 종류의 착취와 억압과 차별과 배제와 소외가 극복된 세상”이다. 사회주의 운동은 단지 자본가계급의 타도만이 아니라 계급 없는 사회의 건설(즉 전 인류의 해방)을 목표로 하고, 그 경로로써 자본가계급의 국가와 권력을 철폐하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의 국가와 권력을 수립하려는 대중의 자기해방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을 위한 사회변혁세력에게 ‘당’이란 자본주의의 철폐와 사회주의의 건설이라는 전략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도구이다. 당이란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복무하고 그들을 대변하지만 전체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그 일부로 이루어진다. 즉 이러한 전략적 과제를 인식하고 실천에 앞장서는 노동자-선진advanced 노동자-들로 이루어진다.
노동자계급에게는 기본적으로 개량주의와 변혁(혁명)주의라는 두 개의 입장이 있다. 개량주의란 자본주의의 철폐에 대한 관점 없이 제도내의 투쟁과 개량의 축적에 안주하거나 그것만으로 사회주의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실 속에서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노출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당장 혹은 가까운 장래에 실현가능성과 연결된 당면한 고통의 제거와 완화를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이것이 개량주의의 기반이다. 이에 반하여 노동자계급의 고통은 착취와 억압의 뿌리인 자본주의의 청산 없이는 근본적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변혁적(혁명적) 입장이다.
당의 기본적 과제란 교육과 선전과 선동 그리고 투쟁을 포함한 실천을 통하여 자본과 노동 간의 계급투쟁 속에서 그리고 노동자계급 내의 다양한 입장과의 경쟁 속에서 헤게모니를 다투고 장악하여 가는 것이다. 헤게모니란 자임하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고, 노동자계급 내에서 그리고 여러 계급이 다투는 계급투쟁의 장에서 자본가계급과 개량주의자의 헤게모니에 맞서는 변혁세력의 헤게모니(위신력과 개입력)의 확립 없이 사회변혁이란 불가능하다. 그런데 변혁세력임을 자임하고 사회주의를 공공연하게 내걸지 않는다면 혹은 불철저한 세력이나 개량주의 세력과 동거하여 실천한다면 혹은 그들과 비슷한 주장과 실천을 한다면 어떻게 변혁세력의 헤게모니가 가능할까? 사회변혁세력은 상황에 따라 연대투쟁이나 통일전선 등 다른 세력과 연대와 연합을 할 수는 있지만 어떤 때에도 변혁세력의 독자성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다. 변혁세력의 독자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전략적 과제를 포기한다는 것과 동일한 것이다.
-변혁세력의 독자성과 전략적 세력의 결집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를 내걸었던 민주노동당은 크게 보면 의회주의적 세력의 결집이었지만, 애초에 사민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 민족주의 세력과 계급세력이 혼거하는 정파연합적 전선당이었다고 할 수 있다. 특정 정파가 다수를 장악하고 패권주의적 행태를 보인 것이 정파연합적 전선당의 분열을 가져왔지만, 분열 이전에도 사상의 이질성으로 북핵문제, 세습문제, 반FTA투쟁 등의 기조를 둘러싼 논쟁 등에서 보듯 소모적인 논쟁과 표 대결로 치달았을 뿐 그 속에 있는 비 NL세력은 자신의 주장을 실천할 구조가 못되었다. 당은 민주노총처럼 다양한 정파들이 그 속에서 헤게모니를 다투는 대중조직이 아니라 정치적 사상적 통일체이다. 정치적 사상적 입장이 다르면서도 불편한 동거를 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실천할 수 없는 구조라면 각각 독자적인 당으로 결집하고 소신껏 실천하는 것이 더 유의미하다. 변혁세력의 조직적인 독자성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자 원칙성이고, 이것은 사회주의와 변혁이라는 정체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당의 임무는 계급 내의 후진부분 혹은 대중의 의식을 끌어올리는 데에 있는 것이고, 대중의 의식과 눈높이를 운운하며 자신의 정체성이나 강령을 희석시키는 것은 변혁정당의 존재의 의미와 임무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사회주의 변혁정당이란 전략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조직이고 따라서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실천한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지, 강령을 희석하여 심정적인 지지자들까지 포함했을 때에는 결코 사회주의를 내걸고 정치투쟁이나 사업을 할 수 없다. NL과 PD가 하나의 당으로 묶여 서로 발목잡는 것이 무의미하듯, 실천할 의지가 있는 사람과 주저하는 사람을 하나로 묶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조직이 될 것이다. 변혁정당은 사회주의를 실천하겠다는 사람들로 만들어져야 하는 것이다. 아직 사회주의를 내걸고 실천할 준비가 안 된 사람들 혹은 동의가 안 된 사람들은 전선에서 활동하면 된다. 즉 사회주의 변혁정당은 단지 주관적으로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의 실현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정치적 운동체인 것이다.
또한 전략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당은 전략적 과제에 동의하고 실천하는 모든 세력이 참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스탈린주의자이건 트로츠키주의자이건 혹은 맑스와 레닌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사람일지라도 전략적 과제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정파의 차이를 넘어 하나의 전략적 당으로 결집해야한다. 순결주의와 올바른 노선을 운운하며 해석을 독점하면서 작은 정파에 안주하여 정파통합의 대의를 부정하는 것은 변혁의 과제를 담보할 구체적 실천을 포기하는 혁명적 언사주의이자 종파주의이고 분파주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다양한 변혁정파가 모인 당의 강령은 이데올로기적이고 역사적인 입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가치와 태도를 중심으로 서술되어야 한다.9) 다양한 정파가 모인 그리스의 Syriza나 프랑스의 NPA, 포르투갈의 Left Bloc 역시 창립원칙이나 강령을 이렇게 구성하고 있다. 현 시기에는 완결된 강령건설에 집착하기보다는 계급성과 변혁성을 분명히 하는 즉 노동자계급 중심주의와 반자본 사회주의 변혁을 전면화한 정치원칙으로 출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11. 결어
- 계급성과 변혁성을 분명히 하는 노동자계급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전 세계 노동자계급과 민중에게 지난 30년간 추진되어 온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당면한 세계경제위기가 가하는 고통을 끝장내는 길은 존재의 기반이 무너진 사민주의 개량주의 정치나 파탄난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의 재탕이 아니라 계급성과 변혁성을 분명히 하는 반자본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투쟁하는 변혁적 노동자계급정당 운동밖에 없다.
그리고 이 운동은 (전투적) 조합주의, 경제주의, 의회주의, 대리주의, 개량주의와 결별하고, 노동자 대중을 하나의 계급으로 성장시켜 나아가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이 생산과 정치와 삶의 주인이 되는 사회, 모든 종류의 착취와 억압과 차별과 배제와 소외가 극복된 사회, 노동자계급만이 아니라 전 인류의 해방을 추구하는 원대한 운동이 되어야 한다.
2011년 수십 년에 걸친 가혹한 독재 하에서 신음하던 아랍민중의 항쟁은 독재자는 몰아내었지만 제국주의가 강요하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질서를 벗어나지 못했다. 억압되고 주변화되었던 변혁세력은 투쟁을 주도하지 못했고, 자유주의자 혹은 이슬람주의자들의 헤게모니 하에 자본가계급과 군부를 비롯한 낡은 지배계급을 청산하지 못했다. 2009년 300만 명에 달하는 프랑스의 노동자계급과 민중은 거리로 나왔지만 노총을 비롯한 운동 지도부의 개량주의와 기회주의에 막혀 패배하였다. 독재자를 몰아내었던 4.19 혁명, 군부독재도 끝장내지 못한 채 직선제 개헌에 멈추었던 87년 민주항쟁 역시 자유주의자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낡은 지배계급과 타협하였다.
이 모든 투쟁의 순간에 만약 투쟁에 나선 대중들 속에서 반자본 사회주의적 지향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었다면 단지 독재자나 집권당의 타도가 아니라 체제를 뛰어넘을 수 있었을 것이다. 2008년 촛불항쟁 때 100만 명이 거리에 나오고서도 독재자는커녕 광우병 쇠고기조차 못 막아낸 것은 운동의 헤게모니를 비타협적이고 투쟁적인 변혁세력이 아니라 기회주의적이고 개량주의적인 세력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쌍차, 현차, 유성, 재능투쟁 등에서 보듯 자본에 대한 생존권적 투쟁마저 고립되고 장기화되고 있다. 민주노총이 혹은 전 노동자계급이 이 투쟁을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인다면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자본과 국가에 대하여 이기는 길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자본이 강요한 분절화와 위계화를 넘어 전체 노동자계급이 하나라는 계급의식으로 무장하는 것이다. 개별 자본가와의 싸움에 집중하는 경제주의와 전투적 조합주의를 넘어서서 전체 노동자계급이 하나의 계급으로 건설되어야 한다. 당운동은 분할되고 위계화되고 고립된 노동자대중을 모든 노동자가 전체로서 하나라는 계급으로 성장시켜 나아가기 위한 운동이다.
또한 투쟁이 아무리 성장하여도 수백만이 거리로 나와도 변혁세력의 헤게모니가 확립되지 않는 한 그 투쟁은 자유주의자와 개량주의자의 타협과 배반에 직면한다. 이런 이유로 계급성과 변혁성을 분명히 한 즉 반자본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앞장서는 사회주의 변혁정당을 건설하고 자본가계급과 개량주의자들의 헤게모니에 맞서 변혁세력의 헤게모니를 성장시켜야만 한다. 변혁정당 운동이란 이처럼 노동자대중을 계급으로 성장시키고 변혁세력의 헤게모니를 성장시키려는 운동이다.
사회주의 변혁운동은 대중의 자기해방운동이고 그 본질상 의회주의나 대리주의를 배격한다. 반자본 사회주의 변혁에 공감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모든 세력들은 하나의 당으로 결집하여야 한다. 그 당은 심정적 동조자나 회비만 내는 당원이 아니라 당의 한 기구에 속하여 실천하는 당원이고, 모두가 당의 주인으로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당이다.
- 활동가들이 주체로 나설 때
이제 정치를 소수 정치인이나 정당에 맡기는 대리주의 정치가 아니라, 노동자계급이 직접 정치의 주체가 되는 정치, 노동현장과 삶의 모든 현장에서 노동자정치를 새롭게 일구고 체현해 나가는 정치를 새롭게 해나가자. ‘보다 많은 득표와 원내 진출’이 최상의 목표가 된 선거주의·의회주의 진보정당이 아니라, 자본과 정권에 맞서 노동자민중과 함께 투쟁하는 정당, 정치총파업을 조직하는 정당을 만들어나가자. 협소한 조합(조직노동자)의 이해에 갇히는 정치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정치적으로 대변하고 집약하며, 전체 민중의 선두에 서서 자본주의가 낳거나 강화한 모든 모순과 차별, 억압에 맞서 활동하는 정당을 만들자. 자본주의 틀 안에서 자본주의를 좀 고쳐 쓰는 정치가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전체 민중이 해방되는 ‘노동해방·인간해방·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정치적 전망 아래, 노동자민중에게 정치적 희망과 대안을 제출하는 정치를 시도해 나가자.
그 누구보다 노동운동 내의 계급적·투쟁적 활동가들이 나서야, 위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진정한 노동자계급정당은 건설될 수 있다. 그리고 활동가들의 집단적 의지로 당건설을 위한 구체 경로와 실천을 마련, 추진해 나갈 수 있다.
1) 1. 변혁적 현장실천의 4대 방향 -1) 무너진 노동현장의 회복, 2) 사라진 연대와 전국적 투쟁의 복원, 3) 현장실천을 통한 계급적 단결, 4) 현장 정치활동의 강화
2. 노동자계급정당의 기조 - 1) 자본주의 체제 변혁, 2) 노동자계급 중심성, 3) 현장실천과 대중투쟁을 통한 노동자 민중권력 쟁취, 4) 반제국주의 투쟁과 국제연대, 5) 민주주의 정당과 실천하는 당원
3. 10대 투쟁 강령- 1) 노동 – 일자리가 위협받지 않는 사회, 모든 노동자에게 노동기본권이 완전히 보장되는 사회, 2) 공공성 강화 및 사회화 – 시장과 이윤이 아닌 필요와 연대에 기반한 사회, 3) 교육 – 학비걱정 없는 사회, 경쟁 없는 사회, 4) 의료·복지 – 삶의 불안이 없는 사회, 5) 주택 – 부동산 투기가 없는 사회, 6) 환경 –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사회, 7) 농민·빈민·영세자영업자·금융피해자 – 민중의 생존권이 보장되는 사회, 8) 여성·성소수자·장애인·청소년 – 여성과 소수자의 인간다운 삶을 실현하는 사회, 9) 정치·민주주의 – 모든 정치적 억압의 폐지와 직접민주주의가 확대되는 사회, 10) 평화 - 핵무기와 전쟁과 제국주의 없는 세상
2) 이 글은 서울변혁모임의 공식입장이 아닌 한 성원의 입장이다.
3) 사회주의란 단지 노동자계급이나 민중에 대한 착취와 억압만 끝장내는 운동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차별과 배제가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운동이자, 모든 사람이 인간과 인간이 맺는 관계 혹은 사회와 자연과 맺는 관계에서 빚어지는 소외(예를 들어 상급자의 억압,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하는 노동, 자신에게 중요한 결정에서의 배제, 인간이 아니라 돈과 자본이 주인이 되는 현실, 경쟁을 위해 강요되는 성적 지상주의나 외모 지상주의 등등의 모든 비인간적인 현상)를 극복하자는 근본적이고 원대한 운동이다. 인간이 중심이 되고 주인이 되지 못하는 비인간적인 것을 ‘소외’라고 한다.
4) 민중의 복리를 위해 투자할 자본이 남는다는 것이 아니라, 마땅한 이윤을 낼 수 있는 투자처를 구하지 못하는 자본이 넘쳐난다는 의미에서 상대적인 과잉자본이라고 한다. 한국도 가계부채가 1,000조를 육박하지만 한편에는 800조~1,000조의 돈이 투기의 기회를 노리고 있다.
5) 아랍항쟁이나 그리스 투쟁에서 보듯, 대중이 폭발적으로 진출하여도 변혁세력의 헤게모니가 확립되지 않는 한 그 투쟁은 체제 내에 머무르고 개량주의적 혹은 기회주의적인 세력에 의해 왜곡된다.
6) 분파활동을 어디까지 어떻게 허용할 것인가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당은 자발적 개인에 기반하는 것이고 실천을 통해서 융합되어 가야 하는데, 특정한 정파나 종파가 당을 선전의 장으로 악용하면서 융합되지 않는다면 부정적이다. 의견그룹이 분파적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항구적이지 않은 ‘사안별 의견그룹’으로 제약하는 방법론도 있지만 왕도는 없다. 한편 포르투갈의 Left Bloc이나 프랑스의 NPA, 그리스의 Syriza는 분파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고, 토론의 실질화를 위해 총회전 지역별 사전 토론을 제도화하고 있다. 특히 Left Bloc에서는 소수파를 그들이 총회에서 얻은 비중만큼 집행부에 할당하는 것을 제도화하고 있다. 의회가 다수 여당과 소수 야당들로 구성되듯 집행부도 다수파가 독점하지 않고 소수파와 함께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당내 민주주의를 위한 실험들이다.
7) 그러나 노동자계급 중심주의에 입각하지 않으면서 다양한 가치운동이나 사회운동을 열거하는 것은 무지개 연합이다.
8) 부장스노는 30대 초반의 우체국에서 일하는 파트타임 노동자였다. 한편 2012년 NPA의 후보인 필립 푸투는 포드 자동차 공장의 공장폐쇄 반대 투쟁에 맞선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투쟁하는 노동자 대통령’의 상에는 부합하였지만, 개인적 카리스마는 둘째 치고 현 시기 노동자들의 주된 고통인 비정규 문제나 청년실업을 상징하기에는 부적절했다는 비판이 있다.
9) 즉 대중은 아무런 흥미도 없고 정파 간에 다를 수밖에 없는 맑스나 레닌이나 스탈린주의 혹은 북한에 대한 특정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주의나 생태주의, 반인종주의 반제국주의, 전쟁과 핵에 대한 반대, 노동자 국제주의 등등의 노동자계급이 추구해야 할 가치 혹은 사회주의의 이상과 개량주의, 대리주의, 의회주의의 배격, 노동자계급의 자기해방운동의 관점 등의 태도를 중심으로 서술하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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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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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에서는 원론에 공감하면서도 현 시기에 과연 변혁정당운동이 잘될까?, 총론에 동의하지만 각론이 미흡하다. 현장활동가들이 조합내에서 사회주의를 얘기하기 쉽지 않다. 방법론이 무엇이냐?, 다양한 세력과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등의 의견이 많았고, 발제요지는 현시기에는 사회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노동자계급정치를 실천하는 변혁적이고 계급적인 노동자계급의 대중정당이 건설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