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최저임금... 최고임금...

더 이상 최저임금이란 말을 쓰면 안될 것 같다.

최저임금이 아니라 최고임금이다.

무려 6%나 올랐단다. 4320원에 4580원으로.

한 해 한 해 오르는 물가와 비교해 봤을 때 우리는 내년엔 더 가난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는 또 더욱더 가난해지겠지...

분명 최저임금은 최소한으로 사람이 생계유지를 하기에 위해 필요한 선을 지키기 위해 만들었다. 문제는 사실

지금에 최저임금으로는 최소한에 생계유지는 하지만 그건 사람으로써 기본적인 문화생활은 아무것도 누리지

못하고 그저 먹고 자고 싸는데만 쓰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최저임금도 임금이지만 더 큰 문제는 아무리 못 주더라도 최저 이만큼은 줘야 한다는 형식적인 노,사,정에 합의인데 대부분에 현장에서는 이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이 되고 있으니...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 최저임금에 논리를 깨 부셔야 한다.

우리는 최저임금이 아니라 최고임금을 받고있다. 사람이 가축도 아니고 먹고 자고 싸는 것 외에 음악도 듣고

책도 보고 영화도 보고 외식도 하고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 근데 최저임금으로 이런 삶이 가능할 것 같냐!

너희들이 한 번 그렇게 살아봐라 가능한가! 그렇다고 우리가 일을 안하냐 농때이를 부리냐! 뭐 같은 것들!

부글부글 끓어 오른다.

 

유성에선 시국 기도회도 경찰에 의해 저지당하고 김진숙 동지는 여전히 85호 크레인에 서있고

이마트에서 일하다 세상을 떠나버린 나의 친구에 대한 사과의 말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고

원하지 않는 병역의 의무로 인해 세상을 달리하는 친구들에 이야기들이 계속들려오고

(사실 언제나 부대에서 이런일은 비일비재했다.) MB는 채찍이니 뭐니 헛소리를 해대고 있고

나는 여전히 일을 하고 있고

 

뭐 그렇다. 난 여전히 가슴만 뜨겁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는 바보에 불과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희망의 버스를 통해 나도 희망을 찾고싶다.

내가 있어야 했던 곳은 어디였을까?

1만여명에 동지들이 희망에 버스를 통해 크레인 위에 있는 김진숙 동지에게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희망에 버스를 함께 타지 못한 동지들에게도

언론을 통해 직접 현장에서 목격한 대중들에게도 희망을 주었다.

사진과 기사로 접하는 나도 이렇게 뭉클한데 직접 그 현장에 있었던 동지들은 얼마나 뭉클했을까?

 

실로 연대에 힘은 대단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MB가 아무리 차벽을 설치하고 경찰 몇 십개 중대가 와도

몇 백명 몇 천명에 용역을 고용해도 우리가 희망을 찾아 힘을 모았기에 그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것이다.

 

여러 소식들 중에 한진중공업 노동자에 미성년 자녀가 집회 현장에서 연행되고 그 연행에 항의하던 어머니까지

연행이 되었다는 소식이 짠하다. 연행된 아이는 차디찬 유치장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MB는 그 아이에게 이 땅에 노동자가 인간답게 살기위해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가르쳤다.

그 아이에 꿈과 희망을 짓밟았다. 어떠한 이유로도 용서받을 수 없다.

합법 비합법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어찌되었건 집회 신고를 했고 희망에 버스 동지들은 이 땅에 노동자, 여성,

장애인, 소수자, 학생이었다. 하지만 MB와 경찰은 애초에 소통을 거부했고 차벽으로 길을 막았으며 절대 사람에게 가해서는 안되는 최루액을 뿌렸다.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뭐 이리 막장인거야. 그들로써는 막고 싶을 것이다. 무서웠을 것이다. 희망에 버스가

우리에게는 소통과 연대의 현장이자 힘이지만 그들에게는 '적' 그 이상 이하도 아니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3차, 4차 희망에 버스를 조직해야 한다.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반성한다. 일을 하니까 이번엔 못가겠네... 다른 동지들이 많이 가니까 다음에 가야겠다...

이제 이런 생각을 버리고자 한다.

 

비겁한 내가 싫다. 나도 희망을 찾고 싶다. 이기적일 수 있지만 희망의 버스를 통해 내 희망을 찾아보고 싶다.

나의 전망을 찾고 싶다. 동지들과 투쟁의 현장에서 함께 부딪끼며 나의 길을 찾고싶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세상을 위해 한 발자국 나아갈 것이다. 우리가 가진 건 사람의 마음 뿐이니...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상상력'이란 굉장히 중요한 무기이다. '희망에 버스'가 이렇게 강력한 무기가 되다니. 나도 이런 무기를 상상할 수 있는 창의력? 상상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노력으로 되는건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건지 책을 읽어보면 되는건지 도대체 뭘 어떻해야 되는건지 모르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나의 친구를 떠나보내며...

7월2일 대학교 등록금을 마련하고자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를 비롯해 4명해 노동자가 세상을 떠났다.

원인은 이마트에서 냉동기 점검 및 보수작업을 하던 중 밀폐된 공간에서 과도한 프레온 가스를 누출이었다.

이마트는 작업 공간에 상태가 노동을 할 수 있는 상태인지, 노동자에게 안전교육과 훈련을 했는지, 숨을 쉬기 위한 보조창치 착용을 했는지 관리를 했는지 등을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친구는 터보냉각기를 납품하는 회사를 통해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마트에 납품하러 가서 이런 불상사를 겪게되었다. 이마트는 분명 용역업체에 일이므로 알아서 해결하라고 뒷짐지고 구경하고 돈으로 구매한 국화꽃 하나 보내서 고인에 넋을 기린다고 씨부렸을것이다.

 

등록금을 마련하기위해 수업이 끝나면 매일 일하러 가고 군대를 전역 한 후 다음 날 부터 바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 친구를 위해 모인 성금을 부모가 자기 자식보다 더 힘들게 학교생활하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써달라고 다시 기부했다. 총학생회는 명예졸업증을 주기로했다. 등등에 눈물겨운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딴건 필요없다. 이런다고 해결되는 것은 없다. 고인이 원하는 것이 이런건 아닐 것 이다.

 

슬프다. 나와 같은 대학생이 내가 일하고 있는 이마트에서 일을 하다 세상을 저버렸다. 그 차디차고 밀퍠된 곳에서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왜 우리는 이러한 세상에 살아야하나...

우리는 목숨을 내놓고 알바하지 않으면 대학에서 공부도 못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몇백만원에 학비를 내면서까지 대학을 다녀야 할까?

왜 우리는 무상교육을 외치지 못하고 반값등록금에 막혀 저들에게 콩고물이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의 친구가 학비 마련을 위해 나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다 세상을 저버렸다.

위험하니까 일 그만두고 공부 열심히해서 안락하고 편안하고 돈 많이 주는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공부하고

살아가고 내 영혼이라도 팔아야 하나?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당신을 사랑하던 그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던 그 마음으로

                                                      

                                                                            도종환

 

초저녁 달이 떴습니다.

당신과 헤어지던 팔월입니다.

당신과 함께 죽음에 맞서 싸우던 그 뜨겁던 여름 석달처럼

올해도 뜨거운 여름입니다.

당신에게서 얻은 겨자씨만한 사랑을

이 세상에 심고 가꾸는 일은 어찌 이리 어렵습니까

사랑하는 사람과는 죽음으로 가는 길까지도 하나되어 가지만

미워하는 사람 어두운 사람들의 밭에

씨앗 하나 가꾸고 풀 한 포기 뽑아내는 일이

이 세상에서는 어쩌면 이리 어렵습니까

크고 하나인 것을 사랑하는 것보다

작고 여럿인 것을 사랑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가는 길은

초저녁 달이 구름을 헤치고 가는 것처럼

그렇게 가는 길이 아닙니다.

풀벌레 울음이 깊은 밤의 가운데를 뚫고 가는 것처럼

그렇게 은은히 가지 않습니다.

자식을 찾는 어머니의 애끓는 목청처럼 갑니다.

모래밭에 쓰러진 이에게 마지막 남은 내 몫의 물을 내어주고

내가 타는 목으로 가듯 가는 길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던 그 마으으로

이 세상을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한 사람을 깊이 사랑하는 일보다

이 세상을 두루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하시려는 뜻으로 새기며 조용히 견디고 있습니다.

지금은 나를 여기 가두고 창 밖으로 흐르는 세월을 봅니다.

비가 내리다 그치고 구름이 모여단 흩어지면서

아침이 오고 저녁바람이 부는 것을 봅니다.

많은 이들이 우리 곁을 울면서 떠나고

손에 끌려 돌아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 그들의 돌아서던 뒷모습까지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지금은 말하지 않지만

언제가는 우리를 미워하던 이들까지도 사랑할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여기 이 자리에 끝까지 남습니다.

우리의 사랑이 결코 삿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이 감옥에 홀로라도 남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기로 함께 손을 잡고 다짐하던

처음 그 마음 한가운데 남아

먼 길을 지나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을 기다릴 것입니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이 더 많아서

함께 나눈 사랑보다 함께 해야 할 사랑의 날들이 더 많아서

이 세상을 사랑하는 일이 그저 살아가는 일이 될 때까지

여기 이자리에 남기로 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그렇다 우리가 가진 것은 사람에 마음뿐이다

참세상에 송경도 시인에 글을 읽었다.

글을 읽고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기로 한 것을 후회했다.

나에 글 솜씨에 대한 부끄러움 무엇보다 이렇게 살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3년전 기륭 투쟁이 1000일을 바라보고 흔한말로 한창일때 나는 딱 하루 굶기로 작정을 했었다.

귀찮아서 혹은 돈이 없어서 끼니를 놓쳐서가 아니라 동지들은 몇날 몇일을 곡기를 거부하며 투쟁하고

있는데 나도 동참하자는 의미로 나름의 뜨거운 마음으로 의식을 하고 하루를 굶기로 했다.

의식을 하고 굶으려고 하니 유혹이 너무도 많았다. 세상엔 뭐가 그리 맛있는 음식이 많은지

또 그날 따라 이것저것 사준다는 사람들은 왜 이리 많은지...

단 하루 굶으면서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나같은 건 멀어도 한참 멀었다는 생각을했고

연대라는 의미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연대는 우리에게 전부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나는 하루뿐인 그냥 반항이었고 결국 다음날 나는 내 자리로 돌아오고 배부르고 등따시게

학교를 다녔다. 그러면서 직접 투쟁을 하고 있는 동지들은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내가 아니기에 나는 기륭에 동지도 김진숙 동지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투쟁에 현장에 가거나 그것도 안되면 마음으로 응원은하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운동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라는 생각을 여러번 했었다.

나는 겁도 많도 잃을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잃는게 있는 것 같으며 남들처럼 살고 싶지 않지만 세상따라

살고 싶지 않지만 왠지 따라가지 않으면 뒤쳐지는 것 같고 작아지는 것 같고.

그래서 지금 이 모양으로 살아가고 있다.

 

송경동 시인에 말 처럼 우리가 가진 건 이 더러운 자본주의 세상을 끝내고자 살아가고 있는 동지 한 사람 한 사람에 마음이다. 나도 그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갖고 살고 싶다. 아니 살아야 한다고 어쩌면 주입하고 있는 줄도 모르겠다. 이렇게 나에게 '운동'은 두렵다. 나에 두려움은  85호 크레인 위에 동지에 비할바 못되지만 그래도 두렵다. 그리고 두려워하고 있는 내가 밉고 싫다. 자신이 없다. 동지들에 대중들에 사람들에 마음을

얻을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난 희망버스 문턱에도 가지 못 하고 어딘가에 찌그러져 있을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