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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주 까만 밤, 단지 몇 개의 별 따위가 서글프게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있을 뿐인, 그런 외롭고 고요한 밤하늘 아래에서, 나는 차라리 깨어 있지 않았으면 하고 푸념하곤 한다. 나의 젊음은 언젠가는 그 몽롱한 달빛에 비친 솔직한 나의 영혼을 발견하며, 달빛과 교감하는 ET처럼 진실된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죽이고 죽어야 하는 잔인한 세상 속에서 솔직함과 진실됨에 대한 믿음 따위는, 누군가들은 변명으로 치부해 버리겠지만, 냉소주의와 자본에 노예화 되어가며 순응해야 하는 역겨운 젊음으로 변해버린 것만 같기 때문이다.
 
차고 거센 바람이 옥탑의 한가운데서 조용한 명상의 울림을 만들어내던 기타 선율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듯이 나는 할퀴어진다. 이제는 무섭게 느껴지기만 하는 그 새하얀 구름들이 시꺼먼 밤하늘을 정신 없이 그리고 빠르게 어지럽힌다. 기분 나쁜 조용함으로 뒤덮인 산동네 골목길 한가운데서 늑대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처량하게 짖어대는 버려진 똥개의 가냘픈 울음 같은, 그런 외로움이 내 안을 어지럽힌다.
 
외로움, 나는 외로움을 각오한다. 천성적으로 외로움을 타고난 운명이라고 내 스스로를 생각해 버린 지 오래다. 물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노력이란 것은 대부분 타협이나 순종, 내 가치관의 패배를 인정하며 약삭빠른 거짓 웃음 지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날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이렇게 역겨움만 풍기는 가식으로 인식하는 한, 내가 내딛고자 하는 용기 있는 발걸음이란 곧 내게 주어진 이 외로움들을 구원의 성령을 기다리는 수녀님들처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역설적으로, 내가 외로움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한 순간, 내 안에는 극단적인 투쟁전선이 생겨난다. 생각지도 않았던,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모종의 감정들이 이제 확고하게 극복해야 할 것들의 하나로 뚜렷하게 분류되는 것이다. 외로움은 가중되고 내 삶은 이제 뚜렷해진 투쟁전선의 전면에 위치하며, 내딛는 한걸음들은 더욱 힘들어 진다.
 
그러나,
 
높다랄 산의 정상, 끝을 보려 하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가깝지는 않을 나의 고원, 그 힘겨운 길을 걷는 발걸음의 와중에, 나는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을 뿐임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어쨌건 나는 걷는 중이고 걷다 보면 길은 완성되어 간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젊은 날들과의 단절 대신에 그것을 이어나가는 발걸음을 옮기기로 결정한 나의 의지는 그래서 처량하지만은 않다. 또 다른 베이스캠프를 위해 오르는 길은 아직 세상의 시꺼먼 매연으로 가득 찬 낮은 지대일지 몰라도 순간 탁 트인 시원한 아름다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나는 스스로 삶을 쥐어짜내는 나의 발걸음 속에서 구체화 된다. 그 아름다움을 위하여. 그리고 아직 내 속에 남아있는 자본주의의 찌꺼기들을 인식하며 제거해 나가는 동안의 외로움의 발현은 그 더러운 찌꺼기를 토해내는 성장통일뿐이다. 나는 다만 토해가며 이 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 낮은 지대의 사나운 바람과 좀더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내 주위는 언제나처럼, 지금처럼 새까맣게 고요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새하얀 입김으로 내게 스며든 세상의 매연을 토해내는 동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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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꿈

 

 

 

 

  

    

 

 

 

 

  ‘그래 무언가를 찾아가는 매 순간이 신과 조우하는 순간인 거야. 내 보물을 찾아가는 동안의 모든 날들은 빛나는 시간이었어. 매시간은 보물을 찾고자 하는 꿈의 일부분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어. 보물을 찾아가는 길에서, 나는 이전에는 결코 꿈꾸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했어. 한낱 양치기에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들, 그래 그런 것들을 감히 해보겠다는 용기가 없었다면 꿈도 꿀 수 없었을 것들을 말이야.’

-산티아고 / 연금술사
 
 
 
 
 
 
 
  괴물. 보이지 않는 괴물이 있었다. 내 두 눈으로 그 괴물의 존재를 확인하진 못했지만 괴물의 더러운 손길과 역겨운 냄새, 그리고 괴물에게 기분 나쁜 미행을 당하던 기억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모두가 잠들어있는 껌껌한 어둠이 깔린 저녁만 되면 방구석 한 켠에서 슬며시 기어 나와 내 심장을 짓누르며 나를 압박하던 괴물. 매일 아침을 헛구역질과 함께 시작하게 만들었던 괴물의 악취. 음침한 기운으로 나를 미행하며 내가 조급한 하루하루를 보내도록 강제하던 괴물의 그림자. 그 끔찍했던 나날들을 나는 기억한다.
 
 
  내가 내 삶 깊은 곳에서 똬리를 틀고 자리잡아있던 괴물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은 그리 멀지 않은 예전의 일이다. 나를 규정했던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신분의 그늘에서 태어난 이 괴물은, 삶의 대안들을 창조적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가능성과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으려는 자유로운 본성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나’란 존재를 마구 좀먹어가며 점점 커다랗게 자라나고 있었다.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신분의 수명이 다해갈수록 나와 괴물의 경계는 점차 모호해져 갔는데, 그것은 내 존재가 사회적 신분에 의해 정의되는 한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의 삶은, 즉 주체의 삶은, 그 속에서 기생한 이 괴물이 무럭무럭 자라나는데 필요한 자양분으로서만 기능하는 듯 했다. 만약 내가 자유로운 여행자가 되지 않고 괴물의 존재를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면, 나를 모조리 좀먹어버려 거대해진 괴물이 나 자체가 되었을 것이고, 그 괴물이 내 삶을 대신 살아가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내게 지난 1년의 여행은 괴물의 삶을 거부하는 탈주의 실천이자 내 삶 속에 깃든 괴물의 잔재를 토해내기 위한 과정이었다. 그러나 모두 제거된 줄로 알았던 익숙한 괴물의 냄새가 다시 슬그머니 피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탈주의 시간들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즉 ‘나’의 존재가 또다시 어떤 사회적 신분으로 제약당해야만 하는 순간부터였다. 나의 되풀이된 실수로 인해 내 안에 충만해졌던 자유로움과 주체성이 괴물에게 침식되어 사라지려 한다는 사실은 내 삶의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한, 괴물의 삶을 거부하는 자기해방의 길로 다시 들어서기 위한 어떤 결심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내 안에 잠재된 자유로운 주체성이 내게 보내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신호이기도 했다.
 
 
  1년간의 탈주를 끝내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나’를 규정하려 달려들던 사회적 신분이란 탈주의 전과 마찬가지로, 다름아닌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신분이었다. 그리고 내가 또다시 마주친 것은,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위치로 규정된 젊음에게 강요되는, 현 사회의 제반 성격들에 맞춰진 일정한 행동양식들이었다. 이 행동양식들은 과거 권위주의 정부시대의 그것들과는 달리 지배권력의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을 투영했고 자본주의의 경쟁적 속성들로 대학생들의 실질적 삶을 완전히 포섭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젊음들은 신자유주의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 했고 남을 짓밟고 그 위에 군림할 수 있는 경쟁의 승리자가 되기 위한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 받았으며 젊음의 방향에 관한 생존의 영역을 넘어서지 않는 고민에 만족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생들에게 구조적으로 강제된 이 행동양식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젊음의 필연적인 진리나 젊음의 암묵적인 의무 따위로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것은, 강제된 역할과 생존의 영역을 넘어서는 젊음의 대안, 주체적 걸음을 통한 변혁의 공명을 고민하고자 하는 내게는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괴물은 이런 무의식적인 동조의 공간에서 태어나고 또 기생했는데, 보이지 않는 괴물의 정체는 바로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 의해 대학생에게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모든 행동양식들, 그 과정에서 젊음들의 내면을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로 의식화시키려는 자본의 전략, 착취의 진실을 은폐하는 자본과 지배권력이 자신들을 전복시킬 가능성을 지닌 ‘주체성들의 자기해방’을 억압하기 위해 젊음들의 삶 속에 침투시킨 ‘위선적인 아름다움으로 치장된 독버섯’에 다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간 내내
   흐느끼며 조류에 근접하려 애쓰면서
   우리는 해협으로 노를 저었다.
   좌현에는 스낄라
   우현 갑판 위에는 소금 바다 조수의 무시무시한 협곡
   까리브디스가 있는 해협으로.
-       호머 / 오딧세이 (해리 클리버 / 사빠띠스따)
 
 
  자본주의적 경쟁에 대학생들의 삶이 완전히 포섭되는 것을 용이하게끔 만드는 강제된 행동양식들이, 이미 완료되었거나 진행중인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에 의해 더욱 공고해 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대학의 신자유주의적 개편의 모습은 각 대학들에서 다양한 모습(그러나 시장경제 지향성으로 통일되는)으로 포착되었는데, 내가 몸 담았던 동국대의 경우만 하더라도 학부제로의 개편, 상시 정원 관리 시스템, 민간 경쟁 시스템에 의한 경쟁력 없는 학과의 폐지를 통해 학생들간의 경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었으며, 이사회가 학생들을 대학운영의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독단적인 학사행정으로 대학변혁을 위한 소통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었다. 대학의 이런 시장경제적 개혁구상들은 대학이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적 상아탑이 아니라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력 상품의 제조공장으로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의 성격을 지닌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이었다. (물론 사립대학의 비율이 전체 80%를 차지하고 대학들의 주수입원의 대부분이 학생들의 등록금인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대학의 자본주의화는 교육의 공공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국가정책의 신자유주의적 방향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문제는 대학의 시장경제적 정책들의 이면에서 부당한 착취를 당하는 학생 노동자들, 시간제 대학 강사들, 청소 아주머니들과 같은 대학사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어떠한 보장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사회적 공장으로 전락해버리고 경쟁을 강요하는 정책들로 학생들을 압박하는 우리나라 대학의 구조 속에서, 대학생의 행동양식들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몸부림들로 한정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수많은 대학-공장들에서 찍어낸 노동력 상품들과의 경쟁에서 폐기처분 당하지 않으려면 (즉, 실업자 신세를 면하려면) 또는 2년간 착취 당하고 버려질 일회용 상품이 되지 않으려면 (즉, 비-정규직이 되지 않으려면)자신의 삶을 자본주의의 경쟁적 속성과 일치시키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생존을 화두로 던지는 경쟁구도의 이러한 위협 속에서 자본주의적 경쟁의 잔인성을 내면화해야 하는 이런 젊음들에게, 구조에 선행하는 주체의 존재나 구조를 벗어난 삶의 다양한 방식들은 이제 쉽게 이해 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마련이었다. 즉, 강제된 행동양식들을 충실히 이행한 젊음의 마지막 단계는 괴물에게 자신의 삶을 모조리 포획 당하고 자본주의 잔인성을 스스로의 가치관으로 체화한 ‘자본주의형 인간’의 탄생인 것이다.                     
 
  
  젊음이 대학생에게 부과된 행동양식을 충실히 수행해나가며 ‘자본주의형 인간’으로 탈바꿈해나가는 과정은 결국 젊음들이 무한경쟁과 생존의 위협에 의한 일상화된 불안함에 의해 포획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자본이 유포하는 불안함에 포획된 삶을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이러한 과정들은 괴물의 존재를 의심할 계기로서가 아니라 의심해 볼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따라야 할 ‘젊음의 필연적인 의무’ 였다. 그 필연적인 의무란 남보다 더 많은 자격증을 취득할 것, 남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어 놓을 것, 이력서의 빈칸들을 남보다 더 화려하게 장식해 놓을 것,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을 능력을 갖추기 위해 남보다 더 빨리 경쟁에 뛰어 들 것 같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자본주의적 진리를 충실히 수행한 대학생에게 누가 얼마나 가치 있는 젊음을 보냈는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경쟁의 결과 뿐이었다. 연봉의 액수에 따라 젊음의 값어치는 매겨졌고 승자/패자의 이분법에 의해 젊음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가치 있는 젊음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하는 젊음이 가치 있는 젊음이 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경쟁체제(가치 있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 경쟁이 얼마나 공정한 경쟁이었는지, 승자/패자를 구분하는 기준선이 얼마나 공평했는지는 잠시 접어두더라도)에서 대다수일수 밖에 없는, 패자들이 보낸 젊음의 시간들은 단지 소수의 승자를 위해 바쳐진 제물일 뿐이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수많은 패자가 생산될 수밖에 없는 정부의 엘리트주의 경제정책 속에서 대학에서 가르치는 현실과 괴리된 승자의 경제학 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패자의 상실감과 고통은 당연히 전적으로 패자 스스로가 감수해야 할 몫이었다. 그러나 더 아이러니 한 것은 승자/패자로 나뉘는 삭막한 경쟁의 이분법 속에 ‘젊음의 필연적인 진리’를 실천하는 젊음들이 학년이 올라갈수록,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신분의 수명이 다해갈수록, 즉 살아남기 위한 경쟁의 결과가 극명하게 드러날 때가 가까워 질수록 자본주의의 경쟁체제가 만들어낸 승자/패자 이분법의 이데올로기, 자본주의의 가치기준들을 점점 뿌리깊게 내면화해 간다는 것이었다. 청년실업에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대학생의 이야기가 뉴스로 흘러나와도 감정의 사치를 부리는 젊음은 많지 않았다. 승자/패자의 잔인한 이분법을 내면화했고 자신들에게 유일한 대안이자 유일한 가치인 승리하는 젊음 속에서만 스스로의 미래를 투영시키려는 젊음이, 승자의 발 밑에서 우울한 변명만을 지껄이는 가치 없는 패자의 존재 따위에 관심을 가질 리가 없는 것이다. 내게 이렇게 자본이 강제로 부과한 행동양식에 휩쓸려가며 자본주의적 속성들을 내면화해 나가는 모습은 결국 누군가의 내면에 기생하며 자아를 좀먹어가던 괴물이 자아 그 자체가 되어버리기까지의 과정과 같아 보였다. 다시 말해 ‘젊음의 필연적인 진리’라며 의심의 여지없이 자연스레 따르라 하는 강제적 행동양식의 본질은 자본과 지배권력의 건제함을 유지하기 위한 ‘자본주의형 인간’의 강제적 생산과정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는 것이다.
 
 
  내가 내 삶을 옭아매려는 사회적 신분의 그늘 속 괴물의 정체를 인식하고 그에 대항하는 실천을 꿈꿀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대학사회에 존재했던 투쟁의 공간, 해방의 공간의 영향이 일정부분 있었다. 대학사회에 전통적으로 존재했던 정치세력들의 영향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자본주의의 은폐된 본질, 거리 위의 정치, 노동자 계급의 혁명적 잠재력, 무엇보다 다양한 저항의 공간들을 현장에서 느꼈던 시간들은 내 삶을 파고드는 괴물의 존재에 대한 자각을 가능케 한 토대를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대학사회 곳곳에 현존하며 발견하기 쉽지 않은 불합리들을 밝혀내며 투쟁하는 이 정치세력들의 존재는 비록 많은 한계성을 지녔다고는 생각하지만, 사회적 공장화 되어가는 대학사회의 변혁을 위한, 나아가 자본주의의 변혁을 위한 창조적 주체성들이 출현하는데 도움을 줄 토양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집단의 성격을 규정하는 혁명적 내용의 성명서들과는 별개로 그 집단의 대부분의 구성원들이 개개인의 삶의 영역에서 괴물의 존재를 인식하는 정도나 그 강제적 행동양식에 별다른 저항 없이 적응하는 모습들은, 경험적인 판단 이건데 일반 대학생들의 모습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론과 철학의 성숙된 정도가 한 주체의 실천방향을 정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이 현실은 그들의 운동을 규정하는 이론들이 자본에 선행하며 자본을 강제하는 노동의 주체성과 노동자에 대한 실질적 포섭단계로의 자본에 대한 분석, 다중과 자율성에 대한 대안적 이해로까지는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셈이다. (촛불정국에서의 자율성과 다양성, 의사소통 방식의 수평적 구조, 비폭력 등의 역사적 중요도에 대한 몰이해. 이것은 비단 전통적 학생조직의 문제일 뿐 아니라 사회의 전통적 투쟁체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또 학생노동자로서의 계급성을 인지함으로써 다른 계층들과 함께 공명하며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예비노동자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에서 오는 대학생신분의 특권화, 혁명과 새로운 사회를 구조적-단계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바람에 구조에 앞서는 각각의 주체성들의 자기해방의 과정을 혁명적인 것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성, 조직의 폐쇄성과 의사소통의 수직적 구조, 거창한 진보적 구호들과는 별개로 소소한 개인의 삶의 영역에서 규율과 맹종에 잘 길들여져 있는 모순적인 모습들은 대학 내 전통적 운동조직에 몸담았던 투사들이 기득권과 투쟁하는 것에서 기득권에 순종하는 것으로 변절하는 것이나 그 틈바구니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들이 그리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그래서 내게 대학사회의 정치조직들은 주체성의 반란을 위한 구성적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대학생의 삶을 포획하려는 괴물을 재확인하는 일반적 대학사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공간이었고, 그 조직들의 실제의 개인적 삶과 분리된 운동론의 경직성은 강제된 삶과 주체성을 억압하는 기제들을 거부하는 실천을 벌이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것 이었다.
  
  
  나를 규정했던 사회적 신분으로부터 탈주하여 사빠띠스따의 깃발을 배낭에 꼽고 인도 등지를 여행하던 지난날, 나는 여행자가 가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과 삶의 시간을 스스로 결정해나가는 자율성, 살아있는 주체성의 존재를 확인했다. 또, 내 젊음의 대안들과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가능성은 어느 곳에서 정해진 체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꿈을 향해 주체적인 걸음을 옮겨가는 동안에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갔다. 괴물/자본/지배권력에 대항하는 반란을 위한 길이란 바로, 다양한 모습으로 헤아릴 수 없이 무수히 넓게 퍼진 체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 꿈틀대는 주체성들의 우뚝 솟은 고원들, 그 중에 하나인 나의 고원을 완성시켜나가기 위해 스스로의 한걸음을 옮기는 과정이었다. 저마다의 다양한 형태로 솟아있는 주체성들이 사회적 신분의 울타리로 구획 지어져서 정해진 행동양식들을 강제 당하던 때에는 발견할 수 없었던, 나’의 유일함/개성/상상력/창의력/활력들은 나의 고원을 완성시켜나가기 위한 그 발걸음 속에서 다시 충만해졌다. 그렇게 어느덧 1년의 탈주가 끝나갔고 내가 다시 대학생의 신분으로 돌아와야 했을 때 나는 대학생이란 사회적 신분과 자유로운 여행자의 경계에서 다시 나의 고원을 오르기 위한 베이스캠프를 차리기로 결심했다. 내가 다시 대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왜 별다른 고민을 하지 않았는지는 지금 생각해 보면 후회스러운 일이다. 나는 아마도 여행에서 충만해진 주체성과 자유로움으로 내게 부과되는 괴물의 협박 따위에 굴복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경쟁의 관념들을 내면화한 대학생들의 틈바구니에서 느껴야 했던 외로움과 대학생으로서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할 행동양식들을 통해 내면을 침범해온 원치 않는 가치관들은 다시 조금씩 나를 좀먹어가기 시작했다. 내 고원을 오르는 발걸음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분명히 어떤 결정이 필요한 때였다.  
  
 
   걸어가는 이 내 몸이 길이 되었다.
-백무산 / 길 밖의 길
 
 
  두 달 가까이의 망설임과 방황이 있었지만 나는 졸업을 9개월 앞둔 4학년 2학기 11월에 다니던 대학을 자퇴했다. 대학생이란 사회적 신분을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내 삶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으며 오히려 내 고원을 오르는 길에 커다란 방해가 될 것임이 너무도 자명했기 때문이다. 괴물에게 포획되는 삶에 대한 거부, 나의 자율적 삶의 영토를 새롭게 넓혀 나갈 수 있는 탈주, 꿈과 삶을 일치시킬 수 있는 주체성의 자기해방, 새로운 삶의 지평을 향한 길로 들어서기 위해, 자퇴수속을 끝내고 학교 언덕을 내려오는 길, 내 마음속에는 나를 괴롭히던 여행자와 대학생 사이, 그 경계의 삶에서 비롯되던 모순들을 모두 벗어 던졌다는 해방감이 다시 충만해졌다. 이제 나의 결정은 곧 새로운 걸음의 시작이다. 자본주의적 속성들을 배재한 꼬뮨적인 관계맺음과 그것이 발현되는 공동체들과 함께하며 나의 꿈을 더욱 구체화시켜야 할 것이고 내 고원을 완성하는 데에 필요한 객관적/주관적 조건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베이스캠프의 생활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의 주체성들에 의해 완성되어가는 고원들간의 공명하는 네트워크들과 나를 아름다운 반란이 가능한 잠재력의 공간으로 안내해줄 모든 출구들은, 아마도 잔인한 경쟁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느껴야 했던 모든 외로움을 달래줄 것이다. 남은 것은 부지런하게 나의 고원을 오르는 것, 그럼으로써 점점 구체화될 나의 꿈을 언제나 기억하며 또 부지런히 나의 한걸음을 옮기는 것 뿐이다. 내 길을 만들어갈 주체적인 이 무수한 발걸음들 안에서 나는 곧 꿈이 될 것이며 꿈은 곧 내 삶, 그 자체가 된다.
 
 
                            
나는 꿈. 자유로운 한 걸음, 자유로운 바람이다.
 
 
 
 
 
 
 
 
 
 
 
 
-       삶으로 표현된 모든 실천들은 비판해서는 안되며(단, 타인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유지되는 삶과 삶-행위가 도저히 개인적이라 칭할 수 없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의 삶은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여지가 있다.) 나는 그것을 비판할 자격도 없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회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삶의 형태는 결국 주체적 인간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모든 삶은 주체성의 반영물이다. 다만, 내 비판적 어조의 대상이 된 것은 주체성의 결정권이 개입하기 전, 그의 선택을 압박하는 경향적 관념덩어리들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내가 부정적으로 묘사한 이 경향적 관념덩어리들, 즉 괴물의 본질이 다른 어떤 이에게는 긍정적인 무엇일 수 있다는 것은 물론이다. 나의 글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 삶에서 느꼈던 위협에 관한, 내 삶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       글의 내용에서 신자유주의적 대학개혁에 관한 분석, 구조에 선행하는 주체성의 위상, 강제된 삶을 거부하는 실천으로서의 탈주 등에 대한 내 대부분의 이해는 조정환의 여러 저서들과 갈무리 출판사의 여타 서적들, 박노자의 여러 칼럼들에서 도움을 받았다.
-       글의 중반에 인용된 호머의 오딧세이는 해리 클리버의 싸빠띠스따(1998, 갈무리)에 인용된 것을 내가 다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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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초원으로

 

 

 

 

 

 

 

 

 

 

  몇 일전, 어느새 쌀쌀해진 날씨에 다시 이태원 거리로 나가 네팔에서 사온 스카프를 펼쳤다. 버려진 박스 조각을 주워 그 위에다 대충 스카프 열 장을 깔아놓고, 길바닥에 앉아 기타를 연주하며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본다. 꽉 막힌 도로 위 시끄러운 경적을 울리며 느릿느릿 이동하는 자가용들, 빈 맥주병과 먹다 버린 노점 음식들로 지저분한 길가의 쓰레기더미들, 근처의 지하클럽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빠른 비트의 음악 소리,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며 새까만 밤저녁의 경계를 어지럽히는 네온사인들, 그 아래를 바삐 오가는 한껏 멋을 낸 들뜬 젊은이들과 지저분한 점퍼를 입고 도로변 벤치에 앉아 무표정하게 그들을 바라보는 거지들. 올 3월에 처음 스카프를 팔던 때나 지금이나 이태원의 번잡한 풍경들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기타를 연주하며 조금의 시간이 지나면 내 옆에는 어느새 몇몇 친구들이 모여 앉아있다. 내가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런 만남들을 위해서다. 이 날에는 오바마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늘어놓던 미국 출신의 어떤 이와 몇 주 전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며 밥 딜런 노래를 어설프게 연주하던 영국 출신의 어떤 이, 그리고 이 날 회사에서 해고당해 미친 듯이 춤추고 싶어 처음으로 이태원을 찾았다는 서른 중반의 아저씨 한 분이 나와 함께 길바닥에 앉았다. 불과 몇 시간의 짧은 만남일 테지만 직업, 나이, 이름, 성별, 국적 등으로 ‘나, 너, 우리’를 규정하게 하는 관념들, 그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시간들이 이런 만남들 속에는 존재한다. 나는 다시 자유로운 여행자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갖게 해주는 이런 만남들이 좋았다. 그 만남들은 내게 나의 길을 계속 걸어나가고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해주고 내 발걸음의 방향을 확인시켜 주는 시간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나 번잡한 기운으로 물들어가는 이태원 거리 한복판에서 순수한 관계 맺음의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너무나 멋진 일이지 않는가! 그래서 지난날 나는 종종 스카프와 기타를 들고 거리로 나가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일까? 내게 자신감을 주고 희망을 확인시켜 주던 길바닥 위 짧은 만남들에서조차 뜻 모를 소외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스카프 위로 누군가가 동냥하듯 던져주는 동전소리, 바삐 걷는 사람들이 도로변에 잠들어 있는 거지들을 무심코 바라 볼 때와 같은 일상화된 멸시의 눈빛들, 제멋대로 정한 승자/패자의 이분법적인 잣대를 억지로 들이대고선 음흉한 미소를 짓는 어떤 이들의 존재. 분명,  낯설지 않은 무언가가 내속에서 다시 자라나 나를 좀먹어가려 하고 있었다. 익숙했던 것이 낯설게, 아름다웠던 것이 잔인하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난 1년의 여행으로 충만해졌던 자유로움과 살아 숨쉬던 주체성은 어느새 분노, 질투, 시기, 조급함으로 바뀌려 하는 것이다. 또 길바닥에서 함께 기타를 연주해준 이름 모를 친구들에게서조차 기분 나쁜 괴리감이 들기 시작했는데, 자유로움과 주체성, 순수한 관계 맺음에 삶의 공간을 일치시키려는 내게 단지 잠깐의 일탈에 즐거워하며 흥분하는 그들의 모습은 왠지 내가 어울릴 수 없는 낯선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 했기 때문이다. 내 꿈은 허공에 멤도는 아지랭이같이 손에 잡히지 않는 곳에서 내 주위를 멤돌 뿐, 나는 원치 않는 모습으로 망가져가며 나의 꿈에서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꼴이었다.

 

  

  나는 별로 오래 앉아 있지 않았지만 기타를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만난 친구들에게 스카프를 하나씩 선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번쩍거리는 이태원 거리가 나를 마구 조롱하는 느낌이다. 표정 없는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헤집고 나와 인적이 없는 언덕길을 오르는데 참았던 눈물이 찔끔 흐른다. 나 여전히 걷고 있는가? 무엇을 망설이는 걸까? 여기서 무얼 하고 있는 건가? 무엇을 두려워 하는가? 감춰두었던 질문들이 하나씩 떠오르자 이미 알고 있던 대답들이 내게 말한다. 망설임의 이유도, 그리움의 대상도, 내 발걸음의 흔적도, 모두 내 안에 새겨져 있는 기억이다. 어떻게 행동하고 걸어가야 할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모두를 위한 어떤 것, 굴다리를 지나는 삶의 수레바퀴, 바람을 부르는 법, 지구에 우뚝 솟은 단 하나의 안테나. 헝클어진 내 삶의 조각들을 다시 이어 붙여야 할 때다. 찔끔거린 눈물로 마음을 좀먹던 분노와 증오, 두려움 따위를 토해내자 내가 걸어야 할 길이 너무도 명쾌하게 다가온다. 베이스캠프의 생활을 정리하고 나의 고원으로 올라야 할 때, 바로 지금이다. 언제나 그렇듯, 차분하게 한 발걸음을 옮기고 주위를 둘러보다 보면 다음 발을 디딜 곳은 자연스레 나타나는 법이다. 내게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은 언제나 너무도 간단하고 쉬운 일이었다. 두려움에 떨 필요없이 내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한 걸음 내디디면 그만인 일이니까.

 

 

  까맣고 하얀 온 세상의 하늘 아래 나의 깃발이 다시 힘차게 펄럭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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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질주하는 바이크,
깜깜한 고요함에 새파란 열기가 퍼져나간다.
 

  
기분 나쁜 회색 빛,
지나는 발자국 소리마저 기분 나뿐 바퀴벌레 골목길,









그 껌껌한 길을 걷지 않으면 마주치지 않을,
새하얀 눈동자가 나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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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질주하는 바이크,
깜깜한 고요함에 새파란 열기가 퍼져나간다.








기분 나쁜 회색 빛,
지나는 발자국 소리마저 기분 나뿐 바퀴벌레 골목길,










그 껌껌한 길을 걷지 않으면 마주치지 않을,
새하얀 눈동자가 나를 기다린다.









그 친구.
 
 







망망대해에 떠도는 돛단배.
나를 밟고 지나가는 강철 무역선.








밤 하늘을 수놓는 UFO.
찬란하게 빛나는 너희들의 젊음.
 
 






아마도,
꿈처럼 들뜬 종로거리에서,
더러운 행색의 거지씨가 나의 너머.를 바라본다.










나는 움찔했지만,
털 끝이 곤두서고야 말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계속 걸었다.








그런데 그때부터,











너희들의 가냘픈 미소가 천박한 창녀의 그것과 다름없이 생각되었다.
 
 






매일 밤 너를 기다리는,
그러나 서럽게 뒤돌아서는,
순결한 달빛의 바라봄.
 







나는,
이 둥그런 지구 위에 솟아난,
유일한 안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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