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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아주 까만 밤, 단지 몇 개의 별 따위가 서글프게 자신의 존재를 밝히고 있을 뿐인, 그런 외롭고 고요한 밤하늘 아래에서, 나는 차라리 깨어 있지 않았으면 하고 푸념하곤 한다. 나의 젊음은 언젠가는 그 몽롱한 달빛에 비친 솔직한 나의 영혼을 발견하며, 달빛과 교감하는 ET처럼 진실된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죽이고 죽어야 하는 잔인한 세상 속에서 솔직함과 진실됨에 대한 믿음 따위는, 누군가들은 변명으로 치부해 버리겠지만, 냉소주의와 자본에 노예화 되어가며 순응해야 하는 역겨운 젊음으로 변해버린 것만 같기 때문이다.
 
차고 거센 바람이 옥탑의 한가운데서 조용한 명상의 울림을 만들어내던 기타 선율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듯이 나는 할퀴어진다. 이제는 무섭게 느껴지기만 하는 그 새하얀 구름들이 시꺼먼 밤하늘을 정신 없이 그리고 빠르게 어지럽힌다. 기분 나쁜 조용함으로 뒤덮인 산동네 골목길 한가운데서 늑대울음소리를 흉내 내며 처량하게 짖어대는 버려진 똥개의 가냘픈 울음 같은, 그런 외로움이 내 안을 어지럽힌다.
 
외로움, 나는 외로움을 각오한다. 천성적으로 외로움을 타고난 운명이라고 내 스스로를 생각해 버린 지 오래다. 물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그 노력이란 것은 대부분 타협이나 순종, 내 가치관의 패배를 인정하며 약삭빠른 거짓 웃음 지어 보이는 것으로 나타날 뿐이었다. 그리고 내가 외로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이렇게 역겨움만 풍기는 가식으로 인식하는 한, 내가 내딛고자 하는 용기 있는 발걸음이란 곧 내게 주어진 이 외로움들을 구원의 성령을 기다리는 수녀님들처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역설적으로, 내가 외로움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한 순간, 내 안에는 극단적인 투쟁전선이 생겨난다. 생각지도 않았던,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았을 모종의 감정들이 이제 확고하게 극복해야 할 것들의 하나로 뚜렷하게 분류되는 것이다. 외로움은 가중되고 내 삶은 이제 뚜렷해진 투쟁전선의 전면에 위치하며, 내딛는 한걸음들은 더욱 힘들어 진다.
 
그러나,
 
높다랄 산의 정상, 끝을 보려 하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가깝지는 않을 나의 고원, 그 힘겨운 길을 걷는 발걸음의 와중에, 나는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을 뿐임을 잘 알고 있다. 왜냐하면 어쨌건 나는 걷는 중이고 걷다 보면 길은 완성되어 간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젊은 날들과의 단절 대신에 그것을 이어나가는 발걸음을 옮기기로 결정한 나의 의지는 그래서 처량하지만은 않다. 또 다른 베이스캠프를 위해 오르는 길은 아직 세상의 시꺼먼 매연으로 가득 찬 낮은 지대일지 몰라도 순간 탁 트인 시원한 아름다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나는 스스로 삶을 쥐어짜내는 나의 발걸음 속에서 구체화 된다. 그 아름다움을 위하여. 그리고 아직 내 속에 남아있는 자본주의의 찌꺼기들을 인식하며 제거해 나가는 동안의 외로움의 발현은 그 더러운 찌꺼기를 토해내는 성장통일뿐이다. 나는 다만 토해가며 이 한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된다. 그것으로 낮은 지대의 사나운 바람과 좀더 멀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내 주위는 언제나처럼, 지금처럼 새까맣게 고요할 뿐이다. 그리고 나는 새하얀 입김으로 내게 스며든 세상의 매연을 토해내는 동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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