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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라이딩

한 번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막차 시간도 택시비도 혹은 어디서 잘지 걱정없이 서울에서 술마시기.

사실은 대부분 큰 걱정 없이 마시긴 하지만,

한 번 쯤은 더 맘 편하게 술을 마시고 새벽에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고 집에 오고 싶었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아누아르 동지를 만나기 위해 안양에서 서울 출입국까지 자전거로 갔는데

사람들이 환영 술자리를 명동에서 한다는 말에 문득

밤의 도시를 자전거로 가로지르는 내 모습을 상상했다.

 

새벽 1시 반.

다들 취해 비틀 거리면서도,

나를 말렸다.

도대체 왜 자전거를 갖고 가려고 하냐?

이건 너무 위험한일다.

에서 부터

그냥 택시로 자전거를 실고 가라.

자전거는 자기가 타고 갈테니 넌 편하게 택시를 타고가라.

까지 온갖이야기와 실랑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휴우~

 

"당신들은 자전거의 세계를 몰라~"

라며 내가 큰 소리를 땅땅치고, 자전거에 올라타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걱정의 눈빛을 가득 안고 나를 보내줬다.

 

자 이제 시작되었다!!!

내가 꿈꾸던 야간 라이딩~



명동에서 서울역, 노량진까지는 그래도 순조로운 편이었다.

예전에 무작정 걸어서 갔던 길이기도 하니, 길도 잘 알고 룰루랄라 신도 났다.

노량진에서는 여유롭게 포장마차에서 국수도 먹고,

이 밤의 운치를 누가 알랴며 내심 뿌듯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노량진 신길 영등포 신도림 구로에 이르는 길은 험난했다.

도로 표지판을 보면서 대강 방향만 보고 찾아가는데,

가다보면 보도는 끊기고, 고가 차로가 나타나지를 않나

보도블럭은 왜이리 울퉁불퉁 엉망인지

그래도 새벽 두시 반의 거리를 여유롭게 음미하며 달렸다.

 

문제는 구로 고쳑교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어찌어찌하여 찾아간 곳은 평소에 내가 알고 있었던 안양천변 자전거 도로였고

집까지 가는 길은 무난했지만

정작 문제는

깜깜한 강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었다.

가야할 길 저 끝에도, 내 등 뒤에도 아무도 없고,

나 혼자 달려야 한다는 공포감.

패달을 열심히 밟고 있는 내 등에 귀신이 있을 수도 있고

저 우거진 수풀 속에서 갑자기 뭔가가 튀어 나올 것도 같고

오 주여 저를 정녕 시험에 들게 하시렵니까?

그렇군요!

라고 읊조리고 이미 어쩔 수 없는 그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가고 있을 때,

길 저 끝에서 조깅을 하고 있는 아저씨가 보였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인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빨간 점퍼에 검은 모자를 쓴 아저씨가 내 옆을 지나가는 순간.

아, 이 시간에 운동 하시는 군요.

라고 속으로 인사를 했다.

 

또 얼마를 더 달렸을까?

길게 한 방향으로만 뻗어있는 길을 달리다 보니

지루하기도 하고 막막하기도 했다.

시간은 벌써 네시가 다되가고.

여전히 등골이 조금 오싹거리는던 중,

아, 그 때 또 조깅하는 사람이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이번에도 너무 반가웠지만,

그 사람이 내 옆을 스쳐간지 몇분 후 

나는 그만 기. 절. 할. 뻔. 했. 다.

빨간점퍼에 검은 모자를 쓴 아저씨였던 것이다.

 

오, 주여 저를 정녕...

 

제발 같은 사람이 아니기를

아니 제발 사람이기를.

 

두근두근 콩닥콩닥

겨우 안정을 취하고 집으로 집으로 달렸다.

큰 도로에 나와서도 헛것이 보이는 게 으악!!!

 

새벽 네시 반.

장장 세시간의 라이딩 끝에 집에 도착했다.

"어디 갔다왔니? 아빤 걱정되서 잠도 못잤다~"

멀리서 들려오는 그 목소리에 안도의 한 숨을 쉬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 공포의 심야 라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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