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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년 기념사

작년 이맘때 쯤이었나보다.

선배가 경주에서 결혼식을 했다.

왠만한 결혼식은 생까고 사는데

장소가 경주인데다가,

한 번도 안 타본 KTX 표까지 미리 준다는 얘기에,

결혼식 가서 밥이나 먹고,

경주여행이나 할겸해서 간다고 해버렸다. 

 

계획대로 결혼식가서 밥먹고

사람들이랑 후다닥 빠이빠이한 후, 

경주를 걷기 시작했다.

 

몇개의 왕릉을 지나

해거름의 첨성대 앞에 앉아 별보는 상상만 하고

논둑길을 따라 한참을 걷는데 어두워졌다.

낯선 도시에서의 어둠은 때때로 공포스럽다.

꽥꽥 거리는 개구리 울음소리만 크게 들리던 낯선 길.

그 때 떠올랐다.

낮에 경주 시내에서 본,

쌩쌩 달리고 있던 자전거들이.

자전거만 있다면,

그 길이 외롭지 않을 것 같고

그 어둠을 가를수 있어 두렵지 않을 것 같고

어디든 마음가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경주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얼마되지 않아

나는 현관문 앞에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자전거를 발견했다.

자전거가, 자전거가 하면서 호들갑을 떠는 나에게 엄마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우리 집 자전거라 했다.

오호!

그날부터 내 자전거 타기는 시작되었다.



자전거는 나를 지탱할 수 있게 해 준 힘이었다.

 

갑자기 부딪혀야했던 '현실사회'(반 운동사회)에 멍멍해져있던 나에게

생활의 활력이었고

나를 설레게 하는 존재가 되었고

나를 위로해 주는 기쁨이었다.

절대적인 애정의 애완견이고

나를 표현하는 악세사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 혹은 누군가 떠난 그 자리에서

한 발자욱 떨어져 늘 나를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함께 달리는 그 길에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그 존재가

오늘

너무나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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