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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수련

계룡산 밑 마음수련원에서 마음수련을 했던 마야는

한동안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네 첫 기억은 뭐니?

 

글쎄...

 

xx한테 물어보니 그앤 부자였던 고모네 집 문에 매달려있던 기억이라더라.

그러니까 지금도 물욕이 엄청 쎄잖아.

 

음...그래?

난 뭘까?

 

나보다 몇 살 더 먹은 '토순이'랑 긴 계단에 앉아서

집 지키던 기억.

집 잘 보고 있어, 라던 엄마의 이야기.

그래서 난 지금도 누군가의 부재가 늘 두려운가?

 

여튼, 나를 괴롭히는 또 다른 기억은

초등학교 미술시간이다.

 

크레파스를 넘어 바야흐로 수채화의 과정에 진입한 후,

늘상 물감이 번지는 바람에 형체와 경계가 무너진,

밑그림이랑은 다른 그림이 되는 것이 참 싫었다.

그러던 중, 바탕선은 크레파스로 선을 긋고, 그 안에 물감으로 채워넣어

형태도 살리고, 내가 원하는 색깔만 구사할 수 있는 기법을 터득하고는

줄창 그렇게만 그려댔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조를 짜서 협동화를 그려야했다.

당시 나름 부반장이라는 권력을 갖고 있던 나는

다른 아이들이 물감이 번지게 할까 걱정이 된 나머지

또 새로 터득한 내 기법에 너무나 올인한 나머지

아이들에게 내 방법만을 강요하며

거의 모든 그림을 혼자 그리고 말았다.

크레파스로 바탕을 그리고 물감을 채워넣는

이제와 생각해보면 수채화의 특성은 전혀 살리지 못했던 그 방식 말이다.

 

나이가 든 후에도

고집쟁이 부반장한테 찍소리 못했던 내 짝궁의 통통한 뺨이 떠오를 때면 참 미안하단 생각을 했드랬다.

그래서 한 때 주말 모든 술집을 동심으로 술렁이게 했던

아이러뷰스쿨 모임도 슬슬 피하다가

너무 궁금해 나간 그곳에서 나한테 당한 무수한 피해자들을 마주해야 했다.

뭐 대부분은 꼬집히거나, 맞았다는 피해자들이긴 했지만

난 그날의 협동화를 잊을 수가 없었다.

 



나를 괴롭힌 건 그 협동화의 문제였다.

같이 작업을 해야 하는데

도무지 내 뜻대로 안 될 것 같은 두려움과 갑갑함이 한편에,

그래서 못하겠다고 벌렁 나자빠지긴엔

내가 지금 올인하고 있는 기법을 구현하고 싶은 강한 욕망이 한편에,

 

그래서 당시 내 짝궁처럼 뺨이 통통한 그녀를 괴롭혔드랬다.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고민이라는 알량한 권력을 가지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쫑알쫑알 거리면서

때로는 그녀의 뺨을 지긋이 눌러버렸는지도 모른다.

 

오늘,

한달만에 그녀를 만나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밥을 먹고,

담배를 나눠피고,

돌아선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좀 아릿했다.

 

사심없이 물감 섞어 색칠하고 싶을 그녀에게

그닥 뛰어나지도 못한 기법을 떠들며

알량한 권력을 행사한 것 같아서.

 

어렷을 적 기억을 다 끄집어내

자신을 되돌아 보고

마음을 수련하는

마야가

마음수련원으로 날 유인하려 했을 때,

 

기도는 꼭 교회가서 안해도 되듯

운동이 곧 수련이라 

걱정말라 했는데,

수련이 덜 되도 한 참 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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