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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

오늘 저녁

맥주 한병을 사서 반바지 주머니에 꽂고 집에 오며

이런저런 생각이.

 

지금 우리 가족을 지켜 주는 건 바로 이것...

 

아빠는 매일 저녁 6시 경이면 소주 반병을 비우고

하루의 피곤과 스트레스에서 잠시 릴렉스

우울한 침묵을 깨고 웃는 얼굴로 돌아온다.

 

난 잠시 혼자가 되는 밤이면

최고의 스피드로 맥주를 벌컥벌컥

다음날 조금은 말갛게 하루를 시작한다.

이에 가족들은 급기야 맥주를 박스로 들여다 놓고

내가 하루하루를 지탱하도록 지원한다.

 

얼마전

언니의 말한마디에 마음이 상해

울며불며 방에 짱박혀 있는 나를 걱정하는 가족들의 대화란,

 

언니: 제 나 때문에 저런다... 내가 말을 잘 못해서...

오빠: 그러니까 누나는 말 좀 조심하지...

언니: 내가 또 말하면 일만 커질것 같아, 니가 제 술 좀 먹여라...

 

나(속으로): 머야! 그게 술로 해결될 일이야...사과는 커녕 술이나 먹이라니..으쒸!

 

며칠 뒤,

 

언니, 오빠1,2 그리고 나는 집앞 호프집에 모였다.

내심 나는 그날 모임의 취지를 언니의 깍뜻한 사과와 못이기는 척 받아들이기로 기대했고,

사과 없이는 절대 화난 표정을 풀지 않겠다 결심했지만,

 

한병, 두병 쌓이는 술병 앞에

굳었던 얼굴 표정부터 마음까지 술술 다 풀려버린 나.

언니의 예상대로.

사과는 뭔 사과!

 

결국 그날,

하이네켄 네병 마시면 베드민턴 라켓 하나를 준다는데 혹했던 우리들은

계속 네병에요,를 외치다가

모두들 베드민턴 라켓을 하나씩 어깨에 걸고 술집을 나왔다.

마치 하이네켄 후원의 베드민턴 동호회 회원들처럼.

간만에 화기 애애했던 밤이었다.

 

비닐봉지 사긴 싫고

그렇다고 양쪽 주머니에 두병 꽂고 오긴 좀 그래서

한병만 산 맥주가

아쉬운 밤.

목마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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