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런 일이 있을 것이다. 내가 찍었던 상대나 물건을 누군가 채 갔을 때. 그때의 미묘한 안타까움. 약간의 시샘. 번역이나 연구도 마찬가지다. 작년에는 <프레카리아트>를 빈둥대다 놓쳤고, 최근에는 지금 짤막히 소개할 <래디컬 스페이스>가 그렇다. 사람들 보는 눈이 비슷해서 그런지, 현재 한국 사회의 현실이 뭔가 공통적인 게 있는건지...
마거릿 콘 (지음), 장문석 (옮김), 래디컬 스페이스 - 협동조합 민중회관 노동회의소, 삼천리, 2013. 우리말로 하면 급진적 공간, 혹은 공간을 급진화하라, 저항의 공간, 정도가 될 텐데...부제가 의미하듯이, 이 책은 유럽 지역의 노동자의 집을 비롯한 협동조합, 민중회관, 노동회의소 등이 부르주아의 공적 공간(혹은 공론장)을 비집고 어떻게 저항적인 공간(혹은 공론장)을 창출했는가, 이 점을 탐색하고 있다.
저자(미국의 소장 정치학자)의 말이 재미 있는데, 그녀는 처음에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을 경제적 측면에서 연구하러 갔다가, 좌파 피자가게에서 식사를 하면서 미국에서 볼 수 없는 미시적 공간을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어..이것봐라? 저런 장소 때문에 독특한 (지방자치) 사회주의가 가능한 게 아닐까? 정치적 지향은 달라도 나도 이에 공감한다. 먼저 밝혀두자면, 저자는 급진 민주주의 입장에서 다양한 근대 민주주의 이론, 후기 구조주의 이론(푸코나 하버마스, 부르디외 등), 사회주의 이론을 결합하고 있다.
아마도 대부분은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꼬마 빌리가 권투를 배우고 인생 최초로 발레를 접하던 장소를 기억할 것이다. 알다시피, 영화의 배경이 1980년대 초 대처 시기 광부 파업이었고, 줄기차게 조명하는 일상은 노동자 계급의 동네 문화였다. 영화에는 많은 공간이 등장한다. 광산 -- 그곳에서 파업에서 빠져 나와 탄광으로 들어가는 노동자와 이를 비난하는 동료들 -- 낡고 퇴락한 주택, 그리고 오래된 노동회관...내가 놀랐던 장면은 그곳이었다. 일상 속에 들어와 있던 노동자의 공간...꼬마 빌리가 발레를 처음 그곳에서 만났기에, 왕립발레학교에 들어가, 아름다운 근육으로 비약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노동자의 공간/장소는 서구의 경우 장구한 역사의 산물이다. 최소한 18-9세기를 점철한 혁명을 떠받친 공간은 부르주아의 클럽과 모임 -- 우리는 장소나 공간을 '물리적' 의미로 한정하지 말아야 한다. 사이버 '스페이스'만 생각해보라 -- 만 존재하지 않았다. 노동자(와 노동자도 아닌 사람들)의 각종 모임과 장소 역시 세상을 움직였다. 그곳에서는 술과 도박과 노래와 내기와 싸움도 터져나왔지만, 마찬가지로 자유와 혁명의 목소리도 생성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곳은 다양한 의사소통과 공부가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노동자든 시민이든 남자든 여자든 이러한 일상적인 장소를 매개로 해서 창출되었다. 그곳에서 사회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지방주의, 협조주의 등등의 대안적인 흐름이 탄생했다. 어쨌든, 모든 공간과 장소는 사회적 교류가 일어나고 정치적 사건이 발생하고 상징적 문화가 교차하는 곳이고, 역으로 변혁을 일으켜 사회와 정치, 문화를 바꾸어 내는 매개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가령 1987년의 뜨거운 여름을 가능하게 했던 요인 중에 하나가 합법적인 영역에서 움직인 수많은 장소였다. 동네 교회, 상담소, 대학, 식당, 골목 등등...대학사회만 해도 수많은 운동 모임과 학습 모임이 있지 않았는가?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물론, 협동조합과 공도육아, 대안학교, 연구소 등은 예외로 쳐야 겠지만, 지난 20년간 그나마 있던 대안적 공간은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의 주변 일상에서 사라졌고, 그리고 목적이 한정된 제도적 장치가 미세한 공간을 대체했다. '진보적'인 제도적 공간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요즘 다시 조금만 공간들을 일상 속에 구축하는 흐름이 간간히 실현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러한 흐름을 뒷밤침해주는 이론적 시각이나 연구가 부족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래디컬 스페이스>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족이지만, 운동판에 있는 사람들은 뭔가 사업을 한다면 어깨에 힘이 들어가서 크게 일을 벌리려고 한다. 민중의 집이나 그런 게, 그냥 호프집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뭔가 장소적 기반이 있어야 '마을' 같은 것도 가능한데....교회나 통닭집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치구 하나에 노동자센터나 대안적인 공간이 하나 정도 씩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크고 복합적인 공간이면 좋지만, 까페나 술집도 대만족이다. 어쨌든, 요점은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떠들고 놀고 공부하고 행동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이미 전국에 널려있는 각종 단체들을 '개방적인' 공간으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다시 사족이지만, 벌써 우리는 그러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무튼...이만...줄인다. 꼭...읽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