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평등경제론의 시각

평등경제론의 시각

장상환 (진보정치연구소장)

 

 한국경제는 그동안 압축적 고도성장을 해서 구매력 평가 기준으로 1인당 1만7천 달러의 수준에 달했다. 그러나 현재에는 자본주의경제가 안고 있는 불평등과 불안정을 극단적인 형태로 겪고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경제를 올바로 해석하고 필요한 처방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앞으로 한국경제의 여러 측면을 「평등경제론」의 시각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마르크스, 케인즈 등 자본주의 경제문제의 해명에 고심했던 여러 경제학자들의 이론을 참고하겠지만, 평등경제론의 시각이 무엇인지, 주류 경제학과 어떻게 다른지를 밝혀두기로 한다.

 

일하는 민중의 입장
 
첫째, 일하는 다수 민중의 입장에서 경제문제를 볼 때 진실에 더 잘 접근할 수 있다. 경제성장이 아무리 이루어져도 분배가 제대로 되지 않아 1400만 노동자계급을 비롯한 민중의 삶이 나빠진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은 대립될 수밖에 없다. “근로자를 가족처럼, 회사를 내 집처럼”이라는 구호가 요란하지만 실은 허울에 불과하다. 임금과 노동시간, 고용상황 등에 이르면 노자는 격렬하게 대립한다.


계급적 입장의 차이에 따라 경제이론도 달라진다. 분배문제에 대해서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은 자본, 노동, 토지 등 각 생산요소가 생산에 대해서 기여한 몫만큼 자본가, 노동자, 지주들에게 이윤, 임금, 지대로 분배된다고 한다. 이른바 한계생산력설이다. 이에 반해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에서는 노동이 생산한 부가가치에서 노동력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가치를 빼고 남는 것이 잉여가치이고 이것이 이윤과 이자, 지대로 분배된다고 본다.


모든 사람의 소득에는 아무튼 근거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불평등한 현실을 변호하는 이론일 뿐이다. 대체로 지배계급의 입장에 서는 이론은 현실을 정당화하고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은폐하는 경향이 있다. 고문한 자, 성폭행한 자가 고문과 성폭행의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과 같다. 


이와 관련된 것으로 역사적 시각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이 가장 약한 부분이다. 한국은 아직 개도국으로 아직 사회복지와 과학기술수준이 취약하다. 여기에 동일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농산물 시장개방을 실시하면 사회복지와 농업보호 수준이 높은 선진국과는 전혀 다른 파괴적 결과가 나올 수 있다. 

 

국민경제 재생산의 고려

 

둘째, 개별 기업이 아니라 국민경제 재생산의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한다. 개별기업의 입장에서 좋은 것이 반드시 국민경제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개별기업의 입장에서는 임금과 세금이 모두 비용일 뿐으로 절감할수록 좋다. 그러나 동시에 임금은 노동자의 소득으로서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수요의 원천이다. 비정규직의 확대로 임금 소득이 축소되면 불황이 악화된다. 유럽 여러 나라의 경우처럼 사회복지가 잘 갖추어지면 소득을 그대로 소비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과 현재의 한국처럼 사회보장이 취약하면 고용과 노후가 불안해서 소득이 있어도 잘 쓰지 못한다. 경제는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불황과 실업을 임금이 너무 높아서 발생한 문제로 보고 임금이 내려가면 기업이 고용을 늘릴 것이므로 ‘장기적으로는’ 해결될 것이라는 안이한 논리를 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케인즈는 실업은 유효수요가 부족해서 발생한 문제로 “장기적으로는 우리 모두 죽는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고 했다. 먼 장래에는 문제가 해결될지 모르지만 그 이전에 많은 사람은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세계에서 경쟁력을 높여나간다 해도 국민경제의 양극화를 가속시키면 결국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전반적 과학 기술 수준이 발전해야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공교육에 더 많은 재정이 투입되어야 한다. 기업이 세금을 최대한 적게 내려고 하면 이것이 불가능해진다.  

 

형평과 효율
 
셋째, 형평과 효율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현실사회주의의 교훈이 가르쳐 주듯이 어떠한 체제도 혁신이 부진하여 경제가 후퇴하고 민중들이 가난해지게 되면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불평등이 한계를 벗어나면 경제의 안정과 성장도 보장할 수 없다. 예컨대 오늘 한국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크게 늘어나자 비정규직 부부가 자녀교육 부담을 견디지 못해 출산을 포기함으로써 출산율이 현재 1.17%로 세계 최저로 떨어지게 되었다. 노동력이 제대로 재생산되지 않는 것은 그야말로 심각한 사회적 위기이다.   


다른 예로 미국 자동차 회사 제너럴 모터스는 지난 1/4분기에 11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경쟁력 저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과중한 의료보험비 부담이다. G.M.은 2004년에 종업원들에게 지급하는 의료보험비로 52억 달러를 지출했고 이 때문에 자동차 한 대의 생산비가 1500달러나 올라가게 되었다. 선진국 중에서 불평등이 심하고 사회보장이 취약한 미국에서 사적 보험 중심의 의료체계가 결국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를 만든 것이다.    

 

과학적 분석

 

넷째, 과학적인 분석을 해야 한다. 경제학은 양을 다루는 학문으로 인과관계의 방향과 크기를 정확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1980년대 초반에 정부는 물가상승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임금 동결, 쌀 수매가 동결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이 때 농림부가 소속 공무원들에게 농가소득 증대와 관계없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냈는데 정답이 놀랍게도 쌀값 인상이었다. “쌀값이 올라가면 물가가 올라가고, 물가가 올라가면 실질소득이 감소한다. 결국 쌀값이 올라가도 실질 농가소득은 떨어진다.”는 논리이다. 농민들로서는 정말 복창 터질 이야기이다. 이것은 정말 기만이다. “쌀값이 10% 올라도 이로 인해 물가가 2% 오르면 실질 쌀소득은 10%가 아니라 8%만 오르고, 쌀 소득이 농업소득의 절반일 경우 다른 농산물가격이 오르지 않을 경우라도 실질 농업소득은 3%나 오른다.”고 해야 정확한 논리이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 집값이 올라가는 것은 수요에 공급이 모자라기 때문이므로 주택200만호를 건설하면 집값이 잡힐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단기간에 주택 200만호를 건설하다 보니 자재비․인건비가 올라서 결국 기존 주택가격까지 올라갔다. 또한 일산, 분당, 산본 등의 개발은 수도권을 키워 서울 도심의 지가를 더욱 상승시켰다. 복잡한 연쇄효과를 충분히 분석하고 고려하지 않은 결과이다.     

   
또한 복지를 확충하겠다고 하면서 여기에 소요되는 지출이 얼마인지, 그리고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 등에 관한 계획이 없으면 이것은 공약(空約)에 불과하다. 모두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공짜 복지는 없다.
   

 

진보정치연구소 [새 세상의창] 칼럼 2005. 5. 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