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3/14 16:42

임시저장 2

노무현정권 집권 3년차를 바라보며 노무현정권이 집권 3년차를 맞이하고 있다. 2002년 12월, 뜨거운 논쟁과 지지위에 탄생한 대통령이었다. 그해 가을에 97년에는 함께 진보정당선거운동을 했던 선배와 토론을 했다. 자신의 '개혁(이란 단어 싫지만)에 대한 의지'를 노무현에게 투영하며 그를 지지한다고 했다. 고졸, 사법고시, 인권변호사, 87년 6월 항쟁, 청문회 스타, 당내 지지기반이 거의 없는 그가 노사모와 온라인이라는 당 바깥의 열렬한 지지를 업고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되었고,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사람들은 아직도 극적인 것을 바라는 것 같다. 사람들은 삶이 세상이 극적으로 뒤바뀌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97년 대선이 끝난 아침에, 집에 배달되어온 신문은 1면 사진으로 보랏빛 수건을 머리에 두른 어머니들에게 둘러싸인 김대중 당선자를 실었다. 그래서 나는 (순진하게도) 김대중 정권때 다른 것은 몰라도 국가보안법은 폐지될 것으로 믿었다. 양심수는 적어도 없어지리라고 생각했다. 98년에는 처음으로 '후배'가 구속되었다. 2002년 노사모의 기억. 노사모의 누구의 얘기인지는 잊어버렸지만, 당시 대통령후보와 함께 지방의 한 소도시에 내려갔는데, 비가 오는 저녁에 노란 비옷을 입은 사람들이 첫 번째 만난 육교에 가득 모여있었다고 했다. 두 번째의 육교에도 노란 비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 모여있었다고 한다. 세 번째 육교에도, 네 번째 육교에도. 당시 이 사람들의 열망은 '개혁'으로 모아질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에는 대통령후보가 연설한다면 수십만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도 하지만, 이 지지를 업고 노무현은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할까 궁금했다. 그래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기대도 했다. 2003년 2월, 정권을 준비하며 노무현은 강금실법무부장관과 김두관행자부장관과 이창동문화부장관을 준비했다. 2003년 4월, 1월 배달호 열사부터 시작되었던 수많은 노동열사의 행렬에 노무현은 "자살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2003년 4월, 국회에서는 파병동의안 처리에 대한 논의가 한창 분분했다. 국회를 전경차가 빙 둘러싸고 있었고, 그 바깥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2003년 여름, 부안의 기억. 2004년 초봄, 총선을 앞두고 16대 국회는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고, 한달 동안 다른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던 탄핵국면에 접어들었다. '직접 민주주의'를 외쳤던 외침은 기억이나 되고 있을까. 10월에는 뜬금없이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 얘기를 해서 노무현정권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줬고, 겨울로 접어들 무렵에는 노무현과 열우당은 국가보안법폐지안, 사립학교법개정안, 언론개혁법, 과거청산법을 묶어서 4대 개혁입법정국을 연출했다. (이제 화나려고 한다.) 역시 개혁입법정국 동안 다른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각 법안이 진보진영의 각 영역에서 오랫동안 싸워왔던 내용인 다음에야. 가끔은 하루하루를 때운다. + 1월쯤 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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