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개정 저작권법

3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10/11/11
    개정 저작권법 시행 후 첫 ‘계정정지’ 명령
    와라
  2. 2009/09/08
    저작권법 : 퇴보를 향한 위험한 도발
    와라
  3. 2009/08/01
    저작권법이 발병시킨 문화적 우울증 (5)
    와라

개정 저작권법 시행 후 첫 ‘계정정지’ 명령

우리나라 최초 3진 아웃 사례

http://korea.kr/newsWeb/pages/brief/categoryNews2/view.do?newsDataId=148701359&category_id=subject&section_id=EDS0303009&call_from=extlink&subjectName=culture

 

 

................................................................................................................................................

 

개정 저작권법 시행 후 처음으로 헤비업로더가 ‘계정정지’ 명령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저작권을 침해하는 불법복제물을 웹하드 등 3개의 온라인서비스에서 복제·전송한 11개 계정에 대해 계정정지 명령 처분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7월 23일, 개정 저작권법이 시행된 이후 첫 계정정지 명령 사례다.

이번 계정정지 대상 11개 계정은 경고 명령을 3회나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정당 평균 약 200편의 불법복제물(영상, 음악, 소프트웨어, 게임 등)을 또다시 웹하드 상에 무분별하게 유통시킨 헤비업로더들이다.

이에 따라 계정정지 처분을 받은 3개의 온라인서비스제공자는 해당 헤비업로더에게 부여한 다른 계정도 포함(이메일 전용계정은 제외)하여 1개월 미만 동안 당해 계정을 정지시켜야 한다.

문화부에 따르면, 이번 행정처분은 저작권법 위반 경고 명령 3회를 받았음에도 또다시 불법복제물을 게시한 자들을 대상으로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됐다.

문화부는 이미 지난 3월부터 9월까지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시정권고를 불이행하거나 상습적으로 대량의 불법복제물을 복제·전송한 23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의 469개 계정에 대해 세 차례에 걸쳐 경고 명령 처분을 내린 바 있다.

문화부는 “웹하드·P2P 서비스 등을 통한 불법복제물 유통이 영화 부가판권 시장 규모 축소 등 문화콘텐츠 산업 성장의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며 “단속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문화부는 불법복제물을 유통하는 웹하드·피투피(P2P)서비스 사업자와 ‘헤비 업로더’에 대해 기술적 조치 불이행 과태료 처분, 특별사법경찰의 기획 수사와 범죄수익금 환수 등도 더욱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한편, 한국저작권위원회도 개정 저작권법 시행 후부터 올해 3분기까지 164개의 온라인서비스제공자를 대상으로 83,519건(경고 42,217건, 삭제 41,246건, 계정정지 56건)의 시정권고 조치를 시행한 바 있다.

이 중에는 스마트폰용 불법 어플리케이션을 유통시킨 69개 온라인서비스제공자에 대한 8,554건의 조치도 포함돼있다.

문의 :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보호과 02-3704-9683

 

 |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보호과 | 등록일 : 2010.11.0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저작권법 : 퇴보를 향한 위험한 도발

저작권법이 개정과 함께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저작권법은 ‘창조성과 같은 인간의 정신적 능력’과 ‘창조적 생산물을 향유하는 문화적 삶’을 구성하는 법적 규제의 하나이다. 인간의 정신적 능력과 문화적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위험해 보인다. 문화는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거치며 풍요로워져야 하는 무엇이다. 저작권법은, 특히 이번 개정 저작권법은 그것들을 통제하고 규제하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무엇이 문제인지 한 번 살펴보자.

 

이번에 개정된 저작권법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일명 ‘인터넷 3진 아웃제’의 도입에 관한 것이다. 인터넷 3진 아웃제는 영화나 드라마 혹은 음악 등의 저작물을 허락 없이 대량 유포하는 업로더의 계정이나 인터넷의 게시판을 저작권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3회 경고 후 최대 6개월까지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행정 권력의 과도함이라는 문제와 표현의 자유 침해의 문제 등을 지니고 있다.


개정 저작권법의 문제들


우선 개정 저작권법에 따르면 독립된 사법 영역을 행정 권력이 침해할 소지가 있다. 저작권과 관련된 분쟁은 침해사실이 명확히 규명되기 어렵기 때문에 법원에서도 쉽게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개정 저작권법에 따르면 그것을 행정 권력이 판단한다는 것이다. 또한 현행법의 기준에 따르자면 저작권 침해 사례는 무수히 많기 때문에 전수 조사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행정 기관은 무수히 많은 침해 사례 중 일부를 자의적으로 골라내야 한다. 누군가는 법적 책임을 면제받고, 누구는 처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로 형평성의 문제를 낳는다. 그리고 저작권법 위반자나 게시판을 찾아낼 때 정치적 고려가 개입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어쨌든 저작권법에 따른 처벌 대상은 단순한 위반자나 게시판이 아니라, 행정 권력이 위반했다고 판단하는 이용자나 게시판이 될 것이다. 더군다나 저작권을 위반했다고 판단된 게시판이 이용 정지될 경우 저작권 위반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 역시 그 게시판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법에 저촉되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지만,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공간을 잃게 된다. 이를테면 ‘다음의 아고라’의 특정 게시판이나 디시인사이드의 어떤 갤러리를 행정 권력이 저작권법을 근거로 이용 정지 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이용자들에게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일일 수 있다. 자신이 활동하고 있는, 즉 자신의 표현물이 올라간 혹은 올릴 예정인 게시판이 정지될 수 있다는 위협 때문에 인터넷 이용자의 표현 행위 자체가 위축될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행위와는 아무 관계없이 자신이 올린 표현물이 일정 기간 동안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개정 저작권법의 주 내용인 인터넷 3진 아웃제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은 아니다. 프랑스에서도 이미 이 제도를 입법하려는 흐름이 있었다.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 때문에 시민 사회 단체의 주도로 위헌소송이 제기되었고, 결국 프랑스 헌법위원회는 6월 초에 위헌 판정을 내렸다. 프랑스 헌법위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에 자유롭게 접근하는 것은 인권에 관한 문제”라고 명시하고 개인의 인터넷 접근을 막을 수 있는 권한은 법원 판사의 판결을 통해서만 부여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인터넷 표현의 자유와 그것을 규제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최근 중국의 청소년 보호용 인터넷 차단 프로그램인 그린댐(Green Dam)을 비롯해 호주나 뉴질랜드, 영국, 스웨덴, 일본에서도 비슷한 시도들이 있었다. 당연하게도 인터넷에 대한 규제 시도가 해외의 사례에서 발견된다고 해서 그 제도가 정당성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 나라에서 역시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려는 시도에 대한 저항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인터넷 규제 법규들은 해외의 사례와 차별되는 독특한 방식을 띠기도 한다. 앞서 이야기한 게시판 자체를 일정 기간 동안 정지시킬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은 해외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개정 저작권법은 ‘헤비 업로더와 불법 복제물의 유통에 이용의 편의를 제공하거나 상업적 이익을 제공하는 게시판을 규제’하는 것이며, ‘포털 등의 카페, 블로그, 미니 홈피 등은 정지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법안에는 ‘헤비 업로더’와 같은 개념 자체가 없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블로그나 활동 카페에 타인의 글이나 신문기사 등을 옮겨 놓는 행위는 모두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한다. 행정 명령을 통해 블로그나 카페 등의 게시판도 정지될 수 있는 것이다.


문화에서 산업으로


이러한 사실 이외에도 개정 저작권법에서는 눈에 띠는 변화를 한 가지 더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저작권법 1조(목적)의 한 문구이다. 우리나라 저작권법에서 1986년 1차 전부 개정 이후 2009년의 17차 개정 이전까지 1조는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었다. 이번 개정 이전에 저작권법 1조는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번 17차 개정에서는 1조의 ‘문화의 향상발전’이라는 문구가 ‘문화 및 관련 산업의 향상 발전’으로 바뀌었다.

 

이는 저작권법이 존재하는 실질적인 이유를 보여주는 증상적인 변화로 보인다. 어찌보면 이러한 변경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저작권법은 명목상 저작자와 저작 인접권자의 권리를 보호함으로써 문화의 향상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지만, 저작권법을 통해 실제로 이익을 얻는 자가 누구인지 생각해 본다면 이 법의 목적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실제로 저작권법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얻는 개인 창작자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문화는 그러한 극소수의 개인들의 창작물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는 경제적 이득을 얻지 못하는 수많은 창작자들과 그들의 창작물을 공유하고 향유하는 이용자들, 그리고 창작물들을 활용해서 새롭게 해석하고 발견하는 패러디 작가들(겸 이용자들)등 모두의 노력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다. 저작권법은 그나마 있는 개인 창작자에게 돌아 가야할 권리마저 특정 기업이나 조직으로 전환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저작권을 포함한 지적재산권의 제도화와 함께 개별 창작자의 이득은 거대 기업의 이익으로 대체된다. 개별 창작자들은 종종 무시되거나 착취당한다. 기업이나 정부에 고용된 이들이 보호할만한 가치를 가진 창작물을 만들어냈을 때 그것은 해당 조직의 저작물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상황은 창작물이 유통되는 과정에서도 다시 나타난다. 상품이 유통과정에 들어가기 위해서 창작자는 판매자가 되어야 하는데 개별 창작자는 직접 판매 활동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 상품의 유통로를 거대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 창작자는 판매자가 된다 하여도 거대 기업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창작자는 자신의 생산물을 판매하기 위해서 유통로를 장악하고 있는 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판매의 유통로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계약을 통해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이전받는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창작물은 기업소유가 되고 창작물의 판매에 따른 보상은 기업으로 돌아간다. 창작자의 개성은 기업의 자본이 된다.

 

이처럼 저작권법은 개별 창작자를 보호하기 보다는 저작물이 탄생하는 산업 구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이번 개정 저작권법 1조의 문구 개정은 저작권법의 실질적 목적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저작권법의 개정은 이러한 목적을 충실히 실행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은 문화 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말 그대로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것들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

<방송 작가> 기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저작권법이 발병시킨 문화적 우울증

개정 저작권법이 시행된지 일주일여가 흘렀다. 막상 시행되고 나니 인터넷 3진 아웃제에 대한 논란도 잠잠해졌다. 이제 ‘창작물에 대한 이용자의 권리’와 ‘웹공간에서 표현의 자유’가 가혹하게 침해당하는 일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이에 대응해서 참여연대나 정보공유연대는 3진 아웃제의 위헌성을 문제 삼아 헌법소원을 준비 중에 있긴 하다) 물론 지금까지도 이용자의 권리와 표현의 자유는 지나치게 많이 침해당해왔다. 개정 저작권법은 그 침해를 극대화 할 것이다. 개정 저작권법의 주 내용은 저작권을 침해하는 이들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저작권은 정보사회 혹은 지식기반경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없어서는 안될 경제적 장치로 인식되고 있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경제적) 권리를 보장해 줌으로써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핵심 동력으로 취급된다. 우리 주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저작권을 둘러싼 논의는 창작자에 대한 경제적 보상과 그 방식에 집중되어 있다. 창작에 대한 경제적 보상은 창작의 유발동기가 되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 활성화하기 위해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며, 그것은 강력한 법적(처벌)장치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저작권에 대한 강한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두 가지 축일 뿐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가 일종의 허구라는 점을 증명하는 것은 간단하다. 이렇게 질문해 보자. 


저작권은 왜 저자의 권리(author's right)가 아니라 복제의 권리(copyright)인가?

저작물 혹은 창작물은 왜 그리고 어떻게 향유의 대상이 아니라 단속의 대상이 되었는가?

과연 특정인이 문화적 생산물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문화를 풍부하게 할 수 있는가?

문화적 생산물을 함께 공유하고 향유하는 것이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저작물은 유일하고 특수한 개인의 온전한 창작물인가?

저작물의 독점적 소유권자로 상상되는 저자란 무엇인가?

저작권을 통해 실재로 경제적 이익을 얻는 자는 누구인가?


이 질문을 하나씩 곱씹어 본다면 저작권을 강화시켜온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물론 어떤 질문들은 쉽게 증명될 수 없고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지만, 다른 어떤 질문들은 저작권의 역사나 현재의 상황에 대한 간단한 서술만으로도 쉽게 논증될 수 있다.



정보에 대한 반독점적 권리로서의 저작권


역사적으로 보면 초기의 저작권은 지식이나 정보를 배타적으로 사유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 저작권은 15세기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등장했다. 그것은 1496년에 시행된 출판특허제를 그 제도적 효시로 해서 16세기 초에 유럽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저작권은 인쇄술의 발명과 연관되어 있다. 인쇄술이 발명됨에 따라 지식과 지식 창안자 사이의 분리가 이루어졌고, 지식은 창안자로부터 독립되어 남에게 양도할 수 있는 상업적 권리로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에 저작권 제도는 근대 인쇄혁명이라는 사회역사적 조건에서 생겨난 법률적 제도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이때의 저작권은 인쇄술의 발명으로 출판업이 발달하면서 넘쳐나는 출판물을 규제하기 위한 제도로 고안되었다.

 

근대적 의미의 저작권법은 1710년 영국에서 만들어졌다. 이것이 앤 여왕법(Statute of Anne)이다. 앤 여왕법은 두 가지 의미에서 과거의 저작권법과 질적으로 다른 차별성을 지닌다. 하나는 저작권의 보호기간을 설정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저자의 권리를 등장시킨 것이다. 앤 여왕법이 제정되기 이전에 출판업자들은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사는 것은 집이나 땅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으므로 출판물에 대한 권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제한 없이 보장되었다. 따라서 출판업자들은 한 번 판매된 저작물의 권리가 아무리 오래되어도 그것을 시장에서 독점적으로 통제할 수 있었다. 앤 여왕법은 이러한 출판업자들의 독점적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 저작물에 대한 권리에 기간을 정했다.

 

그리고 앤 여왕법은 서문에서 ‘의심할 바 없는 재산을 가진 저자의 동의 없이는 어떤 저작물도 출판할 수 없다’고 명시함으로써 처음으로 저자의 권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저작권의 기간 한정이나 저자의 권리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출판업자들의 독점을 깨기 위한 의도적인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저자(author)라는 개념은 출판 독점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당시의 저작권은 엄밀히 말하면 ‘저자의 권리’(author-right)가 아니라 ‘복제의 권리’(copy-right 혹은 right to print)였다. 저자 개념 자체가 저자의 소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출판업자들의 독점적 복제권을 견제하기 위해 네거티브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처럼 초기의 저작권법은 반독점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저자의 권리를 명시함으로써 이제 타인의 소유물과 저자의 소유물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 그리고 재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지는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해 졌다. 이러한 상황은 이후 진행된 ‘결정판’ 혹은 ‘전집’의 편집 열기라는 18세기의 사회적 배경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당시에 내가 쓴 글과 타인이 쓴 글을 구별하는 인용부호와 같은 문법적 규칙이 표준화되고 그것의 강제적 사용이 의무화된다. 현대사회에서 사용하는 표준화된 인용부호가 완성된 것이 바로 18세기 후반이다. 18세기 이전에도 인용부호와 같은 것이 있었지만 그것은 표현의 소유자를 규명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18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인용부호는 그 인용된 구절의 소유권이 타인에게 있다는 표시가 아니라 성서나 격언, 속담과 같이 특별히 신경을 써서 읽을 필요가 있음을 표시하는 기호에 불과했다.



저자 살리기 혹은 저자 죽이기


저자란 지식이나 정보가 특정한 개인에게 소유될 수 있다는 관념을 유지시키기 위한 (그러나 실제로는 저작권을 구조화 시키는 중심으로서 기능하는) 허구적 개념이다. 이러한 사실은 지적재산권을 통해 실질적인 이윤을 얻는 소유권자가 창작자로서의 개인에서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크발(Ekbal, B)에 따르면 “지적재산권의 제도화와 함께 개인창작자의 이득은 거대 기업의 이익으로 대체된다. 오늘날 대부분의 창작자는 지적재산으로부터 이익을 얻지 못한다. 독립된 발명가들은 종종 무시되거나 착취당한다. 기업이나 정부에 고용된 이들이 보호할만한 가치를 가진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때, 그것은 해당 조직의 저작이나 특허가 된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기업은 독창성과 영감을 가진 낭만적 저자라는 개념에서 자신들의 (일종의 갈취) 행위의 정당성을 찾고 있다. 정보를 개인이 소유할 수 있다면 기업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목격할 수 있는데, 그것은 기업이 정보의 소유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적재산권의 성립근거가 되고 있는 ‘정보의 창작자가 생산물을 소유’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창작물이 기업의 소유가 되기 위해서는 창작물의 자기 소유라는 이데올로기가 거부되어야 한다. 그리고 창작자가 창작물을 소유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가 부정되기 위해서는 창작물이 ‘생산자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창작물이 창작자로부터 분리되어야 ‘개인 생산자의 소유’라는 사실이 부정되고 소유권이 기업으로 이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 창작자의 소유가 부정되고 소유권이 기업으로 이전되는 과정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하나는 ‘업무상 저작물(works made for hire)’이라는 형태로 기업이 개인이 생산한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을 획득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통과정에서 계약을 통해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의 일부나 전부를 양도 받는 것이다.

 

먼저 업무상 저작물에 대해 살펴보자. 18세기 이후 확고하게 자리 잡은 ‘낭만적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전혀 낭만적이지 않은 창조적 업무에 종사하는 일개 노동자(creative worker)로 전락한다. 저작권법 내에는 ‘업무상 저작물’에 대한 규정이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작품을 창작한 사람은 개인일지라도 작품의 실질 소유자는 이들에게 임금을 지불한 기업이 된다. 이렇게 기업은 작품의 소유자, 즉 저자가 된다. 여기서 저작권자로서의 기업은 창작한 노동자들에게 일정액의 보상금을 주고 그 창작물을 양도받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이기 때문에 그 권리를 갖게 된다.

 

예를 들어 방송 사업자가 자신이 고용한 방송작가, 소속 배우, 소속 음악가 등 기타 인력과 설비를 투입하여 영상물을 만드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러한 경우 방송사업자는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영상저작물 작품은 물론이고 ‘사용된 어문저작물, 음악저작물, 실연 등에서의 권리’ 등 모든 창작물에 대한 권리를 소유하게 된다. 이때 외부의 독립제작사를 활용하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스스로 자체 제작한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에 방송사업자가 저작권자가 된다는 점에는 차이가 없다. 따라서 만들어진 영상저작물이 향후 다원적으로 활용될 때에도 개별 권리자의 권리는 주장될 수 없다. 더욱이 업무상 저작물에 대한 조항은 저작권법이 개정될수록 점차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정보의 실질적 소유권자가 개인에서 기업(법인)으로 옮겨 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으로 유통과정에서 창작물의 소유권이 개인에서 기업으로 옮겨가는 과정에 대해 살펴보자. 상품이 유통과정에 들어가기 위해서 창작자는 판매자가 되어야 하는데 개별 창작자는 직접 판매 활동을 하는데 한계가 있다. 상품의 유통로를 거대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 창작자가 판매자가 된다 하여도 거대 기업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창작자는 자신의 생산물을 판매하기 위해서 유통로를 장악하고 있는 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기업은 판매의 유통로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계약을 통해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의 일부 혹은 전부를 이전받는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창작물은 기업소유가 되고 창작물의 판매에 따른 보상은 기업으로 돌아간다. 창작자의 개성은 기업의 자본이 된다.


이처럼 앞서 제기된 질문들을 조금만 들여다본다면, 저작권을 둘러싼 논의가 얼마만큼 허구적 이데올로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간단히 독점이나 보상과 같은 저작권의 경제적 측면만을 살펴보았지만, 그것의 정치적 측면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이에 대해서는 '저작권, 정치에 다가가기' 참조해도 될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정치적 측면이든, 경제적 측면이든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저작권이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 협소한 의미의 정치 혹은 경제의 한 측면이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서 ‘창조성과 같은 인간의 정신적 능력’과 ‘정신적 생산물을 공유하는 문화적 삶’ 그 자체라는 점이다. 저작권법은 우리의 문화적 삶을 치명적인 문화적 우울증에 빠뜨리는 계기로 작동하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