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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기억에 대해 생각해본다.
신경학적 이야기 모음집같은 그 책에는
뇌의 측두엽 어느 한 곳의 손상으로 기억이 싹 사라지거나
엘 도퍼라는 약물의 투입으로 애인을 죽였던 기억 같은 것들이 불쑥 튀어나오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해놨다.
내가 경험한 무수한 것들의 자세하고도 구체적인 심상들은
뇌 속에 온전히 남아있다고 한다.
그리고 휴지기에 놓여있는 상태. 그것이 정상적인 상태.
때로, 어떤 이유에선지 몰라도, 어느날 갑자기, 혹은
교통사고로 뇌를 다친 후
휴지기에 있던 부분이 각성되면서
마구 풀어지며 자신의 눈에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은
그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버린다.
내 기억들도, 어떤 것들만 남고 어떤 것들은 잠장적 휴지기에 들어가고 있겠지.
그걸 떠올리는 데는 어떤 자극, 혹은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계기로부터일 것이다.
어젯밤, 몇 년 전에 썼던 일기들, 그러니까 홈페이지에 올렸던 잡담들을 뽑아놓은
종이다발을 펼쳐 보았다.
대학 초년생의. 사회에 불만이 많은, ㅎㅎ
엄마 집에서 들고온 몇 개의 책봇다리 속에 같이 끼어 온 그 뭉치에는
고통의 흔적들이 많다.
신경질적이고 우울하며, 언제든 곧 죽어버릴 것 같은 감상적인 배설들이.
처음엔 그런 것들에 무에 미련이 있어 이렇게 종이다발로 뽑아두고 여태 놔뒀었는지 싶게
굳이 나라고 할만한 것들이 아닌 것처럼, 남의 글처럼 읽어가다가
키득거리던 틈에 어느새, 내 몸이 그 때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익숙함이 그 거리를 금방 유야무야 만들어버린 것 같은.
난 이미 그런 것들과는 애저녁에 단절했다고 믿었는데
그런데, 날씨 탓인지
몸의 생리적 주기 때문인지
저녁에 들은 싸이먼 앤 가펑클의 베스트 모음집 때문인지
배가 고파서인지
그런 잡다한 일기들의 기운이 몸을 감고 있다.
기억을 선택적으로 뽑아낼 수 없다고, 저자인 신경학자는 말하지만
반복되는 기억에는 몇 개의 것들만 등장한다. 이른바 기억의 톱텐 같은 것.
그 것들 중 뺑뺑이 돌려 툭 튀어나오는 것들이 의식의 표면에 등장하는 것.
그리고, 아마도 그런 선택지들은 환자의 심리상태, 감정, 욕구등이 무의식적으로 불러온 것일 수도 있다고
저자는 보는 것 같다.
C부인은 행복한 향수를 불러들여 그 안에서 영혼의 안식을 얻고
M부인은 그 레파토리에 진절머리를 내며 벗어나고 싶어한다는데
나는 무슨 일로 그 일기장을 들추었던 것인지.
진절머리까지는 아니어도, 고개를 돌리고 싶은
항상 몸이 져릿거리는 것 같은 정신적 고통을 외면하고 싶은
그런 마음 뿐인데.
아마도 배가 고파서 더 그럴 것이다. 아마도 날씨 탓이겠지.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지는 않겠지만, 좋은 기억만 떠올리도록 하고 싶다.
그러니,
과거의 일기장은 호기심에라도 들추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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