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코가 삐뚤어진 날

1. 바카디를 마신 것은 분명 실수였던 듯하다.

많이 마신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해가 떠오를 줄은.

하루 사이에 세상은 하얗게 변해버렸고

그밤 새벽 공기는 스산했다.

하긴, 실수가 한 두 번인가.

벌써부터 2월을 걱정하고 있다.

 

2. 언제 어디로 날아가버릴지 모르는 비행이다.

2월에 관한 몇 가지 기억들이 떠오른다.

2월 *일. 물병자리인 그의 생일.

2월 ^일 27살, 내 삭발일.

2월 #일 불성실하게 가꿔오던 작은 꿈이 그대로 무너저내린 어떤 날.

 

언제나 겨울도 봄도 아닌 채로 애매하게

다른 달 보다 몇 일은 덜 된 채로 보내게 되는 달.

엄마가 나를 보고 말하듯, 덜 차서 태어난 놈.

덜떨어진다거나 비정상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앞니나 송곳니 하나쯤 빠져버린 틈으로 시린 바람이 드나드는 것 같은 달.

2월의 구름. 2월의 달. 그런 것들이 올해는 어떻게 지나가고 어떻게 뜰까.

 

3.  들큰한 술에 취해 하루 종일 몸살을 앓고

몽롱한 기운으로 바닥에 납작 업드려 신을 찾았다.

아침에 오렌지주스 한 잔. 꿀 물 한 잔. 숭늉 한 대접, 밥알 몇 개를 먹고

학원에 갔다.

말하고 엎드리고 말하고 엎드리고

옆 선생을 따라 벌떡 일어나 키위 생과일주스를 사먹었다.

입이 풀려버려 이런 날은 인생에 대하여 몇 권의 소설책을 쓸 것도 같다.

몇 권의 만화책을 보았다.

니체를 읽어야 한다. 니체를.

부르튼 입술의 얇은 피부 조각을 손으로 뜯으며 말했다.

2월엔 니체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