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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노들에 가서

그 사이 몇 차례의 만남 속에서 얻은 이야기들은 일단은 제쳐두기로 하고...

지난주에, 간만에 노들에 다녀왔다.
크리스마스 휴일에 신정 휴일까지 겹쳐 3주만이던가.
현장-인문학 프로그램을 어떻게 더 강렬하게 만들지 회의도 하고.
그간 진행한 강의들에 대해 구체적이고 좀더 직접적인 리액션이 있고 나서
두 번째 강의.

내 강의야, 그 리액션을 어떻게 반영할 수도, 반영하지도 못한 강의였지만
이번은 ...
마음은 앞서고, 뭘 할지 망상만 가득한 채.

신년이라고 쿠키를 만들어가자 해놓고는,
나는 바빠서 빠지고 안티고*가 바쁘게 품팔았다.
하여간 나도 쩜 정신을 다시 가다듬어야지.
그리고는 저번 학술제 때 노들에서 가져오셨던 물품들을 챙겨갔는데
이젤이며 작품들이며 모금함이며 옴팡 빠뜨리고 가서 민망하기 그지 없다.
하여간 나도 쩜 제발 정신을 다시 가다듬어야겠다.

어쨌거나...



S언니가 있다.
나보다 나이가 15살이나 많지만, 언니 말고 뭐라고 불러야할지 모르겠다.
이분은 주로 누워계신다.
휠체어라고 하기에는 뭔가-
일반 병동에서 쓰는 침대처럼 상체를 받쳐주도록 고정도 되지만
주로 누워계신다.
저번에 '세계장애인의 날' 투쟁에서 우연찮게 활동보조를 하게 되어 친해졌다.
울퉁불퉁한 길에서 휠체어 밀어드리고, 행진을 같이 하고, 전철도 타고, 식사도 입에 넣어드리고, 커피도 타드리고, 몸도 주물러드리고, 여섯 시간 정도? 함께 있었다.
그날 이야기를 길게 해야하는데-


암튼, 교실에 들어가니 언제나처럼 젤 먼저 오신(이 표현 참...) S언니에게 간만에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마주하니 역시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
잠시 뚫리는 듯한 귀가 다시 무뎌졌다고 밖에. 그래도 별로 당황하지 않는다.
계속, 들릴 때까지, 언니가 말을 하기 싫어질 때까지는 다시 묻는다.
쿠키를 가져와 입에 넣어드리고, 귤 드실래요? 물으니 싫다 하신다.

그간 뭐 하셨어요? 크리스마스랑, 신정에는?

이런 거 묻는 거 아니라는 사람들도 있다만- 왜냐하면 이분들은 특별한 일 없이
집에서 심심히 보내셨을수도 있고, 남들 축제처럼 놀 때 더 할 일이 없으시다는 얘길 들어서.
그래도 궁금했다. 뭐 하셨어요?

그냥 테레비 봤어.

테레비만 보셨어요?

응. 활동 보조인보고 틀어놓고 가라고 하면 틀어줘. 그런데 재미 없어.

... 그러시겠다. 저는 집에 테레비 없어서 보면 환장하는데. ㅋ

지나가던 죠*가 테레비 없다가 어디서 테레비 보게 되면 거기에 빠져든다는 이야길 하고 지나간다.
사실 나도 그렇다. 명절 때 집에 가면 테레비의 휘황찬란한 영상과 소리에 빠져들어가기 일수.
그러나 명절 때 내가 테레비 보는 것과 S언니가 테레비 보는 건 영 다를 것이다.
좀더 생각하자니 마음이 짓눌려서 얼른 화제를 돌렸다.

강의 시간에 졸지 마세요~
라고.
답변은,
왜 아아안 오와아아-

S언니는 왜 집에 안오냐고 묻는다.
저번에 활동보조할 때, 몇 시간이나 붙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헤어질 무렵 나를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하셨더랬다.
김치전과 소주를 하자며.
아까보다 더 심히 마음이 짓눌린다.
이건 답변을 피할 수도, 속일 수도 없다.
얼굴을 가까이 대고 표정이며 입모양을 읽는 대화에서는.
필연적으로 눈을 마주치게 되어 있다.

그거---- 위험하다는데요?

뭐가?

제가 언니 집에 가면, 뭐해요?

테레 비 보와. 우리 집에 테레비 있어.

음- 안돼요.

왜?

저 언니 집에 가면 못 나오는 거 아니에요?

흐흐흐. 어떻게 알았어! 못 가- 못 가아-

언니가 웃어서 다행이었다.
언니 집에 초대되었을 때부터, 나는 은근 거절의 말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지난 번에 만났을 때는, 꼭 갈게요. 근데 지금은 너무 바빠요- 라고 했었는데.
그건 너무 갑작스럽고 하여간 한 번 정말 가볼까 고민도 해봤지만-
가면 엄청 피곤할 것 같은 기분이,
아니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피곤이 몰려왔다.

거짓말을 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언니가 과자를 달라는 눈짓을 하면 입에 넣어드리면서 강의를 들었다.
강의 끝날 때 쯤. 언니가 나에게 뭔가를 말하려 했다.

네? 네?

저어-----거----- 좀------$%^!@...

여러 번 들어본 단어가 아니면, 시간이 걸린다.
한 다섯 번쯤 들었을 때 알아들었는데,
저거 좀 꺼주세요-
였다.
온풍기가 직사광선처럼 언니 얼굴 쪽으로 열을 뿜고 있었다.
그걸 꺼드리고는.

집에 가기 전에도 몇 마디를 나눈다.

다음에 뵈어요. 저는 먼저 일어날게요.

그래, 잘 가.

그런데요, 왜 저한테 존대말 섞어 쓰세요?

엉?

아까 저거 꺼달라고 할 때 존대말 쓰셨잖아요.

흐억.

그냥 반말 쓰세요. 그게 제가 편해요.

그럴까?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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