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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마을 연애 기사

오늘 새벽에 수유너머 위클리에 보낸 글.

여기다 올려놔도 되겄지?

 

> 글 쓴 후기

빈집의 연애를 들려달라는 제안을 받고 한동안 어리둥절하였다. 빈집에서 연애를 한다고 다른 데에서 연애하는 것과 얼마나 다른가? 일전에 수유너머 위클리에서 빈집 인터뷰를 할 때 내가 연애에 대한 감각도 달라지는 것 같다고 대충 지껄였던 것을 놓치지 않고 또 날카롭게 재질문을 하시니 이마에 땀이 한 줄기. 그것도 ‘야하게’ 써달라는 편집자의 요구를 들으면서 어째야하나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빈집의 탄생과 더불어 지금의 남친과 사랑을 나눠왔고, 빈집을 주 근거지로 하여 섹스를 비롯한 각종 연애활동을 하면서 살고 있지만 다른 사회체에서의 연애와 다른 점을 굳이 찾기는 어려워보인다. 그냥 난 둘이서만 살림을 차려 살기는 죽어라고 싫었을 뿐이다. 물론 결혼은 더더욱 싫었고. 내 사는 곳 근처에 남친의 친구들이 모여사는 빈집이 있었고, 남친에게  ‘나와 둘이 살림을 차릴 바엔 차라리 빈집에서 살아라!’로 시작한 것이 오늘날에 이르렀다. 내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연애질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 아마도 청탁의 의도에 부합하는 면이 있을 것 같긴 하다. 왜 가난한 연인들의 로망인 둘만의 동거기회를 발로 걷어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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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마을 연애통신

 

하룻밤 인연, 오래 오래~

처음 빈집을 찾아갔을 때, 나는 그곳이 연애를 위한 최적의 인큐베이터라고 생각했다. 당시 1인당 하루 숙박 2천원인데다가, 커플이 가면 화장실이 따로 연결된 제일 좋은 방을 내어주었으니까. 예닐곱 명이서 같이 밥을 차려멱는 집이니, 저녁 때쯤 놀러가서 숟가락 한 두 개 얹어 같이 식사를 하고, 술자리도 같이 하다보니 어색함이 금세 사라졌다. 무엇보다 내 경제적 사정이나 애인의 미래 비전, 둘 간의 결혼 계획 등을 묻지 않는 그들이 좋았다. 그럼, 오늘 밤, 여기서 묵어도 될까?

떼거리로 모여 사는 마을 사람들

 

앞서 말했듯이, 빈집에서 시작을 했든 혹은 밖에서 시작해서 빈집으로 거처를 옮겨왔든 빈집의 연애가 별다를 것은 없어보인다. 1대 多, 혹은 多 대 多의 섹스를 기대했을 분들의 기대를 져버리고, 아직까지 확인된 바로는 섹스는 고정된 사람과만 하고 있다. 또한  연인들만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프로그램이나 오락거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빈집의 연인들은 서로 같이 밥먹고, 영화보고, 고민을 얘기하고, 때때로 같이 잔다. 자기 코딱지로 상대방을 위협하며 장난치고 노는 것, 힘든 노동 뒤에 귀가한 애인을 위해 근사한 요리를 해놓는 것, 어쩌다 틀어지면 2박 3일 서로 말 안하고 신경전을 벌이거나, 가끔 고성을 내며 싸우는 것도 다른 연애와 똑같다. 그것이 다다. 다만, 가난했기에 고질적으로 반복되던 ‘PC방, 찜질방, 노래방, 영화관, 커피숍 순례’ 등을 이젠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데 큰 차이가 있고, 그런 토대로서의 집이 결혼이나 동거와 좀 다르게 구성된다는 것이 다르다. 하여튼, 둘이 만나 밥 한끼 사먹을 돈이면 빈집에서 이틀간 만화책도 보고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노래도 부르고 차도 마시면서 뒹굴뒹굴 할 수 있었으므로 커플들이 자본가들의 호구가 된 세상에서 빈집은 내게 구원을 던져주었다.

 

 

이제, 어디 갈까?

빈집이나 갈까?

 

 

 

가사노동과 섹스, 첨예한 문제

그뿐 아니었다. 일단, 빈집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가사노동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을 무척 비난하는 훌륭한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는 점은 내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하룻밤 묵는 것 뿐만 아니라 함께 생활을 해봐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으니까. 어찌됐든 애인과 늘 함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피했을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과 즐겁게 연애하되 좀더 여유를 갖고 탐색하고 싶었던 나에게는 자연스레 빈집이 날마다의 데이트코스가 되었다.

 그리고 어쩌다 2년여 세월이 지났다. (중간에 디따 많이 쓴 커플룸 논쟁은 m군의 반대로 싣지 못했다. 나중에 올려야지. ㅎ) 좌충우돌, 여러 공방들 끝에 나는 애인과 함께 빈집에서 한 침대를 쓰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한 방에 두 개의 이층침대를 넣어서 건너편 이층침대에는 친구 2명이 살고, 나와 애인이 이쪽 이층침대에 나눠 자기 시작했다.  물론 이제는 아예 이층침대의 한 칸에 애인과 함께 겹쳐서 자곤 한다. 둘이서 뭘 하느냐고? 같이 책보다 자거나, 같이 일본어 세미나 준비를 하고 자거나, 같이 맥주를 담거나, 밥 하고 설거지 하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한다. 그게 연애냐고? 활동 하나 하나가 이벤트도 아닌데, 그만치 뿌듯하고 마음을 가득 채우니 아니라고 할 것도 없다. 가끔 산책도 가고, 영화도 보고, 명동에 나가 쇼핑하도 하고 주말에 같이 텃밭에 가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함께 사는 다른 사람들과도 나눌 수 있어 좋다. 정치적 입장에 따라 사람들을 선별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충 사는 사람들끼리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입장들이 비슷해서 주말데이트가 두리반에 함께 다녀오기나 팔당 유기농단지에 4대강 반대하러 떼거리로 자전거를 타고 가기가 되기도 했는데, 모든 게 애인과 함께 하면서 동시에 만인과 함께하니 즐겁다. 물론 때로 만인들을 병풍삼아 둘만의 은밀한 비밀도 만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둘이어서 외로울 것 같았어.”

“둘만 있으면 서로 너무 의존할 것 같았어.”

“둘만 지내기엔 공간이 너무 아까웠어.”

 

빈마을에서 연애를 하는 사람들에게 왜 둘이 독립하지 않는지 물었을 때 나온 대답들이다. 그밖에도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대개 저러하다. 내 애인을 보여주고 더 넓은 관계망 속에서 연애를 하고 싶고, 그 연애를 더 넓게 확장해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마땅한 토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어디든 떼거리 속으로 들어가길 권한다.

 

 

 

빈집, 떼거리 속의 연애일기

2010. 6. 1(화) 날씨 맑음.

제목 : 연애는 밥이다. (빵도 됨 ㅡ,.ㅡ;;)

 

 

하루 하루가 사랑하기에 바쁘다. 오늘은 일단, 열심히 집 청소를 하기로 맘먹는다. 1이 들어오면 반짝반짝한 거실을 보고 마음이 환해지길. 지난 주 내가 하도 집을 안 치우고 설거지도 잘 안 해서 그가 좀 불쾌했을 것 같다. 컴퓨터를 붙잡고 있던 애인을 부른다.

“2~, 우리 빨래나 돌릴까?”

“그럴까?”

2는 내 공식 애인이다. 그가 세탁기를 돌리는 동안 나는 숙련된 솜씨로 샌드위치를 싼다. 지난 두 달간, 테이크아웃 커피점에서 익힌 실력을 잃지 않도록. 나는 공식애인 2와 동거인 1과 4, 그리고 다른 집에 사는 C와 함께 만들 가게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팔 계획으로 일을 해왔다. 지난 주, 그 커피점을 그만두고, 오늘은 그 샌드위치를 팔아볼만한 가게자리를 알아보러 부동산 몇 군데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짐을 싸다가, 마루에서 자전거바퀴를 수리하고 계신 6님의 샌드위치도 하나 만들어 놓는다. 6님은 지금 약 보름간 빈마을 각 집을 돌면서 단기투숙을 하고 계신 손님이다. 우리 집에 묵으신 지는 일주일쯤 되었는데 아직까지 어색하고 대화도 없던 터에, 잘 되었다.

“6님, 제가 쌀 앉혀놨어요. 밥 꼭 해주세요~.”

“네.”

“아참, 그리고 오늘이나 내일 밤에 저희랑 방 좀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 커플이 그 방을 쓰고 싶어서... 제 침대는 이거고, 2의 침대는 이쪽이에요. 둘 중에 어디서 주무셔도 돼요. 괜찮으시죠?”

“네~”

이제 겨우 눈을 마주친다. 그래, 백수로 돌아오니 집안 곳곳의 사물들이 눈에 들어오고, 무엇보다 함께 사는 사람에게 정다워진다. 언젠가는 풀어야 할 숙제다. 노동자로 살면서도 연애를 잘 하는 것 말이다. 밖에서 자신의 생체 에너지를 쪽쪽 빨리고 돌아와서 보면 살림은 엉망이고, 애인 얼굴 한 번 쳐다보고 잠들기 일쑤인데 어떻게 갈등이 없겠는가. 흉내라도 낸다고 설거지며 밥이며 몇 가지 일들을 하다보면 하루가 다 간다. 내가 30대라서 그런 것인가?

 

 하여간 애인과 동네 부동산 몇 군데를 돌았다. 마을에서 함께 꿍꿍이를 하는 이들은 서로 충분히 사랑하면서 살아가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도록 하루에 4시간 정도 일하고 2만원씩 벌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려면 하루 4시간, 주5일, 한 달에 20일을 일하면 목표치에 도달한다. 물론 나는 좀더 욕심내서, 8시간 일하고 80만원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은 하지만 당장은 어째도 상관없다. 지금은 월 40만원만 벌어도 내가 함께 사는 이들과 사랑을 나누는 데 크게 힘들 일이 없다. 어머니 부양이 막막해서 좀 그렇지만.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가게의 모양새를 구상 중이다. 나는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종으로 하고 싶은데, 누구는 헌책방을, 누구는 에코백에 그림을 그려 팔 궁리 중이며, 심지어 쓰레기더미에서 쓸 만한 물건들을 건져내 그걸 싸게 팔아보고 싶다 사람도 있으니 자리 구하기가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이번 시장조사에서는 그럴만한 자리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우리들의 지속가능하고도 애절한 사랑을 위해 꼭 달성해야 한다. 정말 그것만 벌어도 사랑이 유지될 수 있겠냐고 물으신다면,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 그 가계를 연다는 것만 말하고 싶다.

 

지난 겨울, 가게 알아보러 나온 빈마을 사람들

 

집으로 돌아오니, 사방이 조용하다. 애인과 함께 새송이버섯을 구워 저녁상을 차리다가 문득 떠올린다. ‘아니, 일 나간 4는 왜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건가?’ 전화를 걸어본다. “4,  어디셔?” “응, ‘집2’.” “언제와?” “응, 곧.” ‘집2’는 함께 마을을 이루고 사는 집 중 하나이다. “아, 나 같아도 C가 '집2'에 살면 거기서 최대한 오래 있다가 돌아오고 싶을 것 같아.” 괜히 4를 핑계삼아 내 심정을 읊는다. 4는 옴니아2 휴대폰이 택배로 도착하기를 기다리느라 ‘집2’에 가 있다고 말했고, 아마 실로 그럴 것이다. 나는 애인과 이렇게 가까이 있고, 한 침대에서 자는데도 늘 보고 싶고 옆에 있고 싶은데, 4는 정말 괜찮은 걸까? 아니면 C는?

 

 

<빈마을 연애현황도>  2010. 6월 현재

 

1이나 4는 각자 자기 애인이 있다. A와 C가 그들. 원래는 1은 애인과 함께 ‘집1’에 같이 살았는데, 얼마 전 마을 사람들 모두 사다리타기를 해서 공간을 재배치하는 바람에 지금은 애인이 다른 집에 가 있다.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집2’에. 4도 애인과 같이 살다가 사다리타기를 했는데, 애인은 ‘집2’이 나오고 4는 ‘집1’이 나와서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물론 3개월간만 임시적으로 배치를 해본 것이니까, 곧 같이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내 애인과 같은 집에 머물게 되었다. 어쨌거나 빈집은 연애의 틀을 이리 저리 비틀어 좀더 유연하고 확장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확실하다. 그놈만 사랑할 게 아니라, 모두와 함께 사는 가운데 그와 정분을 키워가게끔 강제하는 구조랄까. 물론 연인들은 서로 자주 집들을 왕래하면서 만나고 사랑을 나누는데, 아직까지 이를 방해하는 세력은 없다.

 

  내 연애는 2년이 지나도록 새롭다. 왜 그럴까. 누군가는 빈집에서의 연애 가 남다른 점을, 밀도의 차이로 말했다. 같이 밥먹고, 청소하고, 잠자고, 낯선 손님들과 어울리는 생활은 둘이서 밖에서 밥먹고, 잠자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과는 많이 다를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보다 더 크게 다른 점은,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연애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점인 것 같다.  나아가 모든 관계가 연애처럼 따스할 수 있기 때문인 것도 같다. 굳이 홀로 모든 문제를 헤쳐나가야 할 필요가 없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의 옷을 개주고, 정성껏 커피를 내려 마시며 수다를 떠는 시간이 있으니까 말이다. 어느 순간에는 그들을 ‘애인’이라 하기엔 어색해도 동반자로 부르기엔 어색함이 없을 때가 있다. 요는 이것이다. “떼거리로 연애하자. 이별도 홀로됨이 아니고, 만남도 구속이 아닌. 시작부터 끝까지 마음껏 자유롭게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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