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아둘 글 - 2007/02/13 22:38

"예전 잠수함은 공기를 환기해야할 시간을 알려주는 특별한 기계가 없었지. 그래서 흰토끼를 태우고 다녔어. 함내 산소가 부족해지면 토끼들은 먼저 죽거든. 토끼가 죽으면 그로부터 잠수함 안의 인간들은 5~6시간밖에 살지 못한다는 걸 뜻하지. 함장은 최후의 결단을 내려야 해. 해수면 위의 구축함에게 함포를 맞아 침몰할 각오를 하고 부상하여 산소를 채우던가, 아니면 해저에서 몰살을 당하던가. 어느쪽이든 죽는 건 마찬가지야. 죽을 땐 서로 권총을 마주 쏘아 옥쇄하는 게 관습이었지."


"내가 탔던 잠수함은 산소측정기가 있었어. 그런데 난 이상하게도 산소가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금세 알아챘던 거야. 사람들은 내 민감성을 조롱했어. 그러다가 그들도 나중에는 측정기를 보는 대신 날 관찰하게 되었어. 산소의 부족을 난 기계만큼이나 정확히 알아맞췄으니까. 산소부족 6시간을 먼저 알아내는 나와 흰 토끼. 이건 천부적인 재능이야. 그런데 얼마전부터 난 숨이 가빠오는 걸 느꼈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사회 전체 공기 말이야. 현대사회은 기계와 기계노예에게 봉사하고 있어. 사회가 마치 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말이지. 인간은 모두 질식할 운명에 놓여 있으면서도 그걸 느끼지 못하고 있어. 그들은 아직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움직인다고 믿는 모양이야. 내가 타고 있던 잠수함처럼, 오염된 공기 속에서 그걸 모르고 있는 승무원들과 마찬가지지. 흰토끼가 죽고 나면 그들이 살 수 있는 시간은 6시간 뿐이야. 난 모든 것이 끝장나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 흰토끼가 죽고나서의 6시간. 흰토끼가 죽은 이상 행복이란 있을 수 없어. 종말이 오기까지 남아있는 공포의 몇시간 뿐이지."


- 수용소에 끌려가기 전 드로이얀 코루가의 대사, '25시'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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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3 22:38 2007/02/1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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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진희 2007/02/14 0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나마 살아는 계슈~

  2. 뭉치 2007/02/14 1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가~ 살아있지! 잘 지내시나? 보고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