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기장 - 2009/12/07 21:32

 

* 권두섭변호사가 '한내'에 기고한 글

 ( http://hannae.org/giwa/newsletterBoard.do?method=itemView&regNo=-218)에 대한..

 

 

선입관이나 편견은 여러개가 모이면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곱해진다. 하나의 편견은 의심을 낳지만 두 개이상이 조합되면 확신이 된다. 그 무모한 확신이 때로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집단학살이라는 비극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얼굴’을 인식하는 뇌의 영역을 따로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른바 ‘얼굴인식불능증’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인 사물은 구분할수 있지만, 사람의 얼굴은 구별하지 못한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자동차사고로 뇌의 일부기능에 손상을 입은 ‘링컨’씨. 그는 시각적으로 상대의 얼굴을 완벽하게 볼 수는 있지만 그 얼굴이 누구 얼굴인지는 인식하지 못했다고 한다. 사람의 얼굴에 대한 또다른 흥미로운 연구는 얼굴표정을 통해 상대방의 감정을 인식하는 인간의 능력에 대한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해 인종간 교차연구를 진행했던 연구자들에 따르면 인종과 문화가 달라도 사람은 상대방의 얼굴표졍을 보고 기쁨, 슬픔, 분노등 대표적인 몇가지 심리상태를 거의 정확하게 맞출수 있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의 인식능력은 자신의 생존을 최대한 보장할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앞의 예들로부터 가능한 추론은 인간의 생존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바로 동족인 ‘호모사피엔스’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고 그가 적인지 동지인지, 혹은 나에게 우호적일지 공격적일지를 빨리 판단해서 그에게 다가갈지 아니면 도망칠지를 정확히 선택할수 있는 인식능력을 진화과정에서 갈고 닦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 능력은 아직도 무척 한계적일뿐이어서 인류는 무수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으며 지구상에서 동족에게 가장 악랄한 존재라는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당신은 왼손잡이인가? 혹시 귀가 늘어졌다거나 이마나 광대뼈가 다른 사람들보다 튀어나왔는가? 치아가 불규칙하거나 날때부터 코가 구부러져 있진 않은가? 당신이 이런 신체적 특징을 가진 사람이라면 21세기에 살고 있음을 감사하시라. 이탈리아의 범죄학자 롬브로조는 앞에 열거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자들이 교화 불가능한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생래적 범죄인’이기 때문에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미국에서는 그의 영향을 받은 단종법이 1958년까지 존재했었고 그로인해 6만여명이 생식기를 제거하는 단종형을 받았다 하니 그런 야만스런 시대에 이 얼굴로 태어나지 않은게 그저 다행스러울 뿐이다. 그렇지만 21세기 지금의 사회에서도 얼굴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의 힘은 살벌하게 강력하다. 나의 얼굴과 민주노총에서 일하는 상근자라는 사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은 때로 이 사회에서 지울수 없는 카인의 표식으로 인식되곤 한다.

 

2000년 이랜드투쟁이 한창일 무렵, 생판 모르는, 얼굴한번 본적 없는 사람이 나로인해 전치8주의 부상을 입었다며 엄히 처벌해달라고 고발장을 날렸다. 구사대 역할을 하던 입점업체 주인 한명이 집회현장에서 다쳤는데, 집회사회를 자주 보던 내게 분풀이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었다. 경찰, 검찰 조사과정에서 억울하다고 주장했으나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심지어 나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마저 평소의 내 행실을 익히 알고 있는데 자기한테까지 거짓말이냐며 자백을 강요했다. 그 어처구니없는 소동은 어렵게 찾아낸 동영상과 난생처음 당해본 거짓말탐지기 조사 끝에 일단락됐다. 나의 무죄가 밝혀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거짓말로 나를 무고한 자들은 명백한 증거앞에 무너졌으나 이 사회의 옹골찬 편견의 벽은 더욱 단단하게 나를 가로막았다. 무죄를 선고한 1심 판사는 법정에서 “법적으로는 무죄이나 도덕적으로 당신은 유죄”라며 “오죽했으면 그 선량한 상인들이 무고까지 했겠냐”고 나를 나무랐고, 검사는 항소포기를 제안하던 변호사에게 “범인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항소하겠다. 그자의 얼굴을 봐라!”며 큰소리를 쳤다고 한다. 검사부장은 나에게 “그자들이 무고한 것은 인정되지만 민주노총이 주최한 집회에서 사람이 다쳤다면 누군가 책임져야하는것 아니냐? 그러니까 당신이 책임져라”며 엉뚱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억울하게 무고를 당해 경찰, 검찰, 법원에 십수회 들락거리고, 실험실의 개구리마냥 몸 여기저기에 전선을 덕지덕지 붙인채 거짓말탐지기 조사까지 받아야 했던 내게 누구도 사과는 커녕 위로조차 하지않았다. 모든 국민의 평등함을 선언한 대한민국 헌법 11조에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고만 되어있을뿐 '생김새'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지 않아서였을까? 세상은 내게 너무도 당당했고, 그 가혹한 당당함에 깊이 베였던 나는 아직도 불심검문을 하는 경찰따위를 볼때마다 괜히 주눅이 들곤한다. 얼굴을 뜯어고치든지, 세상을 뜯어고치든지 해얄텐데 내몸에 칼대긴 너무 억울해서 세상을 바꾸는게 내가 행복하게 살수 있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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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7 21:32 2009/12/07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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