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2004/09/13 23:48
이탈한 자가 문득
- 김중식
우리는 어디로 갔다가 어디서 돌아 왔느냐 자기의
꼬리를 물고 뱅뱅 돌았을 뿐이다 대낮보다 찬란한 태
양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한다 태양보다 냉철한 뭇별
들도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므로 가는 곳만 가고 아는
것만 알 뿐이다 집도 절도 죽도 밥도 다 떨어져 빈 몸
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보았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
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
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
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 이탈 자체가 '획'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진실,
'획'을 긋는 일이야말로
이탈한 자들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진리를 깨닫기까지
한 십년쯤 걸린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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