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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야 하는 이유-문정희시

                                    사랑해야 하는 이유

 

                                                문정희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세상의 강물을 나눠 마시고
                                 세상의 채소를 나누어 먹고
                                 똑같은 해와 달 아래
                                 똑같은 주름을 만들고 산다는 것이라네
                                 또 하나의 이유는
                                 세상의 강가에서 똑 같이
                                 시간의 돌멩이를 던지며 운다는 것이라네
                                 바람에 나뒹굴다가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나뭇잎이나 쇠똥구리 같은 것으로
                                 똑같이 흩어지는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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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가 있다는게 맞나요?

 

인연설 - 한용운

사랑하는 사람앞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안합니다
아니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
사랑의 진실입니다.

잊어버려야 하겠다는 말은
잊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 잊고 싶을때는 말이 없습니다.

헤어질때 돌아 보지 않는 것은
너무 헤어지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웃는 것은
그만큼 그사람과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알수 없는 표정은 이별의 시점입니다.

떠날 때 울면 잊지 못하는 증거요
뛰다가 가로등에 기대어 울면
오로지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함께 영원히 할 수 없음을 슬퍼말고
잠시라도 함께 할 있을 수 있음을 기뻐하고
더 좋아해 주지 않음을 노여워 말고
애처롭기까지 한 사랑을 할 수 있음을 감사하고

주기만 하는 사랑이라 지치지 말고
더 많이 줄 수 없음을 아파하고
남과 함께 즐거워한다고 질투하지 말고
그의 기쁨이라 여겨 함께 기뻐할 줄 알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이라 일찍 포기하지 않고
깨끗한 사랑으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나는 당신을 그렇게 사랑하렵니다.

'인연설' -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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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묻은 기장떡

추석날이다. 나는 모처럼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신바람 나 있다. 내가 일중독일까? 생각해보았지만 일중독은 아니다. 나는 내일 집회에 나갈것이고, 오늘은 그 내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목적없이, 일만 하는 사람은 아니니, 일중독자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오늘 가장 밀린 일이며 숙원이던 00동지의 직업성질환 관련 소견서를 완성하지 않았던가?

 

오늘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백혈병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데 온몸에서 열이 다 난다. 너무 일을 많이 해서인지 (오늘은 정말 단 5분도 한눈 팔지않고 일했다)? 아니면 아까 땅에 떨어진 사과와 삶은계란때문인지? (물론 사과와 계란에 다시 열을 가하여 세균을 죽이려고 했지만 혹시 몸속으로 세균의 침투가 너무 강했나?)

 

엉겹결에 땅에 떨어진 사과조각과 삶은계란조각을 주워먹은 것을 생각하면서, 옛일이 떠오른다. 우리가 살던 옛날에는 정말 땅에 떨어진 것들을 다 주워서 먹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어릴때, 어느 장날,엄마와 아버지가 사과가 든 궤짝들을 한 리어카에 싣고 충주 시내에 나가셔서 파신후, 모처럼 영화를 보시겠다고, 영화관앞에 간 적이 있다. 나는 물론 뒤에서 졸졸 따라가기만 했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정말 영화를 좋아하셨는데, 충주에서도 30분이나 떨어진 달천이란 곳은 그 당시에 전기도 없는 실정이었으니, 라디오조차 없었던 것 같았다. 지금도 그 극장이 남아있다. 충주에는 두개의 극장, 아시아, 아카데미극장이 있었다. 아시아, 아카데미는 정말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 어렸을 때는 똑같이 '아'로 시작한다는 생각에 두개를 항상 비교하게 되었는지, 아니면, 본질을 몰랐을지나, 표면상으로 두개의 극장소유주들이 충주에서 꽤나하는 부자들이라는 소문과 두 극장이 라이벌이라는 소문 등등으로 항상 두 극장의 이름을 떠올리게 되었는지 모른다.

 

어쨋든 극장앞에서 표를 사고, 아버지는 어디를 급히 다녀오시더니 기장떡을 사오셨다. 그때 그 떡은 술떡이라고도 불리웠는데, 흰쌀에 막걸리를 넣고 발효한 후, 떡판위에 맨드라미를 올려놓고 찌는 떡이다. 그때는 왜 맨드라미를 떡위에 얹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요새 맨드라미꽃의 꽃물이 훌륭한 음식재료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때, 아버지와 엄마는 저녁도 굶으시고, 영화보기를 택하였고, 저녁대신 아버지가 사오신 것이 이 기장떡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풀사.. 누가 떨어뜨렸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기장떡이 땅에 떨어져 흙투성이가 되었다ㅠㅠ. 아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그 순간의 장면... 그것은 아직도 몇십년이 지나도록 나의 머리속에서 내가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할 때마다 떠올려지곤 한다.

 

그때, 우리는 그 흙투성이의 기장떡에서 흙을 떼어내면서 떡을 맛있게 먹었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본 영화는 아마도 "월하의 공동묘지" 였던것 같다.. 그때는 그런 영화만 있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그당시를 떠올리시기 싫으시겠지만, 이제야 나는 그분들이 정말 행복하셨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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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미플루 처방, 고소득층.9세이하에 집중"

바로 이것이 문제이다!!

"타미플루 처방, 고소득층.9세이하에 집중"

 

 
"타미플루 처방, 고소득층.9세이하에 집중"

(서울=연합뉴스) 장하나 기자 = 국내 신종플루 사망자가 7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신종플루 감염자 치료에 사용되는 항바이러스제 처방이 고소득층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국회 보건복지가족위 안홍준(한나라당) 의원이 건강보험관리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신종플루 확산 초기였던 지난 6월까지 모두 4천139명이 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 4천131명, 리렌자 8명)를 처방받았다.

이중 타미플루를 처방받은 4천131명을 소득분위별로 구분했을 때 상위 10% 계층인 10분위의 처방 인원은 612명(14.8%)로 하위 10% 계층인 1분위 처방 인원 178명(4.3%)보다 3.4배 많았다.

상위 20%인 10분위와 9분위 합계는 1천215명으로 전체 타미플루 처방인원의 29.4%에 달한 데 반해 하위 20%인 1분위와 2분위 합계는 356명으로 8.6%에 불과했다. 상위 50%에 해당되는 10∼6분위 합계는 2천912명으로 전체 처방 인원의 70.5%를 차지했다.

안 의원은 "이는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했던 2006∼2008년의 경우 하위 10%의 처방실적이 상위 10%보다 4.9배 높았던 것과 정반대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지역별로는 서울 722명(17.5%), 경남 713명(17.3%), 부산 693명(16.8%), 충남 496명(12%), 경기 359명(8.7%) 등의 순이었으며, 서울시 구별로는 강남구 63명, 서초구 50명, 송파구 39명 등으로 소위 `강남 3구'가 강서구 96명, 성북구 65명에 이어 처방이 많이 이뤄졌다고 안 의원은 밝혔다.

한편 타미플루를 처방받은 환자 가운데 9세 이하 어린이가 2천492명으로 전체의 60.3%를 차지했으며 10대가 329명(8%)로 그 뒤를 이은 것으로 조사됐다.

hanajj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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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A/H1N1,SWINE flu)

1. 신종플루가 무엇인가?

 

신종플루는 A 타입 바이러스이며, H1N1,SWINE flu (돼지바이러스)라고 불리운다.

H와 N은 바이러스껍질의 표면에 있는 두개의 글리코프로틴(Glycoprotein)을 나타낸다. H는 헤마글루틴(Haemaggluteins)을 나타내며, 바이러스가 어떤 세포속으로 들어가기위해 닻으로 고정 (또는 부착)시키듯 단단히 고정시키는 작용을 한다. 이 고정(또는 부착)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바이러스는 진입하지 못한다. 이 헤마글루틴은 항원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 이것을 이용하여 항바이러스백신을 만들고 있다.

N은 뉴라미니다아제 (Neuraminidase) 의 약어이다. 바이러스표면 단백질의 1/4을 차지하는 이 효소는 바이러스가 숙주세포(Host cell) 을 침입할 때, 점액(Mucous protein)을 소화시킴으로써 숙주세포를 뚫고 들어가는데 용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후에, 새로 합성된 바이러스를 방출하는데도 기여한다. 이 뉴라미니다아제는 너무 중요하여 이것으로 의약품을 만든다. 바이러스치료약인 Oseltamivir(Tamiflu  타미플루)와 Zanamivir (Relenza 레렌자)는 이 뉴라미니다아제의 작용을 억제하는 약이다.

이 바이러스는 매우 변종을 잘한다. H 분자도 16개이상이나 된다. 또한 뉴라미니다아제도 서로 다른 구조적 아류조직을 가지고 있어서, 헤마글루틴 변종들과 조합을 이룰경우 우리는 매우 다른 여러종류의 변종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가 현재 H1N1에 시달리고 있다면, 1957년에는 H2N2가 유행했었다.

 

2. 우리가 희망을 가져야 되는 이유?

그러나, 바이러스는 변종과 적응력으로 인해 어떠한 경계도 없는 것일까? 다행히도 "경계"가 있다. 미국 국립감염병연구소(NIAID)에 의하면 인류에게는 헤마글루틴과 뉴라미니다아제의 조합중 오직 3가지의 조합들 - H1N1, H2N2, H3N2 만이 남아 있다. 이것은 플루바이러스가 숙주에 적응되는데 어떤 한계가 있다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플루바이러스의 또 하나의 한계는 숙주종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인플루엔지 바이러스는 우연히 동물들로부터 인간에게로 전파되기도 하지만, 인간에서 다른 인간으로 전파되지는 않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H5N1의 경우 과거 10년동안 수백번이나 인류에게 넘나들었지만 (Crossover), 결코 그 이후에 감염을 유발하지는 않았다. 오직 일부의 교차바이러스, 즉 돼지로부터 인간에게 넘어온 일부 바이러스들만이 인류에게 1918년에 광범위한 감염을 일으킨 적이 있다. 그이후, 성공적인 교차바이러스에 대한 연구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교차가 일어나는 과정과 환경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 2009년 현재 이러한 교차가 다시 발생하는 듯 하나, 이것은 유전자조합의 결과로 인한 것 같지는 않다.

최근 미국 국립감염병연구소(NIAID)에 있는 3명의 바이러스연구가들은 최근 H1N1의 진화의 역사를 추론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현재 유행하는 바이러스는 두개의 서로 연관이 없는 두 종의 스윈(swine)바이러스들의 후예들인데, 그들 중 하나는 1918년 인체미생물의 유도체(파생물)로, 1918년이래로 진화론적인 수법을 써서, 인간과 돼지에서 새로운 유전체의 배열로 이루어진 새로운 바이러스의 후손들을 한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탄생시키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바이러스와 진화의 역사가 미래에 대해 말해주는 것이 무엇인가? 현재 학자들은 왜 현재의 유행이 1998년이나 2005년에 발생하지 않고, 2009년 멕시코에서 발생한 것인가를 밝혀내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Gallaher는 Taia Wang과 Peter Palese가 지적했듯이, 병을 유발하는 가장 작은 바이러스 단백체는 PB1-F2인데, 이 종은 1918년, 1957년, 1968년에는 존재했었으나, 다행히도, H1N1는 이것을 갖고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두번째, 우리가 희망을 갖게되는 이유는 우리는 1918년때와는 달리, 폐렴을 예방할 수 있는 많은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가 개발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Morens와 그의 동료들이 현재는 "유행하고 있지만 위험도는 감소하는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즉 바이러스가 최소한의 병원성을 가지고, 최대로 전파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진화론적 선택을 한 결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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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랑은

 

 

                                      So true a fool is love that in your will
                                      (Though you do anything) he thinks on ill.

 

                                      사랑은 그대 뜻에 따르는 충실한 바보라서
                                      그대가 무엇을 하시든 나쁘게 생각지 않아라.
                                        (셰익스피어 『소네트집』57 중에서. 신영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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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추상'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인간의 죽음의 '추상'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해 매우 너그럽다. 특히 죽음을 맞이한 어떤 사람에 대해 그의 일생을 돌아보고, 그를 기릴 수 있는 단 한가지의 것이라도 추모한다. 그것은 인간의 감성이 이성보다 더 강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인지상정때문일까? 아니면 죽음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힘에 굴복당하는 것에 대한 반항일까?

 

그런데, 그 추모의 내용이 매우 추상적이다. 즉, 한 인간의 전체와 전체역사를 보지않고, 어떤 한가지를 추상화해서 보는것 같다. 이래서 '구체에서 추상'에서만 멈춘다면, 한 인간의 전체의 역사를 볼 수 없다. '부정의 부정'에서 보듯이, '구체에서 추상'으로 간 다음 다시 '추상에서 구체' 상승했어야 하지 않을까?

 

즉, 한 인간의 본질을 하나 하나 끄집어내서 (추상), 다시 이것들을 조합함 (구체)으로써 그 인간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김대중대통령, 그의 전체에서 끄집어내 진것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가 젊은시절 독재에 대항했던 민주화투쟁속에서 겪었던 고통, 평화 (소위 대통령이 되어서 북에 대한 햇볕정책), IMF를 극복했다!!, 끝까지 MB정부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려했다! 이것이다.

 

나도 그의 5번의 죽임을 당할뻔한 위기, 사형선고를 받고도 의연했던 행동들을 보면서 그야말로 나의 뇌의 인식작용을 통한 추상의 결론은 그가 한때 '자랑스러웠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의 일생전체를 통해서는 분명 아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도 온몸을 다해서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 바로 부르조아민주주의가 아니던가? 그는 마치 유럽에서 봉건귀족정권에 맞선 신흥부르조아계급을 대표하듯이,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일어서는 자유부르조아계급의 지도자였던 것이다.

 

지금 언론에서는 아무도 그가 1998년 대통령이 된 바로 그 시기에 IMF를 극복한다고 하면서 노동자계급에게 칼을 휘둘러 얼마나 많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했는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1997-2001년까지 기아, 현대, 대우등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의 칼날속에서 고통을 당했던가? 그러는 와중에 그는 IMF구조조정을 통해서 부르조아계급의 재편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아무도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고, 노동자의 임금이 절반으로 되었던 시작이 바로 김대중정권의 파견법을 위시한 "노동악법의 도입"때문이란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같은 항거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시기도 바로 2001년 김대중정권말기때였다.

 

그가 이루어놓은 업적, 자유부르주아민주주의는 분명 군사독재시기에 쟁취해야할 목표였다. 그러나, 한 측면만 추상하여 본다면, 구체적인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며, 김대중이란 인물의 전체를 그리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그를 둘러싼 집단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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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추상에 대하여 생각한다

인간의 죽음의 '추상'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해 매우 너그럽다. 특히 죽음을 맞이한 어떤 사람에 대해 그의 일생을 돌아보고, 그를 기릴 수 있는 단 한가지의 것이라도 추모한다. 그것은 인간의 감성이 이성보다 더 강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인지상정때문일까? 아니면 죽음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힘에 굴복당하는 것에 대한 반항일까?

 

그런데, 그 추모의 내용이 매우 추상적이다. 즉, 한 인간의 전체와 전체역사를 보지않고, 어떤 한가지를 추상화해서 보는것 같다. 이래서 '구체에서 추상'에서만 멈춘다면, 한 인간의 전체의 역사를 볼 수 없다. '부정의 부정'에서 보듯이, '구체에서 추상'으로 간 다음 다시 '추상에서 구체' 상승했어야 하지 않을까?

 

즉, 한 인간의 본질을 하나 하나 끄집어내서 (추상), 다시 이것들을 조합함 (구체)으로써 그 인간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김대중대통령, 그의 전체에서 끄집어내 진것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가 젊은시절 독재에 대항했던 민주화투쟁속에서 겪었던 고통, 평화 (소위 대통령이 되어서 북에 대한 햇볕정책), IMF를 극복했다!!, 끝까지 MB정부를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려했다! 이것이다.

 

나도 그의 5번의 죽임을 당할뻔한 위기, 사형선고를 받고도 의연했던 행동들을 보면서 그야말로 나의 뇌의 인식작용을 통한 추상의 결론은 그가 '자랑스럽다'는 것을 느낀다. 그는 분명 여러가지 행동의 측면에서 범부와는 달랐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도 온몸을 다해서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인가? 바로 부르조아민주주의가 아니던가? 그는 마치 유럽에서 봉건귀족정권에 맞선 신흥부르조아계급을 대표하듯이,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일어서는 자유부르조아계급의 지도자였던 것이다.

 

지금 언론에서는 아무도 그가 1998년 대통령이 된 바로 그 시기에 IMF를 극복한다고 하면서 노동자계급에게 칼을 휘둘러 얼마나 많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했는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1997-2001년까지 기아, 현대, 대우등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의 칼날속에서 고통을 당했던가? 그러는 와중에 그는 IMF구조조정을 통해서 부르조아계급의 재편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아무도 비정규직이 급격하게 증가하게 되고, 노동자의 임금이 절반으로 되었던 시작이 바로 김대중정권의 파견법을 위시한 "노동악법의 도입"때문이란 것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같은 항거가 일어나기 시작했던 시기도 바로 2001년 김대중정권말기때였다.

 

그가 이루어놓은 업적, 자유부르주아민주주의는 분명 군사독재시기에 쟁취해야할 목표였다. 그러나, 한 측면만 추상하여 본다면, 구체적인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이며, 김대중이란 인물의 전체를 그리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그를 둘러싼 집단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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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5일민중대회와미학강좌를같이합시다]

이 연구토론회가 끝나고 바로 전국민중대회에 결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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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 외에는 다른 길은 없다!-―전국의 노동자여,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투쟁을 즉각 사수하고 엄호하자

투쟁 외에는 다른 길은 없다!

―전국의 노동자여,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투쟁을 즉각 사수하고 엄호하자

 

 

 

국가 권력과 쌍용자본은 지금 용서받지 못할 반인륜적인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추악하게도 저들은 용역 깡패들을 동원하여, 그리고 자본의 위력 앞에 노예적으로 굴복한 옛 동료 노동자들, 머지않아 그들 역시 내팽개쳐질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집단해고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의 몸부림을 폭력으로 짓밟고 있다. 국가 권력, 경찰은 저들의 폭력을 엄호하고 있을 뿐 아니라, 투쟁을 지지ㆍ엄호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들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가하고 있다. 경찰은 심지어 헬기까지 동원하여 공장 안의 쌍용 노동자들과 공장 밖에서 연대투쟁을 벌이는 노동자˙ㆍ민중들을 짓밟고 있다.

 

 

쌍용차가 오늘의 경영부실에 빠진 것이 만의 하나라도 노동자들의 탓인가? 쌍용의 노동자들에게 죄가 있다면, 박봉에 뼈 빠지게 노동한 죄밖에 더 있는가? 그런데도 저들 국가와 자본은 왜 그 수많은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며, 그토록 잔인하게 폭력을 휘두르는가? 바로 자본의 끝없는 탐욕과 비이성을 위해서 아닌가!

 

 

이러한 국가와 자본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공장점거파업은 정당하다. 나아가 지금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투쟁은 자신들만의 생존권 투쟁을 넘어서 대공황기 자본의 총공격에 대응하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중요한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무너져가는 낡은 자본주의 체계를 부여안고 끝없는 탐욕, 이윤을 추구하는 한줌 자본가계급의 총공격에 대항하여, 노동해방의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담대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투쟁을 승리로 이끄는 것은 언제나 단호한 결의와 단결, 연대투쟁이다. 지금 전국에서는 많은 노동자들과 민중들이 이러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공장점거투쟁을 지지하고 엄호하고자 하는 열의와 지지를 보내고 있다. 금속-민주노총 지도부는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열화 같은 의지를 한시라도 빨리 받아들이고, 총파업을 즉각 실시하여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공장점거투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많은 노동자들이 투쟁의 현장 쌍용자동차 공장으로 모여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엄호해야 한다. 쌍용자동차 공장을 둘러싼 울타리는 저들에 공격자들에 의해 이미 철거되었다. 이제 우리는 공장 안의 노동자들과 함께 공장주변에 십만ㆍ수십만의 인의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

 

 

투쟁 외에는 다른 길은 없다!

전국의 노동자여,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투쟁을 즉각 사수하고 엄호하자

 

 

2009.6.28.

노동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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