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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제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폐허가 된 일본 경제는 10년 만에 경이적인 부흥을 이룩한다. 더 나아가 그 후 약 10년 만에 국민 총생산 제 2위로 도약하며 기적을 만들어 냈다. 이를 이끌어 온 것은 다름 아닌 자민당과 관료들이었다. 이러한 쾌거는 자민당의 54년 장기집권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그러나 2009년 일본 국민들의 선택은 민주당이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는 자민당정부의 실정에 있다. 고이즈미 내각을 제외하면 자민·공명 연립내각의 평균수명은 1년 정도에 불과했다. 고이즈미에 이은 아베 신조,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등으로의 연이은 총리 교체에도 구태를 탈피하지 못했다. 지난 10년의 자민당은 잦은 말실수, 파벌담합에 의한 총리 선출, 정치세습제에 대한 집착과 이데올로기 정치도 한계에 다다르며 국민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고이즈미 내각 이후에는 잦은 정책변경, 미봉책, 뒤로 미루기 등이 현재의 상황을 자초했다.
둘째는 일본 관료정치의 폐단이다. 한때 일본의 ‘경제성장원동력은 관료제’라고 말할 정도로 관료제는 강대국 일본의 밑거름이었다. 그러나 국가 예산을 비롯해 각종 규제 및 행정지도 권한과 같은 강한 권한은 예산낭비, 낙하산 인사, 규제 강화, 부정부패를 양산하는 등의 폐해를 낳았고 국민들에게 염증을 느끼게 하는 자민당 실패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결정적인 마지막 이유는 신자유주의 개혁정책이다. 우정 민영화로 대표되는 고이즈미식 자민당 신자유주의 개혁드라이브는 국민들의 급격한 삶의 질 하락과 민심이탈을 가속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와 언론은 일본경제가 2002년 2월부터 경기회복국면에 들어섰다고 주장했다. 실제 기업의 경영이익은 2001년부터 5년간 1.8배 증가했으며 임원 보너스는 2.7배, 주주 배당금은 2.8배 급증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 노동자 임금은 3.8%가 감소하였고 비정규 고용은 500만 명이 증가한 1,700만 명(약 35%)을 기록했다.
2000년대 초에는 프리터(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며 급속도로 노동유연화가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더 나아가 ‘넷 카페족’이라는 거주지 없는 일수 파견 노동자들이 급증했다. 전 국민의 파견화 및 하향평준화로 일본 노동자 민중의 삶의 질은 나락을 향했다. 전후 최장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자민당 정부 하의 일본은 ‘기업은 번창하고 붕괴하는 사회, 주주는 배불리고 망해가는 국가’의 모습이었다.
일본 민주당과 새로운 일본의 불확실성
이렇게 일본이 마주한 사회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신자유주의 개혁 드라이브를 강행한 자민당의 실정이 이어지는 가운데, 민주당은 세이프티 넷(safety net) 구축을 주장하며 사회 양극화, 고령화, 경제위기 등의 사회문제를 선점하고 압도적 승리를 이룩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고 볼 수 없다.
민주당이 안고 있는 불안요인 첫째는 ‘재원논쟁’이다. 아동수당 지급, 고교 무상교육, 고속도로 무료화, 농촌 호별 소득보상제, 중소기업 법인세 인하 등 구체안을 공약으로 내세운 민주당에 대해 선거직후 실시된 아사히신문의 여론조사에서 83%의 국민들은 재원조달에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일본 공산당도 ‘고속도로 무료화가 아닌 증세를 고민하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연립내각 구성도 그리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연립내각 구성을 준비하는 정당들 간에도 미묘한 의견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민주당 또한 보수정당이라는 사실이다. 사실상 자민당, 민주당 양당이 이념적으로 근접해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의 지지기반은 취약하다. 민주당 실세인 하토야마, 오카다, 오자와가 모두 자민당 출신이며, 민주당 내에는 여전히 극우인 일본회의국회의원연맹에 속해 있는 의원들도 있다. 국민들이 바라본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요미우리신문의 조사결과 자민당 후보를 찍은 국민 중 30%가 비례대표 투표에서는 민주당을 찍는 등 민주당의 승리는 반 자민당의 결과일 뿐이다.
이러한 민주당의 보수주의적 성격은 일본 대외정책 변화 가능성에도 불확실성을 안겨주고 있다. 물론, 그 동안 민주당이 주창해온 대등한 대미관계, 아시아 중심외교 기조에 따른 변화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특히, 민주당의 전향적인 역사인식은 한일관계에 있어 긍정요인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북·일 관계나 독도문제 등은 여전히 불씨가 남아있다.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원론적으로는 자민·민주간의 차이가 거의 없다. 이는 민주당의 내재된 보수성을 보여주는 한 부분이다. 또한 이번 선거가 국내 이슈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볼 때, 대외정책 방향에 대한 기대는 아직 이르다.
이렇듯 선심공약 중심의 정책으로 인한 정책 지향의 불명확성, 구체성 없는 정책구상, 내재된 보수성 등은 일본 민주당의 불안요인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부분을 간과한다면 과거 호소카와 내각의 실패를 답습할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다.
민주당에게 일본 국민들의 미래는 존재하는가?
자민당의 쇠퇴양상은 장기간에 걸쳐 표면화되고 있었다. 1993년 38년 만에 단독정권 수립에 실패한 이래, 자민당 1당으로는 정권 유지가 어려워졌다. 특히, 최근 10년은 공명당과의 연립에 의해서 겨우 정권을 유지해온 자민당이었다. 그리고 그 10년은 고이즈미 ‘신자유주의 개혁’ 노선과 이에 의한 국민들의 피폐해진 삶이었다.
사회안전망 구축이라는 표어를 걸고 ‘우애’ 자본주의 건설을 주장한 민주당의 승리는 그러한 국민들의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분노가 민주당에게 다시 되돌아 올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민주당은 신자유주의 고용정책 유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본 민주당 정책 공약집을 살펴보면, 결국 파견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 없이 ‘비정규직 차별금지’에 머물고 있다. 특히 이 공약집에서 민주당은 ‘워크라이프밸런스(work life balance)’ 실현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의 기원은 서구에서 주창된 개념으로 8시간 노동을 통한 ‘노동과 삶(가정과 육아)의 조화’다. 그러나 일본 내 현실에서는 자본가들이 이 개념을 선점하였다. ‘워크라이프밸런스’는 2007년 일본경영자단체연맹에서 주장한 ‘새로운 노동방식’ 즉, 노동유연화 정책의 또 다른 이름인 것이다. 이는 민주당이 제시한 주장하고 있는 의견들과 배치되는 정책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보여주는 가장 큰 예가 될 것이다.
일본의 진보단체, ‘일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JRCL)’도 이러한 부분을 지적하며 민주당 광풍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들은 기관지 ‘사키가케’를 통해 新민주당 정권은 ‘국가 전략국’을 통한 그럴듯한 정책(관료제 타파, 외교·안보·행정개혁 등)을 펼치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결국 그것도 신자유주의적 ‘개혁’ 노선 하에 있다고 이야기하며 부르주아 지배계급의 근본적인 이해와는 맞닿아 있다고 비판했다.
보수주의 위에 불안한 지지기반, 지향성 없는 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일본 민주당의 미래는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의 기대가 큰 만큼 민심이탈도 빠르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를 민주당은 스스로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들은 최소한의 ‘호혜’라도 실현할 수 있을까? 피폐해진 국민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단지 54년 만에 이루어진 일본 정권교체를 봤을 뿐이다. 이러한 한계의 극복 없이, 민중의 승리인양 ‘선거혁명’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아직 이르다. 아직 속단 할 수 없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일본 민주당의 승리는 여전히 한국의 2004년 열린우리당의 등장과 2008년 실패의 모습 속에서 아른거리고 있다.
8월 30일 선거 상황판 앞에서 웃고 있는 하토야마 민주당 대표. 개표 결과 민주당은 정족수 480석 중에서 총 308석을 차지했다.
신자유주의 개혁정책과 정권교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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