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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부의 칼라정책에 따른 보라색 논쟁이 대단하다. 경력 단절여성의 경제활동을 촉진시키겠다는 여성부의‘퍼플(purple)잡’이 발표된 이후 여성인권의 상징이자, 고난 극복과 의지의 표현이던 보라색은 여성이 일과 가정을 조화롭게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로 덧씌워지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다.
왜 ‘여성’인가?
2008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여성노동자 70%는 전 생애에 걸쳐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한다. 45~49세 여성의 비정규직 비율은 73.6%로 남성과 그 격차가 40%p이상 차이가 나고, 임금은 남성 비정규직의 과반에도 못 미치는 36.7%에 해당하는 임금을 받고 있으며, 여성 비정규직 중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월 평균 임금을 받는 사람은 4명중 1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여성부 자료에 따르면 2008년 보육시설 현황 중, 국공립 보육시설은 5.5%에 해당하고, 대다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가 근무하는 중소기업 내 보육시설은 전체 35만개소중 140개소, 0.04%에만 설치되어 있다.
임신, 출산, 육아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떠맡아야하는 여성노동자는 공보육시설이 현격하게 부족한 한국현실 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적 해고’ 위협에 놓인다. 이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일하는 여성으로 살아남기,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왜‘퍼플’인가?
이런 현실을 두고 마련된 정부대책은 유연근무제, 이른바 ‘퍼플잡’이다. 이명박 정권이 보기에 일하는 여성은 출산율을 높일 생각을 하지 않고, 결혼, 임신, 출산을 한 여성은 경제활동에 다시 편입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저출산 문제와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방안으로 여성노동을 더욱 탄력적으로 유연하게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퍼플잡’은 더 이상 퇴직 압력 때문에 출산을 꺼려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여성의 일자리는 원래 탄력적이고 유연한 일자리였음을, 여성은 단시간, 파트타임직에 근무하는 것이 ‘정상’인 것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동시에 출산과 육아 문제를 여성이 오롯이 떠맡아도 일할 수 있는 유연한 근무제도가 있음을 확산시켜 육아의 책임을 여성의 몫으로 고착화시킨다. 결국 ‘퍼플잡’은 상대적으로 이미 저임금-불안정 노동 상태에 놓인 여성노동자의 위치를 더욱 악화시키고, 동시에 공보육의 요구는 저만치 달아난다. OECD에 속한 국가 중 최장시간을 일한다는 한국사회의 노동시간 단축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요구도 허공으로 흩어진다. 최저임금은 쓰잘머리가 없어지고, 결혼과 임신, 육아를 선택할 권리는 여성에게 남겨지지 않는다.‘퍼플잡’에는 여성의 몸을 사회적으로 통제하고 재생산을 관리하겠다는 발상이 자연스레 스며들어있는 셈이다.
단언하되, 여성노동자가 출산, 육아의 책임과 일을 동시병행 할 수 있다는 ‘퍼플’ 전망은 여성노동자의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더욱 심화시키고 단시간노동을 여성화한다. 출산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단시간노동에 재취업할 수 있도록 한다는 ‘퍼플’계획은 출산과 육아를 여성의 몫으로 고착화하는 성역할구조를 더욱 탄탄하게 한다. 여성차별의 사회구조적 모순 원인을 비켜나간 ‘퍼플잡’이 진짜 보라색이 될 수 없는 이유다.
최란
권리를 넘어 여성의 선택이 가능하도록 사회적 구조와 조건을 만들자
2009년 10월 의사들이 불법 낙태 근절을 선언했다. 그러더니 2010년 2월 낙태시술을 하는 동료의사들을 고발하면서 ‘낙태논 쟁’에 불을 붙였다. 여기에 이명박 정권이 저출산 고령화대책의 일환으로 낙태 문제 해결을 표명하고, 낙태 단속 입장을 발표하면서 낙태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낙태 뒤에 숨은 불편한 진실
정부가 낙태를 사실상 용인하다가 최근 단속을 강화하는 것은 60년대부터 시작된 인구조절정책을 출산억제에서 출산장려로 기조전환한 것과 연관된다. 여성의 재생산을 인구조절 정책 대상이자 도구로 보는 시각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권을 국가발전이라는 미명하에 국가정책 속에 배치해 온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낙태 문제 뒤에 숨은 불편한 진실 중 하나는 여성의 몸과 성을 재생산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사회에서 여남의 몸은 성별로 다른 정체 성을 부여받고 성역할 분리 고착화로 이어졌다. 남성의 몸은 생산적 노동과 성적 욕망의 주체로, 여성의 몸은 임신, 출산, 육아, 양육,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여성의 가장 큰 임무는 출산이며, 성적 권리 없이 가족 내에서 육아 와 양육은 여성의 몫으로 전가되었다.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은 사회경제적 요인들이 낙태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폭행과 원치 않는 임신, 비혼모·부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경제적 어려움, 성적 권리보다는 윤리교육에 그치는 성교육, 여성 비정규직의 확산과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사교육비의 증가 등. 이 모든 것이 낙태와 무관하지 않다. 여성의 성적 권리와 여성의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 성역할 분담이 고착화된 사회가 바로 낙태 만연의 핵심적 근원이다.
낙태권을 넘어 재생산 정의(Justice) 운동으로 나아 가야 한다
불법 낙태를 범죄로 몰고 가는 주장은 여성의 몸과 성에 대한 권리를 국가가 빼앗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모든 여성이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를 할 수 있는 접근권이다. 그러나 협소하게 법적 문제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여성의 권리는 안전한 낙태를 선택할 권리이자 하지 않을 권리 모두를 포괄한다. 또한 낙태 문제가 다른 사회적 문제를 배제한 상태에서 논의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다른 사회문제로부터 분리되어 낙태권만을 별도로 보면 이주민, 장애인, 성정체성 문제 등을 배제하기 때문에 오류가 생긴다. 따라서 낙태권에서 나아가 재생산 억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여성들의 재생산 권리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을 고려해야한다.
여성의 몸과 재생산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요구해야 한다. 여성의 삶은 몸의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 없이 여성은 스스로의 삶에 대해 결정할 수 없다. 여기서 여성의 실질적인 선택권은 출산을 하지 않을 권리이자 출산을 할 권리 모두를 포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이 과정에서 여성이 선택권을 행사하기 위한 필요와 사회경제문화적 조건들을 갖추기 위한 재생산의 정의(Justice)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운동은 여성의 재생산 억압을 발생시키는 가부장적 사회구조와 자본주의에 맞선 투쟁의 결합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 투쟁에 사회주의자들이 함께 나서야 한다.
유현경
[3.8여성의 날] 여성의 권리를 말한다
3.8여성의 날이 다가온다. 1년의 한번, 여성의 권리를 말하는 운동사회 현실이 아프다. 하지만 이 기회를 잡아 맘껏 여성의 권리를 말하고, 사회주의 정치운동은 어떻게 여성의 권리투쟁에 함께 할 것인지 말하려고 한다. 물론, 우리는 부족하다. 그러나 1년의 한번이, 매일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는 우리의 삶 전체로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3.8여성의 날, 우리는 여성의 권리를 말한다.
“만약 우리가 남성과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노동조합을 만들고 가입할 수 있다면, 산전산후 휴가를 받고 아이를 탁아소에 맡길 수 있다면, 모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면, 우리의 성과 수태를 조정할 권리가 있다면 이것은 모두 바로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의 피나는 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02년 전 코펜하겐에서 열렸던 3.8 여성의 날 투쟁에서의 연설을 우린 기억한다.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물결은 이후 전 세계적인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우리는 여성의 권리를 쟁취해 나갔으며, 노동자계급의 힘을 확인했다.
우리는 역사로부터 계급착취로부터의 해방과 성적 불평등 및 여성억압에 맞선이 투쟁이 상호 연관돼 있지만 계급착취로부터의 해방이 곧바로 성적 불평등과 가부장적 억압의 극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배웠다. 우리가 건설하고자 하는 21c사회주의는 성적 불평등과 가부장제의 극복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21c 사회주의’는 임노동제의 폐지만이 아니라, 여성을 억압하고 배제하고 소외시켜 왔던 가부 장제도를 철폐하는 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땅 여성들의 삶은 어떠한가? 심화된 자본의 위기는 특히 노동, 가족, 몸에 있어서 여성의 권리를 짓밟고 착취를 강화하고 있다. 여성은 인력활용의 대상으로, 출산의 대상으로, 성적 대상으로 도구화되고 있다. 자본의 위기 전가는 여성들에게 우선해고와 비정규직화, 일·가정의 양립을 위한 단시간 노동, 저임금·불안정한 일자리 창출과 빈곤의 심화, 출산강요와 낙태단속,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온갖 폭력 등. 너무나 많은 고통 속으로 몰아 넣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고서 자본주의 극복, 사회주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우리는 102주년 3.8 국제여성의날을 맞이해 새로운 대안사회를 실현하는 투쟁 속에서 다음과 같은 정치적 입장을 갖고 성적 불평등과 여성억압에 맞선 투쟁을 조직해나갈 것이다.
1. 우리는 성별에 기반한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 여성을 억압하고 차별하는 모든 정치, 경제, 법제도, 관습, 사회문화 규제들은 폐지되어야 하며, 인류에 의해 쟁취되었던 모든 민주적 권리는 동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2. 여성들은 임금, 고용, 승진, 직업훈련 등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하고, 여성의 노동권이 성차에 의해 제약받지 않아야 한다. 또한 여성의 노동권은 출산여부와 상관없이 여성의 노동권 그 자체로 보장되고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을 노동시장에서 배제되거나 저임금·불안정노동자로 전락시키는 성역할 고정관념에 따른 성별노동분업,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극복되어야 한다.
3. 가사, 출산, 육아, 간병 등 재생산노동은 여성만의 영역으로 한정 되어서는 안된다. 성역할 고정관념에 의해 여성의 노동가치가 평가절하고, 저임금 불안정노동으로 양산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가치평가가 필요하다. 따라서 재생산노동은 여남간의 개인적 분담을 넘어 시장화 방식이 아닌 형태로 최대한 사회화되어야 한다.
또한 기존의 생산노동 중심·남성중심적 노동시간모델은 재생산노동과 같은 여성의 일상적 경험을 배제하지 않는 방식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4. 가부장적 가족 중심주의를 넘어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개개인의 가족구성의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이성애중심 남성중심적 가족제도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강화되었고, 여성억압의 중요한 기제로 작용해왔다. 최근 혼인율감소, 출산율 감소, 이혼율 증가 등 정상가족의 형태가 위기에 처하자 신자유주의 국가는 가부장적 가족의 가치를 강조하며, 결국 가족을 통해서 자본의 재생산 위기를 해결하고자 한다. 결국 가족 내 여성억압을 더욱 더 강화·재생산하고 있다. 이에 우리는 가족이 더 이상 여성억압을 재생산하는 공간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다. 또한 이미 다양 한 가족의 형태가 등장하고 있고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는 사라져야 한다.
5. 여성은 스스로 자신의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진다. 따라서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폭력, 언어적, 물리적 폭력, 상징적 폭력 등은 금지되고, 여성들은 자유롭게 자신의 몸, 출산, 섹슈얼리티에 대해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은 낙태를 할 권리와 하지 않을 권리, 출산을 할 권리와 출산을 하 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우리는 여성이 이러한 선택권을 행사하기 위한 사회·경제·문화적 조건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또한 여성의 신체에 대한 국가통제와 여성배제적 의학· 과학기술을 극복하고, 여성의 몸을 대상으로 한 모든 의료, 의약실험은 완전한 정보제공과 동의를 기반하지 않고서는 금지되어야 한다.
6. 성매매는 계급사회의 일반적인 사회 경제적 조건의 결과 이며, 특히 여성들의 빈곤화과 노동을 위한 기술과 접근도가 제약받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성매매는 근본적으로 폐절되어야 한다. 그러나 당장 현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성매매 여성을 범죄자로 대하고 처벌해서는 안 되며, 성매매에 종사할 때에나 다른 직업으로 전환 시 인권과 존엄성, 주체적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
7. 고용, 주거, 출산, 양육, 결혼 등에 있어 성소수자에 대한 모든 차별은 폐지되어야 하며, 동성애자의 모든 요구는 이성애자의 권리와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 성적 지향은 타인에 대한 억압이 발생하지 않는 한 개인의 결정이며, 민주적 권리이다.
동성애자에 대한 억압과 탄압은 여성억압의 결과이자 가족제도를 유지하려는 지배계급의 이해가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레즈비언/게이 억압 반대 투쟁을 자본주의에 맞선 계급투쟁과 결합시켜 나갈 것이다.
8. 차이에 근거한 인간관계의 전화가 필요하다. 남성과 여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성인과 구별되는 아동과 청소년 등 모두가 권리의 주체이며, 권리는 사회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제 인간관계에 있어서 차이에 근거한 인간관계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그 간 인간관계는 차이가 아닌 차별, 억압과 피억압, 또 많은 경우 폭력으로 점철된 채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재생산해왔다. 이런 착취의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종식하고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데 있어 우리는 기존의 억압에 의거한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간의 관계 또한 종식하고 차이와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는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성억압에 맞선 투쟁을 하기 위해 우리 내부에서부터 치열한 투쟁을 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여성 스스로의 주체화와 조직화를 매우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여성의 주체화와 조직화를 위해 우리는 기존의 사회적, 조직적 질서의 구성과 결정, 관리에 있어 여성이 자신을 스스로 대표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할당제를 활용하되 형식적인 할당제를 넘어 여성이 사회주의노동자정당의 실질적 주체가 되도록 할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고등학생시절부터였다. TV과외 대신 틈틈이 봤던 다큐멘터리에 재미를 느끼다 좀 더 지나서야 더 많은 형태의 다큐멘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큐멘터리 제목인 ‘혁명은 TV에 나오지 않는다’처럼 많은 것들이 TV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즈음 나에게 다큐멘터리는 세상을 이해하는 텍스트이면서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파장이었다.
광화문 네거리의 미디액트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인권영화제와 미디액트가 사전 제작을 지원해 준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면서부터다. 당시 편집 장비가 없던 나는 같이 작업한 감독들과 편집실에서 며칠씩 기거하며 작업을 했는데 덕분에 처음하는 다큐멘터리 제작의 두려움을 넘을 수 있었다. 아직도 그 편집실 구조가 기억에 난다. 이후부터 미디액트는 독립다큐멘터리를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내게 좀 긴밀한 공간이 되었다. 작업 때 마다 찾았던 녹음실, 차근차근 쌓여 가는 스텝들의 경험을 나눌 때의 즐거움은 잊을 수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주노 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 이후의 일은 내게 참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어줬다. 처음 장편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나서 마음이 허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은 끝났지만 뭔가 계속 이주노동자와 같이 할 것이 필요했다. 그때 시작한 것이 미디어 교육이다. 조금씩 더워지는 날씨와 함께 조금씩 지쳐가는 이주노동자 명동성당 농성단과 미디어교육을 진행하게 되는데 그때도 미디액트가 함께 했다. 농성단에 맞는 교안을 만들고 장비를 실어 나르고 했던 기억. 그 이 후로 미디어교육을 해오지만 그 때 교육과정에서 만들었던 영상은 잊히지 않는다.
미디어교육이 끝날 때 즈음 이주노동자들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인터뷰프로젝트도 미디액트에서 진행됐다. 많은 스텝들과 감독들이 참여한 프로젝트는 이주노동자 들의 안전과 활동을 위해 한밤중에 진행됐다. 그해 여름밤은 미디액트에서 촬영한 기억으로 가득하다. 많은 사람들이 촬영이 끝나고 첫차가 다닐 때까지 기다리며 보냈던 미디액트 로비, 회의를 했던 틈새 공간들, 그리고 한 여름 밤의 소나기 냄새. 기억들이 쏟아지는 쌀알처럼 자잘하게 들어찬다.
그리고 우연히 다큐멘터리 강의를 맡으면서 좋아하는 다큐멘터리 공부도 하고 수강생 사는 이야기도 들으면서 다큐멘터리에 대한 수다를 실컷 떨면서 좋은 인연들을 만들기도 했다.
이리 주저리주저리 미디액트와의 인연을 나열하는 것은 제작을 하고 연대활동을 하고 다큐멘터리 공부를 지속하게 해준 미디액트의 역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 역할 덕분에 나는 꿈을 꾸물꾸물 피우며 내 시간을 촘촘하게 채울 수 있었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 시간이 내게만 소중하겠나? 그 공간을 지나쳤을 많은 이들이 그만큼 소중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올 많은 이들의 시간도 분명 소중했을 것이다. 그런데 형식적인 공모제로 미디액트와 인디스페스의 운영권을 빼앗아 전리품인 양 권력의 무리들에게 나눠지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황당하다 못해 분노가 인다. 그 많은 경험들을, 그리고 앞으로 있을 많은 경험들을 이제는 할 수 없다는 것이 화가 난다. 어떤 사업인지도 모르고 어떤 철학을 가지고 해야 하는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자리를 틀고 있는 이상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의 꿈이, 생활이, 시간이 짓밟힐 것이다. 그 고통을 당해내야 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갑갑해 온다.
주현숙 (독립영화감독)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77일 투쟁백서 『해고는 살인이다』. 지난 달 한 노동자가 이 책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것을 본 일이 있다. 그 노동자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평택에 가보지 못했던 동지였다. 부끄러움 때문이 었을까?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이기 때문 이었을까? 그 동지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가방 속 깊은 곳에 가지고 다니며 화보를 들쳐본다.
노동자들에게 공장은 산업화의 원동력도, 선진국에 대한 열망도 아니다. 노동자에게 공장은 한 밥상을 놓고 삶을 이어가는 공동체의 젖줄이자,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 들을 보듬고 교육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현장, 땀흘리며 족구 한판 벌이고 막걸리잔 나눠 마시는 우정의 공간이다. 그런 공간에서 별안간 1,000여 명의 노동자가 내몰렸다. 쌍용자동차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구조조정 한파가 닥친 금호타이어, 한진중공업 등 전국의 금속사업장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옥쇄파업 77일 동안 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입사 후 지금껏 현장에서 동고동락했던 형, 동생들이 정리해고자와 비해고자로 갈렸다. 회사 경영이 어려워 불안감이 돌 때 여행을 함께 가 “어떻게 되더라도 열심히 살자”던 형님은 사측에 동원돼 구사대가 되었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누구보다 제일 먼저 달려오던 아우는 정리해고자가 되어 도장공장 옥쇄파업 현장에 짐을 싸들고 들어갔다. 아래 윗집 김치도 같이 담그던 가족들도 갈렸다. 가족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며 전국을 눈물 바람으로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측이 나오라고 종용해 관제데모에 동원된 가족들도 있었다. 아이들 교실에서도 “니네 아버지 짤렸지”, “니네 아버지 같은 사람들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 진대 ”는 친구들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77일 동안 공장 안팎에서 노동자들은 그리고 가족들은 정리해고를 막아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도장 공장을 점거한 옥쇄파업 노동자들, 70미터 상공 굴뚝 농성자들, 정당과 종교단체를 돌며 눈물로 호소했던 가족대책위, 원하청 연대를 하며 옥쇄파업에 동참한 비정규직노동자들. 이 책은 이러한 노동자들의 투쟁과 눈물, 삶과 희망, 그리고 마침내 다다른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잘 담아내고 있다. 모든 것을 걸고 싸웠던 노동자들의 기록이 여기에 있다.
이 책은 노조 소식지, 각종 정책자료, 사업보고서, 언론 기사 모음, 사진, 동영상, 회의자료, 회의록, 각종 교안, 공문, 홈페이지 게시판 의견, 파업 프로그램 등을 수집한 것을 기초로 집필했다. 2개월에 걸친 분류 작업을 통해 17권의 ‘쌍용자동차지부 투쟁자료집’을 엮고 그걸 초석으로 삼아 다시 1권의 백서로 엮은 것이다. 자료로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 조합원 17명의 구술과 4명의 연대단위 면접, 조합원 13명의 서면질의와 면담, 한상균 지부장의 서면질의도 진행했다고 한다.
역사는 가진 자의 역사고 힘 있는 자들의 역사다. 자본이 쓴 역사가 한국사고, 세계사다. 노동자들의 기록은 지워지고 사라졌다. 그 기록을, 역사를 스스로 쓰지 않으면 우리 노동자들이 목숨 걸고 투쟁했던 기억은 말살된다.『해고는 살인이다』가 소중한 이유는 그래서다. 한상균 지부장은 옥중에서 이렇게 썼다. “산 자도, 죽은 자도, 구속자도, 징 계자도, 희망퇴직자도 어떤 위치에 있건 여전히 노동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을 날이 금세 올 것입니다.” 그걸 깨닫게 만드는 기록, 여기『해고는 살인이다』가 있다.
김대영 (울산 금속노동자)
가장 소외된 자들의 혁명성
박종필 감독은 장애인과 홈리스 운동에 오랫동안 결합하며 이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 왔다. 박종필 감독에게 빈곤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려 했는데, 너무 바빠서 시간 잡기가 힘들었다. 지방출장 다녀오는 사람을 새벽에 만나고 보니 자연스럽게 취중 인터뷰가 됐다.
장애인과 홈리스 인권에 대한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학생 때 그림을 그렸는데, 내 그림이 화랑에 걸리면 택시 운전하는 아버지가 내 그림을 향유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 때부터 빈곤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영상 시작하면서 빈곤 문제에 대해 소소한 작업을 하다가 IMF 구제금융 시대 때 노숙인 작업을 했다. 노동에 대한 영화도 하고 싶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장애인 노동권에 대해 관심이 갔다. 장애인 단체 행사나 토론회 같은 데 쫓아다니다가, 마로니에 공원에서 에바다 투쟁 1,000일 문화제를 접하고 에바다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난 제도 언론과 주류 미디어의 문제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편 거기에 길들여진 상태였던 것이다. 당시 대안 미디어가 별로 없는 상태에서 에바다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이 없다면 현실을 제대로 볼 방법이 없었다. 아무래도 해결이 안 됐으니 투쟁 문화제를 하는 것이고, 그래서 평택으로 내려갔다. 갔더니 뚜껑이 딱 열렸다. 스스로 반성도 좀 하고.
말 안 듣는다고 두들겨 패서 죽이고, 변사체로 발견됐는데도 법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처리되고, 노동 착취는 다반사로 일어나고, 장애인에게 쓸 돈을 착복 하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거지. 그런 과정을 담아서 문화제에 상영했지만, 완성도가 있거나 깊이가 있는 작업은 아니었다. 자족적인 영상물로 끝낼 수 없어 깊이 결합하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 운동을 하는 분들과 관계를 유지했고, 이동권 투쟁이 터지면 또 결합하고, 중간 중간에 홈리스 운동과 결합했다.
작년에 홈리스 행동 주점에 갔다가 뒤풀이까지 따라갔는데, 난 그 때가 홈리스들과 첫 만남이었다. 재밌는 자리였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안 나는 냄새를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그게 어렵더라. 일단 홈리스들과 함께 활동하려면 그런 걸 재껴야 할텐데?
맞다. 그것만 재끼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 처음에 그들과 어울리면서 고민이 심했다. 당시에 만났던 분들 중에서 노숙을 청산한 분이 없었고, 거의 거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 분들 술을 엄청 마셔댔다. 사실 당시에 일을 찾으면 없진 않았지만 임금이 너무 적었다. 노가다 나가면 거리 노숙은 안해도 쪽방이나 여인숙에서 잘 수 있는데 하는 생각을 깨기가 참 힘들었다. 내가 몰랐다. 그런데 그 분들이 왜 그렇게 사냐면, 대부분 저학력이고 불안정한 가족관계에 처하다 보니, 주위에 도움받을 길이 거의 없다. 자본주의에서 평가되는 값싼 노동력 말고는 없다. 아무리 뼈빠지게 일해봐야 쪽방이란 걸 충분히 경험한 분들이라 노동에 대한 희망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분들 참 착하다. 착하지 않았으면 도둑질을 하거나 강도질을 했겠지. 어쨌든 자본주의에 희망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몸으로 너무 잘 알기 때문에 희망없는 현실을 잊고 싶어서 술과 담배에 찌들어 내일이 없이 사는 거지.
그런 점에서 장애인 운동도 비슷하다. 70년대 일본의 푸른 잔디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장애인의 신체성 자체가 이미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있다.” 장애인의 노동력은 자본가의 입장에서 별로 착취할 게 없잖아? 홈리스나 장애인이나 같은 거지.
그런데 난 이 희망없음에서 희망이 보인다. 상대적이지만 그들은 더 인간적이야. 물질세계에 관련된 욕망과 목적이 약하고 그러다보니 사람에 대한 애정이 더 큰 거 같애.
그러면 우리가 구체적인 그림은 못 그리더라도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회의 소유관계와 분배문제 같은 걸 상상하잖아? 그런 사회라면, 예를 들어 삼성맨하고 홈리스하고 누가 더 잘 적응할까? 홈리스들이?
어. 당연히. 속된 표현일 수 있는데, 가진 게 없을수록 자유로운 거야.
흔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말을 하잖아? 듣다 보니 그런 느낌이 드는데, 한편으로 법 없이도 살 사람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바보의 전형이기도 한거 같아 아이러니하네. 근데, 그 분들의 준법의식(?)은 어때?
기득권 세력이 만들어 낸 법에 기득권은 자유롭잖아? 사회구조나 법과 관련해서 저학력이고 착한 사람들이라 법에 자유롭다기 보다는 그냥 법을 거부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서 노숙을 하는 거지.
근데 이 정도 하면 반 쯤 했나?
아 몰라요. 술 마시다 엉뚱한 이야기로 빠진 것 같기도 해. 그럼 본론으로 돌아가서, 내가 묻고 싶은 건, 여기 저기 다니다 보면 운동권의 인권 감수성도 영 형편없을 때가 많아. 공식적인 발언이나 연설 듣다가 손발이 오그라들 때가 자주 있거든. 그 쪽 전문가로서 운동권은 어때?
어디? 사노준?
이웃까지 모두 다.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과 장애인, 홈리스 운동이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인권 감수성의 필요성을 모르나? 알면서 못할 수 있겠지. 사회주의자, 좌파 그러면 이성의 화신이란 느낌이 들어. 사람을 움직이는 건 가슴인 거 같은데. 이성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에서 가슴만으로도 사람이 움직이진 않지만, 이성으로 안다면 가슴이 동해야 사람이 변하는 거 아닐까? 그리고 사람은 충돌이 있어야 변하잖아? 난 작업하며 느끼는 게, “충돌없이 변화없다”야. 아, 이런 고민은 힘들어! 내 일상과 다른 것들을 학습했지만, 현실에서는 다른 상황을 만나게 돼. 그걸 연결하는 것도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지. 이론적으로 자본주의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 것 보다 삶 속에서 고통받고 희망을 잃으며 세상을 바꾸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해지는 거 같애. 학생 때 학습하며 노동자가 혁명의 주력부대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표현이 지금은 부담스럽고 고민돼. 그래도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희망을 찾는 나는 지금 무지 행복해.
이 신문 “문제는 자본주의다” 자본주의가 끔찍하지만, 그걸 느끼는 건 우리가 자본주의에 발을 딛고 있기 때문이겠지. 사회주의 운동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자본주의에 거부당했거나, 자본주의를 거부한 장애인과 홈리스들을 혁명의 주체로 함께 투쟁하는 거겠지. 어떻게 함께 할까? 하여간 공중부양을 할 순 없잖아?
공무원노조가 23~24일 양일동안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규약과 강령을 개정할 방침이다.개정될 내용은 해고된 노동자들의 조합원 지위박탈, “공무원 정치사회적 지위향상”을 삭제하는 내용이다. 공무원노조는 노동부가 해고자, 강령 전문 등을 이유로 노조설립신고서를 반려하자 “합법성을 보장받은 뒤 투쟁하겠다”고 하면서 노동부의 시정요구를 수용키로 한 것이다.
공무원노조의 이 같은 결정은 노동조합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원칙조차 저버렸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우선 해고자들은 “정권의 하수인 이기를 거부하는 공무원 노동자”를 선언하고 정권의 온갖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노동조합을 지키고 공무원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앞장서 투쟁해 온 조합원, 노조간부들이다. 이들을 제외하고 보장받은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오히려 조합원들은 ‘투쟁하다 해고라도 되면 노조에서도 제명’이라는 인식으로 조직 활동은 위축될 것이 뻔하다. 또한 정권이 휘두르는 징계의 칼날은 노동자들을 정권에 하수인으로 길들이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다. 결국, 노조는 있으되 노동자의 투쟁도 원칙도 권리도 없는 유령노조, 어용노조가 득세할 것이다.
동시에 이명박 정권이 벌이는 노조설립신고서를 반려하는 행위의 본질은 ‘노조죽이기’다 . 저들은 ‘노조는 필요없다’는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지배세력들이 만든 노동권 보장이라는 헌법조차도 휴지조각이 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따라서 공무원노조가 합법성을 우선에 둘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질 뿐이다. 되돌아오는 것은 노조설립신고서가 아니라 더 많은 굴복이다. 그리고 ‘지배세력의 손과 발이 되라’는 명령 뿐이다. 특 전체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와해 공격이 전면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해고자들에 대한 조합원 자격 박탈은 사용자들이 노조탄압을 위해 악용하는 전례를 만들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공무원노조는 출범과 동시에 스스로 부정부패로 악취나는 정치 권력자들과는 다른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그 다른 길은 바로 노동자의 길이다. 그 길을 함께 투쟁해왔던 노동자들을 버리고 갈 수 있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이다. ‘합법성을 보장받은 뒤 투쟁하겠다’는 것 역시 노동자의 길은 아니다. 이를 두고 총투표를 거부하는 것, 총투표를 부결시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해선 안된다. 그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정부에게 굴복하면서, 해고자들을 내쫓으면서 노조를 인정받아 민주노조운동 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에서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는 일이다.
[김영수의 세상뒤집기]
이명박 정부에게 가장 어울리는 속담 하나가 있다. 말문이 막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한다는 의미의 속담인 ‘재갈 먹인 말 같다’이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공무원과 교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관련법의 개정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공무원과 교사들은 정당에 가입하는 것,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것, 그리고 함께 모 이는 것조차 금지되고, 지배 권력의 재생산을 위해 개인의 사상이나 정치활동의 자유를 속박하라고 강요받는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가 임명한 장관들은 공무원이 아닌가? 이러한 공무원은 정치활동의 자유를 누려도 된다는 말인가? 많은 사람들은 선출직 공무원과 일반직 공무원 간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당연시 한다. 대통령과 같은 공무원은 어마어마한 특권을 누려도 된다. 일반직 공무원은 대통령과 장관만 보좌하면 그만이다. 교사와 장관은 같은 별정직 공무원 이다. 장관은 정치활동의 자유를 누려도 되고, 교사는 그저 지배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역할만 담당하란다.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차별을 정당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는 권리의 차별에 너무 익숙하고, 국가나 권력의 폭력에 무기력하다. 대통령과 장관들은 그저 너무나 특별한 영역에 살고 있는 특별한 사람들인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을 가진 특별한 세력에게 빌붙어 사는 것이 편하고 달콤하다는 유혹에 쉽게 무너진다. 세월이 가르치고 나이가 가르치는 삶의 진리란다? 이는 소위 기성세대들의 변명에 불과하다. 삶의 진정한 진리는 권리의 평등에서 찾아야 한다. 법의 정신이나 인간의 권리를 사회적으로 구현하려 한다면, 대통령이나 장관의 정치 활동 자유도 금지되어야 한다.
국가권력의 성격이 어떠하든지, 공무원과 교사들 은 국가에 의해 고용된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국가 서비스 노동을 담당하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노동자이다. 공무원과 교사들이 담당하는 노동자로서의 사회적 역할은 어마어마하다. 공무원들은 결코 중립적이거나 합리적이지 않은 법과 정책조차 집행해야만 하는 주체다. 아주 협소한 의미에서 볼 때, 공무원은 곧 국가이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은 지배세력의 이데올로기를 사회적으로 재생산하고 계승하는 주체들이다. 이들이 특정 정당에 가입하지 않아도, 이 들의 노동 자체가 곧 정치적이다. 외교, 경찰, 그리고 군부의 역할과 기능 자체가 정치적이듯이 말이다. 국가권력의 공공적 노동 자체가 이미 정치적인 것이다. 이들의 노동에 정치적 재갈을 물린다는 것 은 곧 일반직이든 별정직이든 노동을 중지하라는 의미와 같다. 따라서 공무원과 교사들은 정치활동의 금지를 본질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 그것을 수용하는 순간, 자신들은 정치적 성격을 담지하고 있는 노동의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무원과 교사들은 자신의 노동에 내포되어 있는 정치적 성격을 노동과정에서 드러내야만 한다.‘노동 중지권’이 그것이다. 이 방식이 가장 적극적인 차원의 정치활동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자신의 정치사상에 맞지 않는 노동, 지배 권력에 의해 권리를 박탈 당하면서까지 강요되는 노동, 그리고 부당한 법과 정책을 집행해야만 하는 노동 등을 중지하는 권리다. 노동 중지권보다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정치 활동의 권리도 존재한다. 국민의 생활현장에 밀착된 공무원과 교사들이 지배 세력의 부당한 법과 정책을 개정하는 권리다. 공무원과 교사들이 국가권력의 내부에서 노동자 국가의 국민적 진지를 구축하고, 공공서비스의 내용을 사회적으로 전화하는 정치활동의 주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권리를 확보하는 정치활동이야말로 공공적 노동자로서의 개인과 공공적 공무원으로서의 국가를 통일시켜 나가는 과정이 된다.
김영수
김영수의 세상뒤집기는 20호로 마감합니다. 그동안 필독해 준 독자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또한 상상력을 자극해주고 항상 원고마감을 지켜줬던 필자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우리 아버지도 화전민이셨지.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조그만 산을 선산으로 받았어. 먹고 살려니 땅이 있나, 어린 나이에 산에 불을 질러 밭을 일구시고 일가를 이루어 자식들을 먹이셨어. 지금 그 밭을 찾으려면 다시 불을 질러야 할 터이지만 아버지는 많이 늙으셨고 지금은 동네에서 손바닥 만한 텃밭을 가꾸고 계시지 문득, 벌초 길에 굽은 등으로 돌아앉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본다. 소작 질을 견디지 못한 일제 강점기부터 보릿고개를 기억하는 농사꾼으로 ......, 화전민, 화전민, 화전민, 화전민, 화전민.......
박지원
화전민(火田民)은 산에 불을 놓아 들풀과 잡목을 태운 뒤 그 곳에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다. 화전은 일정한 땅을 정해 불을 놓고 불에 탄 풀과 나무의 재를 비료로 이용한다. 몇 년 동안 한곳에서 계속 농사를 지으면 지력이 다해 농작물의 수확이 감소하므로 다른 곳으로 이동해 화전을 일군다. 현재 인도, 동남아시아, 남아메리카 등지에 약 2억 명 정도의 화전민이 살고 있는데, 열대우림을 파괴한다 하여 오래전 우리나라처럼 화전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세종시를 둘러싼 계파간 갈등을 보면 마치 낮술 마시고 취해서 부모도 못 알아보는 빵구똥꼬들만 가득찬 콩가루 집안 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강도’, ‘여왕 벌’같은 표현을 사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래 부르주아 정치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 중에 하나가 여야가 아닌 자신들 정당 내부의 계파갈등을 보는 즐거움이다. 서로를 뜯고 씹고 맛보고 즐기는 싸움은 정말 그 어떤 구경거리보다 재미있다. 하지만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싸움이 가끔씩은 진실을 은폐하는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물론 싸움이 지나치면 진실을 밝히는 유용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번 세종시 둘러싼 싸움은 진실에 대한 은폐와 폭로가 모두 내포되어 있는 것 같다.
대통령 후보 경선 때부터 서로 감정의 골이 깊어 회복 불능의 상태에까지 이른 이명박과 박근혜 양자는 상대가 만만치 않은 내공의 소유자임을 확인한 상태다. 그래서 갈등이 깊어지면 질수록 서로의 현란한 무공으로 인해 함께 내상이 깊어지면서 동귀어진을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게 되었다. 물론 극한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면 그렇다는 얘기다.
이명박 측이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박근혜의 강력한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이명박의 아마추어리즘에 의한 판단착 이며 미천한 정세분석 능력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박근혜의 강력한 반발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정안을 내세웠을 때는 박근혜를 확실히 배제시키고 주류 지배세력들과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려는 의도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이명박 정권 등장 이후 박근혜의 수도권에서의 지지기반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이명박의 전략적 선택에 의한 결과로서, 박근혜의 입장으로서는 세종시가 이슈로 대두되었을 때 선택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 놓이게 되었다. 즉 세종시가 그녀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세종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밀리면 미래권력에 대한 어떠한 보장도 담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래권력은 현재의 권력이 아니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다음 대선에서 승리 할 발판을 이번 지방선거에서 마련하지 못 하면 그녀의 권력에 대한 질주본능도 여기서 종말을 고하게 되는 것이다.
정말 웃긴 것은 지배세력 내부 분파의 갈 등에 대중들을 개입시켜 수단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쪽에서는 우국충정과 국가경쟁력을 내세우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국민에 대한 신뢰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들 모두에 게서는 처음부터 국가나 신뢰를 발견할 수 없었다.
국가가 국민에게 해준 것도 없었고 믿음을 준적도 거의 없었다. 그들에게 국민은 자신의 권력을 뒷받침해주는 동원의 대상일 뿐이다. 그들은 여전히 정치적 레토릭으로 국민들을 우롱하고 욕망을 조작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세종시 둘러싼 내부 권력투쟁에 구경꾼이나 방관자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민중운동을 복원시키는 것이다. 민중은 일단 조직되면 그 어떤 권력보다도 거대한 힘을 가지게 된다. 세계 역사는 떨쳐 일어나고, 조직하고, 결합하고, 저항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역사의 방향을 뒤바꾼 민중들의 이야기와 깊이 얽혀 흐르는 것이다. 과거는 기억할 수 있지만 바꿀 수 없고 미래는 기억할 수 없지만 바꿀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배성인 (한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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