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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귀국

엄마가 돌아왔다. 생각해보면 최근 몇년동안 이상하게도 같이 살지 못했다. 내가 구속되었던 1년 2개월, 출소후에 바로 엄마는 이모의 병간호를 위해서 미국에 가서 5달동안 머물렀고, 작년 11월에 이모가 다시 아파서 또 미국으로... 2006년 8월부터 2009년 2월까지 7개월정도만 같이 살았었네. 내가 집을 나가서 독립한것도 아닌데. 암튼 이모가 설날에 돌아가셔서 예정보다 빨리 귀국하게 되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괜찮아 보이신다. 동생이 죽어가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을텐데... 참 못할 짓이었을텐데. 엄마 말이 너무 많이 울어서 이제는 그냥 눈물도 말라버렸다고.... 근데 엄마 오신다고 서울에 올라온 막내 이모가 계속 운다. 아... 이런 분위기 견디기 힘들다. 무겁다. 나는 울지도 웃지도 못한다. 돌아가신 이모 생각을 억지로 안하고 있었는데 엄마를 보니까 막 생각난다. 사촌들 중에서 나와 내 동생을 유난히 이뻐하던 이모였는데. 작년 봄 이모가 마지막으로 한국에 왔을 때가 아직도 생생한데. 이럴거 같아서 일부러 이모 생각안했는데. 죽음이라는 건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것이라는걸... 엄마한테 들어보니 그래도 이모네 식구들은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서 그나마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할머니에게는 아직 아무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 자식이 미국가서 고생만 하다가 아파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갑자기 듣고 멀쩡할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돌아가신 이모랑 이모부는 지금까지도 막 연애를 시작한 애인처럼 닭살커플이었는데 이모부가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직 엄마가 미국에 있었을 때, 이모부가 술에 취해서 "내가 도대체 죄가 얼마나 많길래 이런지 모르겠다"고 하셨다고 한다. 이모부는 굉장히 어렵게 살았던 분이라서 우리엄마가 이모의 결혼을 반대했었다고 하던데... 초등학교 때부터 구두닦이, 껌팔이, 아이스께끼팔이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우리 아빠랑 같은 고향 출신인데 우리아빠 친구 중 제일 가난한 친구집에 문간방에 세들어 살았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렸을 때 고구마를 너무 많이 먹어서 질려버려서 지금도 고구마를 안드신다. 암튼 이모가 없는데 이모부가 잘 지내실지... 엄마가 참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내가 힘이 되어 주기는 커녕, 이 무거운 분위기조차도 벅차다. 힘들다. 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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