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7/08

<디워> 논쟁을 보고 있자니

정말 영구, 이무기 수준의 별의별 것들이 진중권 교수, 이송희일 감독을 씹고 앉았다.

 

이건 정말이지 영구 고무신 발냄새 맡는 것 만큼이나 괴롭다.

 

대중이 이거야? 민중이 이거야?  대중독재가 따로없고, 한나 아렌트 말마따라 암 생각 없는것 자체가 폭력이로구만.

 

이러니 민중들은 항상 관념적이고 국가, 민족 등과 지 자신을 혼동하고 앉았고.

 

하여간 이런 정체성장애자들이 절대다수라는게 어이 아리마생이다.

 

그러니 지배당하면서, 억압받으면서 사는게 당연한건가?

 

불쌍하고 안타깝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에고고;;; 돕헤드님의 <민중은 여성이다> 포스팅을 보니 제가 자다가 봉창두들겼네요.

뒤늦게 껴들어가지고는 눈치없이 뒷북이나 친 것 같네요. 혹여나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뭇매맞고 계시는거 아닌가 싶어서 저도 발끈하긴 했는데..;;

 

돕헤드님의 해명성 포스트를 읽고 나니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듯이 돕헤드님께서 애체 그런 네이밍을 한 것에 대한 설명이랄까, 그런게 보이지 않는군요 ㅠ_ㅠ 이게 우선 전제되어야 할것 같구..

 

단순히 전형적인 이성애 남성의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꺼라고 막연히 기대하고는 있지만, 왠지 그 설명이 빠진채 정치적 포지션이나 여러 신념만으로 변론하고 계신것 같다는 느낌이 드네요.

 

최소한 이런 소통은 있어야 저도 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을것 같기두 하고..

잠시 보류해야 겠네요. 완전 남의 허벅지 제대로 긁으면서 뻘짓한것 같다는;;;

 

앞뒤 맥락 안따지고 무작정 전형적인 생물학적 본질주의라고 여긴 거 많은 분들한테 사과드려야겠군요.

 

뭐 돕헤드님의 당시 의도와 권력의지는 돕헤드님만이 아실테고 그것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라던 알수 없다면 제가 더이상 이야기하는건 많은 분들께 실수하는거 같기도 하네요..

 

그래도 많은 생각할 지점 좋았습니다. 실례 많았구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리지날 여성/가리지날 여성?

미국에서는 젠더 클리닉이나 성별정정 재판에서는 트랜스젠더를 시민주체로 호명할 경우 그/녀가 얼마나 여성/남성으로서 젠더 수행을 하였고, 주변 친지들이 그/녀의 젠더를 지지해주고 인지하고 있음을 인우보증 해줄 경우 그/녀를 자신이 인식하고 있는 성으로 호명을 해줍니다. 국가가 물론 개인의 성(별)을 판결해준다는게 웃기긴 하지만요.  

 

실제로 많은 트랜스젠더들은 자신의 생물학적 몸에 이질감을 느끼고 다른 몸을 원하기도 합니다. 제가 알고있는 어떤 게이는 자신의 항문을 여성의 성기로 여기고, 실제로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뒷XX 라고 네이밍하더군요.) 이는 게이라는 (남성으로 정체화한 남성이 대상애로서 남성에게 사랑을 느끼는 행위를 반복 수행한 자들) 그의 생물학적 사실만으로 여성의 신체와 동일시/합체 혹은 전유하는 것 자체로도 성폭력이라고 규정당할수 있을까요.  어떤 이성애자 남성은 게이-되기를 하고자 여자친구에게 딜도로 자신의 항문에 삽입을 부탁하기도 하며 항문의 클리토리스-되기를 수행하기도 하더라구요. 글쎄, 수동적이고 성적대상화된 여성을 가부장제적인 마인드로 똑같이 유린한건지 혹은 패러디를 통해 여성의 본질이 허구적임을 역설적으로 드러낸건지는 잘은 모르겠지만 여성이 몸을 본질화, 규범화 시키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비체화될 수 밖에 없는 게이, 트랜스젠더, 양성구유, 친여성주의 남성에게 행하는/행할 수 있는 폭력은 경험과 정체성에서 근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기실은 자신들도 여성 젠더를 수행하고 있을 뿐인 원본 없는 여성들에 의해  남성도 여성도 될 수 없는 이러한 비체화된 자들은 오히려 여성보다 호명이 덜 된 존재할 수 없는 유령이 될 뿐입니다.


제가 보기에 돕헤드님은 이미 여성 젠더 수행을 하셨고, 실제로 돕님을 아시는 주변의 많은 분들이 이를 인지하고 동의하고 있기에 그/녀를 전형적인 이성애 남성으로 간주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또한 여성주의 훈련을 통해 여성주의를 고민하신다는 점에서 돕헤드님께서 돕헤드님의 자전거에 클리토리스라고 이름을 붙이신 것은 클리토리스라는 몸의 일부를 이성애 남성 섹슈얼리티에 의해 성적 대상화시키고 있다기 보다는 여성-되기와 여성주의를 고민하는 돕헤드님이 전형적으로 성애화된 여성의 몸인 클리토리스의 기의를 여성주의를 고민하고 여성-되기를 수행하는 돕헤드님의 몸으로서의 클리토리스라는 다른 의미로 패러디, 재전유, 전복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돕헤드님의 전복적인 의도가 성폭력이 만연한 남성중심사회인 작금에서 Common Sence로 딱놓고 본다면 돕헤드님의 생물학적 남성이라는 가시적 표상과 남성중심주의적 문화의 규범대로만 놓고 현상을 본다면 마초들이나 할 법한 사고와 언행들이라고 읽히는 측면이 있어서 결국 이러한 재전유가 오해를 불러살만큼 실패하셨고 그부분을 돕헤드님께서 Think Twice 하지 못하신 것은 안타깝다고 느끼고 있으나 돕헤드님이 느끼고/여기고 계시는 여성과 여성주의에 대한 인식을 읽고서는 돕헤드님은 이미 '여성으로 정체화한 여성'이라고 느꼈고, 단순히 페니스로 표상되는 남성이 클리토리스로 표상되는 여성에게 언어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성폭력을 가했다고는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물론 돕헤드님의 이런 활동과 수행들을 잘 알지 못하는 인터넷 블로그에서는 돕헤드님의 이런 아이러니가 반대로 읽히는 것도 당연하고 돕헤드님이 그것의 원인제공을 한 점은 잘못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원하시는 것은 돕헤드님의 여성성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에서 기반했다고 느껴집니다. 돕헤드님은 남성의 몸에 갇혀계시고, 남성중심의 사회에선 끊임없이 남성임을 의심받는다면 진보적인 커뮤니티나 운동판에서는 끊임없이 여성임을 증명해야 하죠.

 

하지만 아무리 증명해봤자 그/녀는 기껏해야 성찰할수 있는 남성으로 읽히므로 어쩜 오리지날 여성임이 영원히 증명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느끼기에 돕헤드님의 애초의 의도는 여성으로 인식하거나 남성의 몸안에서 갇힌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MTF트랜스젠더분들 처럼 클리토리스를 돕헤드님의 몸의 일부로 인지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과잉해석일지는 모르겠지만 돕헤드님은 여성임, 여성됨, 여성이고 싶음 등등의 욕망에서 자신의 여성주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젠더 경합 혹은 젠더 교차를 통해 클리토리스를 다른 은유, 환유로서 내재화하셨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이 물론 성폭력 위협에서 항상 두려움 받는 현실에서 돕헤드님의 언표가 동일한 양태를 보였기는 하지만 맥락을 따라가다 보니 돕헤드님께서 클리토리스라고 자신의 자전거를 네이밍 하셨던 권력의지는 여성의 성기를 대상화시킨채 남성 권력을 즐기는 전혀 이성애 남성의 섹슈얼리티를 그대로 반복 수행하는 것으로 읽히지는 않았다는 거죠.

 

또한 해부학적 몸으로서의 클리토리스는 생물학적 여성만이 갖고 태어나는 것은 많은 블로거분들도 언급하셨듯 알고 계실터입니다. 양성구유(안드로지니)의 존재는 해부학적 구분이 유의미한 지점도 있지만 결코 본질적인 정체성이 되거나 그 자체만으로 어떤 정치적 정당성을 갖고 있지는 않음을 반증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젠더화되어있고 문화적 담론으로 부터 오염된 몸의 이분법에 근거한 여성주의보다는 탈근대적인 차이를 드러내고 궁극적으로는 섹스, 젠더 이분법을 해체하는 여성주의가 해부학적 여성뿐만 아니라 다양한 비체들(성적 소수자)역시 가시화되며 다같이 사는/살리는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섹스가 젠더의 원인이 아니라 섹스는 이미 젠더화된 결과에 불과하니까요.


마찬가지로 제가 논쟁을 눈팅하면서 느꼈던 것은 많은 해부학적 여성분들께서 돕님의(돕님 뿐 아니라) 여성성은 모방품에 불과하고, 영원히 원본에 다가갈 수 없는 이미테이션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남성-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자가 흉내내는 여성은 단순한 조금 진보적인 인식에 불과한 남성도 여성도 뭣도 아닌 성적 유희라고 보는 것은 아닌가 싶었죠. 물론 여성주의적 인식이 있다해서 경계를 게을리하거나 이미 완성된 여성주의로 자신하는 것 또한 지양해야 하겠으나, 그것은 이성애 남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죠. 더더군다나 클리토리스를 갖지 못한 수많은 비체들이 여성주의의 이름으로 호명되지 못하는 역설적인 문제 상황이 생기기도 하구요. 버틀러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여성성을 드랙하거나 트랜스섹슈얼로 변경한 남성은 흉내낸 모조품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는 건 아닌가 싶었죠.


이성애 남성으로서 여성-되기를 수행한다면 그/녀 역시도 젠더 이분법에서 고통받고 있는 사회적 약자가 아닐까요? 페니스의 유무만으로 가부장제와 남성 지배에 공모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여성-되기를 수행하고 있는 여(남)성은 원본에 도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짝퉁에 불과할까요? 친-여성주의 남성은 천년만년 여성주의를 흉내내고 베낀것에 불과한 어쩔수없는 남성일까요? 생물학적 여성의 몸은 문화적 담론으로 부터 오염된 사물 그 자체로 그 역시 광의의 젠더 개념에 종속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페니스를 절단하고 전립선을 클리토리스로 주조한 외과적 수술을 진행한 MTF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기를 통해 느끼는 짜릿함은 클리토리스를 대상화시킨 것일까요? 자궁적출을 하고 음핵을 페니스로 성형하는 수술을 시행하여 클리토리스를 버리고 페니스를 선망한  FTM트랜스젠더는 여성을 대상화 시키는 것일까요. 딜도를 팩킹하고 클리토리스의 삽입성교를 할 때 성적 쾌감을 느끼는 레즈비언 커플은 서로 여성의 몸을 성적 대상화 시키는 것일까요. 마스터베이션같은 경우는 내가 여성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난 생물학적 남성일 수도, 이성애자일 수도, 트랜스젠더일수도 있습니다. 그런 내가 나의 성기를 클리토리스로 인식하고 재전유하며 성감대로 느낄때, 그것은 나의 생물학적 성에 따라서 어떨때는 섹슈얼리티가 될 수도 있으나 어떨때는 성폭력이 될 때도 있는걸까요. 난 페니스를 갖고 있지만 그것을 클리토리스라 여기고 네이밍 붙인다면, 그의 생물학적 성이 간주되는 여부에 따라서 성폭력으로 규정된다면 그것은 트랜스젠더라는 역사적 주체를 단번에 지워버리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저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꼬리를 물긴 해서.. 글도 상당히 난잡하고 엉성하긴 하지만 많은 여성/여성주의자 분들이 여성을 오리지날/가리지날로 나누며 여성성을 몸에 근거하여 위계화 시키며 또한 그자체로 어떤 비체들을 비가시화하고 배제하고 있는건 아닌지 자꾸 슬퍼지네요.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본질주의적 여성주의 역시 폭력은 마찬가지

관련된 논쟁글을 따라가면서 전부 꼼꼼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제 느낌에는 몇몇 분들의 (물론 이것은 여성주의 전반에 걸친 정서겠죠.) 생물학적 본질주의, 결정론, 근본주의 등도 굉장한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몸 그 자체를 근본적인 성차로 간주하고 거기서 파생된 경험과 정체성에서 근거한 정치와 가치관이야 말로 올바르다는 것은 이미 생물학적 섹스/젠더의 이분법을 타파하고자 하면서도 그러한 이분법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도 있죠.

 

또한 돕님을 생물학적 여성(바이오우먼)의 경험과 성기의 유무만으로 여성주의적 인식을 갖을 수 없다라고 주리돌림하는 것 역시 또다른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여성주의는 정체성에서 기반한 경험론이 아닌 퀴어적 젠더 수행성을 강조하는 인식론이였구요. 누군가가 생물학적 남성의 상징을 갖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녀는 FTM/MTF 트랜스젠더일 수도, 드랙킹일 수도, 양성구유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또한 그/녀의 비가시화된 젠더/섹슈얼리티는 더욱 복잡하여, 동성애자일 수도, 무성애자일 수도, 양성애자일 수도 있는 거잖아요?

 

물론 그동안의 억압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역사를 되새겨본다면 많은 분들이 그런 폭력을 동일한 양태로 수행하셨던 돕님의 가시적인 언표만을 보고서 분개하시는 바가 공감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돕님을 일단은 (이성애자) 남성으로 간주하며 생물학적 남성은 영원히 여성주의의 인식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식의 근본주의적 입장은 아무런 정치성을 담보하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또한 이미 돕님이 여성-되기를 통해 여성의 젠더를 수행하고 계셨다면 주디스 버틀러식의 젠더 수행성 이론으로 보면 돕님은 이미 여성이십니다.

 

여성-되기를 통한 젠더 수행은 남성 권력 성찰에 한계가 있고,  생물학적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일천하기 때문에 여성이 아니라고 한다는 것은 젠더 이분법을 공략하기 위해 똑같은 이분법적 논리근거에 빠진 오히려 극도로 탈정치화된 생물학적 근본주의적 여성주의임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또한 돕님이 수행하셨던 여성 젠더를 여성으로 보지 않는 다는 것 또한 여성성을 원본/모방으로 위계화 시키며 해부학적 여성의 근본적 여성성과 그 외 비체화된 (여성-되기를 수행하는 남성 페미니스트,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양성구유.......)  등의 여성성을 비가시화, 부차화 시키며 또다른 몸에 근거한 폭력을 낳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를테면 의료적 시술을 통해 몸을 변형한 하리수의 여성성은 여성성이 아닐까요? 혹은 여성-되기나 혹은 여성주의적 인식에 따라서 자신을 여성이라 느끼는 해부학적 남성 페미니스트의 여성성은 여성성이 아닐까요?

 

결론은 생물학적 여성의 해부학적 경험에 근거한 여성주의야말로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또한 남성은 이러한 여성주의적 인식에 한계가 있다는 것 또한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생물학적 여성들의 현실에 처한 상황과 그 역사성, 정치적 유효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여성들의 여성성도 결국 오이디푸스 가족으로 부터 학습된 것이고, 젠더 이분법 뿐만 아니라 섹스의 이분법조차 버틀러 등의 퀴어 정치학의 구성주의 담론을 더 밀고 나간다면 모든 여성들 또한 여성 젠더를 수행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기에, 누군가에게 또한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