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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5/02
- 삶과 죽음,그리고 인생의 목적/무시무종, 영원한 순환
빛의 시대, 빛의 인간
blog.chosun.com/casypark
국내 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의 기업을 목표로 하는 삼성. 삼성 신화를 이룬 고 이병철 회장. 날카로운 통찰과 판단력으로 삼성이라는 초거대 기업을 일궈낸 그였지만, ‘인생’에 대해서는 풀지 못한 질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1987년 별세한 이병철 회장은 작고 전 절두산 성당의 고 박희봉 신부(1988년 작고)에게 ‘24가지 질문서’를 전달한다. 그 질문서에는 ‘한번 태어난 인생,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프고 고통스러워야 하나?’, ‘우리는 왜 자기 인생에 쉽게 만족하지 못할까?’, ‘악인의 길과 선인의 길은 미리 정해져 있나?’ 등 인생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적혀있었다. 그러나 이 회장은 병세가 갑자기 악화돼 답변을 얻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 회장의 ‘질문’은 세월이 지나 지난 2009년, 차동엽 신부가 우연히 발견하게 됐다. 차 신부는 자신의 경험과 신학자로서의 입장에서 그 질문에 하나씩 답을 달았다.
이 긴 사연의 이야기가 바로 차동엽 신부의 신작 『잊혀진 질문』에 담겨 있다. 차 신부는 종교인이지만 밀리언셀러 『무지개 원리』의 저자이자 연 600회 강연을 소화하며 대중과 소통해온 우리 시대 멘토 중 한 명이다.
그는 이병철 회장의 질문에 대해 Big Q와 Real Q라 이름 붙여 근본적이 물음 15가지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동시대인들의 절실한 물음 11가지로 나눠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한다. 저자는 "이병철 회장이 남긴 삶과 죽음, 성(聖)과 속(俗)에 관한 질문지를 만난 것이 그 계기가 되었으나 목적은 하나였다. 모두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윤태진, 김수진 (교보문고 북뉴스)taejin107@kyobobook.co.kr, Sujin2017@kyobob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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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聖은 무엇이고 속 俗은 무엇인가? 산은 산이오 물은 물이로다 로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철 스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대가 그렇듯 득도하신 고승들께서는 일반 범부들이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말씀만 하시거나, 침묵해 버리십니다.
삶은 꽃과 같습니다.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아름다운 추억이자 꿈 같은 그런 것 같습니다.
“부처를 보거든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똥 막대기 보듯 하라”
지존 중에 지존, 부처님을 보고 똥막대기라고 하다니, 이러한 불경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이러한 비유적인 말씀들은 아마도, 진리란 말로서 설명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겠고, 사량분별 思量分別(아마도 고전적 의미로는, 3차원적 사고방식)하는 인간적 사고방식 수준을 초탈하라는 의미도 포함될 듯 합니다.
저는 늘 그렇지만, 사고방식, 가치관 즉 인간 존재가 세상 만물을 보고 듣고 느끼고 판단하는 그 의식 작용에 대해서,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이해가 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쉽게 비유하여 로봇입니다. 이런 비유가 가장 쉽다고 보입니다. 인공지능입니다. 컴퓨터도 프로그래밍 된 연산자에 의하여 구동되는데요. 이것도 역시 알고리즘입니다. 인공지능을 만든 존재는 인간들입니다. 인간들이 “이렇게 이렇게 동작해라”고 동작의 룰, 규칙, 알고리즘을 정해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게 프로그래밍이라고 하는 것들이죠. 그렇게 만든 인공 두뇌는, 그러한 알고리즘을 만든 인간의 의지대로 동작하게 됩니다.
인공지능적 측면에서 본다면, 현재 지구 인류의 과학기술 수준으로는, 인간과 똑 같이 사고하고 느끼고 판단하는 지성과 감성 모두를 포함하는 완벽한 인공지능은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초보적인 수준에서라도, 뭔가의 동작을 반복하게 하거나, 어린 아이 수준의 논리적 사고 하에서 일을 하게 할 수는 있습니다. 인공지능 입장에서 본다면, 인공지능이 들여다 본 세계는, 인간이 프로그래밍 해서 만들어 준 알고리즘 그 것 뿐 입니다. 그 이상은 모릅니다. 모른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인공지능, 그러니까 3~4세가 되었든 7~8세가 되었든 어린 애 정도의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이 있다고 한다면, 이 인공지능이 인식하는 세계는 분명히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와는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인식하는 세계도 이 인공지능에게는 세계입니다. 비록 인간이 인식하는 세계와는 다를지라도 말입니다.
이것을 확대 해석하면, 동물들이 느끼는 세계 또한 인간이 보고 느끼는 세계와는 다를 것이죠. 식물들은 어떨까요? 식물에는 의식이 없을까요? 제가 보는 바로는, 의식이 없는 존재(실체, 사물)들은 없다고 보입니다. 다만 그 의식이 인식하는 범위, 사고의 범위, 생각의 수준, 발전 단계가 다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자면, 갓난 아이들이 있습니다. 저도 갓난 아이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갑자기 제가 강보에 싸인 어린 애기가 되어서 안방에 누워 있는 광경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장롱이 보이더군요. 속으로 “여기가 어디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당시 제 생각을 보면, 분명히 어린 애가 아닙니다. 이런 것을 두고 우리는 영혼 혹은 환생해 온 영혼들이라고 보는 것이죠. 분명히 기억이 어린 애 기억이 아니고, 내가 다른 누구였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계속 졸리워 집니다. 그래서 자고, 그리고 자고 나면 엄마 젖 물고 다시 배부르면 자고, 이걸 반복하면서 그냥 애기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기억을 잊어 버린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그냥 애기 수준입니다. 이걸 우리는 환생이라고 부르는데요. 태어나면, 과거에 내가 누구였는지를 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다시 갓난 아기 수준으로 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에 깃든 영혼은 애기가 아닙니다. 저는 이걸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누군지 기억은 안 나는데, 어린 애는 아닌 나를 인식하더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꾸겨 넣었다 봅니다.
갓난 아기가 보는 세상은 어떨까요? 아무 것도 모릅니다. 본능에 따라서 가는 거죠. 거의 1차원 적입니다. 배고픈 울고, 울면 엄마가 젖 주고, 배부르면 자고, 거의 무의식 상태에서 그걸 합니다. 아무 생각 없습니다. 배부르고 기분 좋으면 웃기도 하고, 그리고 주로 잠을 잡니다. 거의 1차원적 의식 수준입니다.
식물이나 동물은 어떨까요? 제가 보는 바로는 거의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인간들이 복잡한 사고를 하고, 복잡한 논리와 개념, 가치관을 가지고 토론도 하고, 개발도 하고, 발견도 하고, 이런 저런 고도의 지성체계를 지니므로, 인간만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식으로 잘못 해석하지만, 사실은 모든 존재들이 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갓난 아기는 사실에 있어서는 동물만도 못한 지능수준인데요. 그렇다고 해서 갓난 아기가 의식이 없다고 볼 수 없죠.
침판지 같은 영장류의 IQ(이것도 사실은 인간을 기준으로 해서 만든 일방적 해석이지만)는 7~10세의 아이들 수준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비하면 인간은 아기로 태어나면, 침판지만도 못한 의식 수준 속에서 있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본다면 의식이란 무엇일까? 입니다.
결국, 식물들, 동물들도 다 지성적 의식이 있는데, 우리와는 다른 차원에서 우리가 해석하기 힘든 그들만의 의식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의식이 있기는 하되, 차원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하다 못해 바위나 돌덩이, 산이나 바다, 공기와 구름 같은 유형, 무형의 존재들에게도 의식이 있다고 하지요. 이런 의식 차원은 아마도 두 가지 측면일 것입니다. 물질 의식 차원과 영적 의식 차원일 것입니다. 차이를 놓고 본다면, “자신이 누군지 인식하지 못하는 의식체”들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인간적 의식 수준이란, 자신이 누군지 명확하게 인식하는 수준에 이른 지성체를 의미합니다. 자아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자아, 정체성, 주체성, 개성, 지성, 감성을 복합적으로 소유한 존재, 즉 보다 복잡한 의식의 단계로 발전해 온 존재들이 인간 의식체 들이라는 관점입니다.
보다 낮은 의식 발전 단계에 있는 것들이 바로 동물, 식물, 광물 등일 것이고요. 이런 의식체들은 “개별적 자아에 대한 인식이 없으므로, 군집 영혼, 군집 의식체로 분류되는 것입니다”
즉, 여기에 내가 있는데, 나는 독립된 개별적 자아로서, 실존하는 실체이다”라는 정체성, 자아 입니다. 이게 인간 수준이고요. 동물, 식물, 광물들은 그러한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군집 의식체, 전체적인 그들 종족의 의식들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전체의식 입니다.
결국, 그 존재가 의식의 발전 단계가 어느 수준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존재 혹은 실체가 인식할 수 있는 세계는 변해갈 것입니다. 식물들이 보는 세계는 인간이 보는 세계와 다를 것입니다. 갓난 아기가 보는 세계가 어른들이 보는 세계와 다르듯이 말입니다.
결국, 의식이 어디까지 성장해 가느냐에 따라서, 그 실체 앞에 나타나는 세계는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무수한 다른 차원의 세계가 우리 앞에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발전 단계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 세계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로봇, 인공지능에 대입해 보면, 인공지능, 로봇도 마찬가지 입니다. 알고리즘, 프로그래밍된 것들만 가지고 그들은 세계를 인식할 것입니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인간을 창조한 존재들이 신이라고 한다면, 인간 또한, 신이 정해준 알고리즘 내에서 사고하고 움직이고 판단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인간은 육체라고 하는 물질적 그릇이 지닌 두뇌를 가지고 생각하고 사고하고 느끼고 추론하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그 그 육체라고 하는 그릇은, 정해진 알고리즘에 따라 갑니다. 그리고 그게 인간의 두뇌입니다.
이를 다시 설명한다면, 우리가 때때로 고뇌하는 삶의 문제들과 진리에 대한 인식 차원이, 어떻게 변해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것입니다.
인식의 차원, 사고의 수준이 달라지면, 세상도 달라 보이기 마련입니다. 사람들도 역시, 같은 세상에서 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서로가 사는 세상이 다릅니다. 이 점은 그냥 우리가 생각해 봐도 명백합니다. 재벌 회장님이나 대통령 같이 높은 양반들이 사는 세상과, 저기 청소부 아저씨나 식당 아줌마가 사는 세상은 다릅니다. 겉으로는 3차원 물질 세계적인 측면에서는 같습니다. 같은 공간, 같은 세계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고 인식하는 세상 모습은 명백하게 다르죠. 이런 점을 우리는 잘 깨닫지 못하는데요. 그냥 다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으며, 같은 인식 체계 하에서 같은 수준의 세상을 보고 있다. 즉, 똑 같은 세상에서 우리는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실제로는 그게 아닙니다.
분명히 같은 세상이지만, 누구에겐 재미있고 즐겁고 천국 같은 세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겐 하루 하루가 괴롭고 힘들고 짜증나는 지옥 같은 세상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들이 우리가 간과하는 부분들인데요. 우리는 늘 같다고 생각하려 합니다. 그러나 아닌데, 그것은 그 사람이 처한 지위, 부, 위치에 따른 차이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사고체계, 가치관, 각성의 정도, 도덕관, 윤리관, 개성 및 습관 등에 따라 커다란 차이가 발생된다는 것입니다.
이건 명백하게 같은 세상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3차원 물질 공간 영역만 같다는 것이고, 나머지는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불치병에 걸려서 병상에 누워 있는 환자들과 건강하고 튼튼한 몸을 가지고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청년들은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차이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보면, 삶에
서 오는 문제들이라든지,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깨닫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간 이상의 존재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들은 우리와 어떻게 다를까요? 아마도 의식의 발전 단계가 상당히 높다 혹은 인간 존재가 가지지 못한 초능력, ESP, 염력 및 텔레파시 등의 능력을 소유했으며, 영안 靈眼이 열린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차원을 구분할 때, 밀도 차이로 구분하기도 하고, 파동 에너지의 수준 별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3차원은 1,2 차원을 포함하는 영역입니다. 1차원은 선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2차원은 면입니다. 그리고 3차원은 공간입니다. 여기에 다시 4차원 개념이 도입되는데, 여기는 시간 개념이 추가됩니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그렇고, 달리 구분하면, 3차원 영역까지는, 물질의 영역, 보다 밀도가 높고, 진화의 수준이 낮은 육체적 존재들이 사는 영역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동물의 영역 혹은 동물적 육체를 지닌 존재들의 영역이라는 관점이죠. 물론 인간의 육체는, 여타 동물들의 육체와 비교할 바가 없이 진보된 존재들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물적 육체의 관점을 완전하게 벗어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을 신과 동물, 자연 간의 매개자, 중간적 존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4차원 단계는, 아마도 우리가 흔히 말하는 靈界(사후 세계)의 개념입니다. 유체라고 부릅니다. 유체이탈 이라고 하는데요. 이 유체 遺體란 결국 혼 魂입니다. 혼이 입는 옷을 유체라고 부릅니다. 이 유체는 영적인 것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육체에 비해서 밀도가 낮고 높은 파동 에너지에서 진동하죠. 그래서 일단 유체이탈을 하면, 벽을 뚫고 돌아다니고, 하늘을 날아서 이동하기도 한다고 하죠, 밀도가 낮고, 파동 에너지가 높으므로, 3차원 물질들의 영향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4차원 단계까지는, 선형적 시간 개념 하에서 움직이게 되는데, 선형적 시간 개념이란, 과거, 현재, 미래로 일직선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간 개념을 의미합니다. 시간은 늘 과거에서 시작해서 현재로 그리고 다시 미래로 흘러간다고 여겨집니다. 그것을 우리는 선형적 시간 개념이라고 부릅니다. 일직선을 따라서 흘러간다는 개념입니다.
인류가 인식하고 사고할 수 있는 범위, 기준이 바로 여기까지 인데요. 우선 시공간 개념부터 3차원 선형 시간대의 개념입니다. 시간은 항상 과거에서 시작하고, 현재로 흘러와서, 미래로 간다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에 따르면 우주에는 반드시 시작이 있어야 하고, 끝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사건이든 시작이 있어야 하며, 끝이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 성립됩니다.
그러나 불가에서는 무시무종 無始無終이라고 합니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는 말씀인데요. 우리 인간 범부들이 볼 때는 이해하기 힘든 개념입니다. 이는 우리가 3차원 선형 시간의 개념으로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고 생각하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神의 영역은 어떨까요? 신도 인간처럼 3차원 시간 개념으로 같이 가시고 있을까요? 이런 것들이 의식의 발전 단계, 각성의 차원 별로 상이하게 인식하는 것들일 것입니다.
영계에서의 시간 개념은 어떨까요? 저는 요것도 궁금한데요. 인도 스승들에 말씀에 따르면, 영계에서도 지구 시간 대와 비슷한 개념으로 가지 않나 하는 추론을 해 봅니다. 보통 지구 물질 세계로의 윤회를 마감하지 못한 영혼들 같은 경우는 지구 시간 기준으로 짧게는 100~150년, 길게는 1,000년 정도를 영계에서 머문 후, 다시 지구로 쫓겨 간다는 것입니다. 결국 시간의 개념이 지구 시간 대, 즉 3차원 선형적 시간의 흐름과 비슷한 개념이 아니겠느냐 하는 추론을 해 봅니다.
다만 높은 차원의 영계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만. 5차원 靈界 같은 경우 입니다.
5차원으로 올라서면, 여기서 부터는 시공간의 개념이 멀티 다차원적 개념으로 간다고 하지요. 3차원 세계에서는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흘러가지만, 5차원 영역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가 동시에 존재하는 멀티 다차원적 시간 개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과거 전설에,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신선들이 바둑 두는 것을 보다 보니, 어느 새 도끼 자루가 썩어 있더라는 설화가 나옵니다. 이게 그런 의미입니다. 시공간의 선형적 흐름 차원을 넘어선 영역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런 영역에서는 찰나가 영원이 될 수도 있고, 순식간에 수만년의 세월이 지나가 버릴 수도 있을 것이며,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 미래의 내가 동시에 보여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경지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우리 조상님들은 신선 도사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그게 5차원 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은하문명, 은하 문명수준의 외계인들이 이 수준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개념 상 혼동하는 부분은, 고대로부터 지구인류가 신으로 숭배한 존재들과 현대에 와서 우리가 외계인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의 상관 관계입니다. 사실에 있어서는, 우리가 은하문명 운운하고 은하문명 수준의 외계인 운운하지만, 이들이 고대에는 지구인들에게 神으로 숭배된 존재 들었다는 점을 상기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격차가 크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살면서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부분들이 얼마나 잘못 된 것인지를 알게 되었는데, 그 부분을 풀어서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보통은 외계인 하면, 인간과 똑 같은 존재로 보려 합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더라 입니다. 물론 인간 수준에 머무는 외계인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빛을 초월하는 초광속 우주선을 개발하여, 먼 거리의 우주를 뛰어 넘어서 다른 은하계나 태양계를 갈 정도로 진보된 외계인들이라면, 인간 수준에 있지 않다는 점을 알아 둬야 한다는 점입니다.
의식이 어느 발전 단계에 있느냐에 따라서 그 실체가 보고 듣고 느끼는 영역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현실은 변화한다는 개념입니다. 플레이아데스 사람들이 주로 지구 상에 와서 책을 많이 썼다고 하는데요. 물론 사람들을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주고 사람이 받아서 적은 글들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가 보는 견지에서는 혹시 그들 자신이 플레이아데스 사람들은 아니었는지? 라는 의문도 듭니다.
현실은 새롭게 변화하며, 의식이 각성되어 열리게 되면, 현실도 동반해서 변한다는 것을 그들은 주장했습니다. 우리가 느끼고 보는 현실이 정말 진실일까요? 라는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그들은 홀로그램, 매트릭스를 말합니다. 말하자면 의식이 각성 진보하게 되면, 3차원 선형 시간 개념으로 보면, 있을 수 없는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현실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관점입니다.
누가 무엇을 어떤 인식의 수준에서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서 현실은 변해 간다는 것입니다. 지구 인류 수준에서는, 3차원 선형 시간 개념, 인과율에 따른 개념의 세상이 보이고 느껴지므로,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알게 되지만, 그 단계를 뛰어 넘으면, 인과율의 법칙마저 흔들릴 수 있다, 즉, 과거에 어떤 원인이 있어서 현재에 어떤 결과를 얻었다가 진리는 아니다 라는 관점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때로 미래가 과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개념으로 확대해석 된다는 측면입니다. 3차원 시간 개념은 과거 현재 미래로 직선 상의 흐름을 보이지만, 5차원 시간 개념은 동시 다발적이라는 관점입니다. 미래 자아가 현재 자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개념이 성립됩니다.
무의식이라고 하는데요, 무의식이란 자아가 의식하지 못하는 의식들을 의미합니다. 광물의 세계를 무의식의 세계라고 본다면, 동물의 세계는 자아가 형성되지 못한 본능, 군집의식의 세계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인간은 자아(에고), 정체성을 지닌 보다 진보된 의식체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진보한다면, 다차원적 삶의 경지에 올라서게 된다는 개념입니다.
에테르 천상의 도시를 표현한 그림 같아 보입니다. 이런 개념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것을 그들은 평행우주로 부릅니다. 현대과학에서도 다중우주론이 제창된 것은 오래 전의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우주가 우리 우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평행하여 존재하는 많은 우주가 존재할 것이라고 현대 물리학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런 개념을 다중 우주, 다차원적 삶의 개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만, 저도 확실하게는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러한 삶의 경지는 예측할 수 없으며 알 수 없습니다. 의식 수준이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 입니다. 결국, 현실이란, 아는 수준만큼만, 인식될 수 있는 수준만큼만 보여지고 느껴지는 것이다 라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즉, 가변적 현실입니다.
제가 보는 바로는, 신선, 도사 혹은 플레이아데스 Pleiades 같은 은하 문명 권의 존재들은 이런 경지에서 산다고 보면 될 듯도 합니다. 다만, 이러한 것들이 각성 해탈과는 어떤 연관 관계를 가지는 가에 대해서는 저도 의문입니다만.
각성, 해탈이란 또 다른 관점으로 볼 문제이기 때문 입니다. 제가 보는 견지로는, 이른바 초광속 우주 여행을 실현하고, 높은 의식의 차원에 이르렀다고 해도, 그들의 의식 수준이 지고의 의식 차원에 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느낍니다.
지고의 의식차원이란, 현상계를 초탈한 의식을 말합니다. 해탈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광대한 자비와 사랑을 동반하는 그리스도 의식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그런 경지는 아닌 것 같다는 것이고요. 그래서 저 나름대로 생각을 해 보는 것이, 들은 얘기이기도 합니다만, 이들 은하문명 권의 존재들 이른바 5차원적 신선 도사 개념의 존재들도 더 진보 진화해야 한다는 관점이며, 그러한 경지에 올라서려면, 자비와 사랑, 그리고 동정과 연민의 법칙에 대해서 통달해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즉, 6차원 이상, 그러니까 인간적 개념으로 본다면, 신성한 존재, 성령의 단계입니다. 이 단계 이상을 저는 神으로 해석합니다.
우주의 중앙 하보나 우주라고 하던데요. 이런 것도 아마 여러 우주가 존재하므로 나오는 개념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신의 개념은 결국 신성한 근원에 도달한 존재들이라는 개념이고요. 지구인류가 고대에 믿고 숭배한 신들은 이런 개념의 신들은 아닌 경우가 많았다는 것입니다. 때로 차이점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는데요. 결국 그리스도 의식, 조건 없는 절대의 사랑을 실현한 존재, 신성한 근원에 다가선 존재들 聖靈들을 神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며, 그 이하는, 神仙 혹은 은하문명 외계인(선배 도사들)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보는 관점에서는 특별한 초능력과 마력 그리고 초월적인 과학기술 문명에 도달한 어떤 존재들이 신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전적인 의미에서 해석한다고 해도, 신이란 선과 악을 초탈한 존재여야 하는데, 선과 악은, 현상계의 이원론적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구극의 근원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데 이는 이원론적 사량분별 심을 초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조건 없는 절대의 사랑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이 믿는 바에 따르면 신은 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은 악을 모릅니다. 이런 개념을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지만, 선하다, 악하다는 것도 하나의 구분 심이라고 보았을 때,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본래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입니다. 이는 이원론 적 우주 현상계를 지탱해 주는 기본적 요소들로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지, 이것을 초탈하여 넘어선다면, 이러한 개념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입니다.
인식의 문제를 설명할 때, 로봇을 비유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알고리즘에 의하여 제한된 존재가 로봇입니다. 그 알고리즘을 벗어나서 보다 높은 의식을 성취하거나, 보다 확대된 지식(로봇으로 말하면 백 데이터 입니다)을 얻지 못하면 계속 그 상태를 전부로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봇을 만든 인간이 로봇을 보면, 한계 지어져 있다 혹은 다 알지 못한다고 보게 되겠죠. 그게 3차원적 사고체계, 알고리즘이 주는 한계입니다. 그리고 이걸 돌파해 간 존재들이 5차원적 존재, 은하문명, 신선 도사라고 칭해지는 것입니다. 이게 제가 보는 사람과 신선 도사 간의 차이 점입니다.
근본적인 삶의 의미, 목적에 대해서는, 근원적 측면을 고찰해 보면, 無始無終, 영원한 순환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해탈을 강조하셨는데, 이는, 3차원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서 광대한 우주의식을 성취하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인간적 사고의 수준에서 보면, 무상하고 덧없고 허무하며, 가치가 어디에 있을까를 고뇌하게 되는 문제입니다만,
그 의식이 각성 해탈하여 높게 올라서서 우주의식을 성취한다면, 이른바 좁쌀 같이 작은 인간의 의식, 에고 Ego로부터 벗어나서, 또 다른 관점에서 우주를 보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제가 설명한 의식의 각성 정도에 따른 인식의 변화 측면입니다. 부처님께서 무상을 설하시고, 인생이 고 苦라고 설파하신 이유는, 낮은 자아에 얽매여서 허상을 진실로 잘못 알고 살아가는 상태를 벗어나라고 하시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샹그라, 샴바라, 아갈타 문명 같기도 하네요. 아마도 이런 개념입니다. 진보와 진화의 대가로서 주어지는 삶들.
여기서 허상이라고 하면, 결국은 삶과 죽음의 문제입니다. 실제로는 영원불멸하는 실체(부처님은 실체가 없다고 설하시지만, 이것은 무상하게 생멸변화해 가는 현상계의 관점이고요. 실제로는 영원불멸 하는 실체적 자아로서의 眞我, 우주심, 우주의식, 불멸의 근원적 실체(?)를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성취하라는 의도로 해석되었습니다.
영을 설명할 때, 영이 혼과는 다른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혼은 한 시대를 살다 가는 일시적 존재들이고, 영은, 아마도 각성 해탈하여 신께 되돌아갈 때까지 존속할 혹은 신과 더불어 영원불멸하는 실체적(이것도 사실에 있어서는 전체의식에 합일되어 개체성을 버릴테지만) 존재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영을 神 의식의 파편 분신적 의미로 봅니다.
나고 죽고 생멸하며 변화해 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지만, 그 인간이란 결국 혼이라는 얘기이며, 영의 일부적 에너지라는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인간으로 환생할 때, 영이 지닌 모든 에너지를 가지고 가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영체가 영계에 남아 있는 상태, 영의 에너지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일부의 에너지가 인간으로 화신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3차원적 존재,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의 입장에서 본다면, 인간은 허무한 존재입니다. 나고 죽고 병들고 고뇌하고 힘들게 살다가 갑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무상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게 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이 배후에 또 있다는 것입니다. 혼은 영의 일부적 에너지 체이며, 일시적으로 지상에 화신하여 경험이라고 하는 과정을 통해 지혜를 얻고자 하는 의도로 정해진 기간 동안, 지상에서 자아를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인생의 무상성이란, 아마도 혼의 측면에서 볼 때의 문제일 것이며, 영의 측면에서 본다면, 그 자신은 하나의 실체로서 존재하면서 그 자신의 다면적 측면으로서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혼을 내 보내는 주체적 핵심들로 해석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한 영이 존속해 온 기간 동안, 그 영이 혼으로 화신 한 숫자 만큼의 많은 혼들이 존재했을 것이고, 그것을 우리는 영의 다면체, 영의 측면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중심이 되는 실체는, 그대로 있으되, 그 실체가 인생이라고 하는 경험을 얻고 지혜를 쌓아가는 과정 상에서, 무수하게 많은 무상한 삶들이 이어져 간다는 관점인 것이죠. 그리고 그 삶의 경험을 통해서 영도 진보해 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진보가 어느 일정 수준 이상에 이르면, 이른바 5차원의 단계 혹은 천계와 같은 높은 영역으로 전생해 간다는 관점입니다. 그리고 종국에 이르면 신성한 근원으로의 회귀 일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단축시키고, 보다 높은 절대의 차원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수도승, 구도자들이라고 부르고, 부처님 같은 분들이 말씀하신 해탈 각성이란, 이러한 제반 과정을 지혜로서 통찰하여 그 기간을 단축시키고, 종국에는 초탈하여, 구극의 경지를 성취하라고 하시는 의도라고 구분하여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혜로서 통찰하는 사람들은 보다 빠르게 갈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길고 긴 윤회의 길을 돌아서 가야 한다는 그런 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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