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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10/28
    이주노동자에게 집회란..
    free-vahn
  2. 2004/10/27
    개란말이(1)
    free-vahn
  3. 2004/10/18
    메인스트림 교육의 패권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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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04/10/18
    대한민국말아먹는놈들 총정리<서프펌>
    free-vahn
  5. 2004/10/13
    위성에서 본 지구 야경..(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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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04/10/01
    [종교권력] 종교적 피터팬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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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4/09/28
    반대는 나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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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4/09/28
    공포2 , 그리고 국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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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4/09/14
    몸매와 피부나이 늙게 만드는 잘못된 다이어트 습관 10
    free-vahn
  10. 2004/09/14
    신촌에는 한대수가 산다(2)
    free-vahn

이주노동자에게 집회란..

정말 산다는게 무서워질 때가 있다.. 추운 새벽 폐지를 줏으러 다니시는 초로의 할머니를 마주치고 눈물이 막 나려고 했었는데...

 

정말 다함께 잘 살수는 없는걸까??

 

이주 노동자의 인권에서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

 

 

* 이 글은 schua님의 [이주노동자에게 집회란..]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 이 글은 썩은 돼지님의 [이 신발도 말을 하고 싶었을까?] 에 대한 트랙백 입니다.

지난 2월 17일 굽다가 연행된 날이다.

출입국 관리소 직원이 어이 없이 샤말을 길에서 납치한 것을 항의하는 집회였는데

맘 먹고 덤비는 출입국 관리소 직원들의 집회 침탈을 가까스로 외환카드 노동자들과

연대하러 온 학생, 활동가들이 막고 있을 때

뒤쪽에서 굽다가 연행됐다.

굽다의 사지를 잡고 50m 정도 떨어져 있는 봉고로 데려 갔다.

난 그 상황을 보고 맥이 빠졌다.

들고 있던 카메라는 지 맘대로 돌아가고 있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대오를 향해 큰소리로 '여기 여기' 했다.

다들 정신이 없었던 지라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었다.

멀리서 연영석 동지가 달려오면서

'이럴 필요까지 없잖아. 당신들 이럴 필요 없잖아' 한다.

너무 상식적인 말인데 멍하게 들렸다.

그 영상을 보면 순간 순간이 멈춰진 스틸 같다.

그 장면만 지나면 다 괜찮아질 것 같은

그래서 꾹 참아보지만 그 장면은 계속 된다

현실과 희망의 괴리...

그 상황이 재연되고 그 상황을 어찌 바꿀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일때면 그 장면에서 그땐 도망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미치기 십상이다.

 

 

그렇게 굽다를 잃고

우리는 명동농성단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버스 안에서 흥분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

농성단에 도착해서는 다들 들머리에 앉아

넋을 놓았다.

그러다 신발이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걸 찍고 있다.

그런데 누군가 다가오더니 그게 굽다 신발이란다.

그 소릴 듣고도 난

그 신발을 한참 찍었다.

마치 굽다가 투명인간이 되었고

신발만 내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굽다' 부르면 투명인간이 된 굽다가

'어 비즐리' 그러면서 나타날 것만 같았다.


>> 계속 보기...


이주노동자 집회에 가면 상식 밖의 상황이 많이 벌어진다.

아무 일도 아닌 것 가지고 경찰이 트집 잡고 험악한 분위기를 만든다.

어느 집회를 가도 그런 식으로 하지 않을 일들이 벌어진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왜들 그러는지 왜 말도 안되는 이야기로

저렇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한국 사람이니까.

그런데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멸시.

까놓고 이야기하면 그거였다.

별 것도 없는 나라에서

가난한 나라에서 왔으면 멸시 좀 받고 살아야지

어디 집회까지 하고 지랄이야.

얼굴에 씌어 있다.

노골적일 때도 있다.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집회할 때였는데

처음으로 이주노동자가 이주노동자 집회에 왔다.

그랬더니 하는 말 "왜 여기까지 데려 오고 그래"

한국 활동가에게 하는 말이다.

그 활동가 왈 "이주노동자가 개입니까 데려오게"

통쾌했다. 하지만 그 경찰 말 정말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으면 웃으면 되는 데 웃음도 안나온다.

 

아무 권리도 없고 언제든 잡아채서 넣어 버리면

본국으로 돌려 보낼 수도 있고 어디 하나 거칠 것이 없는 것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주노동자들은 인간이 아닌 것이다.

아무런 권리가 없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이주노동자가 집회에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농성을 하면서 중요할 때 집회를 해야 하는 데

머뭇거리는 이주동지들을 보면 답답했다.

하지만 한번 연행되면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도 어떤 방법도 없이 본국으로 추방되니

그러면서도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집회에 나가는 이주동지들을

볼 땐 정말 마음이 아프다.

 

한국에서의 자신의 삶이, 시간이 송두리째 강탈당할 수 있다는

그런 압력을 이겨내면서 이주동지들은 집회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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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란말이

 

 

첨엔 모야?? 했는데.. 너무 웃겼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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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스트림 교육의 패권주의

일단 기본적인 입장이다. 이건 존 롤스의 원칙을 그대로 적용한다.
우선 교육 기회 균등의 권리를 보장하라. 이후 차등을 줘라..

물론 나도 안다. 세상이 부조리하고 불평등하다는 것.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교육 만큼 계급 상승의 기회도 없거니와 모순되게도 현실상 교육 만큼 계급의 재생산의 장치도 없다. 있는 집에서 자식들을 죽어라 공부시키고 유학보내고 하는 것들이 현실적 반증이다.

이미 슈퍼엔진을 단 차와 일반 티코랑 정정당당하게 경쟁하자는건 지나친 기만이다.
도대체 우생학적으로 강남에 살면 우성 인자를 얻게 된다는 사실이라도 밝혀졌는가?

그렇다. 교육은 대부분 후천적 환경에 영향을 받고 후천적 환경의 중요요소는 경제수준이다.
다시 말하자면 경제수준에 의해 인간의 지능평가가 달라지고 결국 차세대 카스트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또 생각해볼 거리는 교육의 문제다.
교육과 평가는 동전의 양면이다. 교육이 허접하기 때문에 평가도 조악해진다. 사실 수능으로 인간의 지적 수준을 평가할 수 있을까? 반대로 현재 교육구조가 양질의 인간 양성을 담보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 대부분의 평가는 이 시험을 잘 보는 학생을 구분짓는 깔대기다. 하지만 그 깔대기라는게 너무 단순하고 편협하기 짝이 없다. 물론 이 논의에선 노력도 하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슬기만 평가해달라고 요구하는 부류는 제외 시킨다.

더구나 그렇게 고생해서 좋은 대학교에 들어갔다고 치자. 그 대학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통해 인재육성을 보장하는 프로그램을 갖고 있는가? (아니오 -.-; )

웃지 못 할 일이다...

물론 이 계급의 모순이 여전히 유전될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다시 롤스의 이론을 끌여들여 .... 적어도 신분간의 모순적 상속의 갭이 줄여들도록 안정망관리를 해야하지 않겠는가?

고교 등급제를 하던지 말던지 나랑 상관없다.
교육정책 좀 제대로 관리 해라. 노력하는 성의라도 좀 보여라. (기회 균등권 보장) 그런 상황에서 정교한 차별이 (차등의 원칙) 정당화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계급간 피라미드의 높이를 최대한 낮혀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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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스트림 교육의 패권주의

출처 : http://www.hani.co.kr/section-001050000/2004/10/001050000200410171938099.html



"(고교)등급제를 하지 않는다니.. 걱정이군요. 아이 학교를 다른 데로 옮겨야 하는지, 어떤지."
"부동산도 기운다는데…행정수도까지 가면 강남이 어떻게 되는 거죠?"

요즘 강남 학부모들이 나누는 얘기에 이런 것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 고교등급제 폐지와 부동산 신화 붕괴, 이 두가지 정도면 강남은 ‘갈’ 수도 있다. 판검사 변호사 정부 관료 정치인 의사 교수 사장 등등으로 구성된 엘리트공화국 강남은 흔들릴 것이다. 완전히는 아니겠지만 상당히 무너져 내릴 것이다.

대한민국을 강남공화국과 그 변방으로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몇가지 사안으로 그 구분은 명확해졌다. 재산세 파동-고교등급제 소동-수도이전 논란 등에서 비슷한 특정 태도를 보인 이른 바 메인스트림적 부류와 그 바깥에 있는 부류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강남은 메인스트림이다. 교육분야로 말하자면, 고교 학력차 인정하라, 내신 무시하라, 등급제 안할 수 있나, 사교육 하면 어떠냐, 정답 맞추기가 수월성이다, 수월성이 국가경쟁력이다, 평준화는 안된다 등등이 그들의 목소리다.

우리 사회를 고질적으로 갈라왔던 영호남 같은 것이 아니라, 강남과 비강남으로 상징되는 좀더 본질적 결절을 환기한 것이 이번 고교등급제 소동이 준 긍정적 측면이라면 긍정적 측면일 것이다. 고교등급제는 교육을 통한 계층상승 기회를 줄여 그나마 남은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작은 미덕까지 훼손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기본 원리와 관련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학들이 그걸 몰래 해왔다는 사실에는 좀 어처구니가 없다. 이번 소동은 보편교육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차별적 특권-수월성-국가경쟁력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교육으로 갈 것인지를 가름하는 상징적 사건이다.

고교등급제는 고교간 학력격차와 같은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적용된 것이 아니다. 내신 부풀리기나 변별력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내신 부풀리기가 정말 문제였다면 각 대학은 벌써부터 내신 변별력을 확보할 수단을 개발했을 것이다. 그건 크게 어렵지 않다. 강남 일부처럼 돼버린 대학들의 삐뚤어진 패권주의에서 비롯한 차별이고 속임수일 뿐이다. 서울대 총장까지 이런 행위에 가담하지 않아 피해의식을 느낄 정도라면 대학들의 패권주의 의식이 얼마나 깊은지 갸늠할 길이 없다.

나는 몇몇 대학들이 공언했고 이미 흘리기 시작한 성적부풀리기의 실태나, 고교간 학력격차 따위가 있는 그대로 드러나야 한다고 본다. 대학들은 그 실태를 있는 그대로 발표하기 바란다. 교육부는 성적 부풀리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고교 내신 시스템을 정비하고, 학력격차가 존재한다면 대학들이 고교등급제를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학력격차를 일소하는 강력한 조처를 시급히 취해야 한다. 고교등급제를 인정하지 않는 그 자체가 조처의 첫걸음이다. 등급제가 없다면 강남 특권은 해소된다. 그게 국가의 역할이다.

대학은 자신이 맡아야 할 수월성 교육의 많은 부분을 입시 메커니즘에 내맡기고 게으르면서도 차별적인 고교등급제를 채택함으로써 강남 이데올로기를 부추겼다. 강남은 등급제를 하지 않는 것이 역차별이라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등급제로 다른 지역이 받는 차별이 정상적인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정부가 등급제를 금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강남불패 신화는 늘 강고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제대로 진행될지 확신하기 어렵다. 판검사 변호사 정부관료 정치인 의사 사장족 학부모들이 내신을 중시하겠다는 2008년 입시정책을 놔둘지도 모르겠다. 본고사가 되던 어떻든 막강한 사교육의 후광을 업은 강남은 자기복제를 위한 또다른 편법을 만들어내려 할 것이다.

도대체 교육이 무엇인가?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제 교육에 대해 좀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질 때가 되었다. 대한민국이 보편교육을 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답해야 할 때가 되었다.

이흥동 편집부국장 hdlee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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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말아먹는놈들 총정리<서프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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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에서 본 지구 야경..




 

후배가 올린 게시물인데... 작은 불빛 중에 하나도 안될 것 같은 나의 존재감이 우울하게 하고...

반쪽만 있는 우리나라가 또 우울하게 하고...

 

요즘 .. 너무 시니컬하게 사는 탓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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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권력] 종교적 피터팬 신드롬

난 가끔 의하하다. 개혁신학을 외치는 교단에서 전혀 개혁하려는 의지가 없는 모습을 보고...

또 신기하다. 자신의 과거의 모순을 부정하려는 모습 보단 억지로 두둔하려는 태도들의 벽이 교회에서 나의 신앙생활을 질식하게 한다.

내 신앙적 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 줄 알지만 내가 배우고 성경을 통해 얻게된 신앙의 기준엔 많은 교인들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건 피장파장의 오류가 아니다. 난 당신들이 진심으로 걱정된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으로 자유를 주겠노라 하셨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준 나의 자유를 다시 회수해간다. 그래서 난 두 개의 적과 싸우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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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피터팬 신드롬

출처 : http://www.hani.co.kr/section-001005000/2004/09/001005000200409301917065.html


대부분의 고등 종교는 ‘보수주의의 요새’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교란 과거 전통이 물려준 것들을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기능에 더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수의 종교인들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데 요청되는 ‘비판의식’보다는 이전 것을 그대로 전승하는 무비판적 ‘수용의식’이 더욱 강하다. 그래서 종교가 부여한 틀을 벗어나고자 하던 사람들은 단순한 비판이 아닌 ‘종교화한 심판’을 받는다.

‘마녀’ ‘악’ 또는 ‘사탄’이라는 표현은 특정한 종교적 코드에 저항하고, 비판하고, 개혁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종교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붙여주는 이름표다. 그리고 이 종교화한 심판의 이름표가 붙여지면 정당한 재판의 과정도 생략된 채 무참하게 희생되어 생물학적 죽임이나 사회적 죽임을 당하게 된다. 수백만명의 여성들이 500여년에 걸쳐서 마녀로 몰려 끔찍하게 죽임을 당한 중세 유럽에서의 마녀화형 사건은 한 종교가 자행하여 온 ‘죄악사’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인 루돌프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지켜본 뒤 발표한 글에서, ‘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전통적인 개념을 완전히 뒤엎는 새로운 ‘악’의 개념을 구성한다. 아렌트에 의하면 ‘악’이란 ‘비판적 사유의 부재’다. ‘비판적 사유’가 부재할 때, 착하고 평범하고 신실한 종교인일 수도 있는 사람들이 아무런 죄책감 없이 동료 인간을 무참하게 살상하는 엄청난 악의 공모자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는 이라크 공격을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신성한’ 일로 여기는 무수한 종교인들, 한국의 역사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잣대가 되어 온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것을 마치 거룩한 종교적 사명인 양 착각하는 종교인들을 볼 수 있다. 종교적 색채로 가려진 이 비판적 사유의 철저한 부재야말로 ‘죽임의 문화’를 재생산하는 현대판 ‘악의 축’이 되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의 놀라운 양적 성장 이면에는 ‘비판적 사유’를 억누른 ‘단세포적 복음 이해’와 ‘교회성장지향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비판적 사유란 ‘비판적 물음표 붙이기’ 작업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는 신앙의 이름으로 교인들에게 ‘물음표’를 박탈함으로서 비판적 사유가 작동되는 것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고, 무조건적인 ‘아멘’과 ‘예’만을 신앙적이라고 가르쳐 왔다. 결과적으로 그 가르침과 실천에서 인간의 자유와 책임의 차원을 철저히 상실함으로서 더 이상 성숙하기를 거부하는 ‘종교적 피터팬 신드롬’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한국 기독교 안에 ‘인식의 사각지대’의 골이 깊어지고 철저히 비가시화되고 있다.

특히 인식의 사각지대에서 가장 두드러진 차원은 성차별에 대한 인식의 부재다. 한국 기독교 인구의 70%를 이루는 절대 다수인 여성들이, 절대 소수인 남성들에 의하여 모든 결정 과정과 결정권으로부터 배제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문제 제기하는 비판적 소리가 이토록 부재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여성들은 남성 지도자들에 의하여 ‘교회의 꽃’으로 치켜세움을 받으면서, ‘물음표 붙이기’를 박탈당한 ‘영원한 유아’가 된다. 특히 목회자 중심적인 한국 기독교는 설교와 성서해석을 통하여 ‘순종과 희생과 봉사’라는 기독교적 덕목을 가부장제적으로 포장하여 교회와 사회에서 여성들의 ‘제2의 성’으로서의 존재를 강화하고 재생산하고 있다.

이제 양성평등에 대한 사회정치적 인식이 다양한 차원에서 광범하게 확산되는 이 시대에 한국 기독교가 그 생명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기독교 인구의 절대 다수를 이루는 여성들을 끊임없이 ‘부차적 존재’로만 규정하는 그 남성중심성의 상자로부터 과감히 탈출해야 할 것이다.

강남순 전 감리교신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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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는 나의 것!!

부족한 영어로.... 여당과 여당을 각각 ruling party, opposition party 라고 합니다.

아래 시민님 말씀대로 '반대당'이죠...

과연,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 어필하는 이유가 '반대' 밖에 없을까요?
대안 없는 반론은 보기 민망합니다. (진흙탕 싸움...) 유치하게.. 보다 좋은 정책 제시를 못 한다면 침묵해야죠...
이건 시장 경제 원리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
스포츠에도 챔피온의 밸트를 훔치기 위해선 약간의 핸디를 극복해야 하죠...
정리하자면 반대할 수 있는 자격은 차별화되고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대안을 전제해야 한다.!! 자신의 무지(대안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감 어필만으로 반대만 일삼는다면 되려 국가를 위해 반작용하고 있는 짓이다... 능력이 없다면 간판 내려라..
이런 생각이 듭니다.

강한 자가 생존하는 건 자연의 법칙입니다.

물론 정치 사안들이 숙고를 통해서 결정된 브레인들의 전쟁이기 때문에 '그 나물에 그 밥'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차별화 시키기 상당히 힘든 것도 인정합니다...

모.. 이런 것 까지 갈쳐줘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라카토스(Lakatos)에 의하면 패러다임의 우월성을 입증하는 작업으로 ‘연구 프로그램 (Research Program)’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1. 새로운 패러다임이 더 많은 경험적 내용을 가져야 한다.
2. 새로운 패러다임이 이전 패러다임의 성공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3. 새로운 패러다임이 이전 패러다임에 비해 더 많은 경험적 내용의 일부가 확증되어야 한다.

이런 류의 대안이 있지 않는 한 오로지 반대만 하는 태도는 공리에도 맞지 않다..!!

지금 100분 토론 보면서 글쓰고 있는 중인데 유시민 의원이 이런 말씀을 하시네요...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에게)  "특단의 조치를 찾아야 하는데.... 그렇게 대한민국 이래로 계속 제기되는 문제들만 말씀하지 마시고.... 좋은 방안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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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정치기상도] 반대는 야당 존재 이유 (1999.10.04)




"들추고 파헤치고 물어뜯는다."

정기국회에 임하는 야당의 태도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본회의 동티모르 파병안 표결에서는 집단 퇴장했다.

상임위원회 별로 진행하는 국정감사에서도 불법 통신감청 문제, 김옥두 국민회의 총재 비서실장 부인의 "보험 스캔들", 중앙일보 홍석현 사장의 사법처리 문제 등 크고 작은 모든 쟁점에 대해서 야당 의원들은 정부를 비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사사건건 반대만 일삼아 온 야당"에 혀를 끌끌 차면서 한나라당에 "건설적 야당"이 되라고 주문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건 비현실적인 요구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건설적 야당"이란 있을 수 없다.

민주주의 본고장인 서유럽 주요 언어에서도 야당을 가리키는 말을 직역하면 "반대당"이 된다.

야당의 임무는 무슨 일이든 일단 반대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민주주의 역사가 이제 겨우 10년 남짓한 우리 나라에서야 말할 나위도 없다.

더러는 이회창 총재의 "독선적 성격"을 거론하고 "초보여당의 난폭운전" 이라는 표현까지 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총재를 맡고 국민회의와 한나라당 의원들이 소속 정당을 바꾼다고 해도 상황이 달라질 리는 없다.

야당이 쟁점마다 더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정부여당 역시 매우 합리적이어서 야당의 대안 즉각 정책에 반영한다고 하자. 그래서 경제가 살고 사회가 안정되고 정의가 이루어진다면, 그 공로는 결국 야당이 아니라 집권당과 정부의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벌이는 토론을 중계방송하는 것도 아니고, 여야가 시끄럽게 충돌하고 독설과 폭로가 터지지 않는 상임위원회에는 기자들도 잘 들어오지 않는데, 그런 좋은 정책을 제시한 것이 야당 의원이라는 사실을 국민들이 어떻게 알 것인가.

집권당의 중대한 실책을 폭로하고 물어뜯는 것 말고는 야당이 자기의 존재를 알릴 방법이 없다.

국민들이 보기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야당이라면 정권을 되찾는 건 아예 불가능하다.

만약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승리를 거두어 또 한 번의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다면, 지금 여당인 국민회의는 즉각 "전투적 반대당"으로 돌아갈 것이다.

국민들이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풍부한 정보를 얻을수록 국민과 정치는 가까워지고 야당은 정책대안 제시에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방위원회와 보건복지위원회 등 몇몇 상임위 의원들이 국정감사장에 들어 온 시민단체의 의정활동 모니터 요원들을 내쫓아 버린 것은 일종의 "자해" 행위라고 해야 한다.

특히 이를 주동한 여당의원들은 "반대만 일삼는 야당"을 비난할 자격이
없다.

"초등학교 성적표에도 석차가 없어졌다"며 그 "자해"를 합리화하는 어느 의원들의 말씀은 듣기조차 민망하다.

평가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게으름을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가와 경쟁이 없어서 모두가 행복하게 지내는 조직이나 사회가 발전하는 일은 없다.

없는 돈과 인력을 힘들게 끌어 모아 조직한 시민단체의 의정감시를 봉쇄하는 국회에서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

공개적 평가를 싫어하는 국회의원들은 모쪼록 이번 임기가 끝나면 "음지에서 일하는 조직"으로 직장을 옮기는 것이 좋겠다.

< 시사평론가 denkmal@hite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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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2 , 그리고 국보법



공포

공포는 심층적 내면의 공포가 있고 조작된, 교육된 공포가 있다. 이 둘을 판별하는 기준은 어떤 사례를 얘기했을 때 "맞어, 맞어.." 긍정하는게 (공감) 전자인 반면 약간 껄끄름한 뭔가가 있는게(학습) 후자다. 예를들면 흉찍하고 기괴한 정상적 형상에서 변형된 형상을 보는 것에 우리는 공포를 느낀다. 프레디 같은... 하지만 우리는 하얀 소복을 입고 열라 얼굴이 창백한 여자에겐 [전설의 고향]등을 통해 쇠뇌된 공포를 느끼게 된다. 무조건 반사와 조건 반사의 차이 정도일게다...

우리가 쇠뇌된 공포심은 아주 다양한데.. 이를테면 북한은 악의 축이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계가 무너질 것이다.. 등이 있다.

난 이들에게 진심으로 제안한다. 치열하게 논쟁하자고... 제발 우기지 말고 객관적으로 옥석을 가려서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자고...

혹은 똑같은 논리로 이렇게 말하고도 싶다. 과거 민주인사들을 잡아다 고문했던 국보법을 그대로 적용해서 다들 잡아 쳐 넣어버릴까??? - 또 하나의 공포

 


공포 2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를 보면 우리는 실제를 외곡되서 본다. 그래서 오해도 생기고 '이 산이 아닌가벼??' 이러기도 한다. ^^;
동굴 안에 있는 사람은 동굴 밖의 사람들의 목소리를 동굴 특유의 울림현상으로 무섭게 듣는다. 동굴 안에 있는 사람은 동굴 밖의 사람들의 커다랗고 (평면화 되지 않는 벽 때문에) 외곡된 그림자를 보고 도깨비를 연상한다.
그래서 그들은 동굴 밖을 나올 수 없다.
그들에게 있어서 동굴밖의 사람들은 (그들과 동등류가 아닌) 무서운 존재다.... 공포

현재 국보법에 반응하는 우리가 이와 같다. 특히 수호를 외치는 이들의 심리가 이런 듯 하다.
다시 말하자면 국보법의 실제는 제대로 보지 못 하고 외곡, 비약된 결과만을 걱정한다.
적어도 국가 안보에 있어서 북한이 잊을만 하면 한번씩 위협이 되는 소식을 들려주고, 무엇보다도 부시의 '악의 축' 발언으로 구체화된 '북한, 제2의 이라크 만들기' 파일의 존재...
우리는 또 불안해진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 불안과 실제의 관계는 그림자와 사람의 관계 정도다. 가끔 나는 반공이라는 매트릭스에 사는 것 같다.

사실 이 공포 방정식은 생경한 일도 아니다. 우리는 이 공포 바이러스에 아주 잘 내성을 갖고 산 듯 하다.
복지와 분배를 얘기할때 18번 처럼 등장하는게 우리나라 경제 위기다. 호주제 폐지를 얘기할 때 가계붕괴를 얘기한다.

언제부터 우리들이 이렇게 소심해졌을까?
맞장 뜨자!!
동굴 밖으로 나가서 우리가 보는 그림자가 기실 사람이 아니라 진짜 도깨비라면 싸워 이겨야지 숨어서 벌벌떨고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내가 보는 국보법


사실 난 국보법 조항을 조목조목 읽어보지도 못 했을뿐아니라 일부 조항에 대해서는 깊은 이해의 부족을 고백한다.
그래서 국보법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려고 했었다.
하지만, 확실히 나에게 남아있는 국보법의 이미지는 국보법이 아니라 '정권보좌법'이었다.

실제로 국보법 기소자들 가운데 북한과 연계하여 남한 민족해방을 위해 활동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사회주의 이념으로 똘똘 뭉쳐 적화통일 하려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주체사상 주의자가 몇이나 되는가? 또 이런 사람들을 싸잡아서 합산한다 한들 몇이나 되는가?

국보법의 해석의 차이로 우리나라 재야인사, 민주인사들을 더 잡아들이는 어망이 국보법 아니었나? 이런 측면에서 위의 양식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국보법 폐지 + 대체 입법에 긍정한다.

어떤 측면으로는 국보법 스스로가 파쇼를 만들기도 하는 것 같다. 마치 마법의 반지가 반지의 제왕을 만들듯이...
민주인사 사냥에 동원된 것과 관련해서 이런 오류를 낳는 이유가 국보법의 해석의 차이가 있다. 물론 많은 법들은 해석의 차이가 있다.

그런데 단지 해석의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가령 어떤 초딩반에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학생은 한달동안 화장실 청소'란 클래스 룰을 만들었다고 치자. 이 룰을 시행하는 사람은 반장이라 치자. 이때부터 반장은 막강한 권위를 갖게 된다. 맘에 안드는 학생은 언제든 이 룰을 적용시킬 수 있다. 이제 반장은 제왕적 권위를 갖게 된다.

바로 국보법이 (짐이 나라인) 자신에게 도전하는 도전자를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국보법은 '법'으로써도 문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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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전문분석 (출처 : ::국가보안법폐지국민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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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관련 형법 조항 들  

출처 :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http://www.antikukbo.net/board/read.cgi?board=data&x_number=1094869457&r_search=조항&nnew=1

          <형법>


제87조 (내란)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는 다음의 구별에 의하여 처단한다.

     1. 수괴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2. 모의에 참여하거나 지휘하거나 기타 중요한 임무에 종사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연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한다. 살상, 파괴 또는 약탈의 행위를 실행한 자도 같다.

     3. 부화수행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는 5년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에 처한다.

제88조 (내란목적의 살인)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처한다.

제90조 (예비, 음모, 선동, 선전)

  ①제87조 또는 제88조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3년이상의 유기징역이나 유기금고에 처한다. 단, 그 목적한 죄의 실행에 이르기 전에 자수한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

제92조 (외환유치)

  외국과 통모하여 대한민국에 대하여 전단을 열게 하거나 외국인과 통모하여 대한민국에 항적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한다.

제99조 (일반이적)

  전7조에 기재한 이외에 대한민국의 군사상이익을 해하거나 적국에 군사상의 이익을 공여한 자는 무기 또는 3년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제101조 (예비, 음모, 선동, 선전)

  ①제92조내지 제99조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2년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단, 그 목적한 죄의 실행에 이르기 전에 자수한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한다.

제114조 (범죄단체의 조직)

  ①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그 목적한 죄에 정한 형으로 처단한다. 단, 형을 감경할 수 있다.

  ②병역 또는 납세의 의무를 거부할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0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1천500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개정 95·12·29>

  ③전2항의 죄를 범하여 유기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벌금에 처한 자에 대하여는 10년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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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40925084437&s_menu=정치


실신한 국보법  
  [기고] '김용갑 의원 졸도' 사태를 보고         2004-09-25 오전 9:00:39    

  필자 : 진중권/정치평론가

  
  김용갑 의원이 국회 단상에서 제 분을 못 이기고 쓰러졌다. 대한민국을 한 몸으로 떠받치던 인간 국보법이 제 풀에 지쳐 졸도했다. 상징적이다. 50년 동안 선무당처럼 펄펄 뛰던 그 악법도 이제 기운이 다 쇠한 모양이다. 물론 아직도 백주대낮에 길거리에서 칼로 제 배를 갈라 그 놈에게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 더러 있지만, 이 미련한 신체 예술로 그들이 보여준 것은 ‘국산 칼, 더럽게 안 든다’는 사실뿐이다.
  
  언뜻 보면 국보법의 폐지에 반대하는 흐름이 대세같다. 착시현상이다. 촛불도 꺼지기 전에는 마지막으로 크게 한번 낼름거리는 법. 우익 시위의 격렬함은 ‘마지막 발악’이다. 그 살벌한 제스처로 저들은 국가의 안보가 아니라 자신들의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저들의 공포는 북한의 안보위협에서 오는 게 아니다. 국보법이 폐지되면 도대체 이 사회에 자신들이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 저들은 그게 무서운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국보법 폐지에 반대하고 있다? 그 또한 착시현상이다. 여론은 추이를 따라 동태적으로 읽어야 한다. 국보법에 관한 여론의 추이는 목하 ‘개정불가’에서 ‘개정가능’을 거쳐 ‘폐지가능’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게다가 반대론자들의 상당수가 사안 자체에 대한 판단보다는 “경제가 급한데 웬 국보법 논란이냐”는 상황논리에 잠시 설득된 상태. 경제가 급한데 국보법 ‘폐지’에 목숨 거는 것을 이해 못하는 이들은 경제가 급한데 국보법 ‘수호’에 목숨 거는 것도 이해 못한다.
  
  50년 넘게 존속했던 법을 없애자니 시민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는 게 사실이다. 정치권에서 자꾸 대체입법이니, 형법보완 운운하는 것은 그 때문이리라. 최근 형사법 전문가들은 국보법의 공백은 형법으로도 얼마든지 메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뭘 더 대체하고, 뭘 더 보완한단 말인가? 대체입법이니 형법보안이니 하는 것들은 사실 국가의 ‘안전’(安全)을 위한 법적 조치가 아니라, 유권자의 ‘안정’(安靜)을 위한 심리요법일 뿐이다.
  
  대체나 보완은 필요 없다. 형법으로 처벌하지 못하는 것을 처벌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인권유린이다. 고작 “불안감” 따위를 해소하기 위해 시민의 권리를 법적으로 제한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불안감을 해소하는 길은 따로 있다. 국보법을 확실하게 폐지하는 것이다. 그러잖아도 이미 사문화되어가는 법, 폐지해도 별 일 없다는 보여주는 것만큼 확실하게 “불안감”을 해소하는 길이 또 있을까?
  
  여당 내의 기회주의 분파는 제 이름대로 개혁을 “안개”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 어영부영 타협하거나 질질 끄는 것은 전술적으로도 현명하지 못하다. 빈틈을 주면 안 된다. 선명하고 명확한 입장을 정해 신속하고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 보수층이 국보법에 집착하는 것은 사실 상징성 때문이다. 국보법의 폐지가 기정사실이 되면, 깃발을 잃은 저들의 반항은 순식간에 무력화할 것이다. 국보법은 죽었다. 남은 것은 진단서를 떼고 송장을 치우는 일뿐이다.
  
  자신감을 가져도 된다. 표면에 이는 보수의 거센 파도에 불구하고 바다 속의 조류는 빠르게 바뀌고 있다. 지금 개혁정권은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고 있다. 그런데도 차기정부의 성격을 묻는 설문에 시민의 56.9%가 “진보개혁 성향의 정부”라 응답했고, 오직 35.7%만이 “보수안정 성향의 정부”라고 대답했다. 현 정권의 보수화에 실망해 떨어져나간 지지층이 정권과 거리를 두면서도 여전히 “진보개혁”을 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 뭘 해야 할지 분명하지 않은가?
  
  대체입법이나 형법보완 따위에서 국보법의 대안을 찾는 것은 정치적 상상력의 빈곤이다. 누군가 국보법 폐지의 ‘대안’을 요구하거든, 가령 취약한 정보전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조치 등, 안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아 제시할 일이다. 안보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을 못 받아들이겠는가. 야당 역시 제발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겠다는 부정적 발상에서 벗어나 이제는 뭔가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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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매와 피부나이 늙게 만드는 잘못된 다이어트 습관 10

그래... 오늘부터 시작이다.. !!!!!!!!!!

윤선이 블로그에서.. 살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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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는 한대수가 산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가장 이국적인 포크 록커..
한국 최초의 히피..

한때 한대수를 무지하게 좋아했습니다. 그의 자유.. 방황.. 무엇보다도 발군의 음악성..

이젠 속물이 되버렸지만... 20대 초반에는 한대수씨처럼 기타하나 들고 세상과 맞짱뜨고 싶었더랬습니다.
한대수씨의 자유가 부럽고, 그 자유를 양육했던 히피시대가 부럽고 상당한 미인인 사모님도 부럽습니다.. ^^



"하지만 나는 화폐 없어. 화폐가 무슨 필요가 있나? 질투와 소유는 평화를 깨. 나는 사람이 두 가지만 없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병하고 빚이야. 이 두 가지만 없으면 행복하지 뭐. 물론 나는 그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지만 말이야, 하하하"

"화폐는 자본주의의 물이야. 나쁜 건 아니지. 하지만 ‘투머치 화폐’는 좋지 않아. 평화를 깨. 시기, 질투, 소유권, 이 세 가지는 항상 마음의 평화를 깨는 거야. 밥 먹고 음악 만들고 술 마시고 그러면 되지, ‘투 머치 화폐’가 무슨 필요가 있나?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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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는 한대수가 산다


모름지기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는’ 것이야말로 사천만의 꿈이다. 더구나 ‘영감’에 죽고 사는 예술가라면 아담한 스카이라인 아래로 산그늘 일렁이며 잔잔한 물 흐르는 양평 어디쯤에 작업실이라도 하나 내거나, 혹은 미사리 쯤에 카페라도 하나 여는 것이 나름의 작지 않은 소망일 게다.
그러나, 한대수는 신촌에 산다. 바닥은 침대와 티테이블 하나, 그리고 CNN이 나오는 볼록한 14인치 모니터 한 개로 그득하고, 벽이라고는 아내의 나라에서 가져와 걸어둔 현악기 서너 개와 공연 포스터 몇 장, 그리고 작년에 받은 가요대상 공로상 트로피만으로도 그득한 여남은 평 좁다란 오피스텔 한 칸. 팔 층의 창 넓은 방이라고는 해도, 그 창에 가득한 것은 근처 흔한 캠퍼스의 푸른 잔디밭이 아니라 빼곡한 빌딩숲의 가장 칙칙한 뒷덜미들 뿐이었다.

“난 외곽은 싫어. 분당만 가서 살아도 말이야, 사람 만나고 연습하고 하려면 두 시간씩 나와야 하잖아. 뉴욕에 있을 때도 나는 맨하탄에서만 살았어. 맨하탄이 그 외곽에 비해 열 배는 비싸단 말이야, 방값이. 그런데도 나는 중심에 살아. 물론 중심에 살려면 좁은 데 있어야 하지만, 뭐, 좁은 게 무슨 상관이야.”
“그래도 예술 하시는 분들은 주변 환경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영감을 받기 위해서라도…”
“영감? 외곽 나가면 무슨 영감이 있나? 영감이야 신촌에 있지. 젊은 여자들 미니스커트 보면 영감이 떠오르고, 고구마랑 옥수수 쪄서 파는 아줌마들 보면서 영감이 떠오르는 거지. 신촌이 양호야, 양호. 하하하.”


대학시절 처음 밟아본 신촌은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동네였다. 어떤 날은 지독하게 매운 연기 속에서 쿨럭거리다 널브러져 아스팔트를 베고 누운 채 얼핏 거꾸러진 세상 꼴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고, 또 다른 어떤 날은 어설픈 호기에 넘쳐버린 술기운으로 비틀거리면서도 배꼽티에 미니스커트의 ‘초양호한’ 아가씨 뒷꽁무니 구경에 넋을 놓곤 하던 곳이었다.
또 어느 골목에서는 휘황찬란한 ‘락카페’ 구경을 할 수 있었고, 다른 뒷골목에는 스레트 지붕에 온통 끓어 넘치는 ‘독재타도’와 ‘광주영령’ 낙서 가득한 구들방에서 동태찌개 한 냄비에 주먹 쾅쾅 구르며 불끈불끈 투쟁가를 부르기도 했었다.
신촌은 나에게도 영감을 주는 곳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내 생각에 오늘의 신촌은 돈이 있어야 즐거운 곳이다. 더 이상 사지도 않을 책을 반절이나 넘기도록 서점 바닥에 버티고 앉아 있기에, 혹은 주문도 하지 않은 채 먼저 와서 기다리던 어느 카페의 친구 옆자리에서 냉수만 거듭 채워가며 나름대로 심각한 논쟁으로 몇 시간을 죽이기에 신촌은 너무 깔끔하다. 이제는 그래도 몇 푼이고 돈이 있어야 한다. 하기야, 신촌 뿐이겠는가만.

“좀 민망한 질문입니다만, 재산은 얼마나 모으셨어요?”
“재산? 없지, 뭐.”
“혹시 뉴욕에라도 집은 있으신가요?”

조금 짓궂은 질문이었을까? 그래도 궁금했다. 아무리 ‘히피’라고는 해도, 스스로 ‘할배’라고 부르는 오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일까?

“없어. 뉴욕에도, 서울에도. 음… 사실, 음악 하는 사람 중에 화폐 모은 사람 없지. 아마도 한국에서 서태지나, may be… 조용필 정도? 찰리 파커나 챗 베이커 같은 음악가들도 화폐 때문에 가족까지 깨지고, 뭐 다 그랬다고. 물론 화폐라는 게 자본주의 사회의 물이지만, 세계적으로 돈 번 음악가는 없어.”

조금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될 듯 싶었다. 신세한탄이거나, 돈세상에 대한 저주라도 필요했다. 오십줄의 히피라면, 나에게 그 정도 속살은 내놓아야 했다.


“그래도 같이 음악하셨던 분들 보면, 큰 돈은 아니라도 집 사고, 뭐 카페도 내고, 어쨌든 좀 안정적인 생활기반을 마련하는 데는 신경을 좀 쓰지 않습니까?”
“음, 뭐 그렇지. 하지만 나는 화폐 없어. 화폐가 무슨 필요가 있나? 질투와 소유는 평화를 깨. 나는 사람이 두 가지만 없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데, 병하고 빚이야. 이 두 가지만 없으면 행복하지 뭐. 물론 나는 그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지만 말이야, 하하하.”

그는 돈을 굳이 ‘화폐’라고 부른다. 물론 돈을 화폐라고 바꾸어 부른다고 해서 무슨 새로운 의미가 덧붙거나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뭔가 그 경쾌한 파찰음만으로도 간단히 비틀려 벌어지는 ‘돈’과 ‘나’와의 거리감. 우리가 흔히 그것을 ‘쩐’이나 ‘배춧잎’으로 바꿔 부를 때처럼 어느 만큼 희화화되고 가벼워지는 느낌. 그는 인생 전부를 빨아들이곤 하는 ‘화폐’의 마력에서 그런 식으로 물러서 있었다.

“화폐는 자본주의의 물이야. 나쁜 건 아니지. 하지만 ‘투머치 화폐’는 좋지 않아. 평화를 깨. 시기, 질투, 소유권, 이 세 가지는 항상 마음의 평화를 깨는 거야. 밥 먹고 음악 만들고 술 마시고 그러면 되지, ‘투 머치 화폐’가 무슨 필요가 있나? 하하하.”

‘하하하’ 하는 웃음소리만큼은 그의 앨범 자켓 사진을 볼 때의 상상 속 느낌 그대로였다. 도깨비 장난이라도 치듯 얼굴을 훅 앞으로 들이밀며 재미있어 못 견디겠다는 듯이 터뜨리는 단발의 폭소.
그는 항상 위악적인 표정과 그늘로 자신을 드러냈다. 노래도 다르지 않았다. 연주보다도 앞서 불쑥 고개 들이밀며 ‘물 좀 주소’ 하고 을러대기도 했고(‘물 좀 주소’), 온갖 심란한 타악기와 저음의 기타연주에다가 톱연주 까지 얹어서 ‘여치’(같은 하찮은 목숨들, 아마도)가 죽었다고 골을 부려대기도 했다(‘여치의 죽음’).
그러나 항상 그 위악의 뒷면에는 행복의 나라로 나른한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그러다 지치면 일어난 자리에서 소주나 한 잔 마시고 다시 꿈길로 접어드는, 게다가 가끔 ‘치마구경’이나 하고 기타나 칠 수 있다면 ‘투 머치 화폐’도 다 필요 없다는 속 터지게 착하고 여린 겉늙은 어린아이가 총총거린다.
몽골계 러시아인인 그의 아내 옥사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무려 삼십여년 가까운 나이차이가 나는 어린 아내에게, 그는 순정을 다바쳐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지금껏 나온 사랑노래 중에서 가장 구체적이고 가장 솔직한 노래라고 평했고,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우며 물었다. “그 노래가 아름다웠구만.”


oh my love i've been a waiting for your smile
oh my love i've been a dreaming of our days
i need you woman
i need you babe
i need you when the night has come

oh my love i've been a waiting for your touch
oh my love i've been a talking 'bout your ways

내 사랑 새벽이 오면 오겠지
내 사랑 가을이 오면 오겠지

없이는 몰라
없이는 폐허
없이는 시들어진 잎
(‘To oxana’)

이야기를 나누던 그의 집 근처 극장 앞 계단에서, 그는 지나는 사람들에게 실없이 말을 걸기도 했다. ‘아니, 이 아침부터 영화를 보시오? 우와, 진짜 영화광이네.’ 몇몇은 웬 칙칙한 중늙은이가 말을 건다 싶어 에둘러 지났고, 또 몇은 어기적거리며 다가와서 사인을 부탁했다.

“뉴욕에서는 말이야, 산책하다가 배꼽티를 입은 여자한테 ‘당신 배꼽 아주 나이스야’하고 말을 걸면 ‘땡큐’ 하거든. 미니스커트 입은 여자한테 ‘당신 각선미가 아주 보기 좋아요’ 하면 ‘당신도 멋져요’ 하기도 한다고, 하하하. 그런데 서울에서는 ‘당신 각선미 좋소’ 하면, ‘왜 남의 다리는 보고 그래요?’ 하고 따지지. 보라고 내놓고서는 또 칭찬해주면 화를 내고 말이지. 하하하.”

이 인간, 정말 서울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서울이 답답하지는 않으세요?”

나는 서울이 답답하다. 하루 종일 만나 인사를 나누기에도 바쁠 만큼 많은 사람을 버스 칸마다, 전철 칸마다 무심히 스쳐 넘기며 사는 일이 고달프다. 또, 걷다보면 깔끔한 찻집이건 후덕한 밥집이건, 얼굴 위로 후끈 뿜어대는 에어컨 실외기의 질리도록 배타적인 열기가 덧붙여지는 아스팔트의 사십 도짜리 여름날과 열대야가 싫다. 그래서 나 역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을’ 언젠가를 꿈꾸면서, 오로지 그 꿈을 이루어 줄 ‘투머치 화폐’를 벌기 위해 이 빌어먹을 서울에 빌붙어 산다.

“서울은 고독하지.”

그는 ‘답답함’을 ‘고독’으로 받았다. 그리고 시선을 내렸다.

“나는, … 고독을 위해 태어난 것 같애.”

아주 짧게, 고독이라는 말은 그의 입술 사이에서 씹혀 나왔다. 마치, ‘아주’라는 강조어를 넣어 한 번 비틀려고 했던 것처럼.
그는 고독하다. 1974년에 1집 ‘멀고 먼 길’을 발표한 뒤 2004년 10집 앨법 ‘상처’를 낼 때까지, 한 순간도 영감과 실험정신을 배신하지 않은 장인. ‘천재 음악청년’으로부터 ‘마지막 히피’, ‘퇴폐적 낭만주의자’, 혹은 ‘정보당국의 요시찰 대상’을 거쳐 ‘한국 포크음악의 시조’이자 ‘록 정신의 화신’으로 다시 평가되기까지 그는 세상의 시선과 무관했다. 고로 세상 사람들과 엇갈리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대가’라거나 ‘원로’라는 불치의 자기파괴적 바이러스마저도 그의 예술적 젊음을 조금도 갉아내지는 못했다. 그의 대표곡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박제된 ‘물 좀 주소’와 ‘행복의 나라로’를 진작에 흘러지나 오늘, 현재에 만들어지고 있다. 그는 서태지 보다도 젊은 ‘현역’ 음악가이다.

“그래서, 서울이 뉴욕보다는 좋지. 친구들도 만날 수 있고, 뭐 이렇게 모여서 뭘 해보자는 분위기도 있고. 뉴욕은 아주 개인주의거든. 물론, 개인주의라는 건 나쁜 건 아니지. 어쨌든 가끔 술도 같이 마시고… 뉴욕에는 정신병자들이 많잖아? 그런데 아마 이런 관계들이 ‘테라피’가 돼서 서울에는 정신병자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애”
“서울에는 정신병자들이 없는 대신에 ‘홧병’을 앓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까?”
“그거야 안 그런 곳이 어디 있나? 뉴욕도 다 그렇고 어디나 그렇지. 그러니까 나는 어디건 자기 두뇌 속의 생각이 인생의 전부라고 본다고. 두뇌 속에 평화가 있으면 되고, 시기, 질투, 소유욕을 버리면 되는 거지. 그렇지 않나? 하하하.”

서울에 살고 있는, 그러나 서울의 온갖 것들이 불만인지라 언젠가는 멋지게 떠남으로써 복수하고 말 거라며 ‘투머치 화폐’에 매달리고 있는 인터뷰어는, 아무 철 없이 이 매캐한 잿빛 도시를 즐기며 흥얼거리는 늙은 히피 인터뷰이에게, 완전히 졌다. 그래서 술은 얼마나 드시는지 물었고, 일주일에 나흘은 마신다는 답을 들었다. 그리고 그 하루에 나도 좀 끼워달라고 졸랐고, ‘오케이’ 하는 화통한 소리로 술약속을 잡았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행복한 사람’에게서 행복의 포자나마 조금 분양받아 볼거라고.
한대수는 신촌에 산다. 신촌에 살면서 치마 구경을 하고, 국수도 한 그릇 씩 사서 마시고, 소주도 댓 잔 들이키며 영감을 얻고 노래한다.
그로 인해 신촌은, 또 하나의 향기를 품었다.


1.
하루 아침 눈뜨니 기분이 이상해서
시간은 11시 반, 아! 피곤하구나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소주나 두 잔 마시고
소주나 석 잔 마시고 일어났다
2.
할 말도 하나 없이 갈데도 없어서
뒤에 있는 언덕을 아! 올라가면서
소리를 한번 지르고 노래를 한번 부르니
옆에 있는 나무가 사라지더라
3.
배는 조금 고프고 눈은 본 것 없어서
광복동에 들어가 아! 국수나 한그릇 마시고
빠문 앞에 기대어 치마 구경하다가
하품 네 번 하고서 집으로 왔다.
4.
방문을 열고 보니 반겨주는 개미 셋
안녕하세요 한사장 그간 오래간만이요 하고 인사를 하네
소주나 한 잔 마시고 소주나 두 잔 마시고
소주나 석 잔 마시고 잠을 잤다

(“하루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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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월간 우리교육> 9월호에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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