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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같은 경제대국은 없다.

한겨레가 쓴 기사이다.

한미 FTA관련해서는 가장 중립적인것 같다.

 

 


 

 
[한겨레] FTA 협상 중이던 국가들의 중단 선언 비일비재, 체결된 국가중 경제대국 없어… 스위스는 농산물 검역체제까지 깨려하자 중지, 일본은 별 이득 없다는 판단

한미 FTA와 세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우리나라는 세계 협정 추세에 뒤늦게 동참했기 때문에 좀더 신속하게 여러 국가와 동시에 다발적으로 협정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한-칠레 FTA 체결을 필두로 한-싱가포르 FTA와 한-유럽자유무역연합(EFTA, 리히텐슈타인·노르웨이·스위스·아이슬란드) FTA를 이미 체결했고, 일본·멕시코·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캐나다·인도 등 20여 개국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스위스,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한국 정부가 “일본·대만·홍콩 등 다른 경쟁국가보다 먼저 미국과 FTA를 체결해 미국 거대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미국과 FTA 체결을 서두르고 있는 건 아니다.

현재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는 이스라엘, NAFTA(멕시코·캐나다), 요르단, 칠레, 싱가포르, 중미 5개국(과테말라·온두라스·엘살바도르·니카라과·코스타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등 15개국으로, 수출 경제대국은 아직 없다. 대부분 작고 가난한 나라들인데, 이는 미국의 FTA가 경제 협정일 뿐 아니라 지정학적 패권과 연계되는 경향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과 FTA를 협상 중이던 국가들조차 중간에 협상이 깨지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스위스가 농업 분야 전면 개방을 요구하는 미국과의 FTA 협상을 중단했고, 3월에는 아랍에미리트가 미국과의 FTA 협상을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얼마 전에는 카타르가 미국과의 FTA 협상을 중단했다.

FTA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미국이 추진하는 FTA는 가장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높은 수준의 FTA’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은 자유무역 확산을 위해 양자간, 지역간, 다자간 무역협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트리플 트랙’(Triple Track) 통상 정책을 추진해왔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 다자간 협상이 난항에 봉착하고 유럽 통합 등 지역주의 흐름이 강화되자 이에 대응해 양자간 FTA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미국과 체결하는 FTA는 본질적으로 비대칭적이다. 미국은 상품 교역을 넘어서 서비스·투자·지적재산권 등 포괄적인 통합을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민감한 품목과 산업에 대해 원산지 규정 등을 통해 선별적이고 차별적인 시장 접근 일정을 제시한다. 예컨대 미국은 싱가포르와 FTA 협상에서 핵심 공기업의 민영화·통화당국의 자본통제 장치 철폐까지 요구했고, 오스트레일리아와 FTA를 체결할 때는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의약급여 제도 개편과 정부조달 제도 변경 등을 요구했다. 미국과 스위스 간 FTA 협상이 깨진 것도 미국이 선결조건으로 “미국산 수입 농산물에 대해서는 유전자조작 농산물(GMO) 표시제를 배제하라”면서 스위스 정부의 검역 체제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국은 상대국 정부의 복지·공공 서비스 삭감을 요구하고, 국가의 산업정책 개입이나 보조금 지급 등을 걸핏하면 ‘이행의무 부과금지’ 위반으로 제소하는 등 FTA를 신자유주의 자유시장의 원리가 관철되는 통로로 활용하고 있다.

포지티브 유지해도 의료급여 제도 파괴

현재 한미 FTA에서 농산물과 의약품 협상이 ‘딜 브레이커’(협상 장애물)로 등장하고 있는데, 미국-오스트레일리아 FTA(2005년 1월 발효)에서도 협상 기간 동안 의약품과 농산물이 가장 큰 쟁점이었다. 농산물의 경우 미국의 설탕업계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원당(설탕)을 협상 대상에서 제외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은 또 오스트레일리아 농축산물 수입에 대해 긴급수입제한조처(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 민감 품목인 쇠고기는 18년의 관세 유예기간을 두기로 했는데, 이에 따라 농축산물 수출 증대를 노리던 오스트레일리아로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의약품 협상에서 미국은 오스트레일리아에 ‘포지티브 리스트 방식’(건강보험 급여대상 의약품을 선정할 때 가격 대비 효능이 높은 약품만 선별 등재하는 방식)을 철회하라고 요구했다(한미 FTA 협상에서도 미국은 우리 정부에 같은 요구를 하고 있다). 결국 양국은 포지티브 방식을 허용하되 미국 다국적 제약사들에 신약 특허보호 기간을 기존 20년에서 3∼5년 더 연장해주기로 합의했다. 특히 보험 적용 약값 등에 대한 제약업체의 이의 제기를 보장하는 독립적 이의기구 설치에 합의함으로써, 가장 값싼 제너릭(특허기간이 만료된 복제약)을 기준약가로 정해 약값을 내리려고 했던 오스트레일리아의 의료급여 제도가 상당 부분 파괴됐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미국의 ‘투자자-정부 제소권’(투자자의 이익이 침해됐다고 판단될 때 상대국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제도) 요구만은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끝내 수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이번 FTA 협상에서 투자자-정부 제소권을 인정하기로 미국과 이미 합의한 상태다. 미국-오스트레일리아 FTA는 1992년 미국이 제안한 이후 10여 년간 진전이 없다가 2003년 양국 정상회담을 통해 협상이 시작됐다.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쳤음에도 농산물과 의약품을 둘러싸고 난항을 겪던 협상은 결국 협상 종료일에 양국 정상 간의 전화 통화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쪽이 농축산물 분야의 전폭적인 양보 의사를 표시해 극적으로 타결됐다.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1994년 1월 발효)한 멕시코는 그 뒤 ‘페소화 위기’로 불리는 경제위기에 봉착하고, NAFTA에 반발해 사파티스타 농민혁명 운동이 일어나는 등 정치적 대격변을 겪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와 수많은 FTA를 맺은 멕시코는 2003년 일본과의 FTA 협정 체결을 끝으로 당분간 어떤 나라와도 협정을 추가로 체결하지 않겠다는 ‘FTA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유는 복합적인데, NAFTA 발효 이후 수출과 투자는 증가했지만 불안정한 저임금 일자리만 늘어나면서 노동자들의 생활이 점점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멕시코는 전형적인 ‘저임금 노동의 경제’가 된 지 오래다. NAFTA 이후 내수 제조업, 중소기업, 농업 등에서 대규모 구조조정과 도산 사태가 일어났고, 멕시코 전체 경제활동 인구 4600만 명 중에서 3300만 명이 임시직이나 비공식 부문에 고용되거나 사실상 실업 상태에 있다. 카를로스 우스캉가 멕시코 국립자치대 교수는 “체결 당시엔 ‘미국 사람처럼 잘 살 것’이라는 기대를 가졌고 카를로스 살리나스 대통령이 ‘잃을 것은 없고 얻을 것은 모든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협정 발효 이후 ‘제1세계’가 되겠다던 멕시코인의 꿈은 삽시간에 무너졌다”고 말했다.

‘FTA 모라토리엄’ 선언한 멕시코

미국-오스트레일리아 FTA에서처럼 멕시코 사례에서도 ‘투자자-정부 제소권’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미국의 시민단체 퍼블릭시티즌이 2005년 2월 집계한 것을 보면, NAFTA 11장(투자자-정부제소권 및 분쟁해결 조항)에 근거해 미국·캐나나·멕시코 기업이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를 요구해 진행 중이거나 마무리된 사건은 모두 42건이다. 미국은 15건, 캐나다는 9건, 멕시코가 18건을 제소당했는데, 이 중에서 미국이 패소한 사건은 아직 한 건도 없다.

그런데 일본은 왜 최대 수출 상대국인 미국과의 FTA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을까?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일본은 이미 말레이시아·싱가포르와 경제동반자협정(EPA·일종의 FTA)을 체결했고 타이·필리핀과도 주요 합의에 이르는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 활발하게 FTA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수출의 7.9%(2005년 기준)를 차지하는 미국과의 FTA에는 큰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이유는 △일본의 주력 수출상품인 자동차와 가전 부문에 대한 미국의 관세가 0~4%로 매우 낮기 때문에 관세 철폐 효과가 미미하다는 점 △미국과 FTA를 체결해 농업·건설·공공서비스 등 취약 부문이 개방되면 오히려 경제의 전체적인 후생 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는 점 △일본-멕시코 EPA를 통해 NAFTA 회원국인 멕시코에 투자함으로써 미국과의 FTA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었다. 미국과의 FTA에서 상대적으로 얻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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