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간준비 3호를 내며
자본주의 위기가 세계 동시적인 만큼 자본주의 위기 전가에 맞선 대중들의 저항과 투쟁도 세계 동시적일 뿐 아니라, 나아가 그 투쟁의 방법까지도 동시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 미국 한 복판에서 지금 전개되고 있는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은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 점거와 그리스 신타그마 광장 점거, 스페인 푸에르타 델 솔 광장 점거에서 직접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9월 중순부터 시작된 이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은 불평등과 실업, 빈곤 등 자본주의 위기로 고통 받고 있는 전 세계의 수천만 노동자들 · 청년들의 상상력을 빠르게 사로잡고 있다. 2008년 광화문과 시청 광장을 점거했던 촛불시위와 비슷한 투쟁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이 월가 점령 시위대들이 외치는 요구와 행동 제안은 현재의 자본주의 위기 심화를 반영하듯 촛불시위보다 훨씬 급진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다.
금융자본의 상징인 월가 점령만이 아니라 노동자 파업과 작업장의 점유 및 민주적 집단통제, 학교와 교실 점거, 모든 도시와 공공광장에서 총회를 조직해 아래로부터 대중 직접행동을 감행하고자 하는 이 운동은 아직은 정치투쟁과 권력의 문제에서 명확치 못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현 체제에 대한 대중들의 문제제기와 분노의 수준이 얼마나 깊은지를 새삼 보여주고 있다.
이 월가 점령 운동의 시위대이나 앞선 그리스, 스페인, 영국 등에서 광장을 점거한 ‘분노한 사람들’이나 모두가 한결같이 기존 정치권과 정당들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표하고 있다. 그들은 언론사들의 카메라 앞에 대고 정당들과 의회, 대의제 민주주의는 더 이상 대안이 될 수 없다며, 기존 정치권과 국회의원들과 정당들은 금융자본 살리기와 복지 삭감, 긴축에 반대하는 절대 다수 민중을 전혀 대변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대놓고 정치가들과 국회의원들은 모두 “도둑놈들”이라며 분노의 화살을 날리고 있다. 정치가들의 배신에 대한 적대감이 너무 커서 진보정당의 정치가들조차도 군중들 앞에서 연설하는 것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고, 야유가 터져 나오고 있다. 이런 불신과 분노가 바로 스스로의 직접행동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절박한 문제의식을 불러오는 근원이며, 이 직접행동 사상이 급속히 파도처럼 번져가고 있는 근본 배경이다.
한국에서도 기존 정치권과 정당들에 대한 대중의 불신은 미국이나 유럽 못지않게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데, 안철수 현상도 그 한 예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불신은 아직 여론조사를 넘어 직접행동으로 분출하지 못하고 있다. 희망버스가 자발적인 대중행동이 중심이 된 운동이었지만, 그럼에도 야권연대가 운동을 주도하고, 국회 청문회나 국정감사로 초점이 이동되는 것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민주당의 ‘좌클릭’ 행보의 기만적 실체가 아직 폭로되지 않은 점과 함께, 진보정당들과 민주노총, 금속노조 등이 대중들의 자발적인 운동마저도 선거와 제도정치권으로 몰아가면서 직접행동 분출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어서다. 이들이 현재 국참당 같은 ‘신자유주의 세력’과의 정당 통합 문제에 대해서는 찬반이 갈리고 있다 하더라도 민주당 국참당 같은 자본가 정치세력과 손잡는 야권연대(야5당 연대)에 있어서는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모두가 일치하고 있다.
이 같은 야권연대와 민주대연합, 그리고 파산한 진보대통합을 제끼고 자발적인 대중행동을 이끌고 전진할 혁명당 건설이 시급하다. 혁명당이 존재했더라면 희망버스 운동은 위와 같은 광장 점거 같은 보다 전투적인 직접행동으로, 그리고 조직노동자들의 총파업과의 결합으로 확대 강화되었을 것이다. 선거나 제도정치권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스스로의 집단적 힘과 직접행동을 믿고 힘차게 전진했을 것이다.
《혁명》창간준비 3호를 내면서 이러한 혁명당 건설의 시급함을 거듭 확인한다. 세계 자본주의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고, 대중들의 투쟁은 세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데, 한국의 진보정당들과 노동조합 상층 지도부들은 오히려 더욱더 우경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적 세력들을 강화하고 결집시켜야 할《혁명》의 임무가 더욱 막중하다.
가칭)노동자혁명당 준비모임이 10월 29일에 정식 출범하면서《혁명》도 이번호를 끝으로 창간준비 체제를 마치고 다음호부터는 정식 창간호로 나갈 것이다. 정식 창간호를 낼 만큼 충분한 준비가 되었는지는 독자들이 이 창간준비 3호를 통해 판단해 줄 것이라 믿는다.
2011년 9월 30일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