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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범지대이자 사각지대, 대학 내 교수 성폭력을 말하다>(2)

성폭력 사건은 사건 당시부터 그 사건을 제기하고 증명하여 해결하기까지의 과정 자체만으로도 피해자에게 전적으로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따르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사건을 다시 기억해내는 순간, 피해자의 온몸은 사건 당시의 고통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같은 크기만큼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사건을 다시 언급할 때마다 피해자에게 다가오는데 그것도 모자라 피해자는 사건의 공개 이후부터는 그 배에 달하는 비난과 압박 또는 동정의 눈길 속에서, 가해자와 그 주변 인물들로부터 가해지는 현실적 피해(2차 성폭력에 해당되는) 속에서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가해자의 뻔뻔함은 시간이 갈수록 극에 달하고, 처음에는 "미안하다", "한 번만 봐달라" 하다가도 자신이 불리해질 상황에 처할 것 같으면 어김없이 사건을 부정하고 심지어 피해자에게 사건의 책임을 돌리기까지 한다.
이 때, 가해자의 '남성' 이라는 사회적 위치는 그가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 '취해서 그런 걸 가지고', '여자가 오죽했으면'하는 논리들이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자는 '얼마나 극적으로 가해자의 행위에 반항하려 노력했는지', '왜 피해자가 술에 취했는데도 같이 있었는지' 증명해야 하며, 심지어는 '피해자가 원했던 건 아닌지', '가해자를 음해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인격모독적인 의심의 눈초리까지 감내해야 한다.
'남자'라는 위치만으로도 이럴진데, 하물며 그 당사자가 '교수'임에랴.
'교수'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이 시대 최고의 지성' 이자, '국가와 학교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식인', '학생을 위해 헌신해 온 사람' 이기에 한낱 '술취해 저지른 실수에 불과한' 성폭력 사건 한 번 때문에 피해자의 말만 믿고 그를 해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국가적, 교육적 손실이며 '교수'인 그에게 가혹한 행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와 같은 교수 성폭력 사건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 사례 두 가지를 살펴보고 그 심각성을 진단한다.

동국대 사회학과 K 교수 사건의 경우
- 교수사회와 학교당국, 교육부의 교권 수호를 위한 강고한 합체!


2000년 7월. 연구차 일본에 가 있던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K는 같은 학교의 졸업생이자 일본인인 피해자와 재일교포 학생 1인을 만나 술을 마시고, 3차로 노래방에 갔다. 그는 만취한 상태에서 노래방에서 피해자를 붙잡고 억지로 춤을 추려 하였으며, 피해자의 가슴과 다리 사이를 더듬고 강제로 키스를 시도했다. 놀란 피해자는 가해자를 거부하고 뛰쳐나와 집으로 돌아간 후 다음날 피해자에게 전화를 해서 사과를 요청했다. 그러나 가해자는 기억이 안 난다며 그저 '교수로서 학생을 실망시킨 것에 대한' 사과만을 하고 사실을 부인했으며 피해자에게 사건을 잊어줄 것을 부탁했다. 이후 피해자는 함께 같던 재일교포 학생과 상의하고 그달 말 경, 동국대 사회학과 학과장과 전 학생회장에게 메일을 보내 사실을 알렸다.
이후 비대위가 결성되고 학교에서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가해자는 처음에는 "학생들이 원한다면 사퇴할 의사도 있다"며 사태를 마무리지으려 하다가 사태가 커지자 도리어 피해자를 음해하기 시작했다. 가해자 K 교수는 사건의 공론화 이후 제출한 해명서에서 '피해자가 한국인 유학생과 파혼을 하여 제자의 상심을 달래주고자 술을 마시다가 피해자의 요청으로 노래방에 가자고 하여 노래방에 갔고 만취해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자신이 어떻게 피해자의 몸을 더듬었겠냐'며 도리어 '피해자가 방조하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면서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 심지어 그는, '피해자가 그렇게 취한 자신을 왜 여관으로 바래다 주지 않았는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가해자 해명서에 대한 반박글을 보면 '피해자는 약혼도, 파혼도 한 적이 없고, 노래방에 가자고 한 것도 가해자'였다. 우리는 경험 상, 술에 취한 사람은 혼자서 잘 쓰러지더라도 억지를 부리거나 폭행을 하면 말릴 수 없을 만큼 힘이 세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여관으로 왜 바래다주지 않았냐니! 피해자가 그 상황에서 여관까지 바래다 주었으면 더 큰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교수'인 가해자는 자신의 해명서에서 도무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기가 막힌 상황은 그 다음의 일이다.
결국 K교수는 학교에서 해임되었으나 이번에는 사회학과 동문들과 학계, 동료 교수들이 K 교수 구명운동에 나선 것이다. 그 탄원서의 요지는 'K 교수가 학계와 학교의 발전에 공헌한 바가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피해자' 의 말만 믿고 '학생들의 인민재판식 여론몰이에 밀려' K 교수를 해임하기까지 한 것은 가혹한 처벌' 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동국대 여교수들까지도 이러한 논지의 탄원 성명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후에 이 구명운동은 '같은 학계'이자 '같은 교수'라는 명분만으로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되는 교권을 수호하기 위해' 동일 학계와 교수직에 있는 이들에게 내용확인도 없이 무작위로 진행된 것임이 밝혀졌다. 이에 동아대 사회학과 한석정 교수와 서울대 사회학과의 김진균 교수는 자신이 제대로 된 내용확인 없이 서명에 동참한 것을 반성하며 서명을 철회하는 성명을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K 교수는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여 ‘정직 1개월’ 처분을 받고 학교 당국의 침묵을 발판 삼아 복직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사랑하는' 제자들 앞에 서서 '사회학'을 강의하고 있다.


사진/스포츠 투데이


서강대 대학원 영상미디어학과 K 교수 사건의 경우
- '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피해자 죽이기


서강대의 경우는 교수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학교측의 대응 양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서강대 측은 '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건의 공론화에 대응하여 학내 언론 등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심각하게 탄압하였다.
서강대 사건의 가해자 K교수는 학과 간담회 행사 후 가진 1차 회식 자리에서 학과 남학생들에게 고기 집게를 들고 "이걸로 네 배를 확 쑤셔서 내장이 딸려 나오면 내가 그걸 씹어먹겠다"는 등의 폭언을 하고, 2차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피해자에게 본격적인 성폭행을 가했다. 그는 피해자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고, 러브샷을 강요하였으며, "너를 여인으로 만들어주겠다"며 피해자의 입술에 강제로 키스를 시도했다. 피해자는 이후 서강대 여성위원회에 사실을 알리고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나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양 놀랍군, 앞길이 구만리 같은 자네가"라는 발언을 하여 피해자를 간접적으로 협박하기까지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건의 공론화 이후 서강대 측의 대응과정이다.
서강대 여성위원회는 사건을 접수받고 총장 면담을 신청하였으나 거절당했으며, 이후 학교측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올라오는 글들을 삭제하고, 학보사에 관련 기사 삭제를 요구하였다. 서강대 측은 여성위원회와 공동대책위 주도의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한 달 후에야 겨우 부총장 면담을 진행하고 '교내성차별진상규명위원회'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다음 해 1월, 교원징계위원회가 소집되었으나, 학교측은 교원징계위원회의 내용 일체를 공개하지 않았으며, 결과도 공고하지 않았고, 여성위원회 및 피해자에게조차 결과를 통보하지 않았다. 결국 여성위원회가 수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해서야 '3개월 정직 처분' 이라는 결과를 알았지만 가해자 K 교수는 이미 연구년을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
결국 말이 징계이지 가해자에게는 '정식 연구년'으로 잠시 쉬고 돌아오는 것에 불과한 처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는 이후 법정 싸움을 시작하였고 올해 2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재판에서 승소하여 2천만원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2천만원이라는 돈이 결코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년이 넘는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는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댓가로 사건 당시보다 더욱 심한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총장은 도리어 일부 교수에게 "뒤에서 누가 조종한 것 아니냐"고 물어보았고, 학과장은 학생들을 불러 침묵을 강요했다.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해지자 K교수는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사과문이 나오자 일부 교수는 "BK21 평가가 있는데 이런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좋을 게 없다"고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학생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학교측은 게시판에 올려지는 글들의 IP 주소를 추적하기까지 했다.
이후 '학교의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은 수많은 루머를 만들고, 피해자를 음해하기 시작했다. 피해자가 학교를 떠난 교수들의 종용을 받아 대학원에 진학하여 K 교수를 음해할 목적으로 일을 벌인 것이라는 둥, 원래 헤픈 여자였다는 둥, 정신이 원래 이상한 사람이라는 둥 피해자가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비난과 음해가 피해자에게 가해졌고, 이에 피해자는 스트레스로 인한 심각한 위장장애와 알레르기 등 신체적 고통까지 겪어야 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고통은 승소 이후 복학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오랜만에 들어간 수업의 다른 교수마저도 다시 피해자를 불러 "학생이 학교를 위해 이제 K 교수를 용서하라"는 말을 해 피해자에게 2차 성폭력을 가한 것이다.
이제 대학원 마지막 학기이지만,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학위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조차 불안하기만 하다. 피해자의 상처는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 이 글은 제가 문화연대의 주간 문화정책 뉴스레터 <문화사회> (http://weekly.culturalaction.org)에 게재했던 기사입니다. (2003.7.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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