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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교원평가제와 내신 경쟁으로 인한 고1 학생들의 연이은 죽음과 눈물을 보며

학원과 나를 생각한다.

 

논술이 강화된다는 소식에 늘어난 입시 상담.

하루에도 수십 명씩 찾아오는 학부모들과

중간고사 때는 내신에 집중해야 한다며 한 달 간 학원을 쉬겠다는 아이들.

 

그들 앞에서 나는 가치관과 윤리를 논하고 각종 사건과 사회적 쟁점들을 꺼내 놓고 토론을 요구하지만

토론의 결론이 무엇이 되던 간에

결국 그들이 바라는 건 '입시에 유리한 답변을 정리하는 것' 뿐이다.

어차피 자신의 가치관이나 입장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은 입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테니까..

 

수업을 진행하는 나는,

나의 생각과 가치관과 입장을 아이들과 공유하길 원하지만

입시 앞에서 어쩌면 그것은 우스운 바람일 지도 모른다.

 

학원 교사의 대부분이 노조나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위 '운동권'이라 할 지라도

입시 앞에서 그것은 별다른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결국 그 곳은 '학원'이고,

'학원'은 '입시'를 위한 곳이니..

 

아이들이 경쟁에 짓눌려

입시를 위해 자신의 가치관과 입장을 사건별로 정리해 '외우고' 있는 상황을 보면서

'논술학원 교사'라는 나의 위치에 심각한 회의가 밀려온다.

 

논술학원의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면

이들의 현실 속에서는,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이 명백히 입증되고 있음을 느낀다.

 

사회적, 문화적 자본이 풍부한 이 아이들은

자신들의 환경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철거민이나 노숙자, 노동자와 사회적 소수자들의 삶에 대해서 대부분 공감하지 못한다.

 

이들의 부모는 대개 의사나 교수, 사장, 이사 등이며

이들의 가정에서 구독하는 신문은 오로지 조선일보.

 

갈수록 심난해져만 가는 교육 현실과

'논술학원의 교사'라는 나의 입지가

자꾸만 나의 머릿속을 헤집고 있다.

 

오늘도 결국,

제대로 자기는 어려울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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