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중심 없는 교육부, 혼란 속의 대입제도

 ⓒ 뉴스메이커
 

중심 없는 교육부, 혼란 속의 대입제도


지난 5월 13일 MBC 프로그램 ‘아주 특별한 아침’의 보도에 의하면, 지금 고 1 학생들은 배우자와의 이혼 시에 느끼는 스트레스에 준하는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 평정값에 따르면 평정값이 100으로 가장 높은 ‘배우자의 죽음’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이다.

사물함에서는 필기 노트와 교과서가 사라지거나 찢어진 채 발견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친한 친구와 경쟁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심각한 죄의식과 함께 자살까지 고민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여전히 갈팡질팡 정신이 없다.

내신을 강화하여 사교육을 줄이겠다던 야심찬 태도는 이미 간 데 없고, 서울대에서 논술형 본고사를 도입하겠다고 하니 쩔쩔 매다가 얼마 전에는 서울 지역의 대학 입학처장단이 모여 ‘내신의 비중을 급격히 높이지는 않을 것이고 다양한 형태의 논술시험이나 심층적인 구술면접을 통해 종합적으로 평가하겠다”는 요지의 발언을 하자 이번에는 또 여기에 적극 찬동하고 나섰다.

올해 초, 내신에 집중하기 위해 교과를 중심으로 한 학원과 과외에 몰렸던 고 1 학생들이 서울대와 입학처장단의 발표 이후 이번에는 다시 논술학원으로 몰리고 있다는 학원가의 소식은 교육부의 중심 없는 입시 정책이 학생들을 얼마나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지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현상일 것이다.

 

교육부의 내신등급제, 대학들의 딴 소리


교육부가 ‘내신 비중을 강화하여 사교육 부담을 줄이고 공교육을 강화하겠다’는 명분으로 적극 추진해 온 내신등급제와 2008 입시안은 이미 지난 해 발표되었을 때부터 ‘오히려 입시 부담을 가중시게 될 것’이라는 교육계의 비판에 부딪혀왔다.

성적에 따라 절대평가를 하여 ‘수, 우, 미, 양, 가’의 5단계로 성취도를 나타내었던 기존 학생부 기재 방식을 내신 부풀리기 방지를 위해 상대평가제의 9단계 등급으로 세분화하였기 때문에 1, 2점 차이만으로도 등급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학생들 간의 경쟁은 심해지고 시험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학교가 그 자체로 ‘입시학원’이 되어버렸다.

또한 교육부는 내신등급제의 명분으로 각 학교의 ‘내신 부풀리기’를 내세웠지만 사실상 매해 대학들이 교사에 대한 불신과 학교 간의 학력격차를 문제 삼아 내신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는 현실을 볼 때 어차피 내신의 반영 여부는 전적으로 대학들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보아야 한다. 결국, 내신 등급을 세분화해 보았자 대학들이 이러한 태도를 계속 지니고 있는 한 내신등급제는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2008 대입안이 가진 또 다른 문제는 공교육 강화와 내신의 신뢰 확보를 위한 ‘내신 비중 강화’를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대학의 자율성’을 명분으로 한 대학별고사 역시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교육부의 입시안 자체가 이와 같은 모순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서울대가 2008학년도입시부터 수능의 비중을 없애고 내신을 40%, 논술형 본고사를 60% 반영하겠다는 사실상의 ‘본고사 시행안’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서울대가 이와 같은 입시안을 그대로 시행한다면 그간 교육부가 강조해 왔던 ‘3불 정책(고교등급제 금지, 기여입학제 금지, 대학별 본고사 금지)’을 어기는 것이 된다. 그러나 교육부는 ‘3불 정책’을 법적으로 강제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때문에 덩달아 다른 대학들도 ‘입학처장단’ 모임을 통해 서울대 안과 비슷한 입장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자꾸만 바뀌는 장단에 괴로운 것은 학생 뿐이다.


몸통은 간 데 없고 깃털만 나부껴.


해방 이후, 한국의 입시 정책은 13번이나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입시정책을 바꾸고 좋은 명분을 다 가져다 붙인다 해도 문제는 계속 반복되기만 할 뿐이다. 근본적인 문제인 ‘대학서열화’와 ‘학벌 중심 질서’를 건드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초, 중, 고 12년의 소중한 세월이 오직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으로 채워지고 여기서 뒤처지면 ‘인생을 망친다’는 압박감이 엄연히 현실을 좌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공교육 정상화’니 ‘사교육 경감’이니 ‘경쟁 완화’니 하는 것들은 모두 공염불에 불과한 것이다.

입시를 위해 국, 영, 수 교과서 따라가기도 힘든 현실의 아이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고 산다. 새벽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끊임없이 수업의 연속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철학적 고민을 하고 세상을 알며 자신의 입장과 논리를 정리할 수 있겠는가. 결국 교과과정도 '외우고‘, 논술에 유리한 답도 ’외우는‘ 수밖에 없다.

교육부는 더 이상 2008 대입정책을 두고 우왕좌왕 고민할 필요가 없다.

지금, 교육부가 해야 할 일은, ‘국․  공립대 평준화’ 나 국립대의 ‘지역균형선발제’ 등 대학 간 서열과 경쟁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고 학벌 해소를 위한 구체적인 법적, 제도적 방안들을 타 부처와의 연계를 통해 연구, 제시하는 것이다.

부디 교육부가 이 당연한 결론을 속히 인정하기를 바란다.

 

                                                                -2005. 5. 셋째 주. <문화사회>에 게재.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