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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대. 4년 후. 그리고 투쟁에 대해.

어느 덧 4년이 되어간다.

 

2001년. 덕성여대의 치열했던 한 해.

 

그 1년 이후

함께했던 중운위(총, 단대 학생회장단) 들은 심장에, 위에, 허리에 하나씩 병을 얻었고

함께했던 교수들은 변절했다.

 

교수협의회 회장으로 함께 단식도 하고, 삭발도 했던 교수는

이제 총장이 되어

한편으로는 교수협의회와 학생회, 노조를 교묘히 탄압하고

한편으로는 새 건물을 짓고 시설을 확장하면서

자기 공을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투쟁했던 노조는

총장의 탄압으로 인해 너무나도 힘들게 파업을 진행해야 했고

결국 총장은 '향후 5년 간 조금씩 정규직화를 하겠다'는

불확실한 약속만을 남긴 채 파업을 정리시켰다.

 

등록금은 여전이 해마다 오르고

학교가 투자 없이 등록금만 올린다며 비판하던 바로 그 사람이

지금 6개월 째 총장실을 점거하고 있는 학생들을 모른 채 하고 있다.

 

덕성여대의 민주화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던 모 여교수는

이제 구재단파 교수와 손잡고 차기 총장 선거를 노리고 있고

대부분의 당시 교수협의회 교수들은 또다른 교수협의체를 만들어

총장과 샤바샤바 친하게 지내고 있다.

 

오직 한상권 교수만이 어떠한 흐름에도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덕성여대는 변했다.

변했지만 민주화되지 못했다.

 

역사상 많은 혁명이

민중의 희생을 발판삼아 중간계급의 이익을 획득하는 데 이용되었듯이

덕성여대 역시 똑같은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민중이 희생당한 주체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혁명을 통해 민중은 한 걸음 나아갔으며

그들 스스로의 변화를 통해 또 다른 혁명을 준비해가는 것이다.

 

투쟁 당시에, 자신의 불안정한 위치 때문에 재단이 시키는 대로 행해야 했던 직원분들,

플랭카드를 뜯어내다가 우리와 마주쳤을 때

'정말 미안하다. 우리는 어쩔 수가 없다'며 미안해 하시던 분들,

누가 볼새라 계속 불안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찾아와

'수고한다'며 음료수를 건네주셨던 분들이

이제 힘겨운 비정규직 정규직화 파업에 끝까지 함께 하시고

그 분들이 노조의 주체가 되어 새로운 투쟁을 준비하고 계시니.

 

투쟁은 곳곳에서.

투쟁은 끊임없이.

투쟁은 누구에게나.

 

그러나 주의할 것은,

중간 계급 그 누구도 믿지 말 것이며

동지의 변절에 좌절하지 말 것.

자신의 투쟁에 자긍심을 가질 것.

 

어떠한 때라도.

끝까지 자신을 믿고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말 것.

 

비록.

지금은 나약한 모습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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