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분류 전체보기

<우범지대이자 사각지대, 대학 내 교수 성폭력을 말하다>(3)

연줄과 권위가 지배하는 사회, 대학

대학에는 학문 연구의 기능 외에도 다양한 기능이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사람들을 죽자 사자 대학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중요한 기능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연줄'을 만드는 기능이다.
같은 학교, 같은 학부 출신을 넘어 같은 학계, 같은 학회, 같은 지도교수로 이어지는 수도 없는 연줄에 연줄이 대학 사회와 나아가 이 사회를 거미줄처럼 얽어매고 있다. 게다가 지나치게 기능화 되고, 세분화 된 분과학문 체계는 대학 사회의 이러한 병폐에 풍부한 토양이 되어주고 있다. 이러한 대학 사회의 특수한 배경이 있기에, 대학 내에서 한 교수의 권위란 연륜이 쌓일 수록 절대적인 것이 되며 소속된 학계나 학회의 힘이 클수록 그 위치는 안정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그 만큼 교수의 위치란 불안정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칫하다가는 '왕따'가 되거나 심지어 교수직을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이런 상황에서 '원하는 연구'를 하고 그것을 발표하기란 그리 녹녹치 않은 일이다. 나아가 입바른 말이라도 한 마디 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크나큰 결심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과 대학원 역시 이와 같은 문화의 영향권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대학원의 경우 각종 학계 행사나 학회 행사를 준비하거나 교수들과의 프로젝트를공동으로 수행하게 되는 일도 잦기 때문에 교수 사회 또는 학계, 학회에서 발생하는 온갖 문제들에도 자연스럽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논문 심사 등에 있어서 지도교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지도교수가 학생에 대하여 가지게 되는 권위도 그만큼 절대적이다. 이번 호에서는 교수 성폭력 사건의 발생에서부터 해결 과정까지에서 보여지는 특징들이 이러한 대학 사회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교수 성폭력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대학 사회 문화의 발동.

나이 많은, 학계의, 대 선배이자, 남성, 교수인 가해자의 위치는 상대적으로 나이 어린, 학계에 막 진입하려는, 까마득한 후배인, 여성, 학생 피해자에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특히 잦은 행사와 프로젝트 등으로 교수와 술자리를 함께 '해야하는' 일이 많은 대학원생들에게는 더욱 이와 같은 상황이 일상에서 매우 신경 쓰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2차, 3차까지 암묵적 반 강제로 이어지는 술자리 뒷풀이 문화는 자주 곤혹스러운 상황을 발생시키는데, 여학생들에게 술을 따르게 하거나 노래방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손을 잡는 등의 행위는 학부와 대학원을 막론하고 사실상 흔히 있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남녀공학이나 여학교를 불문하고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고 대처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상대가 나이 많은, 남성, 교수이기 때문이다.
나이 많은 어른이니까 술 좀 따라드릴 수도 있고, 교수니까 제자와 친근하게 지내고 싶어서 손 한 번 잡고, 어깨에 손 좀 올릴 수도 있지 않느냐는, 오랜 세월 머리와 몸으로 길들여져 온 관념들이 우선 머리를 스친다. 기분이 나쁘지만 다음 순간, 우선 피해자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문제제기 후 자신에게 돌아올 상황들에 대하여...
'교수가, 어른이 함께 즐기는 술자리에서 그런 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 '그러니까 여자들이 사회에서 도태되는 거다', '어디 다음부터는 신경 쓰여서 여학생들하고 술자리 할 수 있겠느냐' 는 등의 뻔한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입을 연 다음 순간부터, 상황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사진/유뉴스

특히 사건이 '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우리의 현실은 처음부터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사건에 대한 1차적 관심은 가해자가 한 행동보다 '여자가 왜 밤 늦게까지 술자리에 함께 있었는가'에 맞춰지고, 이 때문에 가해자가 사건에 대하여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부인해도 남성이자 교수인 가해자의 행위는 '우선 교수이고' '술에 취해 있었으므로 그럴 수도 있는 것'이 되고, 여성이자 학생인 피해자가 당한 상황은 '여자가 조심하지 못하고, 밤 늦게까지 술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당한 일'이 된다. 하기에 사건에 대하여 언급한 이후부터 피해자는 이와 같이 자신에 대해 불합리한 시선들부터 감당해내야 한다.
많은 사건들이 학생들과의 MT 자리나 술자리에서 발생하지만, 사건이 술자리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자리에서도, 교수라는 권위를 이용하여 대학원생 조교나 학생들에게 언행을 함부로 하는 사례가 흔히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매일, 너무나도 익숙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더더욱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
여하간 이러한 어려움을 감수하고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피해자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가하는 상황들은 사건이 교수 사회와 학교, 학계에 알려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학교는 우선 '학교의 명예'를 생각하기에 바쁘다.
혹여라도 사건이 외부로 새나갈까 두려워 인터넷과 학보 등의 학내 여론부터 차단하려 애쓰고 사건을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하기 위하여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합의를 요구한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학생들에게 의도적으로 유포되는 '이러다가는 학교의 명예가 실추된다'는,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이데올로기는 또다시 화살을 피해자에게 돌려 고통을 가하며 이와 더불어 각종 루머로 피해자에게 '모종의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혐의를 덮어씌운다.

사건이 발생하면 학교 당국과 교수 사회, 학계는 삼위일체가 된다.
피해자의 인권에 앞서 교수로서의 위치를 사수하기 위한 '교권'이 이들에게는 보다 중요하게 부각되기 때문에 가해자가 어떠한 행동을 했던지 간에 우선 그가 교수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앞 뒤 가리지 않고 힘을 모으며 여기서 '연줄'이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한다.
가해자가 지도교수인 경우, 가해자는 '학점'을 무기로 2차 성폭력을 가하고 다른 교수들과 학교 당국 역시 피해자에게 합의를 요구하며 이 때, 가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나오는 논리들이 '가해자 교수가 학교와 학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학생들과 함께 몇 년을 노력해 왔는지 '따위 들이다. 하기에 학내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리더라도 이와 같은 논리로 맞서는 교수 사회와 학계 측의 압력으로 인해 사실상 가해자에게는 '징계'를 가장한 '연구년'이나 '휴가'가 주어지고 마는 것이다.
설령, 정직 처분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동국대의 경우처럼 교수들과 학계가 나서서 막무가내로 서명운동을 벌여 복직시키기까지 하며, 이미 보았듯이 그 과정에서 '서명'을 하는 행위는 서명 목적의 옳고 그름에 앞서 학계의 '연줄'에서 '의리를 지키고',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한' '의무감'에서 발로되는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하여

문제제기 되지 않았을 뿐, 크고 작은 교수 성폭력은 대학 사회에서 빈번히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뿌리 깊은 교수 사회의 권위의식과 '연줄'과 '명예'를 기반으로 한 대학 사회의 만만치 않은 문화가 피해자에게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가하면서 문제의 해결 또한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하기에 교수 성폭력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성폭력 학칙 제정'에서 나아가 대학 사회의 '연줄 '문화와 학생/교수 간의 권위적 관계를 해체하기 위한 노력 등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호에서는 우리의 대학 문화와는 다른 외국 대학의 교수/학생간 관계와 대학 문화, 그리고 교수 성폭력과 대학 내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그들의 구체적 사례들을 살펴본다.

 

** 이 글은 제가 문화연대의 주간 문화정책 뉴스레터 <문화사회> (http://weekly.culturalaction.org)에 게재했던 기사입니다. (2003.7.23)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범지대이자 사각지대, 대학 내 교수 성폭력을 말하다>(2)

성폭력 사건은 사건 당시부터 그 사건을 제기하고 증명하여 해결하기까지의 과정 자체만으로도 피해자에게 전적으로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따르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사건을 다시 기억해내는 순간, 피해자의 온몸은 사건 당시의 고통을 그대로 재현해낸다. 같은 크기만큼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사건을 다시 언급할 때마다 피해자에게 다가오는데 그것도 모자라 피해자는 사건의 공개 이후부터는 그 배에 달하는 비난과 압박 또는 동정의 눈길 속에서, 가해자와 그 주변 인물들로부터 가해지는 현실적 피해(2차 성폭력에 해당되는) 속에서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가해자의 뻔뻔함은 시간이 갈수록 극에 달하고, 처음에는 "미안하다", "한 번만 봐달라" 하다가도 자신이 불리해질 상황에 처할 것 같으면 어김없이 사건을 부정하고 심지어 피해자에게 사건의 책임을 돌리기까지 한다.
이 때, 가해자의 '남성' 이라는 사회적 위치는 그가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 '취해서 그런 걸 가지고', '여자가 오죽했으면'하는 논리들이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자는 '얼마나 극적으로 가해자의 행위에 반항하려 노력했는지', '왜 피해자가 술에 취했는데도 같이 있었는지' 증명해야 하며, 심지어는 '피해자가 원했던 건 아닌지', '가해자를 음해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인격모독적인 의심의 눈초리까지 감내해야 한다.
'남자'라는 위치만으로도 이럴진데, 하물며 그 당사자가 '교수'임에랴.
'교수'란 어떤 사람인가.
그는 '이 시대 최고의 지성' 이자, '국가와 학교와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식인', '학생을 위해 헌신해 온 사람' 이기에 한낱 '술취해 저지른 실수에 불과한' 성폭력 사건 한 번 때문에 피해자의 말만 믿고 그를 해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큰 국가적, 교육적 손실이며 '교수'인 그에게 가혹한 행위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와 같은 교수 성폭력 사건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 사례 두 가지를 살펴보고 그 심각성을 진단한다.

동국대 사회학과 K 교수 사건의 경우
- 교수사회와 학교당국, 교육부의 교권 수호를 위한 강고한 합체!


2000년 7월. 연구차 일본에 가 있던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 K는 같은 학교의 졸업생이자 일본인인 피해자와 재일교포 학생 1인을 만나 술을 마시고, 3차로 노래방에 갔다. 그는 만취한 상태에서 노래방에서 피해자를 붙잡고 억지로 춤을 추려 하였으며, 피해자의 가슴과 다리 사이를 더듬고 강제로 키스를 시도했다. 놀란 피해자는 가해자를 거부하고 뛰쳐나와 집으로 돌아간 후 다음날 피해자에게 전화를 해서 사과를 요청했다. 그러나 가해자는 기억이 안 난다며 그저 '교수로서 학생을 실망시킨 것에 대한' 사과만을 하고 사실을 부인했으며 피해자에게 사건을 잊어줄 것을 부탁했다. 이후 피해자는 함께 같던 재일교포 학생과 상의하고 그달 말 경, 동국대 사회학과 학과장과 전 학생회장에게 메일을 보내 사실을 알렸다.
이후 비대위가 결성되고 학교에서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가해자는 처음에는 "학생들이 원한다면 사퇴할 의사도 있다"며 사태를 마무리지으려 하다가 사태가 커지자 도리어 피해자를 음해하기 시작했다. 가해자 K 교수는 사건의 공론화 이후 제출한 해명서에서 '피해자가 한국인 유학생과 파혼을 하여 제자의 상심을 달래주고자 술을 마시다가 피해자의 요청으로 노래방에 가자고 하여 노래방에 갔고 만취해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자신이 어떻게 피해자의 몸을 더듬었겠냐'며 도리어 '피해자가 방조하지 않았으면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면서 억지 논리를 펴고 있다. 심지어 그는, '피해자가 그렇게 취한 자신을 왜 여관으로 바래다 주지 않았는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그러나 피해자의 가해자 해명서에 대한 반박글을 보면 '피해자는 약혼도, 파혼도 한 적이 없고, 노래방에 가자고 한 것도 가해자'였다. 우리는 경험 상, 술에 취한 사람은 혼자서 잘 쓰러지더라도 억지를 부리거나 폭행을 하면 말릴 수 없을 만큼 힘이 세진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여관으로 왜 바래다주지 않았냐니! 피해자가 그 상황에서 여관까지 바래다 주었으면 더 큰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교수'인 가해자는 자신의 해명서에서 도무지 상식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기가 막힌 상황은 그 다음의 일이다.
결국 K교수는 학교에서 해임되었으나 이번에는 사회학과 동문들과 학계, 동료 교수들이 K 교수 구명운동에 나선 것이다. 그 탄원서의 요지는 'K 교수가 학계와 학교의 발전에 공헌한 바가 지대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인' '피해자' 의 말만 믿고 '학생들의 인민재판식 여론몰이에 밀려' K 교수를 해임하기까지 한 것은 가혹한 처벌' 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동국대 여교수들까지도 이러한 논지의 탄원 성명을 내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후에 이 구명운동은 '같은 학계'이자 '같은 교수'라는 명분만으로 '결코 흔들려서는 안 되는 교권을 수호하기 위해' 동일 학계와 교수직에 있는 이들에게 내용확인도 없이 무작위로 진행된 것임이 밝혀졌다. 이에 동아대 사회학과 한석정 교수와 서울대 사회학과의 김진균 교수는 자신이 제대로 된 내용확인 없이 서명에 동참한 것을 반성하며 서명을 철회하는 성명을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결국 K 교수는 교육부 ‘교원징계재심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하여 ‘정직 1개월’ 처분을 받고 학교 당국의 침묵을 발판 삼아 복직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시 '사랑하는' 제자들 앞에 서서 '사회학'을 강의하고 있다.


사진/스포츠 투데이


서강대 대학원 영상미디어학과 K 교수 사건의 경우
- '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피해자 죽이기


서강대의 경우는 교수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학교측의 대응 양태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서강대 측은 '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건의 공론화에 대응하여 학내 언론 등 학생들의 자치활동을 심각하게 탄압하였다.
서강대 사건의 가해자 K교수는 학과 간담회 행사 후 가진 1차 회식 자리에서 학과 남학생들에게 고기 집게를 들고 "이걸로 네 배를 확 쑤셔서 내장이 딸려 나오면 내가 그걸 씹어먹겠다"는 등의 폭언을 하고, 2차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해 피해자에게 본격적인 성폭행을 가했다. 그는 피해자의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고, 러브샷을 강요하였으며, "너를 여인으로 만들어주겠다"며 피해자의 입술에 강제로 키스를 시도했다. 피해자는 이후 서강대 여성위원회에 사실을 알리고 가해자에게 사과를 요구했으나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양 놀랍군, 앞길이 구만리 같은 자네가"라는 발언을 하여 피해자를 간접적으로 협박하기까지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사건의 공론화 이후 서강대 측의 대응과정이다.
서강대 여성위원회는 사건을 접수받고 총장 면담을 신청하였으나 거절당했으며, 이후 학교측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올라오는 글들을 삭제하고, 학보사에 관련 기사 삭제를 요구하였다. 서강대 측은 여성위원회와 공동대책위 주도의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한 달 후에야 겨우 부총장 면담을 진행하고 '교내성차별진상규명위원회' 회의를 '비공개'로 진행했다. 다음 해 1월, 교원징계위원회가 소집되었으나, 학교측은 교원징계위원회의 내용 일체를 공개하지 않았으며, 결과도 공고하지 않았고, 여성위원회 및 피해자에게조차 결과를 통보하지 않았다. 결국 여성위원회가 수차례 전화통화를 시도해서야 '3개월 정직 처분' 이라는 결과를 알았지만 가해자 K 교수는 이미 연구년을 신청해 놓은 상태였다.
결국 말이 징계이지 가해자에게는 '정식 연구년'으로 잠시 쉬고 돌아오는 것에 불과한 처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피해자는 이후 법정 싸움을 시작하였고 올해 2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재판에서 승소하여 2천만원 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2천만원이라는 돈이 결코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년이 넘는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는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 댓가로 사건 당시보다 더욱 심한 이중, 삼중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사건이 알려지기 시작하자, 총장은 도리어 일부 교수에게 "뒤에서 누가 조종한 것 아니냐"고 물어보았고, 학과장은 학생들을 불러 침묵을 강요했다.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해지자 K교수는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사과문이 나오자 일부 교수는 "BK21 평가가 있는데 이런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좋을 게 없다"고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학생들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학교측은 게시판에 올려지는 글들의 IP 주소를 추적하기까지 했다.
이후 '학교의 명예'를 지키고자 하는 이들은 수많은 루머를 만들고, 피해자를 음해하기 시작했다. 피해자가 학교를 떠난 교수들의 종용을 받아 대학원에 진학하여 K 교수를 음해할 목적으로 일을 벌인 것이라는 둥, 원래 헤픈 여자였다는 둥, 정신이 원래 이상한 사람이라는 둥 피해자가 감당하기 힘든 엄청난 비난과 음해가 피해자에게 가해졌고, 이에 피해자는 스트레스로 인한 심각한 위장장애와 알레르기 등 신체적 고통까지 겪어야 했다.
그러나 피해자의 고통은 승소 이후 복학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오랜만에 들어간 수업의 다른 교수마저도 다시 피해자를 불러 "학생이 학교를 위해 이제 K 교수를 용서하라"는 말을 해 피해자에게 2차 성폭력을 가한 것이다.
이제 대학원 마지막 학기이지만, 그녀는 이런 상황에서 학위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조차 불안하기만 하다. 피해자의 상처는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 이 글은 제가 문화연대의 주간 문화정책 뉴스레터 <문화사회> (http://weekly.culturalaction.org)에 게재했던 기사입니다. (2003.7.16)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범지대이자, 사각지대 대학 내 교수 성폭력을 말하다> 1

예부터 '난 사람 이전에 된 사람이 되라'고 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깝게도 소위 '진리의 상아탑' 이라는 대학에 책만 열심히 팠지 미처 사람이 되지 못한 '교수'라는 신분의 사람들이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죄책감을 가지고 자신의 죄가를 반성하기는커녕, 자신의 신분과 학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방패막에 둘러싸여 문제를 일으키고도 버젓이 '휴가'를 받고, 다시 돌아와 수업을 하는 뻔뻔스런 작태들을 보이고 있다.
이번 기획을 굳이 대학 내 '교수' 성폭력으로 정한 이유도 특별히 그들이 '교수'이기 때문에 피해의 심각성이 더 크고, 해결도 어려울뿐더러 2차 성폭력의 발생 가능성 등 그 후유증 또한 크기 때문이다.

지난 98년 서울대 '신 교수 사건'(피해자의 이름으로 사건명을 언급하는 '우조교 사건'이란 말대신 '신 교수 사건' 이라 하겠다.) 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키면서 대학가에서는 성폭력 학칙' 이 제정되는 등 가시적인 노력들이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아직 '성폭력 학칙'이 제정· 시행된 학교는 소수에 불과하고, 그나마 제정된 학칙도 '학칙'에 불과할 뿐 대학 특유의 권력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을 제대로 예방하고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가해자가 '교수'이며, '어른'이기 때문에 피해자인 '어린' '학생'은 막상 성폭력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른 상황에서보다 더욱 제대로 대처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는 피해자가 대학원생일 경우 더욱 심각하다. 서강대 'K 교수' 사례처럼 대학원생 피해자의 피해 정도는 지도교수와 특수한 관계에 놓여 있는 '대학원생'이라는 위치 때문에 성폭력 발생 당시에 받는 고통과 상처를 넘어서 인생 전체를 뒤바꾸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까지 확장된다.
이렇게 막대한 정신적, 신체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가해자 교수는 보통 징계 기간 동안 '연구년'으로 처리되어 공식적으로는 '휴직' 상태가 되거나, 잠시 쉬고 있다가 잠잠할 쯤 되면 복직하는 것이 보통이다. 학교 당국 역시 사건이 외부로 유출되고 확산되면 학교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우려하여 피해자 학생에게 대충 이해와 합의를 요구하거나 심하게는 되려 피해자 학생을 불러 다그치고, 협박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교수들간의 연대의식이란 굳이 정당치도 못한 일들에서 자신들의 신분에 불안감이 느껴지면 어찌나 강하게 발휘되는 지 동국대에서는 성폭력을 자행하고 징계 당한 교수를 동료 교수들이 서명운동으로 복직시키기까지 했다.
이러한 대학 사회의 모순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모두 서울대에 있다.
서울대는 '최초로' 대학 내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운 '신 교수 사건' 이후 '최초로' '성폭력 학칙'을 제정하여 '최초로' 성폭력을 저지른 '학생'을 제명 시켰지만 바로 지난해까지, 총장은 심심하면 '신 교수 옹호 발언'을 하여 많은 이들을 분노케 했다.
'학생'은 당연히 제명시키면서 더욱 심한 행동을 저지른 '교수'는 사회적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총장이 나서서 '옹호' 해주고, 복직시켜주는 이 모습이 바로 대학 내 '교수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올해 들어서만도 벌써 수 차례 대학 내 교수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폭로되었다.
이제 대학 내 교수 성폭력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학칙 제정'이나 '제도 마련'의 차원을 넘어 교수와 학생, 선배와 후배, 교수자와 연구자 사이의 권력 관계가 권위적 상하관계로 놓여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다각도의 대책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 이 글은 제가 문화연대의 주간 문화정책 뉴스레터 <문화사회> (http://weekly.culturalaction.org)에 게재했던 기사입니다. (2003.7.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