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우범지대이자 사각지대, 대학 내 교수 성폭력을 말하다>(3)

연줄과 권위가 지배하는 사회, 대학

대학에는 학문 연구의 기능 외에도 다양한 기능이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사람들을 죽자 사자 대학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중요한 기능이 또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연줄'을 만드는 기능이다.
같은 학교, 같은 학부 출신을 넘어 같은 학계, 같은 학회, 같은 지도교수로 이어지는 수도 없는 연줄에 연줄이 대학 사회와 나아가 이 사회를 거미줄처럼 얽어매고 있다. 게다가 지나치게 기능화 되고, 세분화 된 분과학문 체계는 대학 사회의 이러한 병폐에 풍부한 토양이 되어주고 있다. 이러한 대학 사회의 특수한 배경이 있기에, 대학 내에서 한 교수의 권위란 연륜이 쌓일 수록 절대적인 것이 되며 소속된 학계나 학회의 힘이 클수록 그 위치는 안정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그 만큼 교수의 위치란 불안정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칫하다가는 '왕따'가 되거나 심지어 교수직을 잃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기에 이런 상황에서 '원하는 연구'를 하고 그것을 발표하기란 그리 녹녹치 않은 일이다. 나아가 입바른 말이라도 한 마디 하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크나큰 결심과 용기를 필요로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학과 대학원 역시 이와 같은 문화의 영향권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대학원의 경우 각종 학계 행사나 학회 행사를 준비하거나 교수들과의 프로젝트를공동으로 수행하게 되는 일도 잦기 때문에 교수 사회 또는 학계, 학회에서 발생하는 온갖 문제들에도 자연스럽게 연관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논문 심사 등에 있어서 지도교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지도교수가 학생에 대하여 가지게 되는 권위도 그만큼 절대적이다. 이번 호에서는 교수 성폭력 사건의 발생에서부터 해결 과정까지에서 보여지는 특징들이 이러한 대학 사회의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한다.

교수 성폭력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는 대학 사회 문화의 발동.

나이 많은, 학계의, 대 선배이자, 남성, 교수인 가해자의 위치는 상대적으로 나이 어린, 학계에 막 진입하려는, 까마득한 후배인, 여성, 학생 피해자에게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상당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특히 잦은 행사와 프로젝트 등으로 교수와 술자리를 함께 '해야하는' 일이 많은 대학원생들에게는 더욱 이와 같은 상황이 일상에서 매우 신경 쓰이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2차, 3차까지 암묵적 반 강제로 이어지는 술자리 뒷풀이 문화는 자주 곤혹스러운 상황을 발생시키는데, 여학생들에게 술을 따르게 하거나 노래방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손을 잡는 등의 행위는 학부와 대학원을 막론하고 사실상 흔히 있는 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남녀공학이나 여학교를 불문하고 이루어진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해 제대로 판단하고 대처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상대가 나이 많은, 남성, 교수이기 때문이다.
나이 많은 어른이니까 술 좀 따라드릴 수도 있고, 교수니까 제자와 친근하게 지내고 싶어서 손 한 번 잡고, 어깨에 손 좀 올릴 수도 있지 않느냐는, 오랜 세월 머리와 몸으로 길들여져 온 관념들이 우선 머리를 스친다. 기분이 나쁘지만 다음 순간, 우선 피해자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문제제기 후 자신에게 돌아올 상황들에 대하여...
'교수가, 어른이 함께 즐기는 술자리에서 그런 걸 가지고 뭘 그러느냐', '그러니까 여자들이 사회에서 도태되는 거다', '어디 다음부터는 신경 쓰여서 여학생들하고 술자리 할 수 있겠느냐' 는 등의 뻔한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입을 연 다음 순간부터, 상황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사진/유뉴스

특히 사건이 '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우리의 현실은 처음부터 여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사건에 대한 1차적 관심은 가해자가 한 행동보다 '여자가 왜 밤 늦게까지 술자리에 함께 있었는가'에 맞춰지고, 이 때문에 가해자가 사건에 대하여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기억나지 않는다'고 부인해도 남성이자 교수인 가해자의 행위는 '우선 교수이고' '술에 취해 있었으므로 그럴 수도 있는 것'이 되고, 여성이자 학생인 피해자가 당한 상황은 '여자가 조심하지 못하고, 밤 늦게까지 술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당한 일'이 된다. 하기에 사건에 대하여 언급한 이후부터 피해자는 이와 같이 자신에 대해 불합리한 시선들부터 감당해내야 한다.
많은 사건들이 학생들과의 MT 자리나 술자리에서 발생하지만, 사건이 술자리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적인 자리에서도, 교수라는 권위를 이용하여 대학원생 조교나 학생들에게 언행을 함부로 하는 사례가 흔히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매일, 너무나도 익숙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더더욱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기가 쉽지 않다.
여하간 이러한 어려움을 감수하고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피해자에게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가하는 상황들은 사건이 교수 사회와 학교, 학계에 알려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학교는 우선 '학교의 명예'를 생각하기에 바쁘다.
혹여라도 사건이 외부로 새나갈까 두려워 인터넷과 학보 등의 학내 여론부터 차단하려 애쓰고 사건을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하기 위하여 피해자에게 일방적으로 합의를 요구한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학생들에게 의도적으로 유포되는 '이러다가는 학교의 명예가 실추된다'는,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이데올로기는 또다시 화살을 피해자에게 돌려 고통을 가하며 이와 더불어 각종 루머로 피해자에게 '모종의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혐의를 덮어씌운다.

사건이 발생하면 학교 당국과 교수 사회, 학계는 삼위일체가 된다.
피해자의 인권에 앞서 교수로서의 위치를 사수하기 위한 '교권'이 이들에게는 보다 중요하게 부각되기 때문에 가해자가 어떠한 행동을 했던지 간에 우선 그가 교수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앞 뒤 가리지 않고 힘을 모으며 여기서 '연줄'이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한다.
가해자가 지도교수인 경우, 가해자는 '학점'을 무기로 2차 성폭력을 가하고 다른 교수들과 학교 당국 역시 피해자에게 합의를 요구하며 이 때, 가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나오는 논리들이 '가해자 교수가 학교와 학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학생들과 함께 몇 년을 노력해 왔는지 '따위 들이다. 하기에 학내에서 징계위원회가 열리더라도 이와 같은 논리로 맞서는 교수 사회와 학계 측의 압력으로 인해 사실상 가해자에게는 '징계'를 가장한 '연구년'이나 '휴가'가 주어지고 마는 것이다.
설령, 정직 처분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동국대의 경우처럼 교수들과 학계가 나서서 막무가내로 서명운동을 벌여 복직시키기까지 하며, 이미 보았듯이 그 과정에서 '서명'을 하는 행위는 서명 목적의 옳고 그름에 앞서 학계의 '연줄'에서 '의리를 지키고', '왕따 당하지 않기 위한' '의무감'에서 발로되는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하여

문제제기 되지 않았을 뿐, 크고 작은 교수 성폭력은 대학 사회에서 빈번히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뿌리 깊은 교수 사회의 권위의식과 '연줄'과 '명예'를 기반으로 한 대학 사회의 만만치 않은 문화가 피해자에게는 이중, 삼중의 고통을 가하면서 문제의 해결 또한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하기에 교수 성폭력을 뿌리뽑기 위해서는 '성폭력 학칙 제정'에서 나아가 대학 사회의 '연줄 '문화와 학생/교수 간의 권위적 관계를 해체하기 위한 노력 등이 다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호에서는 우리의 대학 문화와는 다른 외국 대학의 교수/학생간 관계와 대학 문화, 그리고 교수 성폭력과 대학 내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그들의 구체적 사례들을 살펴본다.

 

** 이 글은 제가 문화연대의 주간 문화정책 뉴스레터 <문화사회> (http://weekly.culturalaction.org)에 게재했던 기사입니다. (2003.7.23)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