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돌아오는 거야

분류없음 2013/09/10 08:16

# 사건 1
2013년 9월 7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삼성의 경기. 배영수는 5이닝 5피안타 무실점 1볼넷 1탈삼진으로 역투하면서 팀의 7-2 승리를 이끌고 경기장을 나서다가 LG 트윈스 팬으로 보이는 한 남자에게 느닷없이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았다.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잘 하라, 고 했단다. 주위에 있던 LG 트윈스 팬들은 그냥 웃기만 했다고.

 

# 사건 2
2013년 9월 7일 서울 청계천 광통교 앞에서 김조광수 감독과 김승환 레인보우팩토리 대표의 국내 최초(는 아니지만 공개적인 최초의) 동성 결혼식이 열렸다. 한창 행사를 진행하던 도중 갑자기 한 남자가 무대에 올라와 오물을 뿌렸다. 그 남자는 뒤에 취재진과 만나 "내 인분과 된장을 섞어 직접 먹어보고 가져왔다. 인분과 된장이 섞은 게 바로 동성애의 현실이다. 성경을 봐라. 내 말이 거짓말인가. 난 교회에서도 쫓겨났다"고 소리쳤다.

 

두 사건이 배경이 된 LG 트윈스와 삼성의 경기, 국내 최초로 공개적으로 열린 동성결혼식 모두 나의 관심을 끄는 일이었던지라 매우 흥미롭게 기사를 읽었다. 그리고 쌍둥이마당 (LG 트윈스 팬클럽 자유게시판)과 여타 블로그, 성소수자 운동에 관한 블로그와 기사들도 할 수 있는 한 읽었다. (여기에서 한국웹페이지를 열면 로딩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그리 많이 읽지는 못했다)

 

독특한 것은 두 사건의 주인공인 "두 남자"에 관한 평이 크게는 두 개로 확연히 갈린다는 점이다. "잘했다"와 "정신병자"라는 것.

 

두 남자의 공통점은 '폭력 (Assault)'을 휘둘렀다는 점이다. 특히 나중 분은 '인분'이라는 무기로 폭력을 쓰셨고 (Assault with Weapon) 남의 행사에 난입하여 그리 좋지 아니한 모습을 연출하셨다.

첫째 남자의 모습에서 '자기 편이 있는 속에서만 용감한' 어떤 전형을 본다. 둘째 남자의 모습에서는 동성애도 싫고 동성애를 싫어하는 교회에서도 쫓겨난 어떤 비련한 주인공의 그림자를 볼 수 있으면서 동시에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차라리 (교회보다는) 약자인 동성애 집단을 선택한 듯한 어떤 전형을 본다.

 

두 남자의 폭력사건을 통해 나는 여성혐오와 외국인혐오, 동성애자혐오와 빨갱이혐오, 다수라고 믿는 '나'와 다른 것은 무조건 싫어하는 어떤 전형을 읽었다. 불필요한 점프업이라고 해도 뭐, 달리 할 말이 없다. 나는 그렇게 읽었으니까. 

그런데, 내 경험으로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른바 '정신병자'라 불리는 사람들은 내 주변의 매우 평범한 사람들이다. 나처럼 그저 그런 사람들이다. 주변의 널린 성폭력 가해자들도 나처럼 널리고 널린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족
'정신병자'라는 말은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니다. 사실, 타자를 갈라치기할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이긴 해도 현실을 인식하는 데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 1987년까지만 해도 호모섹슈얼리티는 정신질환의 한 카테고리 (DSM-III-R)였고 아직도 많은 나라에서는 이 정의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은 몰라도 김조광수-김승환 커플의 결합 (결혼) 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 말을 할 땐 좀 유의했으면 싶다. 배영수 피폭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배영수를 폭행한 사람을 '정신병자'라 지칭하는 관점에서 보면 사실, 10년 동안 포스트시즌에 못 나간 팀을 죽자고 응원하는 것도 어떤 정신병 아닌가?

정신병자, **녀, 외국인***, 종북게이 따위의 말은 당장의 분노를 다른 데로 치우는 데에는 도움될지 몰라도 결국 그 분노는 우리의 발등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사랑(증오)은 돌아오는 거야!"

2013/09/10 08:16 2013/09/1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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