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홈페이지에 갔다.

2009/12/04 02:01 잡기장

김형경씨의 신간을 읽다가 그것이 뭔가 지금 내 마음의 흐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 숙제가 생기는 것 같아서 힘들때도 있지만, 그래도 많은 것을 직면하게 해준다.

 

 

홈페이지는 얼마 전 핸드폰 고지서 이메일 주소를 엄마 회사 이메일로 돌리기 위해서 갔었다. 얼른 이메일을 파악하고 방문했던 페이지들을 모두 지웠다. 무슨 부정이라도 타는 것마냥. 그때 메뉴 중에 유난히 눈에 띄었던 것이 나의 이야기 라는 메뉴였다.

 

 

그리고 오늘 애도에 관해 계속 고민하다가 용서와 화해에 대한 파트를 읽었다. 용서는 꼭 할 필요는 없지만, 하고 나면 그것의 좋음을 알게 될 것이란 말이 있었다. 그러니까, 용서할수 없어도 (어떤 철학자/심리학자는 용서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고 한다) 일어난 사건들이 더이상 자신을 괴롭힐 수 없도록 화해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부모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왔다. 특히 부모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 그래서 나는 외할아버지와 친할머니의 장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홈페이지 생각이 났고, 전처럼 억누르지 않고 그냥 바로 직면하기로 했다. 그리고 방금 손수 그 주소를 치고 들어가 나의 이야기 메뉴에 글 몇 개를 읽었다. 

 

 

그것이 나의 엄마임을 몰랐다면, 아마 좀 귀엽고 자기 일 하는 아줌마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은근 그 글을 볼 사람들에게 눈치도 주면서 신세타령도 하고 간간이 일상도 밝혀놓는 그런 글들이었다. 사진이 떡 하고 나오기라도 할까봐 조금 무서웠나 혹은 어쩌면 보고 싶었을까? 잘 모르겠다. 오늘은 뭔가 지금까지보다 한껏 부드러운 감정이 들었다. 나는 아마 그리워하고 있는 것 같다. 정확히 그리운 것은 무엇일까. 정말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인정할수 없어서 괴로운걸까. 아니면 이건 그냥 떠나 보내기 전의 끝자락일까. 

 

그 글을 쓰는 아줌마는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을까. 사실 이게 정말 그 사람이 쓰는 글 맞나, 다른 회사에 소속된 사람이 쓰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 말은 그 글들이 일면 너무나 낯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냥 지금 이순간은 갑자기 엄마한테 달려가서 울고 안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돌아온 탕아의 한 장면 처럼, 방황을 마치고 다시 돌아오는 왕자처럼. 그 곳에 가면 그냥 돈 걱정도 없고 사랑만 넘치는 것은 아닐까. 막 그런 생각이 든다. 하지만 대체 그 엄마는 누구인가. 일본에 살던 시절 우리 아빠의 부인? 그 여자인가? 분명 나를 오빠와 차별하고, 나에게 모든 이혼의 스트레스를 떠넘기고, 내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던 그 여자는 아닐 텐데...

 

여기까지 쓰니까 눈물이 그쳤다. 며칠동안 계속 목 깊은 곳에서 박하처럼 화 한 느낌이 있어서 왜 그럴까 했는 데, 그것은 울컥하려던 것들이었나보다. 그게 계속 곧 터질 때를 기다리며 며칠 잠복했었나보다.

 

 

나의 최초의 기억은 일본에 살던 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집은 특이하게도 세면대가 화장실 밖에 나와있고, 그곳에 둥글게 커튼이 달려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커서 아빠랑 결혼하겠다, 오빠와 결혼하겠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마 나는 일본에 살던 때를 행복했던 시절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어려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데, 혹시 그것이 그곳에서도 사실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어하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섭고 두려워 진다.

 

 

뭔가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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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4 02:01 2009/12/04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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