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한다고 말했다.

2010/04/05 22:41 잡기장

Genthinerstrasse in Berlin after the War

1920 Lithograph

 

 

 

 

그것이 며칠동안을 울고 불고 고민한 뒤 뱉어낸 말이었다.

별 말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한테는 사실 너무나 마지막까지도 하고 싶지 않은 말이었던 것 같다.

 

나는 노력이 몸에 배어 있다. 사실 노력이라고 부르기 보다, 과잉에 익숙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대체 언제부터 못하겠다라던가, 중간에 무엇을 포기하거나 말을 번복하는 것을 이다지도 몹쓸것으로 자신에게 절대 용납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고등학교때 따돌림을 당하고 복수하는 길은 공부와 다이어트 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그 처절하고도 지금 생각하면 그 진지함이 좀 우습기도 한 그 때부터 였을까. 어느 순간 바뀌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원래 나는 그런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나는 일을 끝내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 속으로 혐오하곤 했었다. 책임감을 갖지 않는 것을 혐오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토록 혐오하던 일을 했다. 그래서 그게 그렇게 힘들었었나보다.

 

아니다, 잘 모르겠다. 그냥 이제 앞으로 어떡하지 라고 생각한다.

 

 

우울증이 처음왔을 때, 그러니까 우울증을 앓은 지는 오래였지만 각종 가면을 벗고 그것과 처음 직면하기 시작했을 때는 그래도 이것저것 매뉴얼들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이렇게 두번째 태풍이 몰려오고 그것에 정면으로 강타당하다보니, 처음보다 더 큰 무기력이 몰려오는것 같다. 두번째가 주는 실망, 절망, 두려움, 지침에 대한 매뉴얼은 잘 보이지 않아서 너무 혼란 스럽다.

 

도서관에 가서 우울증이 주는 좋은 점들에 대한 책을 읽어보았다. 참 건방지게도 아는 내용들이었다. 인정하는 내용들이었다. 뭔가 억울한 듯도 하고, 한편으로 화가 나기도 한다. 1년이 전 생애를 놓고 보았을 때 긴 시간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내가 그 1년을 어떻게 보냈는데... 그 1년이 어떤 1년이었는 데... 물론 내가 완전히 그때로 뒷걸음질을 쳐서 돌아갔다거나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절망스러운지도 모른다. 왜 이렇게 삶은 풀어야할 일이 많은 걸까. 정말 다른 사람들도 이런 것들을 마주칠까 인생에서.

 

 

나도 모르게, 두달 동안 이전의 태도로 돌아오려고 했을까. 그래서 내 정신이 나를 꽉잡고 앞으로 못 가게 가만히 있으라고 경고하는 것일까. 아직 춤을 추는 것만큼 그림을 즐기지 못하니까, 좀 더 천천히 가라고 하는 것일까. 하루종일 각종 의문만이 머리를 채우고 답은 하나도 낼 수가 없었다.

 

 

그저께 노인의 몸으로 한강을 걸었을 때에도, 또 오늘도

새삼 너무 주변이 빠르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자동차가 너무나 빨라서 나는 실제로 걷고 있는 데도 뒤로 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의 무거운 지친 걸음이 그토록 느렸거나 주변이 그토록 빨랐다. 뭔가 속도에 대해서 감지했다. 나는 주변의 속도를 무시하기 위해서, 그런 훈련을 하기 위해서 다시 우울증으로 들어가는 걸까.

 

 

어렵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04/05 22:41 2010/04/05 22:41
─ tag 
Trackback URL : http://blog.jinbo.net/09/trackback/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