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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11
    <swp>맑스주의와 테러리즘-존몰리뉴
    투사
  2. 2004/08/11
    쿠바 사회주의는 러시아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다
    투사

<swp>맑스주의와 테러리즘-존몰리뉴

맑스주의와 테러리즘
체제의 폭력이 테러리즘을 낳지만, 혁명가들은 사뭇 다른 투쟁 형태를 위해 싸운다



존 몰리뉴



우파들은 항상 지난 3월 11일 스페인 마드리드 테러 같은 사건들과 혁명을 연관시키려 해 왔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모두 그런 [투쟁] 방법에 항상 반대해 왔다.
우리가 원하는 사회는 폭력이 없는 사회, 지금 우리가 겪는 억압과 차별이 과거지사가 돼 버린 사회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들은 이 새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폭력을 일절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폭력을 일절 거부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전쟁?핵무기?군대?감옥 따위를 지지하는 부르주아 정치인들은 순전한 위선자들이며, 맑스주의자들은 특정 상황 ― 민족 해방 전쟁이나 대중의 혁명적 투쟁 ― 에서 폭력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계급 투쟁과 무관하게 소수가 저지르는 관공서나 민간시설 폭파, 항공기 납치, 암살 등의 테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 이유는 테러가 맑스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맑스는 착취?억압?폭정?전쟁의 근본 원인이 사악한 지배자 개인이나 악독한 정부가 아니라 사회가 계급으로 분열돼 있으며 다수의 노동 덕에 먹고사는 소수 계급이 생산수단을 지배하기 때문임을 보여 주었다.
지배계급 타도와 그들이 의존하는 경제 체제 타도는 수많은 개인들을 살해하거나 협박함으로써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새로운 경제 체제의 주역인 새 계급의 투쟁으로만 가능하다.
이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적용해 보면, 자본가 계급을 패배시킬 수 있는 힘은 오직 노동계급 대중의 조직된 투쟁뿐이라는 것이다. 맑스의 말을 빌자면,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을 이렇게 강조하는 것은 자본주의 타도뿐 아니라 그 목표, 즉 사회주의 사회 건설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위로부터의 혁명, 심지어 노동계급을 대리해서 행동한다고 자처하는 세력들이 추진하는 위로부터의 혁명조차도 한 무리의 착취자들?억압자들을 다른 착취자들?억압자들로 교체하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그 혁명가들의 의도가 아무리 좋을지라도 말이다.) 이 점은 역사에서 거듭거듭 입증됐지만, 특히 동유럽?중국 등지에서 스탈린주의 군대의 정권 장악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런 곳에서는 사유 자본주의를 국가 자본주의가 대체했을 뿐이다.
사회주의자들의 투쟁 방법―리플릿 배포, 서명 운동, 노조와 정당을 통한 대중 시위, 선거 운동과 대중 파업―은 모두 노동자들의 의식?자신감?조직하기를 발전시켜 그들 자신의 행동을 진전시키기 위한 조처들이다.
테러 방법은 이런 전반적 전망과 모순된다. 마드리드에서 그랬듯이, 흔히 테러리스트들은 지배자들이나 억압자들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 대중을 공격하는 등 완전히 잘못된 표적을 겨냥한다. 이것은 특정 민족이나 인종 집단 지배자들의 행위를 그 집단 전체의 책임으로 돌리는 ?잘못? ― 더 나아가 ?범죄? ― 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잘못은 우파가 흔히 범하는 것이기도 하다.
흔히 이것은 좌파가 극복해야 할 과제인 인종적?민족적?종교적 분열을 강화시켜 노동계급의 투쟁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심지어 더 신중하게 표적을 선정한 경우, 예컨대 폭군 개인이라든가 억압 국가의 고위 관리 등을 공격할 경우에도 의도치 않게 무고한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는 잘못을 저지를 위험 부담은 여전히 남게 되고, 그 정치적 결과는 다르지 않다.
테러리즘의 공통된 결과 또 하나는 테러로 무너뜨리려 하는 바로 그 국가의 억압 기구를 강화하고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테러] 공격을 받은 정권은 오히려 시민적 자유에 대한 공격, ?용의자들?에 대한 무차별 검거 선풍으로 대응한다. 물론 항상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스페인의 최근 사건―스페인 국민의 훌륭한 대응 때문이다―은 놀라운 예외다. 그러나 그럴[억압 기구의 강화] 가능성이 훨씬 높다.



납치와 살인



마찬가지로, 테러 행위는 완전히 경멸받던 정치인이나 기업인을 모종의 순교자나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어 주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1978년에 붉은여단이 전 이탈리아 총리 알도 모로를 납치?살해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최선의 경우에조차 ― 테러의 표적이 누구나 인정하는 폭군이고 무고한 사상자 한 명 없이 완벽하게 그를 처형했을 때조차 ― 테러 활동은 맑스주의적 원칙에 어긋난다. 레온 트로츠키가 말했듯이, ?목적 달성을 위해 권총 무장만으로도 충분하다면 도대체 왜 계급 투쟁을 위해 노력하겠는가?…엄청난 폭발로 고위 인사들을 위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면 도대체 왜 당이 필요하겠는가? 집회, 대중 선동, 선거가 왜 필요하겠는가?…
?우리가 개인 테러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그런 테러가 의식 고양에서 대중이 하는 역할을 하찮게 만들고 대중 스스로 무기력함에 체념하게 만들고 대중으로 하여금 언젠가 위대한 복수자나 해방자가 나타나 임무를 완수할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트로츠키를 인용하는 것이 적절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트로츠키는 테러리즘과 관련해서 맑스주의의 주장을 탁월하게 요약한 일련의 글을 쓴 바 있고, 이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 지금도 구할 수 있는 팸플릿 ≪맑스주의와 테러리즘≫이다. 둘째, 그 글들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러시아 테러리즘이라는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로드니키, 즉 민중주의자들, 그 가운데 특히 나로드나야 볼랴(민중의 의지)라는 조직이 수행한 테러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테러 활동 가운데 하나였고 아마도 체계적인 정치 전략으로 명확하게 정식화된 최초의 경우였을 것이다. 나로드니키는 심각하게 억압받던 러시아 농민에 기대를 건 지식인들이었고, 그들의 목표는 짜르와 그 각료들에 대한 체계적 공격으로 짜르 체제를 타도하는 것이었다. 게오르기 플레하노프가 지도한 러시아 맑스주의 운동은 민중주의에 반대하며 등장했고, 따라서 테러리즘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을 벌였으며 그 과정에서 맑스주의의 입장이 분명하게 정립됐다.



테러 위협



러시아 맑스주의자들은 테러리즘에 대한 태도와 테러리스트들에 대한 태도를 구분했다. 테러리즘은 비타협적으로 거부했지만 테러리스트들에 대해서는 늘 공감을 표시하며 그들의 개인적 용기를 항상 칭송했다.
지배계급 정치인들과 그들의 언론은 테러리스트들을 ?겁쟁이?, ?악마?, ?비인간적?이라고 끊임없이 비난한다. 러시아 맑스주의자들은 그런 생각을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테러 위협?을 핑계로 짜르 체제에 대한 자신들의 비판을 누그러뜨리려 하지도 않았으며, 테러리스트들에 반대해 짜르 체제 편에 서지도 않았다. 그들이 테러리즘을 비판한 요지는 진정한 혁명 투쟁과 비교했을 때 테러리즘은 비효과적이며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물론 역사는 그들이 옳았음을 입증했다. 결국 짜르 체제와 러시아 부르주아지 둘 다 무너뜨린 것은 폭탄 테러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대중 행동이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정식화된, 테러리즘에 대한 맑스주의의 태도는 시간의 검증을 견뎌 냈고, 몇 십 년 동안 하나의 행동 지침이 돼 주었다. 그러나 지난 몇 십 년 사이에 다양하고 강력한 테러 활동들이 벌어졌고, 이를 보면 몇 가지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먼저, 우익과 파시스트들의 테러리즘이 상당히 존재함이 분명하다. 북아일랜드의 오렌지[개신교 정치 단체] 준(準)군사조직, 이탈리아의 볼로냐 폭파 사건, 미국의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 사건, 데이빗 코플런드[영국의 나찌]의 소호[런던 중앙부 옥스퍼드 거리의 외국인이 경영하는 식당가] 폭파 사건, 컴뱃 18[영국의 나찌] 등이 그런 예다. 분명히 이런 것들은 좌파에게 어떤 이론적 문제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런 것들을 모두 반대하기 때문이다.
다른 형태의 테러리즘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주로 1970년대에 극좌파와 학생 반란에서 갈라져 나온 다양한 단체들로, 미국의 웨더맨, 영국의 앵그리 브리게이드, 독일의 바더-마인호프 그룹, 이탈리아의 붉은여단 등이다. 대체로 이런 단체들은 그들을 배출한 대중 운동이 쇠퇴하는 것에 절망하고 이에 조급하게 대응한 결과다. 부분적으로 붉은여단을 제외하면, 그들은 대중 기반도 없었고 지배계급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능력도 거의 없었다. 그들의 주요 효과는 좌파를 와해시키고 혼란에 빠뜨린 것이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과제가 그런 분위기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물리적 행동이 아니라 ― 다함께 편집자] 주장을 통해서, 그리고 대중 투쟁의 적극적 계기를 확보함으로써 그렇게 해야 한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피억압 민족을 대변하려 애쓰는 다양한 민족주의 테러 단체들, 즉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조국과 자유(ETA), 다양한 팔레스타인 단체들 등이 계속 존재한다는 점이다. 대체로 이런 조직들은 상당한, 그러나 주로 수동적인 사회적 기반을 확보하고 있고―비록 그 규모는 소수인 경우도 있고 상당히 다수인 경우도 있는 등 다양하지만 말이다―결정적으로 그들은 대체로 민족 부르주아지의 일부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재래식 전쟁(또는 적어도 게릴라전)을 수행할 수 있기를 바라는 정치적 결사체들이지만, 압도적으로 우세한 억압 민족의 군사력 때문에 그렇게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들의 계급 기반과 그들의 정치적 관점 때문에 그들은 노동계급을 대안으로 여기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테러리즘에 의존하게 된다.
팔레스타인 인티파다가 가장 잘 보여 주듯이, 때때로 테러 전술이 대중 저항과 거의 결합되고, 이것이 분명히 우리 비판의 언어와 논조에 영향을 미치거나 미쳐야 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좌파인 우리가 팔레스타인의 자살 폭탄 공격이나 이라크 저항 세력의 공격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맑스주의적 비판의 일반적 설득력은 여전히 남아 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의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비타협적 반대라는 맥락 속에서 맑스주의자들이 계속 주장해야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제국주의의 패배와 자본주의 타도는 서로 연관된 과제들이며 이 과제들을 완수할 수 있는 세력은 국제 노동계급뿐이라는 것이다.



존 몰리뉴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이고, ≪마르크스주의와 당≫(북막스)과 ≪렘브란트와 혁명≫(책갈피)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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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사회주의는 러시아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다

  
쿠바 사회주의는 러시아 자본주의보다 우월하다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 : 거대한 논쟁이 다시 시작된다  


(편집자 주) 1989년 구소련과 동구권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우후죽순 무너질 무렵 미국의 일본계 학자인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언”을 이야기했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에 승리함으로써 역사가 일단락되었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회주의는 역사의 사생아, 혹은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가장 먼 길’로 전락했고, 사회주의자들은 줄줄이 과거의 이념을 버리고 자유주의나 심지어 파시즘으로 전향해버렸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제임스 페트라스는 자본주의-사회주의 논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그는 ‘신생 자본주의 국가'인 러시아와 동유럽의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고 또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과 사회주의를 견지해온 쿠바를 비교한다. 그리고 시민들의 삶의 질 측면에서 ‘신생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그나마 옛 사회주의와 쿠바가 훨씬 우월하다고 판단한다.

저자 : 제임스 페트라스 미국 빙햄턴 대학 사회학과
출처 : Rebelion 2004년 6월호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이 논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이념 전쟁’은 더욱 강화되고 있다. 유엔, 국제노동기구, 식량농업기구(FAO), 세계보건기구 등과 엔지오, 유네스코, 각종 전문가들의 보고서를 보면 이 논쟁은 오히려 지금 다시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내려면 우선 ‘자본주의 도입’ 이후 러시아, 동유럽의 모습을 그 이전과 비교해볼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옛 사회주의 국가들의 현재와 지금도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를 비교해보면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옛 사회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로 이행하기 시작한지 15년이 흘렀다. 평가엔 충분한 시간이다.

옛 사회주의 국가들 : 산업은 절망, 실업률은 급등, 조직범죄 극성

옛 사회주의 국가들이 공산주의 체제였을 당시, 경제 자원들은 국가 소유이거나 공공 소유였다. 또한 이를 운용하는 결정도 국가적이거나 공공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국가들이 자본주의로 이행한 15년 동안 일어난 일은 이런 경제 자원들, 즉 모든 기초산업, 에너지, 광업, 사회하부구조, 유통 등이 미국과 유럽 혹은 억만장자 마피아들에게 넘어가는 것이었다. 혹은 문을 닫았다. 이는 대량실업과 불안정 고용의 증가, 경기침체, 이민, 돈 세탁과 국민경제에서 자본이 탈출하는 현상으로 이어졌다.

폴란드에서는 연대노조의 기반이었던 그다노스크 조선소가 폐업하고 박물관이 되었다. 이 나라의 노동인구 중 20%는 공식적으로 실업상태이다.(『파이낸셜 타임스』 2004년 2월21일) 나머지 30%는 성매매, 밀수, 노천시장, 행상, 각종 지하경제 등 주변부의 저임금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불가리아, 루마니아, 라트비아, 동독도 비슷하거나 더 나쁜 상황이다. 이러한 옛 사회주의 국가들에서 지난 15년 동안의 1인당 평균 실질소득 증가는 그 이전의 15년(공산주의 치하) 보다 훨씬 낮았다. 이와 함께 소득격차는 엄청나게 심각해져서 최상위 소득계층 1%가 사적 자산의 80%와 소득의 50%를 지배하게 되었다. 빈곤층은 50%를 상회하고 있다. 옛 소련, 특히 아르메니아, 조지아, 우즈베키스탄 등의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생활 표준이 80%나 떨어졌다. 인구의 25%가 이민을 가거나 극빈 상태에 놓였으며, 산업과 공공자금, 에너지는 강탈당했다. 과학, 보건, 교육 시스템은 거의 붕괴되었다.

옛 소련에서는 하이테크의 중심지였던 아르메니아의 경우 지난 1990년엔 2만 명에 달했던 과학기술 연구자의 수가 1995년엔 5천명으로 폭락했으며 지금도 줄어드는 추세이다.(『내셔널 지오그래픽』 2004년 3월호) 아르메니아는 결국 대다수 인민들이 중앙난방장치와 전기 없이 사는 국가로, 국가의 경제적 자원들을 마피아들에게 강탈당한 국가로 전락했다.

러시아의 경제적 쇠퇴는 더욱 심각하다. 1990년대 중반 현재, 러시아 인구 중 50% 이상이 빈곤층이며 이러한 현상은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옛 레닌그라드) 외부에서 더욱 심각하다. 노숙자는 증가 추세이고 국가적 차원의 보건․교육 시스템은 붕괴했다. 비(非)전시 상황에서 한 나라의 경제가 이토록 빠르고 철저하게 무너진 경우는 현대사에서 ‘러시아 자본주의’밖에 없다. 러시아 경제는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민영화되면서 마피아들에게 접수되었다. 러시아 마피아를 이끄는 것은 8개의 억만장자 과두체제이다. 이들은 뉴욕, 텔아비브, 런던, 스위스 등의 은행으로 2천억 달러 이상을 반출한 바 있다. 이로 인해 러시아의 전 경제 부문에서 살인과 테러는 ‘경쟁력’이 되었고, 과학은 말살되었다.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었던 러시아 과학자들이 현재는 저소득과 설비부족 때문에 굶주리고 있다.

러시아 자본주의 : 한 나라 경제가 이토록 빠르고 철저히 망가진 적은 없다

‘러시아 자본주의화’의 수혜자는 옛 소련의 관료, 마피아 보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은행, 유럽의 땅 투기꾼, 미국의 제국주의자, 군부, 초국적 기업들이다. 이렇게 약탈과 대량실업, 빈곤, 절망이 만연하면서 자살과 알콜, 약물 중독이 폭증하고 있다. 소련 체제하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던 질병도 나타나고 있다. 옛 소련이 붕괴되던 당시 남성의 예상 수명은 65세였으나 2003년엔 58세로 줄어들었다.(『월스트리트 저널』 2004년 2월4일자) 이는 방글라데시 보다 낮은 수준이다. 또 쿠바 남성의 예상 수명인 74세 보다 16년이나 적다. 인구학 전문가들은 러시아 인구가 다음 10년 동안 30%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월스트리트 저널』 2004년 2월4일자)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옛 사회주의 국가들이 도입한 자본주의는 대중적인 보건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붕괴시켜 과거엔 통제 가능했던 전염병을 다시 대대적으로 부활시켰다. ‘유엔 합동 프로그램’ 보고서에 따르면 동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는 에이즈 전염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2004년 현재 1백50만 명이 에이즈 보균자인데 1995년엔 3만 명에 불과했다.

이러한 상황을 초래하는 데 큰 몫을 한 집단이 바로 러시아, 동유럽, 발칸, 발틱 국가의 범죄조직들이다. 이들은 헤로인 무역을 주도하면서 매년 20만 명의 성노예를 세계 각국으로 팔아 넘기고 있다. ‘해방’된 코소보를 근거지로 설치고 있는 알바니아 마피아들은 헤로인 무역의 요충지를 통제하면서 성노예들을 서유럽과 북미에 ‘수출’하고 있다. ‘해방’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미국과 동맹을 맺었던 군부가 헤로인을 생산, 옛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서유럽으로 반입시키고 있다. ‘해방’된 러시아의 마피아 과두체제는 주로 마약 및 불법무기 거래, 성매매 여성 양산, 미국-유럽-캐나다를 경유한 돈세탁 등에 종사하고 있다. 마피아 억만장자들은 정치인과 정당들(‘동방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선거에서 선출된)을 사실상 사고 팔면서, 미국, 유럽 등의 정보기관과 공식/비공식적인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자본주의’의 경제, 사회적 상황들은 본질적으로 이전의 사회주의체제 당시 실존하던 완전 고용, 안정적 성장, 복지 보다 못하다. 개인적인 삶에서 봐도 고용, 노후생활, 저축, 생활의 공적, 사적 안전성 측면에서 옛 사회주의 체제는 ‘범죄집단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보다 훨씬 안전한 시스템이었다. 정치적으로도 옛 공산주의 국가들은 노동자들의 사회적 수요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했고, 소득 불평등을 억제했으며, 대외정책에서도 자국의 이해를 지킬줄 알았다. 또한 경제의 주요 부문을 산업화했고 소유했다. 그러나 새로 도입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정치가들은 자국의 모든 주요 산업을 해외나 특정인에게 팔아 넘겼고 기괴할 정도로 심한 사회적 불평등을 지지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보건과 고용은 무시된다.

쿠바 사회주의는 건재하다

옛 사회주의 국가들의 ‘자본주의 15년’과 ‘이전의 15년’을 비교해보면, 오히려 사회주의 당시에 시민들은 질적으로 훨씬 우월한 삶을 누렸다. 이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제 ‘신생 자본주의 사회’인 러시아, 동유럽, 중앙아시아를 쿠바 사회주의와 비교해보자.

쿠바 사회주의는 소련과 동유럽의 자본주의화로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산업 생산과 무역은 60% 하락했으며, 쿠바인의 1인당 칼로리 섭취량도 절반으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바의 유아사망률은 1989년의 1천명 당 11명에서 2003년엔 6명으로 하락했다. 한편 러시아가 국민소득의 3.8%를 공공 보건에, 1.5%를 사보험에 쓰는데 비해, 쿠바는 16.7%를 사용한다. 남성의 예상 수명도 자본주의 국가인 러시아에서는 58년이지만, 사회주의 쿠바에서는 74년이다.

자본주의 국가 폴란드에서는 실업률이 21%로 뛰어 올랐다. 그러나 쿠바에서는 3%로 떨어졌다.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마약과 조직범죄자들이 날뛰고 있다. 그러나 쿠바에서는 청년실업자들을 위한 교육, 훈련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젊은이들은 기술을 배울 때마다 봉급을 받고 일자리를 제공받을 수도 있다. 쿠바에서는 과학기술(특히 생명공학과 약학)이 계속 발전해왔으며 이젠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상태이다. 이에 반해 옛 사회주의 국가들의 과학 인프라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 국가들의 과학자들은 이민을 가거나 국내에 머물러도 먹고 살 수가 없다.

쿠바는 정치, 경제적으로 자주성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은 미국에 군사적으로 예속되어, 발칸반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 용병을 보내 미 제국주의에 봉사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현재 쿠바의 의료인 1만4천 명은 남미와 아프리카의 최빈곤 지역에서 그곳 정부와 협력해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쿠바는 하이티에도 의료인 5백 명을 파견했다.

산업 측면에서 보면 쿠바에서는 대다수 산업이 국민적이거나 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시장 부문도 존재하며, 외국자본과 합작한 벤처회사도 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옛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우 거의 모든 기간 산업과 언론매체, 문화산업 등의 소유권을 해외로 넘겨 버렸다. 쿠바는 기초 식량, 주택, 보건, 교육, 스포츠 등에서 사회적 안전망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실업자와 저소득자들이 재화와 서비스로의 접근에서 배제되고 있다.

사회주의 운동의 새로운 전망

이렇게 경제․사회 지표들을 비교해 보면 쿠바의 ‘개혁 사회주의’는 동유럽과 러시아, 중앙아시아의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 보다 훨씬 낫다. 윤리, 문화적 측면에서 봐도 쿠바의 경우 비록 1990년 이후 관광 부문의 성장으로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지고 있지만, 마피아가 주도하는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마약, 성매매, 미제국으로 종속 때문에 부패한)보다 우월하다. 러시아와 동유럽에서 수백만 명을 감염시킨 에이즈에 대해서도 쿠바는 세계에서 가장 예방중심적이며 인간적인 의료 시스템으로 대처하고 있다. 에이즈에 대한 무료 의료, 무료 약품, 광범위한 공공 보건 프로그램 및 교육은 쿠바의 에이즈 발병률이 개발도상국 중 가장 낮은 이유를 설명해 준다. 분명히 관광산업과 저소득으로 인한 성매매가 존재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관한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와 동유럽에 도입된 자본주의가 그 이전의 체제 보다 모든 경제, 사회적 부문에서 훨씬 열악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에 관한 논쟁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쿠바의 성과가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을 뛰어 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아메리카에서 시작된 사회운동들이 자치(사파티스타), 토지소유 민주화(브라질의 MST 운동), 자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볼리비아)에서 실질적인 변혁을 이뤄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미 제국주의가 제공하는 것, 그리고 ‘신생 자본주의 국가'들이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것 보다 훨씬 우월하다.

이렇게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사회주의는 과거의 복지국가에 쿠바식 인간적 사회 프로그램과 사회 안전망, 사파티스타와 MST의 자치 실험을 결합한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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