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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 학생회의 의미와 목적

학련 1차 세미나 발제

 

이론을 참고하지 않고

 

그냥 내가 느끼는 대로 경험한 대로 썼다.

 

다시 읽으면 부끄러움이 많이 남는 글이다.



 

  학생회란 무엇일까? 지난 1년간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던 질문이다. 개인적인 경험과 사유로 그 동안 계속 고민을 이어오긴 했지만 딱히 단정하기 어려울 뿐더러 고민할수록 암울한 생각이 드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떨치려,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기 위해 세미나에 임하는 것인만큼 최대한 내 생각을 솔직하게 이번 글을 통해 펼쳐보려고 한다.

  과/반 학생회의 주요 기능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반 공동체의 유지/발전’이다. 새삼스레 이야기해보자면, 특정한 정치적 입장의 주장, 강요보다도 전술한 내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에 따라서 필자는 지난 1학기에 전혀 학우들과의 소통에서 정치적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러한 류의 발화를 하는 동기나 선배를 제지하기까지 했다. 각종 정치적 행사를 겪으면서 갈등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적이 있으며, 형식적/실질적 지위로 의도적인 방해를 하기도 하였다.(개인적으로 3.8, 4.19, 4.30과 같은 정치적 사업에 전혀 참여를 하지 않았으며 지원하지도 않았다. 중립적 입장의 관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심화되어 갔으며 안 좋은 말로 하면 ‘반동화’가 되었다고도 외부에서는 판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행위로 인해서 정치적 지향에서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동기는 이제 더 이상 나를 동지로 생각하지 않으며 사이도 매우 소원해졌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며 생각해서 많은 반성을 하고 있으며 좀 더 융통성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학생회가 없는 지난 1년을 보내오면서, 반 공동체가 점차 와해돼 오는 것을 목도했으며, 이는 결국 ‘끼리끼리’ 문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학생회가 있다고 해서, 이러한 개인주의의 절대적 경향, 개인의 파편화가 일거에 해소되거나, 불식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절대 아니다.(자본의 노동에 대한 힘의 절대적 우위가 관철되는 지금, 노동운동가들이 이러한 현실에 그저 포기하거나 조건 타령할 수만은 없고 그 힘든 지반에서 노력을 하면서 계급적 역관계의 반전이라는 이상적인 결과를 바라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은 것처럼) 하지만 이러한 경향에 대해 반전을 꾀하고 정치적 사상이나 생각이 어떻든 간에 서로 잘 어울리는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개인적으로 우리 반에 대한 자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학생회가 없는 타 과/반에 비해 우리의 공동체는 나름대로 잘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학생회가 있던 작년보다 학생회가 없는 지금이 이 측면에서는 훨씬 월등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장기적으로 볼 때 일시적일 수밖에 없으며, 점차 경향적으로 저하를 한다고 본다. 왜냐하면 올해와 같은 현상은 실질적으로 반 대표 역할을 하고 있는 나의 역량을 많이 소모한 등가교환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학생회가 없는 상태에서 앞으로도 나와 같은 이가 반을 책임지리라고 보는 것은 너무나 우연에 기대는 허상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자칭 활동가라고 하는 개인에게 사적으로 운동에 도움이 되는 쪽보다는 쓸데없는 곳에 물심양면으로 지치게 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전체 운동에서도 손실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광역화 체제의 산물인 과/반은 본질적으로 구성원들끼리의 유대감이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아직은 그 구성원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하고 있는 과 자치회가 강화, 발전되었을 때의 결과를 생각해보면 과/반과의 관계에서 엄청난 파열음을 낼 것이다. 이는 물론 단기적으로는 실현되지 않겠지만, 수 년 후에는 그러한 상황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예상을 한다고 해서 학생회에 대한 포기를 합리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광역화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와 과/반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인식 공유를 통해 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함은 물론이다.

  또한 기능주의적이고 관료적이긴 하지만, 기본 사업의 효율적 집행이라는 면에서도 학생회는 유효하다. 개강파티, 종강파티, 총엠티, 장터, 일일호프, 농활과 같은 사업들은 대다수의 과/반 구성원들이 암묵적으로 참여를 원하고 따라서 당연히 추진해야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는 몇몇 주체들이 계속적으로 추진하기에는 상당한 애로가 따른다. 물론 그 주체의 역량과 의지에 따라서 좌우되긴 하지만 이 역시 우연적인 것으로서, 학생회라는 기구가 존재할 때의 상황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필자는 반의 주체로서 저러한 기본적인 사업들을 전적으로 책임지고 추진했고 별 어려움이 따르지 않았지만 이건 ‘특수한 상황’일뿐이다. 지형과 조건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물론 지금의 학생회 역시 소수 몇몇이 꼬라박는 구조라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는 있지만 접근의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특수성을 보편성으로 치환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학생회의 목적과 기능이 단순히 저것에 국한된다면 필자는 차라리 학생회가 그렇게까지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학생회를 운동의 ‘도구’로 보는 관점은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부인하지는 않는다. 물론 특정한 정치적 입장의 강요, 관철에는 반대한다. 하지만 정말로 낮은 수준에서의 소통의 담보는 이루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나 부담이 되는 일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신념이 투철한 개인일지라도 전혀 정치적 담론이 부재한 상황에서 정치적 주장을 하는 것은 다른 학우들과의 관계의 희생을 어느 정도 감수해야만 하는데 이는 선뜻 내키지가 않는 일이고 이에 따라서 그러한 말을 하게 될 용기를 상당부분 감소시키게 된다. 그러나 학생회가 정치사업을 최소한이라도 펼쳐낸다면, 그에 따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모두가 어떤 민감한 정치적 이슈/문제에 대해서 고민이라도 해보게 되고, 말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연쇄적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하는 이들이 주요하게 생각하는 활동가의 재생산도 더욱 더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게 될 것이다.(물론 고등학생 때부터 빨갱이였던 사람은 논외로 한다.)

  공론장이 밖으로부터의 왜곡과 위로부터의 억압으로 인해 뒤틀려 있는 한국 언론계의 현실을 타파하려는 평생의 꿈을 가지고 졸업 후 장차 기자가 되려고 하는 필자로서는 과/반 내에서의 공론장의 형성에 관심이 가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깝다고 봐야할 것이다. 지금의 우리 반 상황으로서는 이것 자체가 안 되고 있기 때문이 필자는 학우대중들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전술했듯이 상당한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이를 다르게 판단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필자는 타인의 시선이나 충고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물론 사회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잘못된 태도이지만, 나는 이제껏 이렇게 인생을 살아왔다. 후회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내 신조이다.)그러한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이상이 필자가 생각한 학생회의 의미와 목적이다. 학생회론에 대해서 작년부터 개인적으로 학습한 경험이 있는 필자로서는 좀 더 이론적이고 다양한 시각에서 글을 써내려갈 수도 있었겠지만, 지금의 학생운동 지형과 세미나 기조에 비추어 봤을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지난 1년 간의 경험을 토대로 솔직하게 써보았다. 필자와 다른 지형, 상황에 처해 있는 다른 반 학우들은 동의하지 않을 내용이 있을 수도 있고, 매우 공감이 가는 내용도 있을 것이다. 서로의 입장과 견해는 다를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이 획일적이지 않은 이상 갖고 있는 생각은 사회화와 재사회화를 통해 상이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다른 가치와 견해들을 논의와 고민을 통해서 변증법적으로 도출해내 한 단계 성숙한 논의로 발전시키는 일일 것이다. 학생회 연금술사(학련)은 바로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며, 모두 이에 대해 동의한다고 믿으면서 글을 끝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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