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장사로 얼마나 버니?

고구마 장사로 얼마나 버니?

 

구수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풀풀 넘치는 것 같다. 고구마 장수로 변신한 학생들의 모습이 부산한 윤기를 뿜어댄다. 고구마 통을 에워싸고서 있는 그런 모습을 발견하자 나도 모르게 따뜻한 미소가 번진다.

 

갑자기 추위가 닥쳤다. 이럴 땐 지레 겁먹은 자라처럼 목을 한껏 움츠리면서 걷게 된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할 때면, 늘 그렇지만 습관적으로 신호등 쪽을 자주 쳐다보게 된다. ‘언제 파란 불이 들어오려나? 내가 횡단보도 앞에 서자마자 파란 불이 때 맞춰 들어왔음 좋겠다.’등등의 생각을 하게 된다. 그치만 신호등이 간당간당 할 때면 어쩔 건가. 이럴 때는 건널지 말지 얼른 결정해야겠지.

 

근데, 지금 건너려면 이 뾰족구두를 신고 발목이 시큰거리도록 뛰어야 하는데 어쩌나. 그러니 포기하고 다음 신호등을 기다려 말어? 아 난 정말 이까짓 일에 이리도 세심하게... 그리도 습관적으로 생각의 주판알을 굴리며 걷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서다. 생각의 실 가닥을 부지런히 늘였다 오므렸다를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하고 있었다. 이래야 머리가 녹슬지 않는다. 사고의 확산이 일어난다. 라는 듯이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걷는 인생이다. 그렇게 자질구레한 생각으로 나름 사고의 영역을 채우고 있을 때. 근디, 근디 저기 학생들이 왼 일이여? 건널목이 여느 때와는 달리 어째 시끄럽다. 앗, 고구마 통! 그러네. 군고구마 나왔구나.

 

연통에서 하얀 연기가 나풀거리고 있다.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아이들, 가만 보자 여덟 명? 그래 여덟 명이나 되었다. 뭔 싼거리 났다고 녀석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모여와서 거리를 이토록 장악하고 있는 것이여? 덕분에 간만에 분주한 모습을 잘도 보게 되는구나. 지금은 녀석들 숫자가 이렇게 많지만 며칠 후에는 과연 몇 명이나 보일지 모르겠다.

 

이 모습을 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도 가지가지다. 자작거리며 타오르는 불길만큼이나 확실한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슥들 뭔 짓이여?’하는 떨떠름한 표정을, 그리고 스멀스멀한 웃음을 약간 내비치는 사람도 있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자기들은 한 번씩 그러지 않았나 뭐......’ 군밤장사든 고구마장사든 하는 사람한테는 로망일텐데, 그나저나 녀석들은 마냥 바쁜 거 같다. 한 번도 아니고, 꽤나 익숙한 모습 아닌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거기다가 올해도 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3년 째 방학동에 살면서부터 겨울 이만 때쯤이면 귀가 길에 군고구마를 파는 너희들을 본다.

 

‘반갑다. 녀석들!’ 마음속으로 인사 한번 건네면 좀 좋은가. 그래서다 난 이미 저 멀리 횡단보도 앞이 시끌벅적 할 때부터 알아봤다. 근데, 군고구마 통을 지키고 있는 저 녀석은 누구여. 대빵인가? 지들만 불 옆에서 편히 앉아 있고 ‘고구마 좀 사 달라’고 행인들을 졸졸 따라다니는 역할을 하고 있는 녀석은 뉘 집 자식인 것이여. 저 카키색 파카를 입은 아이는 동업자 몇 명을 확실히 풀어 놨구만,

 

“아주머니, 군고구마 좀 사세요!”
대답 대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3천원만 주세요!”
“2천원어치 줘. 혼자 먹을 거야......”
“네에~”
내미는 고구마 봉지를 만져보니 차갑기에
“나 뜨거운 거로 주라!”하며 고구마통을 가리켰다.
‘손님은 왕이야 쯧쯧..... 녀석들 갓 구어 낸 고구마 꺼내느라 애 많이 쓰네. 손님이 무섭긴 무섭다.’
그런데 고구마를 봉지에 담아 건네기 전에 
“난, 탄 거 싫은데.......”라고 말했다.

 

내가 까탈스러운 손님인가? 차가운 건 싫어서 싫다고 한 건데. 따뜻한 거 먹고 싶어서. ‘이해 좀 해줘야겠어.’ 물 밑에서 발놀림에 여념이 없는 오리처럼 그 사이 나는 부지런히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기를 계속하며 아이들이 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왕년엔 나도 아르바이트를 꿈꿨었지. ‘내가 번 돈으로 하고 싶은 거 하고, 쓰고 싶은 데 왕창 쓸 거야.’ 하면서 마음으로야 ‘아르바이트를 했다 안 했다’를 열 댓 번씩 싫은 줄도 모르고 기와집 허물었다 부쉈다 하듯이 했다.

 

“얘 너희들 고구마 장사해서  얼마나 버니?”
"헤 헤헤...."
"웃지 말고 말해봐라 얘!"
"5만원 쯤요........"
"와? 그돈 뭐할 건데?"
“용돈으로 쓸 거예요.”
“그래? 구체적으로 뭐 할  건가를 묻는 거야.”
“옷 사 입을 거예요.”
“옷? 그것만? 메이커 옷? 으응 좋은 생각이네........”

 

대체나 얼마짜리 옷을 사 입으려고 그래 저토록 열심일까? 찜 해놓은 옷이라도 있는가 보다. 덕분에 올 겨울도,  오며 가며 냄새깨나  맡겠구나. 군고구마 먹고 싶어서 군침께나 흘리면서 지나다니겠구나.

 

반갑다, 고구마장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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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2 02:13 2010/02/02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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