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한 사회인가? 우리사회 말이다. 어려운 가운데서 죽음을 맞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관심과 도움의 손길을 뻗는 사람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타인의 죽음이나 반정부 시위에 희생당한 사람들에게 ‘소 닭 보듯이 무심한 사람’만 있으면 어디 서러워서 민주화 운동을 하겠나. 불의에 항거하는 시위에 나서겠나?
새해 첫날에 안타까운 죽음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일면식 하나 없는 사람일지라도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다가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불원천리 멀다하지 않고 달려가서 분향을 하는가 하면 노력봉사와 후원금으로 십시일반 온정을 보태며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군상(群像)이다. 정치인 중에서도 유독 소외되고 힘든 현장을 찾아 최선을 다해 어려운 이들을 위로하며 힘을 보태는 사람이 있다, 이 또한 바람직한 현상이다.
문득 여고시절에 영어선생이 하던 말이 생각난다. ‘일은 강경파가 하고 열매는 온건파가 따먹는다.’는 말마디다. 우리는 그동안 이남종씨 같은 의인들의 희생을 자양분 삼아 그들이 바친 희생의 대가를 당연한 듯이 누리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투쟁을 위해 목숨을 잃고, 부상당하고, 직장에서 내쫒긴 사람들은 음지에서 어렵게 살아가는데 그들의 희생을 보약 삼아 취하면서 가정과 직장에서 정계에서 학계에서 재계에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며 잘 사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지금 또 이 같은 희생양이 된 이남종(41세 광주)씨의 소식을 접했다. 이남종씨는 2013년 마지막 날 서울역 앞 고가도로에서 자신의 몸을 쇠사슬로 묶고 “박근혜 사퇴‘와 ’특검 실시”라는 반정부 구호를 외친 뒤, 휘발유를 몸에 뿌려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마흔한 살의 죽음’은 2014년 신년 첫날부터 한국 사회에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 “박근혜 사퇴하라!” “특검을 실시하라!”
문득 이와 대비되는 사건 하나가 생각난다. 용산참사다. 오죽했으면 ‘참사’라고 명명했을까? 용산참사는 박근혜 정부 2년 차 생긴 이남종씨의 투신처럼 이명박 정권의 집권 2년째 던 2009년 1월 초에 용산 제 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벌어진 사건이었다. 보상대책에 반발해서 철거대상자들이 남일당 건물을 점거하고 경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6명이 죽고 24명이 부상당한 대참사소식이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병역미필자와 위장전입자와 투기 전력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을 정부 요직에 대거 등용하였고, 그들은 정권의 앞잡이가 되어 단말마의 절규를 내뿜는 남일당 사람들에게 퇴로를 열어주려는 어떠한 배려도 없이 오직 무자비한 공권력만을 행사하는 무자비한 진압군이었다. 기득권층을 위해서 그들이 어떻게 복무하는지를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박근혜 정권도 이명박 정권의 판박이다. 취임 1년 차를 국민과 충돌하며 불통과 불화 속에서 보내더니 취임 2년 차 되는 새해 벽두부터 “국민들은 주저하고 두려워하고 계시다. 모든 두려움은 내가 다 안고 가겠다. 국민들이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나 주셨으면 한다.”며 분신한 40대 남자의 죽음을 기어코 보게 한 것이다.
사족 같지만 경찰은 이 사건을 빚에 내몰린 한 개인의 일탈로 몰아가고, 불입금이 2만7천 원 정도의 운전자보험의 수혜자를 동생 명의로 돌려놓았다고 해서 탐욕과 부도덕의 주인공인양 매도하는데 열을 올렸다. 하지만 시민들은 이에 반발하며 이남종씨의 죽음에 대해 경의를 표했고, 연말연시를 맞아 바쁜 일도 많을 테지만 달려가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조의를 표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았다.
SNS 상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고인의 분신소식을 재빨리 타전해준 사람이 있고, 댓글 릴레이를 펼치면서 애도를 표하는 등의 관심과 배려를 잊지 않았다. 미소한 형제를 외면하지 않은 것이다. 순발력 있는 시민, 사려 심 깊은 의인, 기꺼이 행동하는 양심들이 있기에 이들 덕분에 지지리도 소극적인 필자 같은 이도 숟가락 하나 얹는 심정으로 댓글 조문을 붙일 수 있었다.
‘없는 사람 심정은 없는 사람이 안다.’는 말이 맞은 것 같다. 한낱 부도덕한 개인의 죽음으로 폄하될 뻔 한 의로운 죽음이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힘으로 가치 있는 죽음으로 부활했다. 이남종 열사시여 5.18 국립묘지에서 고이 잠드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