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 로 피어난 76년만의 절규

         -'에미의 이름은 조센삐였다' 이제는 당당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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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은 살아 있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4.25일~5.11) 올려진 ‘봉선화’를 보고 난 소감이다. 이극은 1982년 윤정모 작가가 쓴 ‘에미의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원작자가 작년에 극본 작업을 하여 초연되었고 이번에 다시 서울시극단의 상반기 정기공연작으로 앙코르 공연된 작품이다.

이 극의 주인공은 크게 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립대 이사장인 장인으로부터 대학 총장으로 추천받은 배문화와 그의 딸 배수나다. 여기서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은 극중극의 주인공이자 과거 위안부라는 쓰라린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순이 할머니다. 배문화는 문화인류학 대학원생인 딸 수나가 ‘식민지 속의 여성’이라는 주제로 석사논문을 쓴다는 말을 듣고 논문 주제를 바꾸라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기 시작한다. 그는 젊은 시절 어머니를 ‘갈보’라고 욕하며 학대하던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했다. 순이 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강제 징집되었던 학병 배광수를 살리고 귀국한 후 결혼하여 배문하를 낳았다. 하지만 아들의 장래를 위해 문하 곁을 떠난다.

한편 제일동포인 수나의 남자친구는 위안부 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제작에 열중하면서 일본의 만행을 알게 되고, 수나와 공동관심으로 키워 나간다. 그러다가 80년대에 익명의 작가 김산혜가 쓴 ‘조센삐’라는 소설의 주인공이 나눔의 집에서 기자회견을 한 김순이 할머니의 증언과 일치한다는 점을 발견한다. 순이 할머니는 누구일까? 수나의 관심과 의문은 아버지를 향해서 집요하게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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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과거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인과 그녀의 아들과 손녀 수나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친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위안부 문제가 나와는 상관없는 문제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현실이라는 점을 자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일본인들은 교과서문제와 역사왜곡문제, 독도문제 등 과거사문제에서 단 한 번도 솔직한 사과나 반성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군에 성노예로 잡혀가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은 사실조차도 숨겨야 했던 위안부할머니들의 피 맺힌 절규와 증언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우리들의 문제로 다 같이 나설 때 그 매듭은 비로소 풀리기 시작한다.

일본의 반인륜적인 범죄에 희생된 것도 억울하고 분한데 뉘라서 죄인처럼 숨죽이고 지내는 것만이 능사더란 말이냐.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한 치의 반성도 할 줄 모르는 일본인들에게 면죄부를 안기는 것은 더 더욱 안 될 일이다.

극중의 순이 할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개구리가 돌을 맞은 것이 부끄러움이더냐? 길을 가다가 불량배들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것이 수치더냐? 내가 당한 것도 그와 같다. 억울한 일이지 부끄러움은 아니란 말이다!” 또 “독일이 유대인들에게 사과한 것은 그들이 착해서가 아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그들의 죄를 고발했기 때문이다.”라고 극중 수나는 외친다. 그러므로 억울하게 당한 할머니를 보듬어 안고 같이 목소리를 높여나가는 것이 후손들이 해야 할 몫이라는 거다.

‘연극은 살아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하고 있었다.’ 배우들의 열연에 박수를 보낸다. 절제미가 흐르는 무대장치와 자칫 무겁게 흐를 수 있는 주제를 가지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으로 빚어낸 김혜련 서울시극단장 이하 관계자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모처럼 정극마당을 찾은 관객들에게 연극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매력을 내뿜고 있는 살아있는 예술 장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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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5 12:13 2014/05/0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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