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싱스타 시즌3’ 파이널 라운드가 드디어 끝났다. 우승자는 물론 가려졌다. 페이 김수로 팀에게 우승이 돌아갔고, 준우승 팀은 김경호 안혜상 팀이었다. 시청률이 얼마나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각 방송국마다 시청률 때문에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만 이 프로 역시도 시청률 때문에 꽤나 신경을 쓴다는 소문이었다. 시청자들은 각자가 좋아하는 프로를 골라 보면 그만이다. 허나 어떤 계기로 특정한 프로그램에 꽂혀서 본방사수를 결정한 사람은 해당 프로그램을 대하는 의미와 관심이 남 다를 수밖에 없다.
‘댄싱스타’가 필자에겐 그랬다. 응원을 보내는 팀이 있어서였다. 락커 김경호 팀을 응원하면서 결승전까지 보게 됐다. 지난 3개월여 금요일 마다 ‘댄싱위드더스타’라는 프로그램을 매번 기다리면서까지 어김없이 시청했던 것이다.
‘댄싱스타’를 처음 보던 날 화면을 바라보며 그 짧은 순간에 든 생각은 ‘상당히 눈요기 거리가 많구나.’ ‘누구든 떨어지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나와 봐!’였다. 그날 1위로 호명된 김경호 팀에게 이덕화가 소감을 묻자 “실력에 비해서 과분한 1등인 줄 잘 알고 있으므로 열심히 하겠다. 다른 동료들에게는 미안하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배꼽을 쥐며 통쾌하게 웃었다. 그의 열성 펜들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일 내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고, 어쨌거나 좋은 의미의 웃음을 마음껏 웃으며 응원을 시작하게 됐다.
김경호는 드디어 페이팀과 우승을 놓고 다퉜다. 어제 저녁이었다. 김경호의 처음 시작은 춤 실력을 늘리는 게 급선무였을 것이다. 댄스스포츠에 관한한 문외한이므로 걱정과 콤플렉스가 없지 않았다고는 말 못할 것이다. 고군분투하며 댄스에 관한 용어며 기본동작과 스텝에 눈을 뜨며 매주 자신의 노력과 때로는 펜 심에 힘입어 1등을 2차례 하면서 결승까지 진출했다.
필자는 결승전에서 김경호 안혜상 팀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다. 은근히 조바심을 치면서 걱정스러울 정도로, 나이로나 객관적인 전력에서 페이 김수로 팀에게 무엇 하나 나을 것이 없다고 봤기에 더욱 그랬다. 흔한 말로 락커는 댄스가수가 아니잖은가. 이는 락커는 댄스가수들처럼 춤을 추면서 노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락커로서 결승까지 진출한 마당에 춤의 기능적인 것에 너무 연연하여 기량에만 목숨 걸면 죽도 밥도 아니다. 제발 스토리가 있는 특별한 춤을 춰줬으면 하는 것이었다.
하여 생각했다. 확실한 자기 세계와 독창성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김경호는 과연 그런 마인드를 가졌을까. 이 부분에 눈을 돌릴 수 있는, 지적(知的)인 락커일까. 아티스트로서의 역량과 재능과 확장성에까지 맞물리는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그래주길 바랐다.
앗, 반전이다. 정말 반전이야! 내심 박수를 치면서 반색하며 만족스럽게 시청을 하게 돼 기뻤다. 1등을 하면 좋은 거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어차피 자기의 주력 분야도 아니면서 ‘댄스스포츠’에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지나치다 못해, 내용 없는 춤을 추게 되는 것 보다는 개성을 강조하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다. 그런데 아니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런 걱정을 한 방에 날려줬다. 김경호 팀은 다행히 그러지 않았다. 3개월의 긴 여정의 피날레를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고 스토리를 가미하여 짧은 시간이나마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차원 높은 진정한 승자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말이다.
이에 비해서 페이 김수로 팀은 기량에 방점을 두고 1.2차 전 모두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빠른 템포의 춤을 선보였다. 삼바와 차차차였다. 춤 실력에 단점도 찾을 수 없었고, 허점도 빈틈도 없다는 평가를 얻어냈다. 이에 비해서 김경호 팀은 지정종목인 삼바가 끝나자 2차전을 파소도블레로 이어갔다.
먼저 1차전의 내용을 보면, 가운을 입고 침대에 누운 모습이 보이는가 했더니 순간적으로 화들짝 놀라 깨어나면서 발을 동동 구른다. 춤 연습을 해야 하는데 너무 피곤해서 늦게 일어난 일을 자책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가운을 벗어던지고 곧 댄스에 임하는 자세로 돌아가 신나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2차전은 죽어가는 연인을 살리기 위해 애절한 염원을 담아 기를 불어넣으며 기도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이들의 의상은 뱀파이어 같은 검정색이다. 마치 사후 세계를 연상시키는 콘셉트였다. 이들은 죽어서도 사랑의 끈을 놓지 않는 두 남녀였다. 김경호 자신이 직접 녹음하고 부른 노래에 맞춰 애절하고도 격렬한 몸짓을 이어가며 무대를 뒤흔들었다. 바로 그것이다. 곧 죽어도 자신의 세계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 아티스트다. 개성과 독창성으로 승부하는 것이 맞다.
필자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사람이 버릴 것은 버리고, 선택과 집중을 할지 말지에 대해서 가닥을 잘 잡아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서다. 지난 대선 같은 일은 다시 기억하기도 싫다. 자기다움을 보이면서 깨끗이 선전하는 정치인들이 없어서다. 야권 연대니 뭐니 때마다 되풀이되는 정치인들의 꼬락서니에 아주 진저리가 난다. 보기도 싫다. 필자에겐 몇 년 째 떠나지 않는 분노처럼 들끓는 질문이 있다.
2007년도 대선에서,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정동영씨는 과연 세상 천지에 정치계에 처음 나선 문국현이라는 사람과 단일화만 하면 모든 물줄기를 돌려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고 보았는가 말이다. 마치 동화에서처럼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서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는 식으로 정책대결이며 비전제시 등 중요한 것 다 제쳐두고 그깟 정치 신참인 문국현이의 주가(株價)만 잔뜩 높여주는 단일화에 목을 매기만 하면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고 보았는가.’다.
정책으로 승부를 하며 최후의 일각까지 처절하고 격렬하게, 무섭도록 치열하게 싸웠더라면 지금 그가 오늘 날과 같은 위상의 정치가가 됐을까. 지더라도 잘 졌으면 했었다. 그래서였다. 자기다움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겨루기는 딱 질색이다. 김경호는 해내고 있었다. 김경호 다운 영리한 무대를 보여주며 등수를 초월하는, 소아적인 염려를 걷어내고 있었다.
주어진 시간을 자기만의 시간으로 잘 누렸을 뿐만 아니라, 춤에 스토리와 독창성을 담아냈고, 무엇보다도 록커로서의 자기 영역을 극대화 시키는 선 기능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응원하는 호남정치인들도 제발 광폭행보를 좀 했으면 한다. 똑똑한 행보, 영리하고도 떳떳한 승부를 펼쳤으면 한다.